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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가 이어지는 하루하루.
아침에 다들 출근할 때 나는 퇴근하고 있는 것과 새벽에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정보가 뒤처지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당장에 어제만 해도 그렇다.
“대리가 알바한테 성희롱으로 고소당했다고?”
퇴근하고 돌아온 제갈재민과 민동건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따끈따끈한 소식을 알려준다.
저것들은 왜 똑같은 빤스를 입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마 동네가 같으니 같은 곳에서 샀나 싶었다.
“그래, 그것도 하필이면 모기업 부회장님께서 오신 타이밍에 말이야. 아 씹, 민동건이랑 팬티 똑같은 거야.”
“어차피 군대 가면 다들 커플로 입음.”
“그래서 우리 부장이 난리를 쳤던 거였구나.”
이찬송 부장이 발악하면서 새벽에 출근했던 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에휴, 그래서 지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니까? 원래도 알바랑 회식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근데 이제는 퇴근하고 만나도 안 된대. 나 대리님들이랑 스키장 가기로 약속했는데 다 취소됐잖아.”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고 듣긴 했는데 참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싶었다.
“근데 너는 이런 걸 어디서 주워들었냐?”
제갈재민에게 묻자 녀석은 옆에 있는 민동건을 가리킨다.
“얘가 블랙에서 일하잖아. 거기 VIP들만 들어가는 곳이라서 이런 소문이 직원들한테 금방 들어와.”
“거기는 라면도 10만 원이다?”
옆에서 민동건이 헤실헤실 웃으면서 덧붙인다.
“하여튼 그래서 다들 긴장 상태니까 너도 조심해라. 괜히 선배들 거슬리게 했다가 욕 엄청 먹는다.”
“……욕먹었니?”
슬쩍 떠보듯 묻자.
“아, 씨이불! 음식 나가는 순서 하나 틀린 거 가지고 진짜 뭘 그렇게 지랄이냐고!”
바로 아득바득거리면서 괴로워하는 제갈재민. 과자를 폭식 중인 민동건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모양.
덜컹.
때마침 정찬우와 대상 형님도 퇴근하셨는데.
“다녀왔습니다아.”
“……하아.”
몸에 힘이 없고, 한숨을 푹푹 흘려대는 걸 봤을 때.
아무래도 직원들의 내리 갈굼이 알바생들에게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중인 듯했다.
다들 피로에 절어 있는 모습이었기에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씻고 나와. 노래방 가자.”
원래 이럴 때 스트레스 풀려면 노래방이 제격이다.
스트레스를 노래 부르면서 푼다는 생각은 다들 비슷했던 모양이다.
C동 지하에 있는 노래방은 벌써 꽉 차 있었다. 무인 노래방이라 따로 주인 분한테 시간 얼마나 남았냐고 묻지도 못한다.
“아, 뭐야.”
“나 노래 목록 다 뽑아뒀는데.”
“아쉽네.”
다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그냥 돌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노래방 창문으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
“자니나아안! 여자라아아아!”
열심히 고음을 내지르고 있는 한봄을 딱 본 순간 입가에 미소가 바로 지어졌다.
“잠깐 기다려 봐.”
슬쩍 창문으로 내부를 확인하니 한봄과 이서아를 시작으로 서예린이랑 유아린까지.
전부 아는 얼굴들이다.
“흐흐.”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노래를 부르던 한봄이 깜짝 놀라며 나를 가리킨다.
“우진이다!”
“와! 얼마 만이야!”
내가 새벽 근무로 들어간 탓에 한봄이랑 이서아를 못 본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우지나!”
특히나 서예린 같은 경우는 아예 근무처가 달라 진짜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평소보다 콧소리가 많이 들어가 있다.
“혹시 우리 룸메들도 같이 합석해도 괜찮을까?”
“아, 그럼! 당연하지!”
“남자다아!”
바로 반기는 한봄과 이서아.
특히나 이서아는 바로 사진 촬영 준비에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남자친구랑 아직 기 싸움이 한창인 모양이었다.
“들어와.”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자 찬우를 제외하고 설렌다는 표정으로 우르르 밀려 들어온다.
“……나, 난 쟤들이 좀 불편해.”
우뚝 서 있던 찬우가 내게 다가와서는 작게 속삭였다.
“너 골드원 올 때도 쟤네랑 같이 왔잖아.”
“그때도 불편했어.”
“그렇다고 여기서 혼자 빠지면 이상한 거 알지?”
“하아.”
고등학교 때 치부를 알고 있는 네 사람이라서 불편할 수도 있겠단 생각은 했으나 이제 대학생이지 않은가.
과거는 그냥 넘겨버리라고 어깨를 토닥이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우진이는 여기.”
자신의 옆자리를 토닥거리면서 나를 부르는 서예린.
세신강대 듀오의 따끔한 눈초리를 받으면서 나는 서예린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바로 반대편 옆자리에 찾아온 유아린.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로 뭔가 불만이라는 듯 삐죽거리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우진아, 듀엣곡 하자!”
오랜만에 보는 서예린은 평소랑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본인 핸드폰으로 듀엣곡을 찾는 서예린에게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고.
환하게 웃으면서 귀를 대는 녀석에게 남들이 못 듣게 작게 속삭였다.
“너 도배 작작 하랬지.”
“히.”
최근 대나무숲 도배가 잦아진 걸로 짜증 내자 뭐가 그리 재밌는지 히죽 웃는 서예린.
대나무숲 이용자가 방학이라 많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게시글이 몇 개 올라오지 않으니 하루에 두세 개만 글을 꾸준히 써도 게시판을 점령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서예린이 무슨 영역확장이라도 하는 것처럼 글을 섹무새 짓을 하고 있어 자중하라고 했으나.
이 녀석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히죽 웃은 서예린이 반대로 내게 귀를 대라고 손짓했다.
“있잖아.”
작게 속삭이면서 말하는 게 묘하게 끈적하다.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듣는다.
“내가 섹x좌 자리 다시 뺏은 거지?”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고 있다고?”
얘 은근 집착이 있네.
어이없다면서 녀석을 쳐다보자 다시 귀 대라면서 손짓하는 서예린.
또 무슨 할 말이 있나 싶어서 귀를 대자 이번에는.
“움.”
츄릅.
갑자기 귀를 깨물더니 맛을 보듯 혀로 할짝댔다.
“……?!”
이빨에 힘도 크게 주지 않았기에 바로 뺄 수 있었지만 축축해진 귀에 당혹스러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어서 노려보자 서예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핸드폰을 내민다.
“우진아! 이거 같이 부르자!”
“너 왜 배우를 안…… 악!”
갑자기 허벅지에 느껴진 통증에 나도 모르게 반대편을 쳐다보자 몹시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유아린.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눈치를 주는데 진짜 너무 아프다.
“네 악력으로 꼬집으면 살 뜯어지는 거 같거든?!”
“김우진 짜증 나.”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둘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노래 부를 거 생각하니까 벌써 골치 아프다.
“흐응.”
하지만 의외로.
서예린 쪽에서 한발 물러났다.
일부러 유아린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딱 보였는데 덕분에 노래방에서는 다소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몰래 내 허벅지를 쓸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행위가 있긴 했으나.
어쨌든 그건 유아린한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깐이라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유아린이랑 나는 야간근무라서 노래방에서 먼저 나오고, 옷을 갈아입으면서야.
‘뭐지…… 성희롱당한 비서 같은 느낌이네.’
그제야 내가 서예린한테 성희롱당했다는 걸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기분이 막 엄청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별문제는 없었다.
오랜만에 본 서예린은 조금 놀랄 정도로 예뻤고, 예쁜 애들 손길은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누가 이걸 듣고 쓰레기라고 말해도 그러려니 하리라.
야간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해 출퇴근 버스는 야간에도 운행한다.
퇴근한 사람들을 지나쳐 유아린과 함께 버스에 탄다.
창가 자리에 앉은 유아린은 뭔가 고민이 있는 듯 턱을 괴고는 창문을 보고 있었고.
나는 시간이나 때울 겸 웹툰이라도 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문의가 들어와 있었다.
“음?”
최근에는 익명11이 나한테 욕하면서 저거 익명69 차단 먹이라고 했던 거 말고는 따로 문의가 없었는데.
무슨 문의인가 싶어서 확인하자.
- 익명69:(사진)
꽤나 오랜만이면서도 익숙한 흐름.
노래방에서 해산했는지 배경은 숙소 화장실.
얼굴은 딱 입까지만 보였는데, 입에 윗옷 아랫단을 물어서 배꼽부터 브래지어까지 훤히 보이는 게 순간적으로 하반신에 힘이 들어갔다.
‘아, 씹.’
서예린 이걸 어떻게 하지.
거의 테러 수준의 사진에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잘못해서 유아린한테 걸리면 뒤지게 맞을 테니까.
-
익명69: 이걸로 빼세용.
-
관리자: 이딴 거 보내지 말랬지.
-
익명69: ㅎ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채팅이 짜증 난다. 하루 밴이라도 먹일까 했는데 지난번에 밴 먹이니까 아예 톡으로 보내왔었다.
“후우.”
심호흡하며 하반신의 힘을 빼고 있자니 옆에 있던 유아린이 나를 슬쩍 보고는 물었다.
“야, 예린이 말이야.”
“갑자기 왜.”
“뭔가 이상해진 것 같지 않냐?”
“뭐가 이상해져.”
-
익명69: 섹x!
-
익명69: 섹x!
-
익명69: 섹x!
-
익명69: 섹x!
-
익명69: 섹x!
시발.
지금 하는 거 보니까 폼이 절정인데 이상해지긴 뭐가 이상해지는가.
“나한테 막 협력…….”
“협력?”
무슨 소리냐며 되묻자 유아린은 나를 빤히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결국 말을 아끼는 유아린. 말을 하다 마는 게 좀 그랬지만 지금은 유아린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
익명69: (사진)
-
익명69: 잘 준비 중
‘얘 왜 이래?’
이번에는 잠옷을 입고 이불에 누워 있는 서예린의 사진.
마찬가지로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잠옷 단추를 다 풀어 훤히 보이는 가슴골과 수면바지도 살짝 벗어서 아래 팬티까지 한 장에 담겼다.
그 와중에 꼭지는 잠옷으로 가려져 있는 게 은꼴의 정석과 같은 짤이었다.
하반신이 화난다.
‘서예린 씨…….’
-
관리자: 너 진짜 밴 할 거다. 네 문의랑 톡 다 씹을 거임.
-
익명69: 잠깐만! 잠깐만!
-
관리자: 왜.
-
익명69: 하나만 더 말해줄게.
-
관리자: ?
뭐 최후의 변론 같은 건가 싶었는데.
- 익명69: (사진)
구도는 아까랑 똑같지만 하나 다른 점은 아예 팬티를 벗고 그 위에 손을 얹어서 가리고 있는 사진을 찍었고.
화룡점정.
-
익명69: 여기 아린이 이불임.
-
관리자: ???
-
익명69: 원래 이런 게 클리셰잖아. 아는 애 침실에서 다른 사람 따먹…….
바로 차단해 버렸다.
우웅! 우웅!
톡으로 오는 것도 그냥 대화방 진동을 꺼버렸다. 요즘 좀 잠잠하다 싶었더니 오늘 아주 폭발하는구나.
‘얘가 뭔 일 있나?’
이쯤 되니 조금 걱정되기도 했는데. 서예린이 이런 식으로 폭발할 때는 보통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으니까.
익명69로서의 활동도 주변의 시선 탓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욕망을 분출하려고 했던 거니까 말이다.
방금 유아린이 서예린이 좀 이상하다고 말했던 것도 있고…….
고민하고 있자니 벌써 도착한 A동 골드원 호텔.
“야, 내려.”
“…….”
내가 바깥쪽에 앉아서 먼저 일어나야 했는데 아직 서예린이 화나게 만든 게 가라앉지 않았다.
“먼저 내려.”
내가 몸을 웅크린 채로 말하자 유아린은 의아해하면서도 알겠다고 나를 지나가려 했으나.
“아, 머리를 치워야 지나가지.”
웅크린 탓에 머리가 앞으로 쏠려 있었고, 그게 거슬렸던 유아린이 내 이마를 쭉 밀었는데.
“……?”
덕분에 굽히고 있던 허리가 펴지면서 하반신이 훤히 드러나게 되었다.
심지어 유아린이 내 앞을 지나가고 있던 상황이라 무슨 마중이라도 나오듯 꼿꼿이 서 있는 내 것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어, 어? 아, 아니…… 왜?”
더듬더듬 떨면서 손가락으로 내 것을 가리키는 유아린에게 나는 짐짓 심각한 척 팔짱을 끼며 답했다.
“생리현상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이미 걸린 거 그냥 당당하게 나가자.
“아, 그, 무, 무슨 일 있었어?”
“남자는 가끔 이유 없이 화내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
“…….”
“…….”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미안한데 그냥 꺼져주면 안 될까? 시발 혼자 있고 싶은데.”
농담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뒤질 것 같다.
“그, 있잖아.”
“……왜.”
이런 상태에서 말 거는 것도 대단하다.
힐끔 내려다보며 유아린은 손으로 바지 지퍼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라도 내려서 좀 편하게 되는 건 어때?”
“제발 혼자 있게 해주면 안 되겠니?!”
“흐하항! 김우진 짐승 쉑!”
뭔가 기분 좋아하는 거 보니까 오해하는 것 같아서 떠나가는 유아린에게 한마디 해준다.
“너 때문 아니야!”
“빠큐! 얼른 나오기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