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233265/63.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2 KiB

찬우가 일부러 자리를 비켜줬다는 걸 알게 되니, 얘기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정작 둘이 될 시간이 없었다.

이 좁은 자취방에서 세 사람이 같이 있는데 둘이 따로 얘기할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반쯤 포기한 채로 그냥 흘러가게 두는 중이었다.

사리가 추가된 치즈 닭갈비를 먹으면서 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지?”

유아린의 말대로.

생각보다 맛있어서 좀 놀라고 있는 것.

“에잉! 이게 뭐가 맛있다고! 아빠는 이런 거 안 좋아해!”

승리에 한껏 젖은 유아린의 표정이 더럽게 마음에 안 들었기에 억지로 아닌 척했으나.

“어휴, 노잼.”

“이 집 맛있다.”

유아린과 정찬우는 자기들 먹을 거나 열심히 먹으면서 나를 무시할 뿐이었다.

“나 담배 좀 피고 올게.”

맥주를 마시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담배 좀 피우겠다면서 밖으로 나가는 찬우.

“흡연구역 내가 알려줄게.”

기회다 싶어서 나도 냉큼 일어나려 했는데 찬우가 재빠르게 거절하며 나를 앉혔다.

“아냐, 나 알고 있어.”

“…….”

“금방 피고 올 테니까 그냥 둘이 마시고 있어.”

왜 금방 안 올 거 같지.

그런 말이 입안에 맴돌았으나 빤히 우리를 쳐다보며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유아린의 시선 탓에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탕.

문이 닫히고.

“저 새끼 지금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심드렁한 유아린의 한 마디.

말투가 거친 게 취한 줄 알았는데 정작 얼굴을 보니 그건 또 아니었다.

쉽게 말해 유아린의 기분이 언짢다는 뜻이었다.

“아까 화장실도 그렇고 일부러 자리 비켜주는 느낌인데?”

우동 사리를 먹으면서 찜찜하다는 꿍얼거리는데 그걸 본 나는 오히려 편안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아. 아까도 화장실에서 똥 안 싼 듯.”

“아, 씨. 밥 먹잖아.”

짜증 내면서 몸을 틀어 발로 나를 툭 치는 유아린. 아프진 않았지만 묘하게 기분이 더럽다.

“에휴, 찬우 저 새끼. 이상한 생각하는 게 짜증 나네.”

맥주 한 캔을 더 비우면서 꿍얼거리는 유아린에게 나 역시 한 모금 마시며 동의했다.

“쩝, 나도 그래. 괜히 너랑 나 엮으려고 드는 게 아주 별로야.”

“내가 존나 아까운데.”

음?

“개소리야, 내가 아깝지.”

뭔소리냐고 따지면서 옆을 보자 유아린도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어딜 봐도 내가 아깝지 않냐? 봐, 몸도 슬림하니 잘 빠졌지. 운동해서 탄력 있지, 유연하고, 심지어 윈드밀까지 돌 수 있어.”

윈드밀 도는 거 때문에 살짝 내가 밀리나 싶었는데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슬림하기보단 그냥 별거 없는 거겠지. 나를 봐라. 매너 있고, 젠틀 하고, 배려가 깊잖아.”

“할 말 없으니까 똑같은 거 세 개 말하는 것 좀 봐라.”

들켰나.

유아린 말대로 사실 똑같은 말 세 개를 돌려가면서 말했을 뿐이다.

“게다가 배려가 있지도 않음. 도대체 네 어디가 배려임? 그냥 지 꼴리는 대로 살고 있으면서.”

생각보다 날카롭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유아린보다 못한 남자가 되어버린다.

“지금 네가 여기 와서 술 마시고 있는 것도 내 배려고. 너 대나무숲에 맨날 심심하다고 글 남기니까 관리인 시켜준 것도 나잖아.”

“와, 뻔뻔한 거 봐라. 그냥 김뻔뻔이네.”

“진짜 너무 재미없어.”

투닥투닥 거리면서 얘기하고 있자니 또 맥주를 한 캔 더 비웠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느새 서로를 까 내리기에 급급해졌다.

“네 장점? 그냥 본능에 휘둘려 꼴리는 데로 살아서 남 눈치 안 본다? 딱 그거 하나 아님?”

“내가? 내가 본능에 휘둘리면서 살아간다고? 이건 씨…… 나만큼 절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당장에 대나무숲 문의만 봐도 익명69한테 방 잡자는 문의가 몇 개가 와있는데 나한테 본능에 충실하다고 하는가.

당장에 최이서가 집에 왔을 때, 콘돔이 없으니 참았던 나의 자제력을 유아린이 봤으면 성인군자라고 기립박수를 쳤을 텐데.

“내 가슴 만졌잖아.”

“…….”

시불년.

꼭 할 말 없게 만든다.

“가슴인 줄 몰랐음.”

알딸딸하니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막말을 내뱉었으나 이 정도는 이제 유아린과 크게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유아린도 콧방귀를 뀌면서 맥주를 들이킨다.

“지랄하네. 그때 존나 흥분해서 콧김 뿜던 거 기억함.”

“……야, 잠깐만. 근데 그거 네가 만지게 한 거였잖아. 게다가 나는 거기서 더 하지도 않았고.”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

나는 안 하겠다고 결국 이겨내지 않았는가.

내 말에 유아린은 방금 마셨으면서 바로 캔맥주에 입을 다시 댄다.

할 말이 없다는 거겠지.

“딱 거기가 끝이죠, 유아린. 결국 할 말 없죠. 김우진 거의 보살이죠. 이 새끼 고자인가 싶을 정도의 자제력이죠.”

씨익 웃으면서 옆에서 계속 깐족거리자 결국 참지 못한 유아린이 손을 뻗어 양쪽 뺨을 콱 잡아챈다.

“이 새끼가…….”

뭔가 승부욕이라도 생겼는지 이를 으득 물고는 씩씩거리는 녀석.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진 건지 모르겠다.

“덤벼! 드루와!”

그러더니 내 손을 확 낚아채서는 본인 가슴에 냅다 가져다 대는 게 아닌가.

지난번이랑 똑같은 상황.

어느새 나는 유아린의 볼록한 흉부에 손을 얹고 있었다.

겨울이니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다가 속옷까지 있으니 당연히 인위적인 감각이 대부분이었으나.

그 틈 사이로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은 지난번과 똑같이 내 가슴을 쿵쾅쿵쾅 두드려왔다.

허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히끅.”

유아린의 표정이겠지.

일절 내게 흥미 없다는 지난번에 보였던 눈길과는 다르다. 당시에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감정의 교류 없는 스킨십이라 여겨 손을 뺐으나.

지금은.

“히, 익.”

붉게 떠오른 두 뺨.

살짝 물기가 차오른 눈동자.

이후에 있을 상황이 두려우면서도…… 약간은 기대가 된다는 일렁임이 느껴진 순간.

움찔.

어느새 내 양손은 그녀의 양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흐… 후응.”

한손에 잡히는 가슴 탓에 살짝 힘을 주자 술기운이 섞인 미약한 신음과 함께 몸을 약간 비트는 유아린.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게 부끄러운지 냉큼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으나, 내 손은 착 달라붙어 오는 그녀의 흉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유혹적이다.

뿐만 아니라 중독성 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으며 여기서 더 하면 뭔가 다른 선을 넘을 것 같은 순간.

똑똑똑.

“우진아, 이거 문 잠겼어.”

문밖에서 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와악! 씨바알!”

일어나면서 동시에 내 가슴에 발길질을 내지른 유아린 덕분에 뒤로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바로 화장실로 도망친 녀석.

“…….”

바닥에 엎드린 채로 영원히 있고 싶었다.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지금 바로 잠들어서 잊고 싶었다.

“우진아? 아린아?”

밖에서 들려오는 찬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천천히 일어난 나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하반신에 힘이 들어간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들어와.”

문을 열어주자 찬우가 방긋 웃으면서 입고 간 패딩을 벗는다.

“아린이는?”

“……화장실.”

“괜히 물었네.”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남은 닭갈비를 먹고 있자니 유아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여전히 얼굴의 붉은 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화장실 문에 팔을 댄 채 유아린은 나를 보며.

“기, 김우진 수준.”

억척스러운 비웃음을 내걸었다.

“저년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기이하다고 해야 할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유아린 덕분에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시간이 깊어지고, 당연히 유아린을 우리 집에서 재울 수는 없으니 택시에 태워서 집에 보내버렸다.

찬우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내일 금요일이라 알바도 따로 없고 남은 술을 마저 먹으려 했으나.

안주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썩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유아린이 가서 분위기가 살짝 처진 탓도 있겠지.

“우진아.”

서로 홀짝거리면서 맥주를 마시던 와중 찬우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일부러 단둘이 있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막상 이렇게 찾아오니까 또 덜컥 걱정됐다.

“응?”

대답하며 고개를 들자 찬우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는 그윽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잘생긴 게 열 받지만.

그래도 좋은 놈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아린이 잘 부탁해.”

웃고 있었으니까.

“내가 봤을 때, 아린이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뭔 소리야.”

억지로 부정하면서 맥주를 마셨으나 찬우는 오히려 피식 웃음을 흘린다.

“아님 말고.”

“하아, 찬우야. 오늘 왜 온 거냐?”

유아린은 그렇다 쳐도, 찬우까지 같이 온 이유를 알고 싶었다. 듣기로는 찬우가 오자고 했으니까.

“그냥…… 보고 싶었어.”

한 모금 홀짝인 찬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결론을 낸다.

“응, 보고 싶었던 거 같아.”

“뭘.”

“아린이가 지금 누구를 보고 있는지.”

“…….”

“됐다, 이제. 확실하게 끊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나도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후련하다며 고맙다고 말하는 찬우에게 뭔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사과를 입에 담는 건 찬우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거였다.

“그래서 유아린이랑 나랑 잘되게 해주려고 오늘 그 지랄했어? 우리 둘 다 눈치챘어.”

장난스럽게 질타하자 찬우도 괜한 짓이었다며 솔직하게 인정했다.

“네가 아린이 좋아하고 말고는…… 그건 너랑 아린이가 할 일이지. 나랑 별 상관없는 거였어. 미안해 오지랖이 심했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 도와준다고 했던 게 이상해지잖아.”

“그건 내가 도와달라고 했던 거잖아.”

홀짝 술을 마신 찬우의 미소가 마치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너무 힘들게 하진 말아줘. 아린이 내 친구야.”

친구.

꽤나 무겁게 내리 앉는 말이었으며. 감정의 끝마무리이자, 관계의 종착지였다.

“너도 내 친구지만.”

웃으면서 찬우가 맥주캔을 내민다.

“우리 셋의 우정을 위하여.”

내민 맥주캔을 보면서 나는 헛웃음과 함께 후창을 해줬다.

“앞으로 찬우가 울릴 여자들을 위해.”

“야.”

마음에 안 들었나.

“그럼 앞으로 쉴 날이 없을 찬우 꽈추를 위하여.”

“……위하여.”

시발 새끼.

부정은 안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