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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와 유아린과는 지난번에 한번 술을 마신 적이 있었지만.
거기에 한강 선배까지 포함되어서 마시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굉장히 특이한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 술을 마시러 갔는데.
거기서 만난 건 서예린과 최이서였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도 좀 뜬금없는 조합이었으나 일단 합석하게 되었는데.
“…….”
“…….”
서예린과 최이서의 시선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뭔데.”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물어봤음에도 둘은 따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 노려만 보고 있었는데.
“우진아! 저쪽에 앉자!”
뜬금없이 나한테 팔짱을 끼는 유아린.
“넌 또 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살갑게 구는 건가 싶었는데 유아린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를 계속 밀어낸다.
“뭐가? 얼른 앉자앙.”
콧소리를 내면서 교태를 부려대는 게 왜 이런 건가 싶다가도 팔에 살짝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에.
“크흠.”
일단 유아린을 따라서 자리에 앉자 두 사람의 눈길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붙는다.
“왜 그러는데.”
얘네가 아까부터 왜 이렇게 나를 쳐다보나 싶어서 되물었으나 둘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얘들아 마음껏 골라라. 오늘 한강이 다 사는 거니까.”
그때 민주희 선배가 메뉴판을 내민 덕분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한강 선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막지 않는 걸 보면 나름대로 각오한 모양이었다.
“우진앙 뭐 먹을래?”
“너 왜 나한테 갑자기 그렇게 친하게 구냐. 그리고 우진앙은 뭐야? 아까까지 바퀴…….”
텁.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면서 앵겨 오는 유아린.
“에잉,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입에 놓인 손을 떼어내며 유아린을 향해 말했다.
“엿 같으니까 그 말투 그만하면 안 되냐.”
“…….”
“농담이 아니라 토할 것 같아. 계속할 거면 카운터 가서 검은 봉지 받아와, 토하게.”
“흐흐.”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그대로 손을 아래로 내려서는 내 허벅지를 꼬집는 유아린.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 건가 싶었는데 앞에서 따갑게 쏟아지는 시선들.
서예린과 최이서가 이미 시켜놨던 맥주를 마시면서 나를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유아린이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부터 시작해서 앞에 있는 두 사람이 과하게 노려보는 것까지.
전 여친을 통해서 길러온 나의 센서가 지금 위험하다는 걸 알려오고 있었다.
‘뭐지, 유아린이 뭔 짓을 한 건 분명해 보이는데.’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걸 보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으니까 이러는 것 같은데.
“너 뭐했어.”
내가 속삭이듯 묻자 유아린은 장난을 들킨 것처럼 히죽 웃는다.
“몰랑.”
“한 번만 더 혀 짧은 소리 내면 바로 우설 정식 만들 거니까 제대로 말해.”
“모르는데요.”
진짜 짜증 내며 묻자 유아린은 도망치듯 고개를 돌려서 주희 선배랑 같이 메뉴판에서 뭐 시킬지 고르기 시작했다.
‘운동이랑 게임 안 했다고 저러는 건 아닐 텐데.’
어느새 서예린과 최이서는 눈길을 돌려 메뉴 고르는 걸 도와주고 있었지만 단순히 그래서 해결됐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흐음.’
슬쩍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해 본다. 아까 나한테 두 사람이 톡 보냈을 때 뭔가 잘못됐나 했는데.
“음?”
업데이트 프로필이라면서 떡하니 나와 있는 유아린의 셀카. 그것도 내 방에서 찍은 게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야.”
메뉴판에 거의 얼굴을 박고 있는 유아린의 어깨를 툭 두드리며 불렀으나 무시한다.
“야.”
다시금 두드렸으나 무시당했고.
꽉.
“끼흐앗?!”
무방비하게 노출된 옆구리를 손으로 꼬집듯 콱 움켜잡은 후에야 드디어 유아린이 반응해 주었다.
“미, 미쳤어?!”
얼굴이 확 붉어진 게 옆구리가 약점인가 싶었으나 어쨌든.
“너 이거 뭐야.”
내가 유아린의 프로필을 내밀며 묻자 녀석이 움찔하고 떤다.
“왜 내 방에서 사진 찍은 걸로 프로필 사진을 해놨어.”
“잘 나와서.”
“하아, 당장 내려.”
“왜, 잘 나왔잖아.”
잘 나오긴 했다.
근데 내 방이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이걸 보고 서예린이랑 최이서가 기분이 나빴던 걸까?
유아린이랑 사귀는 줄 알았던 건가?
근데…….
‘근데 그게 뭔 상관이지.’
자기들 약속 미루고 유아린이랑 같이 있었다고 해봐야 둘이 저렇게 나한테 예민하게 굴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나 좋아하나?’
설마 싶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두 사람이 보였던 반응이 질투였다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 담배 피고 올게.”
그때 우리 쪽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던 한강 선배가 슬쩍 일어나서 담배를 피러 나갔다.
노래방 사건의 주역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이 상황이 다소 불편해 보였다.
나 혼자만 있을 때는 그나마 버틸 수 있어 보였는데 서예린까지 합류하니까 정신적으로 물렁해진 모습.
“앗, 한강 선배. 저도 같이 가요.”
유아린은 담배 안 피우면서 나한테서 도망치기 위해 떠나갔고.
“난 화장실 갔다가 가야겠다.”
민주희 선배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최이서와 서예린 그리고 나만 남게 된 상황.
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싶었으나 어쨌든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는데.
“오, 오늘 하루 종일 아린이랑 같이 있었어?”
서예린이 먼저 물어왔다.
원래는 이런 걸 묻는 애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러면 내 의심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어, 같이 있었지.”
굳이 거짓말할 필요 없었다.
솔직하게 끄덕이며 답하자 서예린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뭐했는데?”
이번에는 바턴을 넘겨받아 물어오는 최이서.
“갑자기 유아린이 집에 찾아와서 밥 먹고, 주희 선배 만나서 과제 관련 얘기하고…… 그게 끝이지.”
둘이 미심쩍은 눈을 뜨고 있었으나 이제 내 차례인 듯했다.
“둘이 질문했으니까 이제 내가 한다?”
“응?”
“질문?”
갑자기 질문한다니까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지만 나는 굳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묻는다.
“너희 나 좋아하냐?”
“……뭐?”
“아니, 유아린이랑 있었던 거 가지고 질투하는 것처럼 보여서. 근데 굳이 질투할 이유가 없잖아.”
둘 다 말문이 턱 막힌 모습을 보면서 나는 뺨을 긁적인다.
“흐음, 잠깐 고민 좀 해봐야겠는데?”
별다른 답들은 없었다.
할 말을 찾고 있는 듯한 모습에 나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정했다.”
“무, 뭘?”
“정했다고?”
최이서와 서예린의 질문에 나는 엄지를 척 치켜들며 답했다.
“연애는 서예린이랑 하고, 결혼은 최이서랑 해야겠… 자, 잠깐!”
안주로 나왔던 다 먹은 꼬치를 나한테 그대로 던진 최이서. 그것뿐만 아니라 서예린도 조개구이의 껍질을 나한테 던졌다.
“미친놈! 미친놈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아! 농담이잖아! 농담! 너희가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그냥 농담한 거잖아!”
피하려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씩씩거리면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외쳤다.
“안 좋아해! 원래 여자애들은 친구가 자기 빼고 놀면 괜히 불편해지고 그러거든?!”
“마, 맞아! 내가 브론즈4로 다시 강등당해서 같이 게임하기 싫은 건가 했지!”
“와, 그건 진짜 같이하기 싫은데.”
어떻게 브론즈3에서 4로 강등을 당할 수 있지.
짜게 식은 눈으로 서예린을 바라보자 그녀는 어디 숨고 싶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티, 팀이 못해서 그래.”
팀 탓까지 완벽하시다.
인터넷에서는 본인이 완벽한 인간인 척 구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예린은 완전 반대 부류였다.
현실에서는 착하고 예쁜데 정작 인터넷에서는 팀 탓하고 섹x거리고 있다.
“도망쳐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그대로 자리를 피해서 가게 밖으로 나가는데.
때마침 화장실에 갔다가 담배 피러가는 주희 선배랑 마주치게 되었다.
나를 힐끔 본 주희 선배는 팔꿈치로 내 가슴을 툭 치면서 씨익 웃는다.
“그럼 유아린은 섹프냐?”
“……들으셨어요?”
그것보다 섹프라니.
아주 천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시는구나.
“우진이 여자한테 인기도 많네? 내 자리도 있냐?”
“선배한테 제 자리가 있는지 묻고 싶은데요.”
오늘 아주 반하겠어, 민주희.
“흐흐, 형은 공부하느라 연애할 시간 없다.”
장난스럽게 시시덕거리며 가게 옆에 있는 흡연장으로 가자 유아린이랑 한강 선배가 뭔가 대화하고 있었는데.
“앗, 갈게요.”
내가 온 걸 보더니 유아린은 쏜살같이 가게 안으로 다시 도망쳐 버렸다.
‘저거 더럽게 밉상이야.’
근데 가슴 만지게 해줬으니까 봐줄 생각이었다.
“뭔 얘기했냐?”
담배에 불을 붙이며 둘이 무슨 얘기 했는지 한강 선배에게 묻는 주희 선배.
한강 선배는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연기를 뿜으며 답했다.
“예린이 포기했냐고 물어보던데…….”
“허, 내가 봤을 때 저것도 보통 또라이가 아니야.”
“드디어 유아린의 정체를 깨달으셨군요.”
나는 두 선배들의 통찰에 감탄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우진이 선배 둘과 함께 가는 걸 본 유아린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최이서와 서예린이 괜히 할 일이 없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서예린을 보면서 유아린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종일 우진이랑 있었거든?”
대놓고 김우진을 가지고 일종의 도발을 걸어오는 유아린.
“어, 어?”
당황한 서예린의 표정을 보면서 유아린은 생전 처음으로, 서예린보다 한발 앞서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짜릿함을 넘어 쾌감까지도 느껴졌다.
이런 스스로가 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친한 친구로 관계를 쌓아가던 김우진을 이용한다는 뒤가 구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서예린에게 우월감을 한 번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아, 오해하진 마. 사귀거나 하는 건 아닌데, 애가 꽤 괜찮더라.”
대놓고 유아린이 말하자 서예린은 쪼그라들 듯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런 소심해진 서예린을 보면서 유아린은 가슴이 쿡쿡 찔려오는 걸 느꼈다.
추하다.
스스로가 참으로 추하고 악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자신이 있었다.
오랜 시간 짝사랑해 왔던 남자를 아무렇지 않게 반하게 만들었던 서예린한테, 이렇게라도 뭔가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
‘역하네.’
미소를 지은 채로 유아린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선언했다.
더러운 걸 알면서도 그걸 계속 이어가고 있는 스스로가 더욱 추악하게 느껴지던 그때.
“우진이 건들지 마.”
서예린의 옆에 있던 최이서가 턱을 괸 채로 유아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
냉철하면서도 또한 차갑게.
“네 욕심 때문에 우진이 이용하지 말라고.”
당혹스러운 유아린이었다.
그녀는 서예린이 김우진에게 은근 마음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최이서에 대해서까지는 알지 못했으니까.
“보기 상당히.”
그렇기에 지금 최이서가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은.
“불쾌하니까.”
꽤나 아프게 유아린을 찌르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