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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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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해선 안 되는 말을 했다는 걸 아직도 눈치 못 챘는지 나를 만나서 반갑다면서 웃고 있는 서예린.

“우진이 맛이야!”

내 맛이라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도 괜찮았고.

“어? 아린아!”

“연락했는데 왜 안 받아 기지배야.”

뒤에서 서예린과 유아린의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같이 화장실 갔다가 돌아온 것도 문제는 크게 없었다.

“베.”

근데 서예린이 내 손길을 기다린다는 듯 혀를 내밀고 있는 건 꽤나 큰 문제였다.

얘는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솔직히 양심이 좀 찔려서 말하기가 좀 그렇다.

천천히 서예린의 눈에서 손을 뗀 유아린. 드디어 시야가 밝아지자 , 서예린은 해맑게 웃으며 나를 한 번 보더니.

“아.”

유아린이랑 다른 친구들이 온 걸 보고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안녕, 오늘 와줘서 고마워.”

무슨 갑부가 저택에 초대한 것처럼 인사하는 서예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뒤늦게 온 서예린의 친구들은 방금 그녀의 망언을 못 들었다는 거겠지.

쏘아보는 유아린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면서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아무래도 서예린이 본인 친구들을 전부 부른 모양인데, 끼면 안 될 곳에 끼어든 느낌.

“유아린 답장 없어서 안 오는 줄 알았잖아.”

“무심하게 와준 스윗 아린이네.”

괜히 서예린이랑 유아린의 친구들이 아닌 걸까. 바로 호들갑스럽게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이분은 누구셔?”

“설마 아린아, 남자친구 생겼니?”

당연하게도.

서예린과 유아린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의문을 품은 두 사람.

설마 하면서 둘이 나와 유아린을 엮기 시작했으나.

“남자친구 아니야!”

뜬금없게도 서예린 쪽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 왜 네가 답해?”

“그러게.”

두 친구의 쏟아지는 시선에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며 서예린은 나를 당겨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우, 우진이라고. 우리 과 친구야. 아린이랑 같이 놀다가 왔나 봐.”

“안녕하세요, 김우진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하자 두 사람도 웃으면서 예의 바르게 인사해 줬다.

어쩌다 보니 서예린의 옆자리에 앉았고, 유아린도 바로 내 옆에 앉는다.

오른쪽 서예린, 왼쪽 유아린이라는 기묘한 상황.

두 친구 분들은 유아린 쪽으로 길게 앉을까 싶었는데 아예 우리 뒤에 앉아서 의자만 돌리면 바로 뭐 하는지 볼 수 있게 됐다.

“너 근데 왜 여기 있냐.”

계속 나를 쏘아보고 있는 유아린을 무시한 채로 서예린에게 묻자, 녀석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색하게 웃는다.

“호, 혼나서 도망쳤어.”

“…….”

“어제 외박해서 엄마한테 엄청 혼났거든. 대학생인데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말한 다음 도망침.”

이게 맞는 건가.

이랬다가 다시 집에 돌아갔을 때 더 큰 일 나는 거 아니냐고 묻자 답이 뒤에 있는 친구분들한테 왔다.

“그래서 저희가 온 거죠. 얘네 부모님도 얘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어머님이랑도 아는 사이라 같이 놀겠다고 온 거죠.”

아하.

그러니까 부모님의 손바닥 안에서 일탈을 즐기는 서예린 양이셨구나.

그게 뭔가 싶긴 했으나 어쨌든 서예린에게는 꽤나 큰 일탈 행위인 모양.

“나, 나…… PC방에서 밤 새워보는 게 꿈이였어.”

“소박한 꿈이네.”

혀를 차면서 편집 프로그램을 PC방에 설치하고 다시 과제를 시작하려는데.

컴퓨터는 안 하고 의자를 돌린 채로 서예린을 꼬치꼬치 캐묻는 두 사람.

“근데 너 진짜 어제 어디서 잤어?”

“그니까. 서예린이 외박할 곳이 있나?”

“아, 아는 친구 집에서 잤다니까? 같은 과.”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변명을 이것저것 붙이는 서예린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나 몰라라 편집이나 하기로 했는데 어느새 의자를 딱 붙이고 있는 유아린.

손이 슬그머니 내 허벅지에 얹어지더니 강하게 꼬집는다.

“끕!”

나도 모르게 허리가 빳빳하게 서면서 유아린을 노려봤는데, 오히려 저쪽에서 당당하니 받아치는 상황.

“아, 왜.”

뒤에 있는 두 사람이 듣지 못하게 작게 묻자 유아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넌 맛도 있니?”

“…….”

“오렌지 맛? 딸기 맛? 뭐 그런 건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예린이는 어떻게 알아?”

먹어봤으니까…….

아니, 먹어 봤다기보다는 핥아…….

“너, 나랑 서예린이 한 거 알잖아.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냐.”

지난번에 누가 몰래 찍은 영상 때문에 이미 유아린이랑 최이서는 내가 서예린이랑 한 번 잤다는 걸 알고 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는데 그걸 굳이 다시 꺼내서 기억나게 해야 하는 걸까.

“내 말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맛을 기억하는 거냐고.”

무슨 인질이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계속 손에 힘을 주는 탓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쏟아낸다.

“하아, 별거 아냐. 그, 그냥…… 1층에 서예린 부모님이 계셨으니까 소리를 죽… 아니, 이걸 내가 왜 설명하냐?”

“으아.”

말을 다 하진 않았지만 대충 예상이 간다면서 치를 떠는 유아린. 괜히 힐끔거리며 내 손가락을 보는 게 뭔가 기분 나빠서 팔짱을 낀다.

“그 굵은 걸 예린이 입에 넣고 휘저었다고?”

“미친년아. 적당히 해라.”

“내가 틀린 말 했어?”

너무 맞는 말 하긴 했는데.

그러다 진짜 처 맞는 수가 있다.

뭔가 계속 시선을 내 손가락 쪽에 두는 게 기분 나빠서 눈깔을 찌르겠다는 시늉을 하자 유아린이 깜짝 놀라며 양손으로 입을 가린다.

“나는 안 들어감.”

“아니, 눈 찌른…… 에휴, 됐다. 말을 말자.”

그냥 편집이나 해야겠다 싶어서 유아린을 무시하고 다시 화면에 집중한다.

옆에서 유아린이 입을 벌리고 자기 손가락 넣는 시늉 하며 뭔가 시험해 보는데 그냥 못 본 척했다.

“아니, 예린이 요즘 이상하다니까?”

“맞아, 나도 느끼고 있어. 약간 성숙해진 느낌? 너 남자 만나지? 그치?”

“아, 아니라니까! 만나는 거 아냐!”

“만나는 건 아냐? 그럼 뭐야?”

“사귀진 않는데…… 마음이 가는 남자는 있다 뭐 그런 건가?”

“…….”

“이거이거! 입 다무는 것 좀 봐라!”

“아린아! 얘 친하게 지내는 남자 있어? 네가 같은 과잖아!”

“PC방에서 조용히 해 이년들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슬그머니 세 사람의 대화에 참가한 유아린. 무슨 카페도 아니고 넷이서 옹기종기 모여서 얘기를 꽃피우는데.

구석 자리가 아니었다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꽤나 큰 민폐가 됐을 꺼다.

“예린이도 성숙해지는 거지 뭐.”

“성숙? 서예린 설마!”

“설마 개통하신 건가요?! 축하드려요!”

“푸헠!”

너무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사레가 들렸다. 못 들은 척하려고 해도 계속 말이 들리니까 어떻게 모른 척하겠는가.

“아, 죄송해요. 저희끼리 이러고 놀아서.”

“크흠…… 호, 혹시 그쪽은 아니시죠? 예린이의 첫 남자.”

“네, 저는 아닙니다.”

그리 말하자 서예린의 눈에 쌍심지가 켜져서는 나를 노려봤으나 얼른 헤드셋을 연결해서 쓴다.

“아린이는 찬우 있어서 좋겠당.”

“그니까. 나였으면 찬우 진짜 홀라당발라당……!”

마지막으로 찬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끝으로 나는 다시 편집에 열중한다.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고. 졸지에 편집에 집중하기 시작한 나는 꽤나 진도를 쭉쭉 나갈 수 있었다.

“끄응!”

대충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생각보다 집중해서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에너지 음료라도 마셔야겠는데.

이 기세면 내일 주희 선배한테 파일 보내드렸을 때 아주 큰 칭찬을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일어나려는데 의자가 안 밀린다.

뭔가 싶어서 슬쩍 뒤를 보자 어느새 내 의자에 달라붙어 옹기종기 나를 쳐다보고 있는 네 사람.

서예린과 유아린은 양쪽 팔 받침에 기대고 있었고, 다른 두 사람은 의자 등받이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뭔데…….”

헤드셋을 벗으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친구분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화면 속 안현호를 가리키며 말한다.

“개 잘생겼는데?”

“…….”

“뭐임? 왜 우리 부과대는 안 저럼.”

“안현호가 그 정도라고?”

턱을 괸 채로 유아린이 심드렁하니 대꾸하자 친구분은 버럭 외쳤다.

“야! 네가 찬우만 보니까 그런 거야. 얘는 지가 스테이크 먹는다고 삼겹살 별로라고 투덜거리네.”

졸지에 삼겹살이 된 안현호.

그러고 보니까 나한테 아까 톡으로 최이서랑 연락되냐고 물었었는데 무시했다.

“아니, 나름 생긴 건 나도 알지. 보편적으로 잘생긴 편이라는 것도 아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론 잘생겼단 생각이 안 드네.”

“나는 아린이한테 동의. 막상 실물로 보면 별로야.”

반대편에 있는 서예린이 손을 들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갑자기 왜 얼평이야.”

내가 둘에게 그러는 거 아니라고 말했으나 둘은 역으로 대꾸해 왔다.

“어차피 현호 쪽 애들도 우리 가지고 그러는데 뭐.”

“난 지난번에 버스 탔는데 우리 과 여자애들 가지고 티어 매기는 거 들었어.”

안현호 뒤져라.

넌 이서한테 연락할 자격이 없다.

“너희 배우들 다 얼굴이 장난 없긴 하네.”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청순한 스타일의 여성분이 드디어 한마디를 했다.

“오, 역시 연극영화과인가?”

아, 연극영화과였구나.

확실히 그렇게 들으니까 꽤나 미인상이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모범생인 미인?

“편집은 따로 배우신 거예요?”

“독학했습니다. 이거 과제 때문에요.”

“와, 짧게 독학하신 거치곤 편집을 상당히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칭찬을 들으니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열심히 연습했던 편집 실력을 가지고 칭찬 들으니 특히나 더 기분이 좋았다.

“김우진 웃는 거 봐.”

“어우, 나는 얘가 기분 좋으면 기분이 막 우울해져.”

“왜 우리 과에는 이런 애들밖에 없지.”

서예린과 유아린이 바로 끼어든 덕분에 좋은 기분이 다 날아가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영과 친구 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물어왔다.

“혹시 나중에 따로 좀 만날 수 있을까요?”

“네?”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만 살짝 돌려서 되묻자 웃으면서 말하신다.

“제가 따로 사례는 할게요. 과에 연기하는 애들은 많은데 편집할 줄 아는 애들은 별로 없어서요.”

아, 그런 의미였구나.

순간 뭔가 싶었네.

“힘들 것 같은데요.”

“…….”

“죄송한데 사례가 뭔지 몰라도 제 과제가 아니면 따로 하고 싶진 않네요.”

냉정하게 선을 긋자 살짝 싸해진 분위기. 하지만 진심으로 하기 싫었다.

“죄, 죄송해요. 저도 너무 갑작스러웠죠.”

“화장실 가자. 제가 이년 화장실에서 혼낼게요.”

“죄송합니다.”

연거푸 사과하면서 화장실로 끌려가는 연영과. 에너지 음료를 시키려고 시선을 돌려 주문화면을 보고 있는데.

양옆에서 시선들이 쏟아진다.

“왜. 너희 친구니까 해주라고?”

짜증 내면서 묻자 유아린은 벌떡 일어나서는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게 아닌가.

“새끼, 칼 같은 게 이럴 땐 맘에 드네.”

방긋 웃으며 그대로 같이 화장실로 가버리는 유아린. 뭔가 싶어서 얼떨떨하니 녀석을 보고 있자.

이번엔 반대편이 있던 서예린이 마우스를 쥐고 있던 내 손을 잡아당긴다.

쪽.

그러곤 갑자기 손등에 입술을 맞추는 게 아닌가.

“……?!”

깜짝 놀라서 잔뜩 힘이 들어간 손.

빳빳해진 손을 풀어주려는 듯 끝을 핥거나, 살짝 깨무는 등.

뭔가 고양이가 내 손을 가지고 장난친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

“내꺼야.”

손에 입술을 댄 채로 속삭이더니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버렸다.

나는 어벙하니 서예린의 뒷모습을 보다가, 축축해진 손을 씻어야겠단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자국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