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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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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나름 회심의 농담이었는데 실패한 순간, 경찰서로 신고하겠다며 땍땍거리던 유아린을 진정시키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콧김을 거칠게 내쉬며 남은 초코몽을 마저 마시기 시작한 유아린.

나도 허시에 빨대를 꽂아 마시면서 슬쩍 노트북을 유아린이 보기 편하게 돌려준다.

“익명90. 얘가 어떻게 익명69를 알아냈는지 확인해야겠어.”

내 말에 유아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엥? 걔 진짜 맞춘 거야? 섹x좌 진짜 우리 과였어?”

“어.”

“와, 누구지?”

의자를 뒤로 젖히며 책상에 다리를 올린 유아린이 초코몽을 쫍쫍 마시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본다.

“잠깐만. 넌 그럼 섹x좌가 누군지 알아?”

“알아.”

“에엥? 어떻게? 나도 친한 사람이야?”

겁나 친하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니까.

“몰라도 돼. 익명 커뮤니티에서 상대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마.”

“궁금하니까 그러지.”

“궁금할 필요 없어. 일단 익명90을 찾는 게 중요해.”

“뭐야.”

치하고 삐진 듯 입술을 삐죽인 유아린. 어차피 저런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지라 일단 익명90이 남긴 글들을 확인한다.

[익명90 최근기록]

↳ 익명90: 저도 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주 불끈불끈하네요!

↳ 익명90: 오늘은 간결하시군요! 저도 섹x하고 싶습니다!

↳ 익명90: 섹x좌! 시험은 잘 보셨는지요?!

↳ 익명90: 담백. 섹x.

↳ 익명90: 얼른 섹x좌께 알려드려! 이분은 대숲의 출산율을 책임지는 분이라고!

  • 익명90: 방금 상황. 관리인1호가 베일에 감춰진 대나무숲 관리자의 정체를 찾아냈고, 감염되어 관리인이 됐다고 밝힘. 근데 지켜보고 있던 관리자가 바로 글삭함.

↳ 익명90: 섹x 하고 싶다아아!

↳ 익명90: 폼이 빨딱 서셨군요!

  • 익명90: 섹x좌 익명69의 정체를 밝힙니다.

  • 익명90: 매일 하나씩 힌트를 드립니다. ‘영어영문과’ 학생임.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기록을 좀 보던 유아린이 확 짜증 내면서 역겹단 표정을 짓는다. 확실히 이 정도면 섹x좌인 서예린보다 훨씬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신봉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좀 정도가 심한 것 같긴 해.”

“과하지. 야, 이 정도면 사이비 종교야. 그냥 핥다 못해 입 구멍 안까지 집어넣었네.”

“…….”

“이렇게까지 심하면 나였어도 무시한다. 섹x좌는 거의 스토킹 당하고 있네.”

여기서도 서예린은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건가. 살짝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게시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섬겨주는 애를 이 악물고 무시하던 건, 나름대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터득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었다.

남자들이 연락하거나, 수작 부리는 것도 서예린은 대부분 무대응으로 나섰으니까.

“계속 보자.”

슬쩍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유아린.

“안 보여.”

과일 향이 확 퍼져서 왼손으로 정수리를 밀치면서 마우스 휠을 내린다.

[익명90 최근기록]

  • 익명90: 섹x좌 언제 오시냐. 왜 안 보이지.

↳ 익명90(작성자): 재밌잖아.

↳ 익명90(작성자): ? 왜 시비임.

↳익명90: 돌아오셨군요 JOAT!

↳익명90: 관리자마저 족치는 가현대의 다크나이트! 성욕의 JOAT!

↳ 익명90: 섹x좌 오셨군요. 오늘도 발기 찬 하루입니다!

↳ 익명90: 섹x좌께서 오늘 컨디션이 좋으시군요!

  • 익명90: 관리자님 게시판 네임드는 좀 배려해 주시죠.

“이 새끼 올려도 올려도 끝이 안 나네.”

“진짜 섹x좌한테 빠졌구나.”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겹긴 지겨웠다.

사이버 스토커 뭐 그런 걸로 불러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머리에서는 나름대로 정리가 돼가는 중이었다.

1학년인가?

대나무숲 대부분의 글들이 익명69에게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 말고는 별로 글을 쓰거나, 댓글도 잘 달지 않고 있는데.

서예린이 1학년 1학기 중반부터 활동했던 걸 생각하면 아마 비슷한 타이밍에 나타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오?”

노트북에 얼굴을 냅다 들이미는 유아린. 덕분에 뒤통수만 보여서 짜증 내며 옆으로 밀어낸다.

“아, 좀. 화면 핥겠다!”

“이거! 이거 봐!”

거기엔 익명90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익명90 최근기록]

↳익명90: 물치과 화석도 가요. 물리적으로 치료해드립니다.

“물치과 화석?”

얼마 되지 않은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 익명21: 펌프치킨 옆 골목에 고등학생들 담패 피는데 혹시 가주실 체육학과 계시나요?

↳익명11: 경호학과 21학번 학교 치안을 위해 바로 갑니다.

↳익명90: 물치과 화석도 가요. 물리적으로 치료해드립니다.

↳익명54: 법학과 법전 가져갈게요.

↳익명12: 수의학과 동물 데려갈까요?

↳익명85: 영상학과인데 혹시 가서 좀 찍어도 되나요? 과제 땜시.


“허어? 아주 총출동하신 글이네?

그 와중에 익숙한 이름들이 몇 개 보였으나 일단은 넘어간다.

아무래도 나름 대나무숲에서 유명한 익명들이 툭툭 튀어나온 글이라 거기에 발을 얹은 모양인데.

‘화석이라.

1학년일 수도 있다는 내 가설은 빠르게 폐지되었으나 그렇다면 화석으로서 이전에 쓰던 글들을 한 번 쭉 확인해 본다.

[익명90 최근기록]

↳ 익명90: 족보 팔아요.

  • 익명90: 혹시 술 마실 사람 있음? ㅈㄴ 적적하다.

  • 익명90; 과제 진짜 엿 같네. 교수는 지가 해보고 시키는 거 맞나?


이 뒤로도 몇 개 정도 글을 보긴 했는데 크게 눈에 띄는 건 없었지만.

어쨌든 계속 이어지는 기록을 보니까 화석이라는 건 분명했다.

“거의 4년 전부터 기록이 계속 쓰이고 있거든? 그럼 지금 4학년이라는 확률이 높겠네.”

유아린의 말에 나도 동의했으나.

“4학년이 아직도 대나무숲을 한다고?”

그것도 익명69가 글을 올릴 때마다 거의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아주니 상시 확인을 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야, 이러면 좀 찾기 힘들 것 같은데?”

애초에 4학년이면 취업한다고 학교에 거의 안 나오는 시기이지 않은가.

“애매하네.”

약간 버거워진 상황.

그냥 닥치고 물리치료학과로 간다고 해도 뭐가 될지 모르겠다.

물리치료학과 4학년이면 지금 도서관에서 국가고시 쪽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실습을 나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이거 포기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물치과에 아는 애도 없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하는 유아린에게 나도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너 친구 없는 건 나도 알아.”

“진짜 죽이고 싶네. 지는 친구 있는 척이야.”

“찬우 있어.”

내 말에 바로 고양이처럼 양팔을 위로 들며 달려드는 유아린.

“넌 뒤졌어!”

정찬우 얘기가 나온 순간 반응한 걸 보면 확실히 태권소녀는 맞는 모양이다.

유아린을 밀어내면서도 나름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으음?”

뭔가 번뜩이며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까 상대는 4학년이면서 대나무숲에 상주하는 사람이다.

“축제!”

“아앙!”

미친년이 내 팔을 물었지만 그냥 무시하면서 계속 말한다.

“축제에 오지 않을까? 아직도 대나무숲에 상주하고 있는 4학년이 축제를 빼먹을 것 같진 않은데?”

대나무숲을 계속 보고 있다는 건.

반대로 그만큼 시간이 남아난다는 소리였으며.

대학에서 축제를 하면 무조건 참가하지 않을까 싶었다.

“으쯔르그.”

(어쩌라고)

“침 냄새 묻으니까 놔.”

개인적으론 가능성이 꽤 높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추가로 축제니까 물리치료학과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도 있을 테고.

문제는.

아직 축제가 이틀 남았다는 거였으며.

놈이 하루에 하나씩 서예린의 정보를 푼다는 거였으며, 거기에 축제가 이틀 동안 진행된다는 건데.

‘잘 버텨봐야지.

이건, 서예린에게 달려 있었다.


이틀이 지나 축제 당일.

의외로 시간은 싱겁게 지나갔다.

  • 익명90: 두 번째 익명69는 사람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

두 번째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왜냐면 서예린은 남자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걸 말했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은 익명69에게 문의가 엄청나게 많이 왔다.

주로 섹x거리긴 했으니까.

하지만 딱 축제 당일.

우리가 생각보다 이 사건을 너무 무겁게 다루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익명90: 세 번째로 익명69는 남자임.

“이 시발 놈이.”

당연히 쌍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였다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생각해 보니까 물리치료학과 화석이 도대체 어떻게 서예린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겠는가.

학교에 잘 있지도 않을 텐데.

한창 주점 주방을 준비하면서도 그걸 생각하면 열불이 터져 이마를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 익명11: 병신인가? 그럼 저 지랄하는 애가 친구가 많겠냐?

↳ 익명276: 그냥 대충 말하는 거죠? 관심받고 싶어서?

↳ 익명85: 관심병사 아웃.

↳ 익명178: 매일 섹x 하고 싶다고 여자가 그러겠냐? 그런 애 있으면 제발 소개해 줘.

익명90은 대나무숲에서 대차게 까이고 있었다. 너무 두루뭉술한 이야기들만 계속 지껄이고 있으니까 당연히 욕을 먹겠지.

익명69 같은 경우도 별 반응을 하지 않는 걸 보며 사람들은 더욱 마음을 굳혔다.

  • 익명69: 아아! 떽뜨하고 싶다아아아아아!

↳ 익명11: 니 추종자 지랄하는데 좀 말려봐라.

게다가 익명90이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서예린의 오늘 폼은 최고조였다.

‘에휴, 이것도 익명 커뮤니티답다면 다운거겠지.

아님 말고 식으로 글을 쓰고 싹 도망치면 그만이지 않은가. 서예린이 관여되어 있다고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유치하게만 느껴졌는데.

참 우습게도.

또한 놀랍게도.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열심히 영문과 천막 아래에서 주방 기구를 정리하며, 동선을 보고 있는 내게 민주희 선배가 다가온다.

“그, 우진아?”

그것도 매우 곤란하단 표정으로.

“네?”

혹시 주방 준비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했는데. 주희 선배는 주변 학생들 눈치를 보더니 작게 물어왔다.

“호, 혹시 대나무숲에 글 쓰니?”

“네?”

“아니…… 애들이 네가 대나무숲에 무슨 이상한 도배를 한다고 해서. 같이 있기가 거북하다고 해서. 오해면 오해라고 내가 말해줄게.”

“…….”

순간, 익명90이 썻던 섹x좌에 대한 특징들이 나열된다.

  • 익명90: 매일 하나씩 힌트를 드립니다. ‘영어영문과’ 학생임.

  • 익명90: 두 번째 익명69는 사람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

  • 익명90: 세 번째로 익명69는 남자임.

한마디로.

영어영문과에 다니는 사람을 피하는 남자.

확신할 수 있다.

익명90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단 글을 싸지른 걸 거다. 영어영문과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고.

당연한 성별이 틀린 시점에서 익명69의 정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분명했으나.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것처럼.

“미친?”

내가, 잡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