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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라서 그런지 가현대 인근에는 카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민주희 역시 카페에 왔으나, 오늘은 손님이 아니라 면접생의 입장이었다.
“주희 씨 영문과 선배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책임감도 강하고, 일도 잘한다고.”
“네, 잘합니다.”
당당하니 긍정하는 민주희.
“만약 못하더라도, 잘하려고 노력할 거니까요. 결국 잘하게 될 겁니다.”
시원스레 웃으면서 당당하니 말하자, 카페 사장도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는다.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쳐주긴 했으나, 아마 그걸 후회할 일은 없을 듯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시험기간인데 이렇게 알바 잡아도 괜찮아요? 나야 바쁜 기간에 알바들 빠져서 곤란해서 주희 씨 온 게 다행이긴 해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을 예정인 민주희.
그렇기에 알바는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었으나,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이어간다.
“네, 괜찮습니다.”
“그래요, 뭐 주희 씨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죠. 앞으로 잘 부탁해요.”
카페에서 나온 민주희는 바깥으로 나선다.
카페 자체는 작은 편이긴 했으나,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커피도 맛있어서 사람들이 시험기간이 아니라도 늘 학생들이 꽉 차 있는 곳이었다.
“끄음.”
알바 면접을 깔끔하게 끝낸 민주희는 기지개를 켠 후, 핸드폰을 확인한다.
시간을 보니 이미 학식을 먹기엔 글렀다.
아쉽지만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사서 끼니를 때워야겠다 싶어서 가던 와중.
“어?”
길거리에 보인 남자무리.
그중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당연히 김우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어느새 자신의 다리는 그를 향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혹시 점심 먹었을까?
안 먹었으면 같이 먹으면 좋겠단 생각하는 와중.
이제야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강한강과 안현호.
그리고 지난번 건달들이랑 싸울 때 봤던 표진호와 정찬우.
왜 우진이는 저런 애들이랑 몰려다니는 걸까.
애가 이상한 물이 드는 거 아닌가 싶어 걱정됐는데.
“이걸로 잴 수 있나?”
안현호가 30cm 자를 들고는 애매함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남자 고추가 그거보다 길면 AV배우 해야지.”
“엌! 나는 그 정도 가지고 있으면 소시지 모델 같은 거 할 듯.”
“비뇨기과 쪽에서도 연락 오는 거 아니야?”
우뚝.
김우진 쪽으로 달려가던 민주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천하제일꼬추대전이다. 시발, 누가 이기나 보자.”
흥분한 김우진의 말에 민주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그대로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하지만.
라면 고르면서도.
라면 물 받으면서도.
3분을 기다리면서도.
라면을 먹으면서도.
“흐, 흐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과한 정보에 얼굴이 벌겋게 타오른 민주희.
자연스럽게 골드원에서 서예린과 유아린을 동시에 따먹고 있던 김우진이 떠오른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사고가 계속 그쪽으로 흘러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왜 끌려온 거냐고.”
중간에 합류한 정찬우가 투덜거리면서 짜증 낸다.
여자친구랑 데이트 중에 우리가 급한 일이라고 부르니까 와준 건 좀 감동이긴 했으나.
그게 천하제일꼬추대회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얼굴이 썩어버렸다.
“세린이 삐졌다고. 같이 영화 보기로 했었는데 친구들 때문에 간다니까.”
“와, 그래도 와줬네. 이게 우정 아니냐.”
“진짜로 중요한 일이었으면 그랬겠지. 천제꼬 같은 거 때문에 불리니까 기분 더럽지.”
직접 부른 안현호가 웃으면서 어깨동무하자 정찬우는 바로 손을 쳐낸다.
“어차피 딴 여자 사귀면 되는 거잖아.”
“그래, 어차피 지나가는 여친이면서 뭔.”
“남의 연애라고 진짜 선 함부로 넘네.”
한강과 표진호의 투덜거림에 정찬우가 어이없다면서 쏘아보지만.
어쨌든 우리는 도착했다.
“남자 다섯이요.”
나는 카드를 내밀면서 뒤에 있는 놈들에게 경고했다.
“이거 오늘 꼴찌가 쏘는 거야. 끝나고 나한테 계좌이체 해라, 찬우야.”
“……왜 내가 꼴찌라고 생각하냐.”
“이미 꼴찌가 낸 거 아닌가?”
“패배자가 자기 자리 잘 찾아간 거 같은데.”
이 새끼들 쌔빠닥 놀리는 것 좀 봐라.
“금방 아가리 다물게 해준다.”
우리는 라커키를 받은 다음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는데 몸들이 상당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표진호와 정찬우.
표진호는 태권도 했던 것 때문인지 몰라도 큰 덩치 위로 근육들이 탄탄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
찬우는 마른 편으로 보였는데, 옷을 벗자 모델처럼 각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현호와 한강 선배도 그닥 나쁘지 않았다.
“오, 우진아. 요즘 운동 열심히 하더니 근육 좀 붙었네.”
“만지지 마.”
만져서 확인하려는 찬우의 손을 쳐낸다.
녀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 여친있다고. 게이 아니라고.”
“혹시 모르지. 남친은 아직 공석이잖아.”
“진짜 김우진 죽일까.”
어쨌든 옷을 벗으니 얼추 사이즈가 딱 나오지 않나 싶었는데.
“어찌 개울 안에 있는 그림자를 보고 저것이 구렁이인지, 용인지 판단하겠는가.”
“손오공이 초사이언 상태가 아닌데 그거 이겨서 뭐 하냐, 베지터 새끼들아.”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전력이 아닌 승부는 승부가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했기에.
샤워를 하고 목욕탕에 들어간다.
온탕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피로를 녹이면서 잡담을 하는 와중.
꽤나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야, 근데 목욕탕에서 세우면 그건 그거대로 미친 새끼 아니냐?”
상식적인 발언을 표진호가 했다는 게 좀 당혹스러웠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뭘 보고 흥분한다는 말인가.
핸드폰 가지고 들어올 수도 없으니까 뭐 야동 같은 걸 볼 수도 없다.
“손장난은…… 아니다.”
한강이 제안하려다가 취소했다.
시발 그건 더 이상하다.
남자 목욕탕에서 남자가 손장난 하고 있으면 그건 진짜 존나 잘못된 광경이지 않은가.
“난 진심으로. 누가 목욕탕에서 손장난 하고 있잖아? 그럼 다 버리고 도망칠 자신 있어.”
“나도. 잡히면 눈 깔고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할 듯.”
애매함에 서로 쳐다보는 와중.
나는 뺨을 긁적이며 찬우 쪽을 쳐다본다.
“너는 되는 거 아니야?”
“……그 이상 말하면 죽인다, 김우진.”
아님 말구.
근데 이러면 진짜 곤란한데.
“자 가져온 거 쓸모가 없어졌네.”
안현호가 자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러게. 나 심판 봐줄 사람도 불렀는데.”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리자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한테 꽂혀 들어온다.
“심판?”
“누구?”
누구긴 누구겠는가.
남자 목욕탕에 들어올 수 있으면서도 우리가 모두 아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안녕 얘들아.”
전라의 대머리 아저씨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아, 씨발 김우진 미친 새끼야!”
“저 아저씨 아래 털도 없어 씨발!”
“이미 반쯤 선 거 아냐?!”
반응들 좋은 거 봐라.
솔직히 나도 부른 다음에 너무 흥분했었나 싶어서 좀 거리꼈는데.
막상 이것들 싫어하는 거 보니까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심판 봐달라고 부르긴 했는데 여기선 좀 힘들 것 같아요.”
욕탕 안으로 들어온 아저씨한테 조심스럽게 사과하자,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신다.
“괜찮아 괜찮아.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으니까.”
그러면서 찬우를 빤히 보고 계신 아저씨.
“저 여자친구 있어요! 그리고 지금 성희롱 중이세요!”
찬우가 발악하듯 외치자, 아저씨는 싱긋 웃으며 답한다.
“걱정 마. 아저씨는 동의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거든.”
“오, 아저씨 매너 있네. 찬우 좋겠다.”
“하, 김우진 진짜 죽여야겠다.”
아까부터 깐족거리던 걸 못 참고 결국 나한테 달려드는 정찬우. 시간대가 애매해서 목욕탕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다.
한차례 소란이 펼쳐지고.
결국 천하제일꼬추대회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목욕탕 왔는데 푹 쉬다 가자.”
“그래, 때도 좀 밀고. 사우나도 들어가고.”
“에휴, 이 나이에 뭘 했던 거냐. 뭐 단체로 흥분해서 최면 걸렸던 거 같아.”
“이거 다 김우진 때문이라니까.”
결국 우리는 다 같이 사우나 온 사이좋은 놈들이 되어버렸다.
“다들 9천 원 나한테 계좌이체 해라. 목욕탕 값 내야지.”
“목욕탕 8천 원이던데?”
“아, 노곤하니 좋네.”
본가에 있는 목욕탕도 좋지만 이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욕탕도 썩 나쁘지 않다.
“야, 사우나에서 버티는 걸로 돈 내는 거 몰빵하자.”
한강의 제안에 우리 모두 동의했다.
“찬물 들어가지 마. 온탕에 있다가 바로 들어가는 거야.”
찬물 도핑을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경고하며 슬슬 온탕에서 나가려는데.
미동이 없는 대머리 아저씨.
“아저씨는 안 가세요?”
안현호가 묻자, 아저씨는 너무나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셨다.
“부끄럽게도 섰구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온탕에서 탈출한다.
“아 씨바아아알!”
“도망쳐! 잘못하면 엉덩이 뚫린다아앗!”
“게이다! 진짜 게이가 나타났어!”
“나 이제 온탕 못 들어가! 진짜 못 들어가겠어!”
“누가 이 사람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
천하제일꼬추대회 승자는 빡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