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상사에게 심하게 꾸중 들을 때.
친구들한테 왕따당하는 모습.
부끄럽거나 치욕스러운 상황 같은 거 말이다.
타인보다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역으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
나에겐 지금이 그랬다.
“……대학 기숙사에 들어오면 그렇게 문란해진다고 소문을 듣긴 했는데.”
엄마는 지금, 내 방에 있는 두 여자와 나를 번갈아 가며 보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서예린이랑 유아린은 왜인지 무릎을 꿇은 채로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에.
여기서 나설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엄마가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오기 전에 말 좀 해주지.”
“서프라이즈였지. 우리 아들 방에 퀴퀴한 냄새 날 것 같아서 엄마가 좋은 냄새 나라고 향수도 뿌리고 왔고-.”
슬쩍 손가방에서 투명한 플라스틱병에 들어 있는 탈취제를 꺼내 든다.
“이것도 사 왔는데…… 뿌릴 필요 없겠다 얘. 여자 애들 상큼한 냄새 좀 보렴. 누가 과일 향 나는데?”
과일 향이면 유아린이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숙사 앞에 관리인 계시지 않아?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사실 그건 뒤에 있는 여자애들한테도 물어보고 싶다.
관리인은 도대체 뭘 하는데 기숙사생도 아닌 애들을 그냥 막 들여보내 주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 사는 애 엄마라고 말했지. 워낙 동안이라서 의심하시긴 했는데, 건강음료 좀 드리니까 좋아하시더라.”
아마 더럽게 비싼 걸로 줬겠지.
탈취제를 집어넣은 엄마가 이번에는 한약팩을 꺼내 든다.
“너도 좀 주려고 한약도 사 왔는데- 쓰읍, 이건 주면 안 되겠다. 잘못하면 군대 가기 전에 애아빠 되겠네.”
“엄마! 애들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어?!”
“뭘. 대학생이면 할 거 다 했지. 넌 엄마한테 고마워해. 너 키울 때 보모들이 장군감이라고, 아주 여자 여럿 울리겠-.”
“이 아줌마가 진짜!”
“아줌마가 뭐야 아줌마가! 이렇게 예쁘게 잘 빠진 아줌마 본 적 있니?”
“말하는 게 그냥 아줌마야!”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대화 주제는 분명 바뀌는 거 같은데 흐름은 평행선을 유지하는 기분.
“것보다 둘 중 누가 여자친구니?”
슬쩍 고개를 돌린다.
서예린과 유아린이랑 눈이 맞았고 둘 다 잠깐 고민하는 모양.
“둘 다 아냐.”
괜히 사귄다고 하면 꼬치꼬치 캐물을 게 뻔했다.
게다가 고백했다가 두들겨 맞기도 했고.
서예린은 지금 좀 애매하긴 했지만.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걸까.
서예린은 볼을 부풀리면서 나를 노려본다.
생각해 보니까 서예린 어머님도 만나 뵙기로 했는데…….
“음? 그럼 둘 다 왜 여기 있어?”
“상담 좀 들어달라고 해서 들어주고 있었어. 방금 씻은 애는 농구했는데 샤워장이 없어서 화장실만 빌린 거고.”
“……아하?”
그러더니 갑자기 엄마가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상자를 하나 꺼내 든다.
콘돔이다.
“그럼 이건 누가 가져왔니? 보니까 현관에 떨어져 있던데?”
“…….”
“…….”
포장지도 뜯겨지지 않은 콘돔을 보는 순간 입술을 으득 깨문다.
내가 산 건 아니니까 둘 중 누가 오면서 사 왔다는 소리인데.
“내가 샀어.”
하지만 여기선 둘을 지켜줄 필요가 있었다.
바로 엄마 손에 있는 콘돔을 낚아채면서 짜증 내자, 엄마가 입가를 가리고 깜짝 놀란다.
“너?”
“그래, 내가 산 거야.”
“흐음.”
전혀 믿는 표정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넘어가겠다며 끄덕였고.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을 두더니 인자하게 웃으면서 손짓한다.
“에이, 편하게 앉아요. 많이 누추하긴 해도 어쨌든 우진이 친구분들이신데.”
“아, 네.”
“감사합니다.”
편하게 앉는 두 사람.
엄마는 바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서예린 쪽에 묻는다.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우리 우진이랑은 무슨 관계?”
“안녕하세요, 어머님. 서예린이라고 합니다. 우진이랑은 연인에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어머!”
바로 내 어깨를 툭툭 때리면서 엄마가 호들갑을 떨어댄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내 며느리라고? 배우 해도 되겠어!”
호응이 좋았는지 바로 가슴을 피면서 서예린이 단아하게 미소 짓는다.
방금까지 나한테 울면서 섹x좌 자리 뺏겼다고 찡얼거리던 애가 맞나 싶었다.
“실제로 배우 지망생입니다. 작년 겨울에 YS엔터랑 계약도 했습니다.”
“YS? 아, 그럼 민철이네 회사구나?”
정민철.
YS 대표이사다.
“기다려 봐. 내가 전화 한 통-!”
핸드폰 꺼내려는 엄마였으나, 서예린이 벌떡 일어나 엄마의 손을 잡는다.
“아뇨 어머님. 괜찮습니다. 제 능력으로 성공하고 싶고, 자신도 있습니다.”
뭐야 얘.
너 누구야.
섹x 거리는 서예린은 어디 가고 화사하니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서예린이 있으니 어색하다.
주변에는 이런 이미지였다는 거 알고 있는데 직접 보니까 당혹스럽다.
“아휴, 자신감 넘치는 거 봐. 좋다 좋아. 그럼 옆에 처자는?”
마찬가지로 일어난 유아린이 어색하니 머리를 긁적인다.
“그, 유아린이라고 합니다. 저는 김우진이랑-.”
슬쩍 나를 쳐다보는 유아린.
우리 사이를 뭔가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는지 우물쭈물 거리고 있자니.
“이쪽도 며느리 후보네.”
엄마가 뭔가 눈치챘는지 팔짱을 끼면서 혀를 찬다.
“내가 애를 너무 잘 낳았어. 이렇게 귀하고 예쁜 애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거 봐. 내 아들인데 재수 없네.”
“…….”
“나는 둘 다 좋아요. 그러니까 싸우지들 말고 알아서 정해요?”
그러더니 냉장고 쪽으로 가는 엄마.
“뭐 먹고 다니는 건 있니? 매일 배달 음식 시켜 먹고 그러는 거 아냐?”
“잘 먹고 있어.”
“흠? 이건 또 뭐니?”
그때 엄마가 발견한 도시락통.
최이서가 두고 간 거였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서슴없이 열어본다.
“편지.”
안에 든 포스트잇을 내게 준다.
- 공부 파이팅 (੭•̀ᴗ•̀)੭
최이서가 붙인 모양.
그걸 보면서 뭉클하고 있자니, 엄마는 어느새 숟가락을 들고 안에 있는 필라프를 한 입 먹었다.
그리곤.
“합격. 이거 둘 중 누구야.”
바로 도시락통을 숟가락으로 탕탕 치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이거 누가 만들었어요? 우리 아들내미가 지 아빠처럼 쌀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딱 취향에 맞춰서 만든 거야.”
“…….”
“…….”
둘 다 입을 꾹 다문다.
서로 쳐다보면서 네가 만들었냐고 확인했으나 당연하게도 답이 나올 리 없다.
“으음?”
기이한 기류가 흐르는 걸 느꼈는지 엄마는 다시 몸을 틀어 나를 쳐다본다.
“이거 누가 줬니?”
“그…… 다른 애가.”
잠시 정적.
서예린과 유아린은 저 필라프를 만든 사람이 최이서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
엄마는 멍하니 나와 둘을 번갈아 가며 보더니 다시금 묻는다.
“걔도 혹시 여자애니?”
그럼 남자한테 받았겠는가.
“으응.”
뺨을 긁적이며 대답하자 엄마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한 번을 울리기도 전에 저쪽에서 통화를 받았다.
“네, 윤 기사님? 근처에 나뭇가지 굵은 거 하나만 좀 뽑아서 가져오시겠어요? 회초리로 쓸만한 걸로요.”
“…….”
“네네. 부탁드려요?”
뚝.
전화를 끊는 순간, 엄마는 바로 둘을 향해 말했다.
“미안한데, 지금부터는 가족끼리의 시간이라 좀 나가주실래요?”
“오늘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님. 다음에는 더 좋은 기회로 만나 뵙고 싶어요.”
“……그, 너무 심하게 때리진 마세요.”
그대로 도망치듯 떠나간 서예린과 유아린.
“아무리 그래도 내가 20대인데 엄마한테 맞을 나이는 아니잖아.”
당당하니 어깨를 피면서 대꾸하자, 엄마는 피식 웃었다.
“네 작은형은 스물다섯까지 엄마한테 회초리 맞았어.”
……그건 처음 듣는 얘기인데.
진짜로 종아리를 맞게 될 줄은 몰랐다.
붉게 부어오른 다리에 얼음팩을 대주고 있는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잘못이지. 애를 너무 멋지게 낳은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애들이 뻑이 가지.”
“…….”
“애들 참 괜찮더라. 배우 한다는 애는 예쁘고, 똑 부러지고. 딱 젊을 때 나 보는 기분이야.”
뭐라는 거야.
“머리 노란 애도 몇 마디 안 해봤는데. 애가 딱 봐도 정이 많아. 가면서도 너 걱정하는 거 봤지.”
“하아, 걔가 나 제일 많이 때린다.”
“그게 다 정이야. 엄마가 회초리 든 거랑 비슷하지.”
셋한테 고백했다는 걸 알려주려고 일단 먼저 맞긴 했는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있잖아.”
똑똑.
그때 문밖에서 들려온 노크소리.
“우진아, 나 이서야.”
최이서였다.
“아까 차도 끓였는데 깜빡 했어서. 주고 가려고.”
“쟤가 도시락?”
힐끔 묻는 엄마는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려고 했기에, 나는 어깨를 잡고 말렸다.
“내가 나갈게.”
하지만 내 저항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어느새 현관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당황한 최이서.
그럼에도 일단 인사부터 한 다음, 현관문의 번호를 확인한다.
“여기 맞는데.”
“안녕하세요, 우진이 엄마예요.”
“……!”
깜짝 놀란 최이서가 바로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우진이 같은 과 동기인 최이서라고 합니다!”
“우진이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필라프도 직접 했죠? 한 입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
“아, 정말요? 감사해요.”
교수님들 대화 상대하던 짬은 어디 가지 않는지, 최이서는 유려하게 엄마랑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우리 우진이랑 앞으로도 잘 지내줘요. 부탁할게요?”
“네, 물론이죠.”
대화가 끝나고.
안으로 들어온 엄마는 최이서가 가져온 보온병을 내게 건네며 한숨을 내쉰다.
“하여간 지 아빠 닮아서 사람은 잘 보네. 어쩜 여자애들이 하나 같이 곱고 참하니. 고르기 어렵긴 하겠다.”
“……그치?”
“엄마는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해. 괜히 다른 집 귀한 자식들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말고.”
입을 꾹 다문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했으나.
“당연하지.”
애써 삼키며, 각오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