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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펜션.
내 등에 업힌 채로 덜덜 떨고 있던 유아린은 감격에 겨운지 감탄사를 터트린다.
“드디어 돌아왔어!”
돌아오는 길은 더 컴컴했던 탓에 유아린이 잔뜩 쫄아서 다리가 풀렸다.
덕분에 업어줄 수밖에 없었고 의도치 않게 한밤중에 운동하게 된 나는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얼른 내려, 죽이고 싶어지니까.”
헉헉거리며 짜증 내자 유아린은 내 목에 손을 두르면서 외쳤다.
“펜션까지만 가자.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음.”
“버리기 전에 내려!”
“아, 좀! 여자가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감싸줄 줄 알아라! 내가 지금 져주고 있잖아!”
밤에 져준다는 게 이런 의미는 아니었을 텐데.
“나 다리 후들거린다고!”
아예 손을 놓았음에도 녀석은 다리를 허리에 감으면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러엇! 애들한테 보여줄 거야! 과시할 거라고!”
“과시하긴 뭘 과시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 나이 처먹고 어부바에 좋아하고 있는 주제에!”
“지는 나한테 그렇게 올라타 놓고 나는 지한테 업힌 거 하나로 되게 땍땍거리네!”
“…….”
왜 또 말을 그렇게 하실까.
“아니야? 응?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애원해도 그냥 무작정 위에-!”
“아, 알았다고! 가자고! 어디까지 갈까?”
“전속전진이다앗!”
애들이 밥을 먹고 있는 천막 앞.
그릴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안현호한테까지만 딱 가기로 하고 냉큼 달려간다.
우리를 본 안현호의 표정이 격하게 일그러졌으나 유아린은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히야, 재밌었다. 네가 이래서 올라타고 하는구나?”
“……진짜 혼내주고 싶네.”
“야! 사 왔다 이 자식들아!”
내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유아린.
벌칙으로 사 온 물건들을 안에서 풀면서 애들이랑 같이 다시 놀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니까 밥을 안 먹었네.’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상황 덕분에 고기만 굽고 따로 먹지를 않았다.
뒤늦게 허기짐을 눈치채자 배가 확 고파 안으로 들어갔고.
구석 테이블이 비어있었기에 대충 앉아 밥이랑 고기를 가져온다.
‘뭐야, 안현호 고기집 알바인가. 잘 구웠네.’
혼자서 묵묵히 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진탕 술만 마시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과일소주 몇 병 정도만 꺼내져 있고, 딱히 술자리라는 느낌은 없다.
밥을 다 먹은 애들도 얼추 자리를 비워서인지 사람도 몇 없다.
아마 저녁 먹고 따로 행사가 있어서 그거 끝나면 본격적으로 술자리에 들어가겠지.
그때.
“왜 여기서 혼자 먹어.”
구워진 소시지를 들고 옆으로 온 최이서. 내 밥에 소시지를 올려주면서 웃는다.
지금은 좀 거북한데.
“야, 우리 쪽에 자리 비어 있잖아.”
마찬가지로 방금 들어갔던 유아린이 반대편에 앉는다.
순식간에 양옆에 채워졌다.
둘 다 거북했기에 그냥 입을 꾹 다물고 밥만 먹고 있자니 유아린이 턱을 괴고 툭 묻는다.
“쟤한테도 그만하자고 했냐?”
“케엑! 커헉!”
먹던 밥 다 뱉을 뻔했다.
당황해서 유아린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뒤통수에서 들려온 최이서의 대답.
“응, 그만하자고 했어.”
“근데 왜 웃고 있냐.”
“그만하자고 했으니까?”
“뭔 소리야.”
나도 몰라.
그니까 나한테 묻지 마.
“너한테도 그만하자고 했어?”
슬쩍 최이서가 묻자 유아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좆 까라고 했지.”
“미안한데 다 꺼져주면 안 되냐. 나 소화가 안 돼.”
아직 머리가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다가오는 거 좀 불편하다.
분명 나는 헤어지자고 말했는데 왜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지 모르겠다.
“사이즈 보니까 예린이한테도 말하겠네.”
눈치 빠르긴.
뜨끔하고 가슴이 찔려왔기에 나는 숟가락을 꾹 문 채로 입을 다문다.
“천천히 씹어 먹어. 괜히 체한다.”
“너희 때문에 체할 것 같다고.”
“배부른 놈. 소화 잘되게 두드려 줘?”
“아프니까 하지 마.”
양옆에서 조곤조곤 말을 걸어와서 슬슬 어지럽다.
“그리고 팔에 적당히 붙어. 밥 먹기 힘들어.”
“먹여줘?”
숟가락을 들고 와서는 진지하게 묻는 최이서. 얘가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
“오늘 과하다?”
반대편에 있는 유아린도 새초롬하니 눈을 작게 뜨며 따지자, 최이서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약간 그런 날 있잖아.”
어쩔 수 없다고 시원스럽게 웃는다.
“이상하게 애가 이뻐 보이는 날? 오늘이 그런 것 같아. 정확히는 아까 우진이가 그만두자고 말했을 때부터.”
“쟤 뭐 NTR 성향이라도 있는 거 아냐? 그만하자고 했는데 왜 좋아해.”
“엔, 뭐? 무슨 말이야?”
이런 부분에는 무지한 최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 최이서가 바로 짜증 낸다.
“그럴 리 없잖아.”
“까비, 그쪽 성향이면 내가 뺏는 역할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몰래 내 허벅지 타고 손을 안쪽으로 집어넣는 유아린.
나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냥 밥이나 먹기로 했다.
“아, 뭔데.”
“……똑같은 생각했네.”
왜냐면 중앙에서 최이서의 손이랑 유아린의 손이 만났으니까.
“둘이 사이가 좋네.”
투덜거리면서 둘이 얘기하는 걸 듣기만 한다. 지금 내가 끼어들어서 뭔가 얘기하기엔 정신 사나웠다.
“저기, 이서야?”
사실상 내가 아니라 유아린이랑 대화를 나누던 최이서에게 다가온 2학년 여학우.
밖에서 들어오자마자 최이서한테 왔는데 표정이 어둡다.
우리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밖에서 1, 3학년들이랑 예린이랑 싸웠어.”
누가 누구랑?
최이서도 당황했는지 잠깐 어벙한 표정을 지었으나.
“싸웠다고? 왜?”
일단 사태 파악을 위해 좀 더 자세하게 묻는다.
“모르겠어. 사실 싸운 거보단 예린이가 그냥 일방적으로 화내긴 했는데…… 그래서 방 분위기가 안 좋아.”
“가봐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최이서.
일어나면서도 내 어깨에 손을 얹어서 기대듯 일어나는 작은 행동들이 눈에 밟힌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최이서였고.
옆에서 얘기를 들은 유아린이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예린이가 누구랑 막 싸우고 그럴 성격이 아닌데.”
맞는 말이다.
아니, 싸우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누군가를 혼내고 할만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유아린의 시선이 빤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가볼 거야?”
“…….”
“여기서 예린이를 챙기러 간다고? 나의 고백을 방금 들어놓고?”
“…….”
“지금 밤인데? 네가 이길 차례인데 나를 두고 그냥 가겠다고?”
“하아, 가봐야지. 걔가 그냥 화낼 애가 아니잖아.”
그것도 후배들한테 말이다.
의자에서 일어나자,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유아린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하, 새끼. 엿 같은데 섹시하네.”
“……뭐라는 거야.”
“얼른 다녀오란 소리지, 짜식아.”
내 엉덩이를 한 번 툭 치고는 턱짓으로 얼른 다녀오라는 유아린.
먹은 걸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밖을 산책하는 애들이 몇 보이긴 했으나 딱히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화를 낸 건 아닌 모양.
일단 서예린을 찾을 생각으로 펜션 근처를 둘러보려는데 마침 최이서가 한숨을 내쉬면서 1학년 여자들이 쓰는 방 앞에 서있다.
“무슨 일인데.”
표정이 좋지 못하기보다는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느낌.
분위기를 보니 호들갑을 떨 정도로 큰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설명해 주려던 최이서는 다시 입을 다물곤 슬쩍 옆방을 쳐다본다.
2학년 여자 방이었다.
“하아, 1학년이랑 3학년 여자들 몇 명이 네 뒷담화를 했는데 그게 예린이한테 걸렸대.”
“내 뒷담화? 그게 뭐 하루 이틀인가.”
이미 3학년들한테는 내 이미지 씹창난 지 오래다.
3학년 여자들이 1학년이랑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했을 수 있겠지.
남 씹는 게 원래 가장 친해지기 쉬운 방법이지 않은가.
별 상관없다는 내 반응에 최이서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좋아하는 사람이 욕먹었으면 화나지. 나도 지금 좀 화났는데.”
팔짱을 끼고는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최이서.
“야,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마. 과대가 싸움 걸면 진짜 큰일 나.”
“너는 내가 욕먹으면 가만히 있을 거야?”
“…….”
아마 한 소리하겠지.
최이서가 어디 가서 욕먹을 짓을 하진 않으니까.
“그나마 여자 방에서 싸워서 얘기가 밖으로 새진 않았어.”
“으음.”
“나는 1학년이랑 3학년 쪽에 가서 얘기를 좀 할 테니까, 너는 예린이한테 가봐.”
씩씩거리며 1학년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최이서.
“야, 그. 너무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무슨 말인지 알지?”
“몰라.”
원래 얌전히 있는 애가 화내면 더 무섭다던가.
최이서는 이미 언어라는 흉기를 날카롭게 갈아놓고는 그것들을 찌를 준비만반이었다.
누구 하나 울리는 거 아닌가 몰라.
“에휴.”
일단 최이서의 말대로 나는 2학년 여자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혼자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서예린은 갑자기 내가 들어온 걸 보더니 벌떡 일어난다.
“우진아! 어디 갔었어? 밥은 먹었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 좀 봐라.
“얘기 다 들었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 서예린은 감탄사만 짧게 흘리더니 배시시 웃는다.
“들켰어? 안 들키고 싶었는데. 그게 더 멋지잖아!”
“너 원래 남들한테 화내고 그런 스타일 아니잖아.”
“근데 네가 욕을 먹잖아. 그것들이 뭣도 모르고 대나무숲에 올라온 내용이나, 헛소문을 퍼트려서 네가 이상한 애라고 욕하더라고.”
“그런 게 한두 번이냐고. 괜히 그런 것들 상대해 줄 필요 없어.”
내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꾸하자 서예린은 빤히 나를 쳐다보며 반박한다.
“너는 했잖아.”
“어?”
“너는 내가 욕먹을 때, 곤란할 때. 도와줬잖아. 근데 왜 나는 못 도와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최근에는 서예린이 알아서 잘 대처하니까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예전에 주변 눈치를 살피던 서예린은 자주 도와주긴 했었다.
“이기적이네. 너는 되고 나는 안 돼?”
“아니, 그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내게 서예린은 해맑게 웃는다.
“걱정 마, 우진이 네 말대로 나는 안 좋은 소문이 나도 별문제 없을 거야.”
왜? 라는 말이 혀에 얹어졌으나 묻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예쁘니까!”
“……뭐?”
“같은 행동이라도 예쁜 애가 하면 싸가지 없는 게 아니라 참교육이라고 불러주는 세상이잖아.”
“그, 렇긴 한데.”
얘가 이런 느낌이었나?
본인 예쁜 걸 잘 아는 편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약아빠지게 이용하진 않았는데.
늠름하니 서서 나를 보는 서예린.
“나는 이제 이 정도야 우진아.”
그녀는 약간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해왔다.
“나는 예전처럼 듣고만 있지 않아. 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
골드원에서도.
내가 따로 도와주지 않았어도 스스로를 지키던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고 지금은, 너를 지켜줄 수도 있어.”
나를 지키겠다고 말해왔다.
“그걸 위해선 재수 없어도 상관없어. 내가 쓸 수 있는 건 다 쓸 거야.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 나의 말과 행동들이 발목을 잡아 왔다.
“서예린.”
텁텁함에 목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나를 지키겠다고 말해주는 건 고마웠으나, 정작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말해야 했다.
‘뭔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데.’
하지만 나도 학습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다.
최이서와 유아린을 거치며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예린아, 네가 왜 나한테 집착하는지 알아?”
"좋아하니까?"
확 들어온 말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다시 이어간다.
“그…… 첫경험 상대한테는 원래-.”
“아, 또 그 소리네. 첫경험 상대 불라불라. 강렬한 경험 어쩌구 저쩌구. 슬슬 두들겨 패고 싶네 김우진.”
당돌하네.
“이런 관계가 정상적인 건 아니잖아. 나 이서랑 아린이한테도 말했어. 이제 그만하자고.”
“오? 드디어 공공재 김우진에서 독점 김우진으로 바꾼 거야?”
“너한테도 같은 말 하고 있다, 천치년아.”
짜증 나서 험한 말이 나오자 서예린은 키득거리며 웃어댄다.
“너 욕할 때 은근 섹시한 거 알아?”
“성욕에 미친 거냐 진짜.”
이런 말까지 하진 않으려고 했는데.
“너희 어머니가 이런 너를 보면 얼마나 슬퍼하시겠냐. 섹x에 환장해서 남자한테 들이대는데.”
“패드립이야!”
“어머님 욕을 한 게 아니라 네 욕을 한 거야.”
씩씩거리던 서예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너는 아무리 좋아한다고 말해도 결국 밀어낸다? 내 감정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아.”
“…….”
“다른 애들은 뭐라고 했어? 딱 봐도 꺼지라고 하거나 싫다고 했겠지.”
정답이다.
입술이 말리며 이빨로 꾸득 깨문다. 대화의 흐름을 빼앗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네가 내 각오를 알아차릴까? 여러 애들이랑 경쟁하고 있는 상황조차 받아들이고 있는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따지듯 묻는 게 아니라, 학자처럼 정답을 탐구하는 질문.
서예린의 검은 눈동자가 지그시 나를 응시한다.
물러섬 없는 커다란 각오가 엿 보였다.
“내 나름대로 찾아냈어. 내 감정의 크기와 각오를 너에게 확실하게 전할 방법.”
솔직히 예상이 갔다.
또 섹x라고 외치면서 달려드는 게 아닐까 싶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밀어낼 준비를 했는데.
“섹스 안 해도 상관없어.”
반대로.
서예린은 정반대의 선언을 해왔다.
“응, 그런 거 필요 없어. 안 해도 괜찮고. 대나무숲도, 섹x좌도 다 포기할 수 있어.”
환하게 웃으면서도 서예린은 조금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그만큼 너를 사랑해, 우진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