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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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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어두워진 기숙사 복도.

이미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었음에도 그곳에서 서성거리며 전전하고 있는 한 여자.

“하아.”

민주희는 스스로에게도 의구심을 느낄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잠에도 들지 못하고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발걸음과 물어뜯는 손톱은 초조함의 반증이었음에도 민주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는 중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상황이 보이는 거야?!

오늘도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미리 과제도 끝내두고.

새로 듣는 강의도 마음에 들었으니 오히려 좋은 하루였다고 봐야 했다.

심지어 라면 끓이는데 다시마가 두 개나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숙사 휴게실에서 라면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기숙사 안으로 들어오는 미모의 여성. 기숙사생들이 물갈이가 한 번 되었으니 모르는 얼굴이 있을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중요한 건, 민주희가 저 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거였다.

‘예린이?

같은 과 2학년의 서예린.

고작 1년 만에 가현대 미인으로 유명해진 아끼는 후배였다.

영화촬영도 해서 배우로 진로를 잡았다는 것도 골드원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고 말이다.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걸어가면서 주변 눈치를 살피는 서예린이었으나.

정작 허술한 탓에 민주희가 지켜보고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후후.”

그러면서 자신의 은밀함에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좀 귀엽긴 했다.

서예린이 기숙사에 찾아올 사람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라고는 생각했지만.

정작 머리에는 이미, 서예린과 유아린이 김우진의 아래에서 신음을 쏟아내던 게 떠오르는 중이었고.

꿀꺽.

침을 삼킨 민주희는 조심스럽게 서예린의 뒤를 따라갔다.

기숙사는 남녀 건물이 다르긴 했으나, 중앙에 휴게실은 이어져 있다.

서예린은 매우 조심스럽게 남자 기숙사로 향했고, 기적적인 확률로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김우진의 방으로 말이다.

심지어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보고는 냉큼 들어간다.

그것을 본 민주희는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아무리 그래도 김우진의 방이지 않은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여자친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압도적인 당당함!

‘하긴…… 이미 하, 할 거 다 했으니까.

성숙한 후배들니까.

다들 나만 빼고 어른이 되는구나.

“근데 3p는 좀 아니지 않나?!”

쭈그러들려던 민주희는 다시금 정신을 다 잡는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다 조심스럽게 문에 귀를 대었다.

‘우진이는 없나 보네. 목소리가 따로 들리진 않아.

조금은 안도하면서도.

정작 민주희도 거기서 떠나지 못하고 엉거주춤 있었으나.

와중 묘수를 하나 떠올렸다.

‘기숙사 입구에서 우진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면 되는 거구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결정한 민주희의 행동력은 재빨랐다.

아예 의자까지 가져가서 캔맥주 하나 홀짝이며 기다린다.

기숙사생들에게 위압감을 조성하는 행위였으나, 상대는 민주희.

이미 주변에서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선배로 소문난 그녀였기에 누구도 그녀에게 불평을 쏟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음? 선배?”

1학년 기숙사생들이랑 같이 안으로 들어오는 최이서.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녁 맛있는 거 드셨나요, 선배님!”

“그려, 인사 적당히 해라.”

듣기 귀찮다고 한마디 툭하자 1학년들은 바로 기강이 잡혀서는 허리를 꼿꼿히 세운다.

그런 애들을 휴게실 안으로 밀어 넣고 최이서는 민주희에게 다시 돌아왔다.

“선배 뭐하세요?”

“그냥…… 경비?”

“…….”

잠깐 정적이 돌았다.

“너는 뭐하냐. 1학년 애들이랑 같이.”

어색한 침묵을 민주희가 깨자, 최이서는 웃으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번에 멘토멘티 프로그램이 새로 창설됐다고 해서요. 1학년들 멘토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넌 참 바쁘게도 사는구나. 이번에 또 과대했다며.”

“조교님이 하도 부탁을 하셔서.”

“……그러다간 대학 생활 일만 하다가 끝난다.”

이미 김우진과 최이서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심 중인 민주희였기에.

떠보듯 묻자, 최이서는 뭔가 생각이 깊어진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러게요.”

여운이 남는 한마디를 남기곤, 인사한 후 다시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있었을까.

맥주는 이미 3캔을 마셨기에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민주희였는데.

“음?”

타이밍이 참 공교롭게도.

자신이 없는 사이에 통로를 통해 남자기숙사 쪽으로 가는 최이서가 보였다.

“…….”

무언가에 홀린 듯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 민주희.

결말은 참으로 뻔했다.

최이서 역시 김우진의 방으로 들어간 것.

중요한 건.

“예린이가 아직 안 나왔는데……?”

터져 나오는 망상.

김우진의 물건을 열심히 빨면서 예쁨 받으려는 서예린과 최이서.

그런 둘을 마치 애완견 쓰다듬듯 주인 행세하며 다루는 김우진.

“흐억?!”

머리에 피가 쏠리며 민주희는 다급하게 도망친다.

아직 김우진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살짝 아래쪽이 축축해진 느낌이었기에 더 이상 여기 있어선 안 될 것 같았다.

“더, 더 이상 얘들한테 엮이면 안 되겠어!”

여기가 무슨 미국도 아니고.

어쩜 이렇게 개방된 성 관념을 가지고 있는 걸까.

망측하다 외치며 민주희는 결국 김우진의 방에서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저녁 점오가 끝나고.

늦은 밤.

기숙사 통금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민주희는 김우진의 방이 있는 복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도, 돌아갔겠지. 갔을 거야.

아마 김우진도 방에 돌아왔을 테니, 애들을 다 보냈겠지.

“이게 뭐하는 거냐 민주희. 그냥 돌아가자.”

괜히 혼자서 호들갑 떨고, 이건 평생의 수치로 남겠구나 싶어 미련을 떨치는 순간.

하앙!

“……?!”

엄청난 속도로 문에 귀를 댄 민주희.

콩닥콩닥 뛰는 심장과 몸을 지그시 누르는 배덕감.

흐응! 흐앙!

또한 안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신음이 몸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이 안에서…….

서예린 혹은 최이서가 김우진에게 안기고 있다!

‘아니면 둘이 같이 하거나!

민주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어야하지?!

하지만 그런 고민들도 곧이어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애초에 자신은 김우진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냥 아끼는 후배였다.

일 잘하고, 똑부러지고, 성격도 좋다.

인기가 많을 수 있고, 여자인 친구들이 많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정작 나는 뭐 아무 것도 없지.

냉정하게 말해서 과제 때문에 영화 같이 찍은 게 끝이지 않은가.

물론, 잠깐 안겨 있던 적이 있긴 했다.

그래.

자신은 남자의 품에 안겨 본 적도 처음이고, 같이 누워본 적도 처음이었지만.

정말 잠깐이지 않았나.

꾹꾹.

민주희는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강하게 누르면서 김우진의 번호로 연락을 걸고 있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김우진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하악! 하악!

무려 안에서 신음이 계속 터지고 있는데 말이다!

“우, 우, 우, 우진아? 바, 방이니?”

호기롭게 전화를 걸 때랑 반대로 목소리가 덜덜 떨려왔다.

자신의 전화를 받은 게 발딱 벗은 채로 여자를 탐하고 있을 그라고 생각하니.

김우진이라는 남자가 거대하게 느껴지는 순간.

  • 아뇨? 밖인데요.

“끊어봐.”

뚝.

바로 전화를 끊은 민주희가 그대로 방문을 벌컥 열었고.

“히익?!”

“서, 선배?”

어두운 방안.

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김우진의 노트북으로 뭔가를 보고 있던 서예린과 최이서가 민주희와 눈을 마주쳤고.

“후배님들?”

불이 켜지며.

어느새 민주희는 다시 옛날의, 주대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지?”

갑자기 전화를 끊으신 주희 선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 이쪽 일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딱 봐도 애가 귀티가 없잖아?! 도대체 얘를 보고 누가 부잣집 도련님으로 생각하겠냐고!”

“바, 반박할 말이 없어!”

‘뭐지.

나를 가리키면서 외치는 유아린과 그것에 대꾸하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는 오윤지.

방금까지 둘이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는데.

“그리고 이 새끼 편의점에서도 존나 쫌팽이라고! 내가 한 번 사줬으면 지도 사줘야 하는데 꼭 한 번은 잡아 뗀다니까?!”

“크읍!”

“…….”

왜 이번에도 얻어맞은 것처럼 가슴을 움켜 쥐냐 윤지야.

그럴 때는 좀 아니라고 반박을 해줘.

“있는 놈들이 더 하다니까?!”

“그건…… 맞긴 해. 우진이가 좀 돈을 과하게 아끼고, 쫌팽이 기질이 있지.”

그냥 둘이 싸웠으면 좋았을 텐데.

왜 나한테 화살촉이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너희 나 때문에 싸우던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내 욕을 하고 계세요.”

어처구니 없어서 끼어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꽂혀 들어왔다.

게다가 동시에 똑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지 때문에 싸우던 거 아니냐고 묻는 거 봐라. 넌 턱 다친 거 아니었으면, 방금 턱 나갔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긴 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사람인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찐사랑이야.”

“애니 적당히 봐. 하렘물 찍으세요?”

“아, 우진아. 그때 그…… 여자 팬티 엄청 나오던 애니 자주 봤잖아.”

“……다 꺼져.”

이년들 그냥 나 좋아하는 척하면서 돌려 까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