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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륙 수도자들은 정말 전력으로 기뻐했다.
관악기 못지않은 고음을 내지르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허공에 애꿎은 종이를 흩뿌렸다.
여태까지 수백 년 이상 자연재해로 고통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나 점잖은 반응이었다.
잠시 후, 사람들은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를 치우고, 제각기 옷매무새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종이를 많이 던졌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한 연구소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 원기둥 하나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분명합니다. 이곳이 화산 지대라서 화영기가 많이 뭉친 게 아니고, 화영기가 비정상적으로 뭉친 장소라서 화산이 생긴 겁니다. 저희의 예측과는 선후 관계가 뒤바뀐 셈이죠.”
“개인적으로는 류 수사님의 가설이 옳았으면 싶습니다. 원기둥이 아니라 초대형 화산이 원인이라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뒤에 이상현상이 재발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원기둥 좀 보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화영기를 끌어당기고 있잖아요.”
연구소장은 원기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면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원기둥은 덜덜거리며 천지영기 중 화속성만을 포집하는 중이었다.
작동 원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연구소장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긴, 경사로운 날 구태여 근심 걱정을 자초할 이유는 없지요. 중요한 건 남대륙의 수많은 생명을 자연재해로부터 구해냈다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아직 류 수사님께 감사도 안 했었군요.”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낸 일인데 어떻게 저만 감사를 받을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류 수사님과 용신님, 그리고 원정대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 같이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 번에 만 번을 거듭 감사드린다 할지라도 부족할 겁니다.”
서란과 연구소장은 하하호호 웃었다.
남대륙 수사들과 서대륙 수사들도 서로서로 공치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식산대붕의 널찍한 배 속은 삽시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찼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남은 건 귀환뿐이었다.
일행은 사전 동의 없이 빌려온 거인용 의복을 반납했다.
그리고 가벼운 날갯짓으로 화산 지대를 떠났다.
식산대붕은 가끔씩 지상에 착륙해서 씨앗을 물고 도로 날아오르길 반복했다.
그때마다 종자 보관소에는 신규 종자가 추가됐다.
저 초대형 식물들로 또 어떤 걸 만들어 볼까, 서란은 즐거운 상상과 함께 입맛을 다셨다.
중간중간 딴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어느새 사막거인족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식산대붕의 아음속 비행 덕분이었다.
결국, 여름에 출발했던 남대륙 수호대는 이듬해 봄이 찾아오기도 전에 귀환할 수 있었다.
거대 오목눈이가 물고 온 희소식에 수선연맹, 더 나아가 남대륙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푹신한 장의자에 드러누워 과일을 냠냠거리던 서란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슬슬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서란과 원정대가 수선연맹 본부에 눌러앉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여독도 풀 겸 축제가 끝날 때까지만 머무르다 가시라는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탓이었다.
축제의 열기는 남대륙 전역으로 산불처럼 번졌고, 도무지 꺼질 줄을 몰랐다.
덕분에 서란도 여태 백조 노릇을 했다.
빈둥빈둥거면서 놀고, 음식을 집어 먹고, 명상과 공법 수행을 하고, 기술 서적도 읽었다.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서란은 벌떡 일어나서 다짐했다.
“이만 남대륙을 떠나야겠어!”
그리고 곧장 소집령을 내렸다.
원정대는 순식간에 채비를 갖추고 모였다.
수선연맹 관계자들도 덩달아 딸려 왔다.
연구소장이 대표로 물었다.
“류 수사님, 어찌 이런 야밤에 떠나십니까? 혹시 저희의 대접에 부족한 점이 있었나요?”
서란이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융숭한 대접,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라고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시급히 돌아가서 준비해야 할 일도 있고요.”
“준비요?”
“예, 바로 문파비승 준비입니다.”
듣고 있던 남대륙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 세상에 문파비승보다 시급한 일은 없으니까.
연구소장은 정말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 중대사를 앞두고 계셨군요. 알겠습니다, 혹여나 필요한 물자가 있다면 말씀하시지요.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원정대는 남대륙 사람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식산대붕의 부리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거대 오목눈이가 눈을 떴다.
식산대붕의 머리 위에는 형형색색의 화환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거구가 움직일 때마다 화환이 비처럼 쏟아졌다.
남대륙 수도자들이 저마다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씩 올려놓고 간 것이 어느덧 저렇게나 모였다.
평야를 가득 메운 인파가 손을 흔들었다.
범인도, 수도자도 한마음 한뜻이었다.
모두의 환송 속에서 식산대붕이 비상했다.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새벽녘, 숙면을 취하던 담청이 기상했다.
잠시 굼실거리며 고사리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번쩍 떴다.
뒤이어 울리는 활기찬 외침.
“드디어!”
담청은 재빨리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잠든 장소는 수선연맹 본부의 손님용 객실이었건만 깨어나 보니 식산대붕의 배 속이었다.
담청은 황급히 서란을 찾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라면 분명 한증막에 있을 터였다.
일 년 가까이 지낸 공간이라 그런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담청은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담청이 탈의실에 입장하자, 딱 맞춰서 한증막의 문이 열리며 나체의 서란이 걸어 나왔다.
수건 한 장을 쌍절곤처럼 휘두르는 중이었다.
무술 영화 마니아다운 현란한 솜씨였다.
뒤늦게 담청을 발견한 서란이 물었다.
“한증막 사용하시려고요?”
잠시 말문이 막혔던 담청은 정신을 차렸다.
“아니, 지금 한증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찌하여 우리가 식산대붕의 내부에 있는 것이냐?! 수선연맹과 축제는 어쩌고!”
서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야 어젯밤에 남대륙을 떠났으니까 그렇죠.”
“떠났다고?! 왜 하필 오늘?!”
“예? 언제 떠나든 다를 게 있나요?”
담청은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오늘... 잉어 축제가 예정되어 있었단 말이다...”
축 늘어진 담청의 목소리에 서란이 당황했다.
“잉어 축제요?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오늘만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 어째서 출발하기 전에 물어보지 않은 것이냐...”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시길래...”
서란의 말은 사실이었다.
원정대는 떠나기 전에 담청을 깨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무지 일어나질 않았다.
불러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귓가에 대고 나팔까지 불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업어다가 식산대붕에 태웠다.
안 일어난다고 혼자만 남대륙에 덩그러니 놓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담청의 용안은 알 수 있었다.
서란과 원정대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 탓하기도 뭐했다.
그래서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슬픈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담청 님...”
“나는 괜찮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보마...”
서란은 담청의 울적함을 풀어주기로 결심했다.
“담청 님, 그러지 말고 식당으로 가시죠!”
“식당으로?”
“예, 꿀차라도 한 잔 마시고 함께 놀아요!”
자기를 생각해 주는 서란의 마음씀씀이에 살짝 기분이 좋아진 담청이 대답했다.
“음, 그것도 괜찮겠구나.”
“좋아요, 바로 출발합시다!”
“그보다 먼저 옷부터 입거라.”
“예.”
서란은 불쥐의 털옷을 꿰어 입었다.
서란과 담청이 있는 곳은 식산대붕 내부였다.
당연히 놀거리도 한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선물 구경을 할 예정이었다.
서란은 박물관 큐레이터처럼 말했다.
“지금 보시는 이 장치는 관천망기 연구소가 양도해 준 해석기관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 아니더냐?”
“자기들은 새로 하나 만들면 그만이라면서 선물해 줬습니다. 유지 보수 방법이 적힌 서적도 같이 받았죠. 지금은 식산대붕의 인형핵과 임시로나마 연결해 놓은 상태입니다. 표적 분배 기능을 비롯한 무수한 설비들의 작동 효율이 극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오오!”
다음 물건은 영석 더미였다.
“남대륙 수선연맹이 선물해 준 영석입니다.”
“음, 그렇구나.”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빠르게 넘어갔다.
“진법 연구소에게 받은 진법 서적들입니다.”
“아하.”
담청은 마찬가지로 관심이 없었다.
“화산 내부에서 발견한 원기둥입니다.”
“흠...”
서란은 식은땀을 흘리며 종자 보관소로 갔다.
“초대형 선인장의 종자입니다. 참고로 다 자라면 키가 식산대붕보다도 커진다는 게 제 예상입니다.”
담청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정말이냐?! 당장 심어 보고 싶구나!”
흥분한 나머지 울적함 따위는 잊은 듯 했다.
안심한 서란은 종자 보관소를 돌며 초대형 종자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9개월 뒤, 일행은 서대륙 해안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