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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륙 수호대의 원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서란이 근원지에서 화영근을 생성한다.
둘째, 서란이 공법을 통해 정화법력을 쌓는다.
셋째, 화산 폭발로 잔여 화영기를 분출시킨다.
비경 의식으로 한 번, 법력 변환 과정에서 또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막대한 화영기가 소모된다.
그다음 확연히 줄어든 화영기를 대규모 화산 활동으로 모조리 소진시킬 작정이었다.
과도하게 농축된 화영기를 깔끔하게 제거함으로써 이상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의 일부를 부득이 변경해야만 했다.
화산 지대에 자리잡은 용암 휴양지 때문이었다.
사막거인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한순간에 재난 영화로 만들어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세 번째 단계가 살짝 바뀌었다.
화산 폭발 대신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상현상만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흑요석 소검에 대롱대롱 매달려 어검비행을 즐기던 서란은 어느새 근원지에 도착했다.
지하 500리 깊이라지만 비검 법기의 비행 속도를 고려하면 오래 걸릴 거리는 절대로 아니었다.
마그마를 헤치며 나아가는 것도 비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란은 육감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마그마 한가운데에서 투시 능력조차 없는 허접한 영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믿을 건 평소에 꾸준히 단련해 온 육감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감각의 구체가 서란의 머리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팽창했다.
삽시간에 반경 몇 리가 인식 범위로 뒤덮였다.
엄청난 양의 감각 정보가 밀려들어 왔지만 두뇌의 처리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좁디 좁은 머리통 안에 웅크리고 있던 서란의 원영이 눈을 떴다.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을 통해서 두개골 밖으로 나온 반투명한 아기는 곧장 기지개부터 켰다.
초우량아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몸집이었다.
영체 형태로 유체이탈을 한 서란은 곧장 홍수처럼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영체 상태의 서란은 육신을 원격으로 조종했다.
멍한 표정을 지은 몸이 영혼의 명령에 따라서 화영기의 농도가 더 진한 장소로 이동했다.
진법을 설치할 만한 중심부로 가는 중이었다.
미들 서란과 스몰 서란이 중심부에 다다랐다.
압도적으로 진한 화영기, 바로 이 장소였다.
서란은 불쥐의 털옷으로 만든 보따리를 풀었다.
안에는 진법용 깃발과 기둥이 잔뜩 들어 있었다.
서란은 진법 법기들이 고온에 망가지기 전에 얼른 법력을 불어넣었다.
순식간에 가동된 법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란은 불쥐의 털옷을 대충 걸치고는 진법 설치가 완료되기를 기다렸다.
보따리 안에 든 물건들은 진법 연구소가 밤을 새워 가며 만들어 준 원터치 진법 설치 키트였다.
간단한 사용법 정도만 숙지하면 문외한도 손쉽게 진법 설치가 가능했다.
잠시 후, 드디어 진법 설치가 끝났다.
서란의 금단과 공명한 진법은 막대한 인력을 바탕으로 주변 화영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비경 의식이 시작된 것이었다.
원영이 서란의 두개골 안으로 돌아왔다.
지금부터는 칼날 같은 집중력이 요구된다.
난다 긴다 하는 일영근자들도 영근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칠주야씩 걸리기도 했다.
서란은 차분한 마음으로 명상을 시작했다.
정확히 1각(15분) 뒤, 서란은 명상을 멈췄다.
비경 의식을 진행하다 말고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이러는 건 물론 아니었다.
그냥 화영근이 일찍 생성된 것뿐이었다.
서란은 육감을 통해서 자신의 명치 어림, 중단전을 살펴봤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의 네 가지 빛깔.
아무리 다시 세어 봐도 틀림없는 사영근이었다.
서란은 분명히 화영근 생성에 성공했다.
제일 처음 든 생각은 ‘벌써?’였다.
솔직히 서란도 자기가 천재라는 자각은 있었다.
그래서 내심 영근 하나 생성하는데 칠주야씩이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나 싶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아, 혹시?’였다.
사람의 체감 시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가지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잠깐만 보고 자야지, 했는데 정신을 차리자 출근 시간이 코앞인 게 대표적인 예시였다.
물론 ‘체감 시간 오류 가설’은 금방 폐기됐다.
설마하니 칠주야와 1각을 혼동했으려고, 시간을 착각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혹시나 해서 진법의 작동 시간까지 살펴봤지만 아직 한 시진(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란은 그냥 긍적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특수한 환경, 선천적인 재능, 아니면 단순한 우연.
정확히 뭐가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찍 끝났으니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서란은 작전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
농밀한 화영기를 정화법력으로 변환할 차례였다.
이거 때문에 공법서도 미리 암기해 왔다.
이번에 익힐 원영기 공법은 ‘포화호신결’이었다.
풀이하면 불을 안아 육신을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오죽문의 화속성 비전 공법이었다.
공법의 효능은 굉장히 단순했다.
독특한 결계, 정확히는 부정형 법화 결계를 생성해서 사용자를 보호하는 게 전부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방어 특화형 공법이었다.
남대륙 원정을 떠나기 전, 서란은 여무진에게 포화호신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오죽문이 어떻게 서대륙 오대문파가 되었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뛰어난 연단술로 조제한 단약은 오죽문을 떠받치는 세 가지 기둥 중 하나에 불과했다.
법화 결계는 정화법력이 계속 공급되는 한, 거의 모든 피해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했다.
위력이 강한 공격일수록 법력을 빠르게 소모시킬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여태 법화 결계를 파괴했던 존재는 없었다.
결국 포화호신결 사용자를 죽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는 결계를 사용하기도 전에 기습해서 처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머릿수를 바탕으로 소모전 끝에 말려 죽이는 것이었다.
선계로 비승한 이후에는 어떨지 몰라도 인계에서 만큼은 무적의 공법이나 다름없었다.
법문을 외우며 명상을 하던 서란의 나신을 맹렬한 화염이 뒤덮었다.
정화법력을 먹고 타오른 법화 결계였다.
서란이 벌써 포화호신결을 습득했다는 증거였다.
진법이 끌어당긴 화영기는 곧장 서란의 체내로 들어와서 정화법력으로 변환됐다.
비경 의식을 거치며 가뜩이나 감소했던 화영기의 농도는 계속해서 옅어져만 갔다.
이대로라면 굳이 세 번째 단계까지 갈 것도 없이 이상현상이 해결될 기세였다.
잠시 후, 서란은 공법 수행을 멈췄다.
몸 안에 법력이 더는 안 들어간 탓이었다.
영석 값을 상당히 많이 아낀 셈이었다.
서란은 육감으로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화영기의 농도가 기준치 미만으로 감소해 있었다.
이 정도면 원래 계획대로 자기가 만든 결계에다 법술을 난사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보다 꼼꼼히 더듬었다.
한참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육감에 걸렸다.
원기둥 형태의 큼직한 물체였다.
서란은 비검을 조종해서 원기둥 쪽으로 향했다.
높이가 서란의 두 배 정도 되는 원기둥의 표면은 복잡한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렇게 커다란 물체를 아까는 어째서 감지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화영기가 너무 짙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감각 범위가 급격하게 좁아지고, 서란의 육감이 원기둥을 대상으로 온전히 집중됐다.
원기둥은 원리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인력으로 막대한 화영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제야 서란은 남대륙을 초토화시킨 이상현상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서란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쩐지 눈에 익은 문양과 원리를 알 수 없는 물건.
누가 범인인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또 고대문명이었다.
탈의실을 나선 서란에게 계산대의 사내가 물었다.
“아니, 무슨 목욕을 이렇게 빨리 끝냈니? 자고로 목욕이란 느긋하게 두 시진 정도는 해야지.”
소소 연기에 몰입한 서란이 대답했다.
“목욕 질렸어요!”
대욕탕 밖으로 나온 서란은 일행이 기다리는 약속 장소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식산대붕은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서란은 생장술을 풀고 불쥐의 털옷을 걸친 다음, 잽싸게 식산대붕 부리로 입장했다.
연구소장이 서란을 맞이해 줬다.
“류 수사님, 어찌 이리 빨리 돌아오셨습니까? 혹시 진법 설치 과정에서 문제라도 발생했나요?”
남대륙 수호대의 입장에서 이상현상이 벌써 해결됐으리라 예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최소한으로 잡은 작전 시간이 칠주야였다.
당사자인 서란조차 이 모든 과정이 한 시진만에 끝날 줄은 몰랐다.
서란은 지체 없이 희소식을 전했다.
“이상현상이 무사히 해결됐습니다!”
남대륙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너무나 명약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