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233173/8.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과제는 분신술과 법용술, 총 두 가지였다.

서란은 우선 법용술부터 수련하기로 마음먹었다.

뚜렷한 의도를 가진 결정은 아니었다.

그냥 금영영이 보여줬던 법기 폭풍이 부러웠다.

자그마치 다중 법기 운용 훈련이다.

훈련을 마친 자신은 얼마나 멋질 것인가.

서란은 희망찬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손짓 한번에 벌떼처럼 날아드는 폭탄 인형들.

그야말로 전장을 지휘하는 현란한 마에스트로였다.

퇴로를 잃고 우왕좌왕하던 악의 무리는 절망하고, 이내 거대한 섬광에 삼켜진다.

예술적인 정의구현의 한 장면이다.

이때 불꽃을 등지고 서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폭발 장면을 돌아보는 건 쿨하지 않으니까.

망상을 마친 서란이 곧장 준비물을 꺼냈다.

선물 보따리에서 나온 건 나무 구슬 스무 개였다.

구슬을 손에 쥐고 법용술을 사용하면 날아다니는 붓으로 변신한다.

쉽게 말하자면 구슬-붓 변형 법기인 셈이다.

서란은 붓을 조종해서 그림을 그렸다.

힘차게 움직이는 먹선이 도화지를 누빈다.

한붓그리기가 끝나자 서란의 자화상이 완성됐다.

활짝 웃고 있는 표정이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어쩐지 조금 흥이 났다.

서란의 폴터가이스트 미술 시간은 계속됐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무차별적으로 그려나가면서 한번에 조종할 수 있는 붓의 개수도 점차 늘어났다.

마침내 모든 붓을 동시에 조종해서 완벽하게 동일한 그림 스무 장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서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는 한번에 서로 다른 대상을 묘사할 차례였다.

왼손은 원을, 동시에 오른손은 삼각형을 그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난이도였다.

서란의 방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조종 실수, 비행 중 격돌, 의도치 않은 사출까지.

천장과 벽면, 바닥을 가리지 않고 사방천지가 먹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서란은 완성된 스무 장의 각기 다른 정물화를 감격에 겨운 시선으로 감상했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찾아온 성공이었다.

입고 있던 흰 옷은 이미 검게 물든 지 오래였다.

이제 드디어 분신술을 수련할 때가 됐다.

지긋지긋한 붓과 벼루, 도화지를 내팽개치고 정원으로 달려나간 서란은 곧장 분신을 하나 생성했다.

법력이 뭉게뭉게 모여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류서란이 탄생했다.

다른 건 원본과 동일했지만 표정만은 달랐다.

원본 서란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자기 분신을 이리저리 조종해보기 시작했다.

앞구르기, 뒷구르기, 물구나무서서 발박수 치기.

서란은 투철한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분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분신의 신체 능력은 딱 연기기 수준에 불과했다.

범인과 비교하면 물론 대단하지만, 전투에 직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나약하다.

실전에 써먹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았다.

분신을 조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지금 서란이 하는 것처럼 관찰자 시점에서 분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의식을 분할해서 분신을 직접 조종하는 방법이었다.

여무진이 의도한 건 두 번째 방법이었다.

서란은 의식을 분할해서 분신에게 빙의시켰다.

그러자 방대한 감각 정보가 뇌로 쏟아졌다.

분신을 바라보는 본체의 시선과 본체를 바라보는 분신의 시선이 하나로 중첩됐다.

꼭 3D 영화를 전용 안경 없이 보는 기분이었다.

어지러움이 다소 수그러들었다.

서란은 추가로 분신을 몇 개 더 생성했다.

시야 겹침 현상도 덩달아서 심해졌다.

서란은 계속해서 분신의 숫자를 늘렸다.

일단은 의식 분할에 익숙해질 작정이었다.

분신 류서란들은 콩나물시루처럼 굉장히 좁은 간격으로 밀집해서 도열했다.

들이붓는 족족 법력은 분신으로 탈바꿈했다.

가운데에 있는 본체 류서란을 중심으로 점점 커지던 분신 류서란 군집은 어느 순간 확장을 멈췄다.

공유된 분신의 시야로 살펴보니 새로운 분신이 생성되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지는 광경이 보였다.

의식 분할을 멈춘 서란이 원인을 유심히 관찰했다.

서란과 가까운 위치에 선 분신들은 멀쩡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분신들은 점점 저해상도 동영상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숙련도에 따른 거리 제한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서란은 다시 의식을 분할해서 분신들을 조종했다.

완벽하게 동일한 생김새를 한 소녀들이 일제히 무술 동작을 펼쳤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분신에게는 자율성이 전혀 없었다.

수십 명이 넘는 분신을 오로지 본체 혼자서 직접 조종해야만 했다.

마치 다인용 파티 게임을 컨트롤러 여러 개로 혼자서 즐기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계절이 바뀌도록 서란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분신술 숙련도가 증가할수록 분신 생성 한계와 활동 거리 제한도 점차 완화되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되었다.

서란의 분신술 숙련도는 일취월장했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서란의 분신을 찾을 수 있었다.

오죽문 사람들도 바글거리는 분신에게 익숙해졌다.

농작물을 수확할 시기가 되었다.

분신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줄을 맞춰 섰다.

그리고는 일제히 무표정으로 낫질을 했다.

주방은 식사를 대량으로 준비하느라 항상 바쁘다.

분신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무표정으로 울면서 양파를 깠다.

가을맞이 대청소가 찾아왔다.

분신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빗자루를 들었다.

실수로 도자기를 깬 뒤 모조리 쫓겨났다.

처음에는 청소나 운반 같은 단순한 잡무였다.

하지만 서란은 의식 분할에 점차 익숙해졌다.

그러자 분신들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동작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바로 서커스였다.

빠른 속도로 던진 고리 몇 개 연속으로 통과하기.

밑에서부터 좁아지다가 다시 넓어지는 호리병 모양 인간 탑 쌓기.

백 명이 단검 수백 개를 어지러이 주고 받는 대혼돈 단검 저글링.

위대한 쇼걸, 류서란은 홀로 오죽문 전체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호혜문도 어떤 발상을 떠올렸다.

글방 학생들에게 보여줄 성대한 연극이었다.

장소는 글방, 관객은 학생들, 주제는 권선징악.

출연자는 오로지 류서란뿐, 즉 일인 다역이다.

제안을 받은 류서란은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수련 방법도 더는 안 떠오르던 참이었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연극 당일, 서란의 분신들은 열연을 펼쳤다.

분신들은 말을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팔방미인 호혜문은 성우의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를 연기했다.

하나같이 무표정인 배우들, 쓸데없이 뛰어난 성우 연기, 이 와중에도 각본은 훌륭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담청이 홀로 중얼거렸다.

“이거 꼭 인형극 같구나.”

굉장히 작은 목소리였다.

유사 무성 영화에 푹 빠진 관객들은 못 들었다.

하지만 무대를 지휘하던 서란에게는 들렸다.

“인형극?”

이번에도 영감이 찾아왔다.


제1회 인형 제작 회의.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래봤자 류서란, 호혜문, 담청 세 명뿐이었다.

이아금은 공부, 금영영은 수련 때문에 불참했다.

서란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에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호혜문이 대표로 물었다.

“어떤 일이 있었죠?”

서란이 참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발명품, 죽순탄도탄은 점토 인형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등록할 때도 분류상 인형으로 신청을 했지요. 하지만 바로 며칠 전, 통지가 왔습니다. 분류 번호를 강제로 변경하겠다는 내용이었지요.”

호혜문이 경악했다.

“저런!”

고개를 끄덕인 서란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죽순탄도탄은 이제부터 분류상 일회용 법기로 취급됩니다.”

“일회용이라면, 부적 법기나 투척물 법기처럼?”

“바로 그렇습니다...”

“정말 큰일이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담청이 물었다.

“분류 번호 좀 바뀌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서란이 대답했다.

“앞으로 나올 개발 지원금 자릿수가 변합니다.”

담청이 화들짝 놀랐다.

“그거 정말 큰일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서란에게 호혜문이 물었다.

“그래서 이 모임은 무슨 이유로 열었죠?”

서란이 종이를 한 장 꺼내 보여줬다.

‘법기 분류 기준 변경 알림.

법기 분류상 인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

하나, 짐승의 형상을 본뜬 것.

하나, 기타 장서각 각주령으로 정한 것.

참고 사항.

식물이나 건축물의 형상을 본뜬 것은 분류상 인형으로 신청하지 마십시오.

서란이 선언했다.

“저는 이제부터 인형을 만들 예정입니다. 좋은 영감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여러분을 여기에 모신 건 부탁을 하기 위함입니다.”

호혜문이 말했다.

“무슨 부탁이죠? 제 부탁으로 연극도 공연해줬으니까 최대한 협력할게요.”

“나도 심심하니까 도와주마.”

담청도 덧붙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인형을 만들다가 초심을 잃고 내달릴 때 저를 막아주세요. 이번에 만들 인형은 반드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이번에도 완성하고 봤더니 죽순이었다는 슬픈 결말은 피하고 싶군요.”

기필코 지원금을 타먹겠다는 소리였다.

문득 궁금해진 담청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영감이 떠올랐지?”

서란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제가 너무 자율성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두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깨달음과 함께, 담청의 사슴뿔이 번쩍였다.

“설마...”

“제 목표는 바로, 완전 수동 조작 인형입니다.”

인형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상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발언이었다.

아마도 인형술사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건 인형술이 아니야!’라고 절규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멀쩡한 인형술사가 없었다.

다들 천재적인 발상이라며 감탄할 뿐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군요!”

“나도 이런 건 난생처음이다!”

문외한인 두 명이 연이어 칭찬을 했다.

자연스레 서란의 콧대도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셋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금영영과 이아금이 참석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