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233173/77.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0 KiB

항구 도시의 복구 작업은 빠르게 진척됐다.

서란과 담청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덕분이었다.

대지모신님, 대지모신님 하며 절을 하는 재해민들을 뒤로하고 일행은 대산문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조감한 속세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강이나 호수처럼 물을 구하기 쉬운 장소에는 대규모의 인구가 밀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남대륙은 달랐다.

모든 도시나 마을이 물가를 멀리했다.

용수는 송수로를 통해서 끌어오는 듯 했다.

누가 봐도 범람을 우려한 위치 선정이었다.

태풍과 지진을 염려한 것인지 어디를 둘러봐도 고층 건물은 눈에 띄질 않았다.

일정 간격마다 건설해 놓은 작은 저수지는 가뭄과 홍수를 동시에 대비한 흔적이 분명했다.

남대륙의 도시들은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서란은 문득 궁금해져서 양리백에게 물었다.

“양 수사님, 다른 도시들은 모두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왜 항구 도시만 위험하게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 건가요? 아무리 제방을 쌓았다지만.”

“소금, 정확히는 자염 때문이지요.”

“암염을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 소금은 자염, 광산에서 캐는 소금은 암염이라고 부른다.

오죽문이나 금작파 같은 경우에는 지저 세계를 통해서 암염을, 해선문을 통해서 자염을 수급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원정대원이 말했다.

“류 수사님, 자염이나 해산물을 먹지 않고 암염만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죽는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죠. 그리고 땅만 판다고 암염이 바로바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혹여 암염광맥을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불순물이 함유된 탓에 정제를 거쳐야만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죠.”

서란은 완벽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일행은 대산문에 도착했다.

대산문 소속인 양리백과 원정대의 교섭 담당자들만이 문파 대결계 내부로 들어갔다.

나머지는 식산대붕과 함께 근처에서 대기했다.

서란은 바람이라도 쐴 겸, 식산대붕의 외부로 나와서 부리 윗부분에 걸터 앉았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서대륙이나 남대륙이나 비슷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멀리, 대산문 대결계를 둘러싼 도시의 범인들이 식산대붕이 있는 방향으로 읍을 했다.

수도자들이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탓에 수호신 대접을 받는다더니, 높이 400m짜리 거대인형을 보고도 두려워하는 이가 없었다.

애써 모습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점은 편리했다.

서란이 멍하니 도시를 내려다 보는 사이, 교섭이 끝난 모양인지 양리백과 원정대원들이 돌아왔다.

“류 수사님,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습니다. 대산문이 저희를 수선연맹 측과 연결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원정대원의 말에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죠.”

원정대는 안내역 양리백과 함께 수선연맹 본부가 있는 남대륙 중부로 날아갔다.


남대륙 수도문파들의 국제기구, 수선연맹.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상 재난 구호 단체였다.

수백 년 전부터 급격하게 심해진 대자연의 분노가 대륙 전체를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피해 지역 복구, 재해 예방 공사, 사상자 집계와 통계 작성 등이 수선연맹이 맡은 업무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다들 이렇게 답할 게 분명했다.

관천망기 연구소야말로 수선연맹 전체와도 맞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희망의 상징이라고.

남대륙 전역에서 난다 긴다 하던 석학들이 모인 관천망기 연구소는 오늘도 분주하게 돌아갔다.

그들의 임무는 비정상적인 빈도로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것.

결과에 따라서는 도탄에 빠진 대륙 전체를 구원할 수도 있는 중대한 연구였다.

재해의 원인 규명과 해결책 모색을 위해 수선연맹은 매년 막대한 자원을 연구소에 쏟아붓는 중이었다.

최고로 우수한 인적 자원, 가장 우선적으로 공급되는 물자와 예산, 편집증적으로 확보한 안전까지.

연구 성과가 하루 앞당겨질 때마다 무수한 생령이 목숨을 건질 수 있으니 다들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몇 세대에 걸쳐 이어진 학자들의 노력이 마침내 오늘에서야 결실을 맺었다.

관천망기 연구소는 드디어 해석기관을 완성했다.

수백 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관측 자료를 토대로 이상현상의 근원지를 역산해 낼 수 있는 거대한 계산기였다.

소장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료를 입력하게나.”

연구원들은 바삐 움직이며 긴 종이 형태의 관측 자료를 해석기관의 투입구에 밀어넣었다.

끝도 없이 쌓여 있던 종이의 산을 모조리 삼킨 해석기관이 웅웅거리며 계산을 시작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오자 연구소장은 해석기관의 산출구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소장은 감격에 젖어 말했다.

“오오, 드디어...”

결과지에는 ‘자료 부족으로 인한 결과값 산출 실패’라는 문구만이 달랑 적혀 있었다.

해석기관에 투입한 자료의 양이 너무 적었거나, 충분히 정밀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오류였다.

설마 수백 년 동안 대륙 전역에서 긁어모은 자료가 부족했을 리는 없으니, 보다 정밀한 관측값을 입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연구소장은 아찔함을 느꼈다.

관천망기 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관측 기구의 성능은 이미 기술적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였다.

점진적인 개선 정도는 가능할 테지만,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기능을 향상시킬 방도는 없었다.

해석기관이 요구하는 수준의 정밀 관측이 가능해지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연구소장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안 돼... 안 돼...”

딛고 있는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연구소장은 사흘 정도 씻지도 않은 채, 수선연맹 본부를 유령처럼 배회했다.

평소에 유난히도 깔끔을 떨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연구소장이 받은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심대했는지는 누구나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남대륙 원정대가 수선연맹에 도착했다.


서란과 담청은 본부 입구에 심어진 정원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무 뒤에서 유령 같은 몰골의 사내가 스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난데없이 등장했던 연구소장은 자연스럽게 근처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서란은 옆에 있는 연맹 측 인사에게 질문했다.

“저 사람은 누군데 잔디를 다 밟고 다니나요?”

연맹 측 인사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관천망기 연구소라고, 빈번한 자연재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설립한 집단의 수장입니다. 최근에 해석기관이라는 물건으로 이상현상의 근원지를 분석하려다가 실패했다고 합니다. 상심이 컸던 모양인지 하루아침에 저렇게 되어 버렸죠.”

“저런... 그나저나 해석기관이라는 건 뭡니까?”

“글쎄요, 저는 문외한이라서 잘... 정 궁금하시면 관측망기 연구소 관계자를 소개해 드릴까요?”

“예, 부탁 좀 드릴게요.”

서란은 연맹 측 인사의 소개로 해석기관 개발을 진두지휘한 선임 연구원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연구소장이 정신줄을 놓아 버린 이후에도 해석기관의 개선을 멈추지 않았다.

계산 능력이 지금보다 더 향상되면 덜 정밀한 자료로도 근원지를 역산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굳이 시간을 낸 이유는 간단했다.

서란이 인형술사라는 얘기를 전해 들은 탓이었다.

혹시나 다른 대륙의 기술이 꽉 막힌 연구의 돌파구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서란과 선임 연구원은 죽이 잘 맞았다.

전문 분야가 확연히 다른 탓에 서로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말이 통하는 수준은 됐다.

두 사람은 사용인들이 기껏 준비해 준 차는 한 모금도 안 마시고 떠들기만 바빴다.

서로 다른 외계어로 한참을 소통한 다음에서야 서란은 해석기관이 뭔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꼽아 보자면 기상청 슈퍼컴퓨터와 비슷했다.

관측 자료를 잔뜩 투입하면 혼자서 열심히 계산한 다음에 결과값을 산출해 준다는 점이 닮았다.

서란이 물었다.

“그러니까, 보다 정밀한 관측 자료가 없으면 이상현상의 근원지를 역산할 수 없다는 거지?”

“뭐, 그렇죠. 그게 아니면 덜 정밀한 자료를 무한대에 가깝게 투입하거나, 해석기관의 성능을 압도적으로 향상시킬 방법을 찾는 것뿐이죠. 제가 도전하는 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후자입니다.”

“정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관측 기구의 성능을 개선해야 하고?”

“단순 개선 정도로는 안돼요. 못해도 지금보다는 몇 배 이상의 성능이 필요해요. 그런데 관측 기구의 성능은 이미 백 년도 전에 기술적 한계에 도달했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결국 정밀한 관측 자료만 있으면 되겠네?”

선임 연구원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요?”

서란이 씨익 웃었다.

“그럼, 당연하지.”

하나 마나 한 소리겠지만, 특정한 전문 지식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날씨 관련 문의는 누구에게 해야 할까.

정답은 바로 담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