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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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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재료를 구하려고 지저 세계에 방문했다가 졸지에 두더지 연애 상담사가 된 서란과 이아금.

두 사람은 무사히 오죽문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석연화는 안녕하지 못했다.

법기를 살피던 법기 장인이 물었다.

“어쩌다가 고장이 났나요?”

서란이 대답했다.

“천겁을 맞았습니다.”

법기 장인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좀 이상하군요. 석연화는 벼락 맞은 기암괴석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법기입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뇌영기에 대한 저항력으로는 따라올 물건이 없다는 뜻이죠. 아무리 천겁을 맞았다고 해도...”

“좀 많이 맞았습니다.”

“흠...”

이 순간, 법기 장인은 절반쯤 확신했다.

기억을 못할 뿐이지, 분명히 뭔 짓을 저질렀다고.

애초에 법기를 고장 낸 이들은 다 그랬다.

법기라는 건 기본적으로 수백 년은 쓴다.

겨우 삼십 년 쓴 석연화가 천겁 좀 얻어맞았다고 망가지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하면 안 되는 행위를 했거나, 해야할 관리를 안 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참고로 서란은 두 경우 모두 해당됐다.

일단, 비행 법기를 담수와 염수에 푹 담궜다.

비행기는 고사하고, 자동차한테도 이러면 안 된다.

침수 차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을급 법기 석연화는 견뎌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심해에 처박았다.

바다에서 타려고 만든 선박도 이 정도 깊이에 들어갔다 나오면 사실상 침몰선이었다.

용궁 관광 이후에도 석연화는 멀쩡히 작동했다.

제작자가 살아 있었다면 굉장히 보람찼을 거다.

저 튼튼한 법기를 내가 만들었다면서.

그러다가 마침내 법기로써 수명이 다했다.

못난 주인 곁에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탓이었다.

파란만장했던 석연화의 여정은 그렇게 끝났다.

이처럼 현실은 법기 장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기껏해야 관리 부실을 떠올릴 따름이었다.

연기술사의 상식에서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법기 장인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수리가 힘들 것 같습니다. 외부만 멀쩡하고, 내부는 엉망이군요.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법기의 핵까지 찌그러져 있습니다. 핵만 멀쩡했다면 금방 복구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쉽군요.”

물론, 핵을 찌그러트린 범인도 서란이었다.

혼자서 수리를 해 봤는데, 생각처럼 잘 안됐다.

적토전해경은 만능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서란이 대답했다.

“못 고치면 할 수 없죠.”

결국, 석연화는 기념품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기능이 응답 없음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축소 기능은 멀쩡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서란은 상자를 닫은 뒤, 미련 없이 돌아섰다.

때마침, 인형을 제작하려던 차였는데 잘 됐다.

비행 법기가 없으면 인형을 타면 되는 법.

천재 인형술사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이번에 만들 인형의 테마는 ‘새’였다.


인형을 제작하기에 앞서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문 위원회였다.

의견을 나누는 건 중요한 일이다.

혼자였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참신한 발상도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가능할 테니까.

무엇보다도 친구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인형을 만들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서란은 머릿속 친구 명단을 뒤적였다.

이아금, 휴가 다 쓰고 일하는 중.

호혜문, 여름 방학 시작하려면 한참 남음.

금영영,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소식이 없음.

순식간에 인간 친구가 바닥났다.

극단적으로 협소한 사회적 관계.

하지만 친구는 이종족 친구도 있으니 괜찮다.

토토서, 지저 세계에 있음.

지암서, 마찬가지로 지저 세계.

곧은 줄기, 동대륙 대수림에 있음.

담청 님, 매우 높은 확률로 놀고 있음.

서란은 즉시 중정 연못으로 향했다.

“담청 님, 같이 인형 만드실래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서란은 연못 안쪽을 바라봤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잉어들만이 헤엄치고 있었다.

담청이 하도 먹이를 많이 줘서 그렇다.

마침 하녀가 지나가기에 서란이 물었다.

“혹시 담청 님 어디 가셨는지 아니?”

하녀가 공손히 대답했다.

“아, 용녀님이요? 대연무장으로 가셨습니다.”

“대연무장? 거기는 갑자기 왜 가셨지?”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 하러 가셨습니다.”

서란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용이 갑자기 웬 공놀이?

그것도 꼬마들이랑 같이?

평소처럼 잉어 떼랑 노는 게 아니라?

너무 궁금해서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서란은 곧장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을급 법기 석연화는 이제 없지만 괜찮다.

날개 대신 튼튼한 두 다리가 있으니까.

서란은 한줄기의 바람처럼 내달렸다.

유선형 결계를 둘러 공기의 저항도 최소화했다.

축지법이 별게 아니었다.

목적지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대연무장 담장 너머에서 애들 목소리가 들렸다.

서란은 담벼락 위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잠자리채 두 개를 골대랍시고 세워 놓은 채, 열 살 정도 된 아이들이 뛰노는 중이었다.

색종이로 만든 종이공이 연신 하늘을 날았다.

머리에 사슴뿔이 삐쭉 솟은 소녀도 보였다.

담청은 정말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용녀님!”

한 아이가 담청에게 패스했다.

담청의 깔끔한 가슴 트래핑과 현란한 드리블.

그리고 곧장 골대를 향해서 슛.

알록달록한 종이공이 웬만한 어른 머리보다도 높이 위치한 잠자리채 그물로 들어갔다.

축구공을 발로 차서 농구 골대에 넣는 격.

애들 공놀이 치고는 다소 어려워 보였다.

수도자 자녀들이라 그런지 운동 신경들이 좋았다.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서란은 크게 감격했다.

담청이, 그 담청이 제 발로 뛰고 있었다.

예전에는 혼자 걷는 것도 영 서툴러서 누가 옆에서 손을 잡아 줘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놀이도 잘 했다.

서란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담청 님... 성장하셨군요...”

아까 보니까 격렬한 몸싸움도 있었다.

용이 꼬마애 하나를 못 이길 리는 없으니, 공 차느라 바쁜 와중에도 힘조절을 했으리라.

이게 바위틈에 뿔 끼우던 그 담청이 맞나 싶었다.

서란이 대견함을 느끼고 있을 때, 또 다시 담청에게 패스가 날아들었다.

“용녀님!”

“나한테 맡기거라!”

담청은 헤딩을 하기 위해서 도약했다.

사슴뿔이 그대로 종이공을 관통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서란도 방금 담청에게 내린 평가를 재고했다.

정말 다행히도, 한 아이가 이렇게 외쳤다.

“용녀님, 걱정하지 마세요! 공 하나 더 있어요!”

다시금 대연무장에 웃음꽃이 폈다.

서란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저토록 즐거워하는 담청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마음 한 켠이 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서란은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나와 함께 인형을 탐미할 자, 어디 없는가.

그리고 고개를 내리다,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서란보다 소녀가 먼저 상대를 알아봤다.

“헉, 류 수사님!”

목소리를 들었더니 서란도 기억이 났다.

“너는, 글방에서 만났던 인형술 꿈나무?”

열한 살 인형술 꿈나무, 장선화가 대답했다.

“예, 맞아요! 저번에는 미처 말씀 못 드렸는데, 제 이름은 장선화라고 해요! 어, 그리고... 책 요즘에도 잘 보고 있어요!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또... 아, 저 영근이 있대요!”

“뭐라고!”

서란, 영안술 발동.

영근을 살필 때, 허접들은 진맥이 필수였다.

하지만 원영기쯤 되면 눈으로만 봐도 안다.

“일영근이라고!”

장선화도 신이 나서 대답했다.

“맞아요, 목영근이에요! 근데 목영근자도 인형술 할 수 있어요? 입문서는 안 적혀 있더라고요.”

서란은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호, 혹시. 혹시 나랑 같이 인형 만들러 갈래?”

장선화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좋아요!”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장선화는 일단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동생 이름을 불렀다.

아들 딸 딸 딸 아들 아들 딸 중 차녀가 대답했다.

“언니, 나 왜 불렀어?”

“자, 네 점심 도시락.”

동생이 물었다.

“안에 가지 없지?”

당연히 있었다.

“편식하지 말고 먹어!”

장선화는 동생을 한 대 쥐어박고는 떠났다.

환상의 나라, 서란의 인형 공방으로.

서란은 장선화를 업은 채 집으로 갔다.

장선화는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사실, 관점에 따라서는 비행이 맞았다.

서란은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달렸다.

그러다가 낭떠러지를 만나면 힘차게 도약했다.

두 사람은 비상하는 매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이내, 날개가 없던 둘은 쏜살같이 추락했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지표면.

하지만 서란은 다 계획이 있었다.

요동치는 정토법력에 대지가 호응했다.

대지는 부드럽게 두 사람을 받아 주었다.

낙하의 충격은 장선화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충격을 흡수하면서 속도가 죽었지만 문제 없었다.

이번에는 대지가 두 사람을 힘껏 던졌다.

도약 한 번으로 산봉우리를 뛰어넘는 신기였다.

장선화가 소리쳤다.

“너무 재미있어요!”

어린아이 특유의 맑은 웃음소리.

서란이 속도를 낼수록 장선화는 더 크게 웃었다.

결계 내부가 아이 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저택에 도착했다.

서란은 하녀를 시켜서 장선화의 집에 연락했다.

갑자기 사라진 딸 때문에 걱정하면 안 되니까.

마침내 인형 공방의 문이 열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광물.

전부 지저 세계에서 주문한 인형 재료들이었다.

배달비를 왕창 냈더니 순식간에 배송해 줬다.

장선화가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꿈만 같아요...”

서란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응, 나도.”

인형 공방의 문이 굳게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