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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친구가 많다.
아름다운 외모와 밝은 성격, 사교성 덕분이다.
얼마나 많은지 또래 중 친구가 아닌 사람을 세는 것이 빠를 정도였다.
세상만사가 다 마찬가지지만, 대인 관계 역시 반복적으로 연습할수록 점점 능숙해진다.
방대한 인간관계를 구축한 만인의 친구, 이아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항상 복잡한 관계의 중심에 위치한 덕분에 이아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한 어떤 통찰을 얻었다.
모든 사람은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산다.
가식이나 위선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맺어진 관계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일면을 보여 준다는 뜻이다.
이건 도덕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예시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족과 있을 때는 의젓하게 굴지만, 친구에게는 애교를 부리며 장난을 치는 아이가 있다.
반대로 또래 사이에서는 어른스럽지만, 부모님에게는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도 있다.
그건 이아금도 마찬가지였다.
또래들 사이에서 이아금은 이상적인 친구다.
항상 밝은 표정과 포용력, 그리고 꽤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그리고 끊임없는 경험으로 연마한 일종의 비범함이었다.
하지만 서란 앞에서는 다르다.
울상을 짓고, 금방 토라지고, 아이처럼 칭얼거린다.
이건 이아금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보여주는 일면이 아니었다.
오로지 가족에게만 보여주던 모습이었다.
이아금은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공녀가 되었다.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한 것이다.
당시에는 제대로 울지도 못할 정도로 두려웠었다.
그리고 류서란을 만났다.
같은 나라에서 끌려온 같은 공녀 신분이다.
나이는 이아금보다 세 살이 많았다.
우연인지 둘 다 영근을 지녀 오죽문에 입문했다.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당시의 이아금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서로에게 의존만 하는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덩굴 식물끼리만 있다면 둘 다 자라지 못한다.
누군가는 버팀목이 되어줄 필요가 있었다.
이아금은 오로지 의존했고, 서란은 기꺼이 버팀목을 자처했다.
이아금과 서란은 친구가 아니었다.
이런 관계는 우정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아금에게 서란은 분명 어머니였다.
아니면 나이 차가 많은 언니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아금이 잃어버린 가족이 되어 주었다.
낯선 이국에서 단 둘뿐인 고국 사람이었다.
또래 친구에게 할 수 없는 어리광을 받아 주었다.
가족이 그리워 악몽을 꿀 때 의지할 수 있었다.
덩굴 식물인 나팔꽃처럼, 이아금은 서란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에 비로소 피어났다.
지난 겨울, 오랜만에 만났을 때였다.
서란은 어느새 훌쩍 자란 이아금을 보고 놀랐었다.
하지만 놀란 건 이아금도 마찬가지였다.
언니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았던가.
앳된 얼굴과 왜소한 몸집을 봐라.
끌어안기 위해서 허리를 숙여야할 정도다.
당연히 처음부터였다.
공녀로 실린 마차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때에도 서란은 작고 여렸었다.
머리가 좋은 이아금은 금세 깨달았다.
괜히 성질을 부리다가 맞고 울던 이아금을 달래준 그 순간에도 서란은 이런 얼굴이었다.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또래보다 체구가 작아서 세 살 어린 자신과 비슷하던 소녀다.
고향을 등진 열두 살 아이가 의지하던 상대는 같은 이유로 끌려온 열다섯 살 아이였다.
열 살의 이아금은 자기가 다 컸다고 믿었다.
하지만 열여섯 살의 이아금은 자기가 아직 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열다섯 살은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서란은 기꺼이 이아금을 보듬었다.
마치 자기 덩치만 한 알을 품는 아기 새와 같았다.
덕분에 이아금은 추위를 견디고 부화했다.
이아금이 서란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존중한다는 말을 가볍게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아금이 생각하는 존중이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마음 중 하나였다.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존중의 뜻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다.
연단술사들이 약재 감별 훈련을 제안했을 때, 이아금이 흔쾌히 동의한 이유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 수사, 굉장히 고된 과정일 텐데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는가?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민한 뒤에 결정해도 괜찮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열여섯 봄날, 이아금은 사랑으로 어른이 되었다.
소용녀는 서란의 이층 전각에 머무르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훈련에 할애하기 위해서였다.
일층 수련장에 마주 앉은 둘은 온종일 수련했다.
서란은 소용녀의 가르침을 금방 흡수했다.
닷새째 되는 날, 서란이 말했다.
“자,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같이 놀러가죠.”
당연히 소용녀는 납득하지 못했다.
“뭐라고?! 당장 내년에 결단 의식을 치르는데 놀 시간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서란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그러셔도 안 됩니다. 중요한 원칙입니다.”
단조로운 환경은 편협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축기기 문턱에서 고생하며 얻은 교훈이었다.
그 뒤로 서란은 가능한 한 휴일을 챙겼다.
서란은 소용녀를 끌고 외출했다.
단호한 태도에 소용녀는 직감했다.
자신은 서란의 고집을 절대로 꺾지 못한다.
애초에 상대는 존귀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이유로 용이 될 기회마저 포기한 인간이었다.
그래도 수련 진도는 순조로워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할 거냐.”
서란은 잠시 고민했다.
처음에는 공놀이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소용녀와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늘에 뜬 구름을 보자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특별히 하늘을 날죠.”
소용녀가 의아하게 물었다.
“특별히?”
소용녀는 생애의 절반은 수중에서, 나머지 절반은 하늘에서 보냈다.
용에게 비행이란 삶의 일상적인 부분이었다.
특별히 흥미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긴 인간은 원래 날지 못하지.
소용녀가 스스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다지 재미는 없겠구나.
아쉽게도 소용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서란과 함께 석연화에 탄 순간부터 소용녀는 한시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담청색 용안은 오로지 천공을 응시했다.
여의주를 잃고 날아오르지 못하는 서러움.
용이 된 순간부터 매료된 천공의 아름다움.
승천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으로 점철된 영혼.
소용녀는 분명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향이었다.
담청색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소용녀는 금방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서란도 애써 못 본 척 배려했다.
이후에도 닷새에 하루는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소용녀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건 정말 즐거웠으니까.
봄이 지나고 둘은 조금 더 친밀해졌다.
더운 여름, 휴일이 되자 물놀이를 갔다.
본래 잉어였던 소용녀는 수영을 굉장히 잘했다.
깊고 잔잔한 계곡을 제집처럼 누볐다.
열심히 헤엄을 치던 소용녀를 누가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같이 놀던 서란이 범인이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소용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물은 햇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비단결처럼 일렁이는 수중의 광채 너머로 웃고있는 서란의 갈색눈이 보였다.
소용녀가 발을 홱 뿌리쳤다.
뭔가 간질거려서 그랬다.
가을에는 산맥을 거닐며 단풍 구경을 했다.
소용녀는 서란과 손을 잡고 산길을 걸었다.
아직 혼자서 걷는 것이 미숙했기 때문이었다.
마주 잡은 손은 따듯했다.
겨울이 되자 둘은 한 침대를 쓰기 시작했다.
별다른 의도는 없고 체온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변온 동물인 용에게 겨울은 너무 추웠다.
소용녀는 온기를 느끼며 잠들었다.
굉장히 낯선 느낌이었다.
다시 봄이 되었다.
서란은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고 소용녀도 걷는데 익숙해졌다.
작년 봄에 그랬던 것처럼 둘은 석연화에 올라서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소용녀의 담청색 용안에 담긴 건 더이상 가본 적도 없는 고향, 천공이 아니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비행을 만끽하는 류서란이었다.
자신이 지난 일 년 동안 가르친 제자였다.
시선을 느낀 서란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용녀님?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소용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냥 지평선을 보고 있었다.”
서란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시야 가득 펼쳐진 지평선이 세상을 반분했다.
위쪽에는 흰 뭉게구름이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검처럼 뾰족하게 솟은 산맥과 오죽문의 건물, 그리고 싱그러운 풀밭이 있었다.
소용녀는 하염없이 지평선을 바라봤다.
마음속에 핀 바람이 자꾸만 입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더니 말했다.
“이만 내려 가자꾸나.”
본디 용이란 홀로 완전한 영물이다.
변온 동물인 용에게 인간의 체온은 너무 뜨겁다.
지나치게 탐했다가는 화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소용녀는 번민을 애써 바람에 흘려보냈다.
짧았던 봄도 지나고 결단 의식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도 함께 다가왔다.
올해 여름, 서란은 결단기 수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