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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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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법관 고시는 꽤나 독특한 방식의 시험이었다.

가장 특이한 건, 1차 시험에서 과락만 면하면 무조건 2차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필기 평균이 43점이든 61점이든 마찬가지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합격-불합격 방식의 시험도 존재하니까.

하지만 의아한 부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관 고시는 1차 시험 성적과 2차 시험 성적을 종합해서 합격자를 선발했다.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합격-불합격 방식말고 성적순으로 1차 시험 합격자를 가려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실제로 2차 시험 시기만 되면 도원향 총타는 선계 전역에서 모인 고시생들로 미어터졌다.

공부 대충 하다 과락 맞고 1차 탈락한 허수 외에는 전부 2차 시험 보러 오니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숙박업자들은 행복의 비명을, 행정 관료들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법관 고시가 너무 오래 전에 만들어진 제도라는 게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정식 명칭, 법원 공개채용시험 용족 전형은 올해로 제342회를 맞이했다.

백 년마다 시행된다는 걸 고려하면 무려 34000년 이상 된 낡은 제도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한두 번 개편된 제도가 아니었다.

초창기 법관 고시는 절대평가제였다.

1차, 2차 시험 모두 합격-불합격 방식이었다.

합격 기준은 당연히 선백파흑진군이 결정했다.

선백파흑진군은 굉장히 엄격한 인물이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남에게도 그랬다.

애초에 하늘이 그에게 지어준 등선명 자체가 ‘흰 것을 뽑고 검은 것을 깨뜨리다’라는 의미였다.

선백파흑진군의 무자비한 합격 기준이 법관 고시 응시생들을 난도질했다.

500년 연속으로 합격자가 전무하자, 참다 못한 법관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인력 부족 문제가 너무 심각했던 탓이었다.

결국, 선백파흑진군이 넓은 아량을 보여 주었다.

법관 고시는 정원제로 개편되었다.

1차 시험은 합격-불합격 방식으로 유지하고, 2차 시험 성적순으로 당락을 결정하기로 했다.

대신에 2차 시험 과락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법관들의 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매 시험마다 합격 정원의 1할도 못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선백파흑진군이 문제였다.

지나치게 높은 낙제 기준에 1차 시험 합격자들이 우수수 쓸려 나갔다.

법관 고시 제도의 역사는 곧 개편의 역사였다.

선백파흑진군은 자기만의 기준을 꿋꿋하게 내세우고, 인력 부족에 시달린 법관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도원향의 수많은 제도들 중에서 개편 횟수만 따지면 법관 고시가 압도적으로 1위였다.

수십 수백 번의 개편을 거친 법관 고시는 마침내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도 누더기처럼 기워 붙였더니 원래는 어떻게 생긴 제도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선백파흑진군은 단 하나 만큼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었다.

바로, 실기 시험의 난이도였다.


용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권능이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통하는 건 아니었다.

무력화 결계를 제외하면, 용안의 권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첫 번째 방법.

본인도 용안을 지니고 있으면 된다.

같은 용에게는 용안의 권능이 일절 통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방법.

압도적인 경지에 도달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상호 간에 두 단계 정도의 경지 차이가 존재하면 용안의 권능은 무용지물이 됐다.

그러니 2차 시험장에 은한기 수사를 들여보낸 선백파흑진군의 무자비함은 인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은한기 수사는 구술 담당이었다.

용안의 권능으로 구술 담당이 말하는 내용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실기 시험의 내용이었다.

은한기 수사가 구술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사기 범죄자의 비공개 사건 기록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잘 듣고 진위 여부를 가려주세요. 그러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기 범죄자 ‘갑’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은한기 수사는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사건 기록을 읽어 나갔다.

그는 원본 기록과 2차 시험을 위해 일부 변경한 실기용 기록, 두 개를 모두 숙지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응시자들이 할 일은 간단했다.

구술 담당의 말을 통해 기록의 진위 여부를 가리고, 원본을 유추해 내는 것이었다.

거짓말탐지기 성능 실험과 다를 바 없었다.

은한기 수사의 구술이 계속될수록 응시생들의 얼굴이 점차 흙빛으로 변해 갔다.

두 단계나 되는 경지 차이 때문에 용안의 권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구술 내용의 진위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건 극소수의 응시생뿐이었다.

서란도 그중 하나였다.

“범죄자 ‘갑’은 공범 ‘병’과 함께...”

거짓.

인물 ‘병’은 공범이 아니라 피해자였다.

“수사가 시작되자 공범 ‘을’에게...”

진실.

인물 ‘을’은 범죄자 ‘갑’의 공범이었다.

“범죄자 ‘갑’은 서부 경5 구역’으로 도피...”

거짓.

하지만 정확히 어디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음.

도피처가 경5 구역’이 아닐 수도 있고, 아예 도피에 관한 모든 것이 위증일 수도 있음.

문제를 다 읽은 구술 담당이 시험장에서 나갔다.

서란은 빠르게 답안지를 확인했다.

주관식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만 했다.

새로운 구술 담당이 입장했다.

이번에는 광홍기 수사였다.

난이도로 치면 방금 나간 은한기 수사가 ‘상’, 지금 들어온 사람이 ‘중’이었다.

수많은 구술 담당이 들어왔다 나갔다.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 등 경지도 다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실기 시험이 종료됐다.

응시생들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시험장을 나섰다.


흑단궁 내부의 최고재판소 인사과.

채점 담당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주관식 문제라서 채점하기 곤란한데 응시생 숫자까지 많았다.

기한 안에 전부 끝내려면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인랑족 직원 한 명이 답안지를 들여다보며 연신 중얼거렸다.

“진실, 거짓, 거짓, 거짓, 거짓, 진실, 거짓...”

그녀의 역할은 초벌 채점이었다.

구술 내용의 진위 여부만 확인하면 됐다.

본격적인 채점은 옆에 앉은 동료의 몫이었다.

인랑족 직원은 그야말로 기계처럼 움직였다.

“진실, 거짓, 거짓, 진실, 거짓, 진실, 진실...”

옆에 앉은 동료가 한마디했다.

“조용히 좀 채점하면 큰일나니?”

“이렇게 안 하면 자꾸 헷갈린단 말이야. 아, 어디까지 채점했는지 까먹었다...”

“어휴, 말을 말자.”

인랑족 직원은 다시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진실, 거짓, 거짓, 거짓, 진실, 거짓... 어라?”

“또 왜 그러는데.”

“이 사람, 12번 문제 진위 여부 다 맞았어.”

옆자리 동료가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12번 문제? 그거 구술 담당 준선경 수도자잖아.”

“응, 여태까지 채점하면서 전부 틀렸던 문제.”

“어떻게 다 맞혔지? 찍었는데 운이 좋았나?”

인랑족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 문제, 문항이 50개가 넘는데? 그리고 진위 여부는 틀리기라도 하면 그 즉시 감점이잖아. 그런 걸 모르겠다고 냅다 찍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차라리 빈칸으로 놔두고 말지.”

“맞다, 틀리면 감점이네... 진짜 어떻게 했지?”

“아무리 봐도 실력으로 푼 것 같아.”

옆자리 동료가 말했다.

“그게 말이 되나? 태성기 수사의 용안이 준선경 수사한테 통했다고? 경지 차이만 세 단계잖아.”

“그래도 완전히 통한 건 아닌가 봐. 12번 문제, 진위 여부만 적혀 있고 나머지는 공백이잖아. 자세한 내막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야.”

“좀 아깝다. 진위 여부는 부분 점수 되게 적잖아.”

인랑족 직원이 말했다.

“부분 점수가 어디야. 고시생들, 필기 1점 올려 보겠다고 몇 년씩 고생하는데.”

“하긴, 그것도 그래. 아니, 근데 뭐 이런 문제를 출제하냐? 응시생들 다 틀리는 문제가 무슨 변별력이... 음...”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말문이 막힌 동료 대신 인사과장이 대답했다.

“자네들, 퍽 한가한 모양이야? 이렇게 한담을 다 나누시고. 당연히 채점들은 다 하셨겠지?”

인랑족 직원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도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좀...”

“좀 남으셨다?”

“예...”

인사과장이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러면 빨리 좀 해 줄 수 있겠나?”

“예...!”

“그래, 고맙군. 눈물나게 고마워.”

인사과장이 떠나고, 두 직원은 묵묵히 일했다.

인랑족 직원은 초벌 채점한 답안지를 옆자리 동료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음 답안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옆자리 동료가 숨죽인 소리로 말했다.

“야, 잠깐 이것 좀 봐 봐.”

“뭔데?”

“12번 진위 여부 다 맞힌 아까 그 답안지.”

인랑족 직원은 인사과장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다가 옆자리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답안지에는 믿기지 않는 점수가 적혀 있었다.

실기 성적이 무려 70점이었다.

인랑족 직원은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났다가 인사과장에게 혼났다.


담청은 3차 면접 응시 자격을 얻었다.

최종 성적은 필기 43점, 실기 59점이었다.

평균을 내면 51점, 합격 안정권이었다.

함께 면접장으로 가던 서란이 말했다.

“담청 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점검하겠습니다. 이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면접관이 보이는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십니까! 152번, 담청이라고 합니다!”

“좋습니다, 존댓말 특훈은 성공적이군요.”

담청이 말했다.

“음, 너무 떨리는구나...”

“괜찮아요. 3차 면접은 사실상 요식 행위거든요. 빨가벗고 들어가지만 않으면 합격이에요.”

“그래도...”

서란은 긴장한 담청을 잘 달랬다.

물론 본인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떨어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란의 최종 성적은 필기 61점, 실기 70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