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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은 생각보다 희귀한 능력이다.
수도자들이 수시로 사용하는 영안술과는 다르다.
그건 진짜 영안을 흉내 낸 법술일 뿐이었다.
영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용족의 용안이나 거인족의 천리안, 삼안묘의 세 번째 눈 같은 건 선천적 영안에 속한다.
반면, 운무기 수사의 관천안은 후천적 영안이었다.
영안을 지니고 태어나지 못한 종족의 수도자들은 고위계에 도달하는 순간 관천안을 얻는다.
태생적인 한계를 수행을 통해 초월하는 것이다.
수선의 본질에 대해서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서란의 경우도 비슷했다.
영안 없는 종족,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영물로 거듭나며 관천안을 얻었다.
그런데 잘 닦인 포장도로를 달리던 서란은 갑자기 개척자 정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잉태 의식과 여의주 의식을 모두 치르고 후천적 반인반룡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다.
결국 관천안에 더해 용안까지 얻게 됐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영안끼리도 우열이 존재하는 탓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보다 우월한 용안이 관천안을 말끔히 지워버렸어야만 했다.
하지만 서란은 후천적 반인반룡이라는 유례없는 종족이 되었다.
심지어 체내에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혼원법력과 영성의 별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복수의 영안을 온전히 지닐 수 있었다.
태성기에 막 도달했을 무렵의 서란은 자연스레 궁금증을 느꼈다.
복수의 영안을 지니면 어떻게 되는가?
의문은 천라지망 검색을 통해 손쉽게 해결됐다.
정말 놀랍게도, 선계에는 복수의 영안을 지닌 수도자가 극소수나마 존재했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굉장한 유명인사였다.
도원향의 최고 심판관, 선백파흑진군은 용안과 천리안을 함께 보유하고 있었다.
선백파흑진군은 본래 용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생명체라기보다는 천체에 가까운 규모의 거대한 본체, 그리고 선계 전역으로 도주한 이들을 한 눈에 포착하는 광대한 시야.
전부 거인족이라는 태생에서 비롯된 요소들이었다.
거인족 출신 용, 선백파흑진군이 복수의 영안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천리안과 용안은 모두 희대의 영안이다.
그래서 둘 다 서로를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다.
선계의 수많은 호사가들은 언제나 7대 지선 중 누가 가장 강한지 여부를 두고 입씨름하곤 했다.
하지만 구태여 어떤 진군의 안력이 가장 뛰어난지를 두고 다투지는 않았다.
복수의 영안을 지닌 선백파흑진군이 최고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란의 ‘필기 턱걸이-실기 고득점’ 전략에도 나름의 근거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서란은 자신의 5년짜리 ‘필기 완전 정복’ 강의를 3년짜리 ‘법률 종합 단기’ 강의로 변경했다.
기간이 짧아진 만큼 학습 난이도는 훌쩍 뛰었다.
하지만 담청을 합격시키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서로 다른 강의를 듣는 탓에 서란과 담청의 학습 진행도에 다소간의 괴리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격차는 계속해서 커져 갈 예정이었다.
이로써 서란은 자기가 담청의 과외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서란이 담청에게 말했다.
“단순히 법조문을 암기하는 데서 그치시면 안돼요. 법률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를 이해하고 개별 사건마다 적절하게 적용할 줄 아셔야 합니다. 특히 이 두 사건의 차이점에 대해 유의하세요.”
“내 눈에는 둘 다 똑같은 사건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이냐?”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다르잖아요.”
잠시 후, 열심히 공부하던 담청이 질문했다.
“어찌하여 이 판례에는 방금 전 사건과 전혀 다른 법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냐?”
“그건 예외 사항이라서 그냥 외우셔야 해요.”
“예외가 너무 많구나...”
담청만 머리 깨지는 법률 공부가 시작됐다.
서란의 수험 전략은 확고했다.
담청은 오로지 필기 과목만을 공부했다.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1차 시험에서 과락을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필기 고득점은 바라지도 않았다.
과목 15개가 전부 40점만 넘으면 됐다.
부족한 점수는 실기로 보충하면 그만이었다.
목표가 턱걸이인 만큼, 담청이 공부해야 할 분량은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서 적은 편이었다.
서란은 담청을 가르치면서 변별력 문제가 출제되는 단원들을 모조리 건너뛰어 버렸다.
그런 건 고득점을 노릴 때나 신경 쓰는 거였다.
아침 먹고 오전 강의, 점심 먹고 개인 과외, 저녁 먹고 자유 시간.
담청의 매일은 순조롭게 반복됐다.
그러다가 보름째 되는 날, 유원지에 방문했다.
상청도로 향하던 도중에 담청이 말했다.
“서란, 나만 믿고 따라오거라. 용담에 대해서 나 만큼 빠삭한 용도 드물 테니까.”
“네, 담청 님만 믿을게요.”
“현명한 판단이다. 아, 저기 직원이 오는구나.”
용족 직원이 담청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찾아 주셨군요.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나는 잘 지냈다.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했지. 그것이야말로 수험생의 본분이니까. 아, 여기는 함께 온 친구다. 어린이 입장 팔찌를 하나 다오.”
“어, 음...”
용족 직원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란의 나이가 구분이 안돼서 그러는 것이었다.
뿔의 색깔을 보아하니 반인반룡이라 그런 듯했다.
용족 직원의 고뇌를 해결해 준 건 서란이었다.
“그냥 저도 백금 팔찌로 하나 주세요.”
“아, 그러시겠어요?”
“네, 어차피 보름마다 방문할 건데 매번 새로 발급 받자니 번거로울 것 같네요.”
직원은 반색하며 백금 팔찌를 건네주었다.
백금 팔찌를 나란히 찬 서란과 담청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유원지에 입장했다.
쿵짝쿵짝 흥겨운 가락이 귀를 즐겁게 했다.
담청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청 재미있어 보이지 않느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네요.”
“그치? 용담과 함께라면 수험 생활 6년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게 분명하다.”
서란과 담청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6년 뒤, 두 고시생의 용담 방문 횟수도 어느새 세 자릿수를 돌파한 지 오래였다.
마침내 법관 고시 1차 시험일이 다가왔다.
1차 시험 장소는 도원향 임계 분타였다.
담청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시험 장소인 강당 전체가 용안 무력화 결계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었다.
심지어 강당 안에 배치된 시험 감독관은 응시생의 숫자보다 몇 배나 많았다.
부정행위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시험 감독관 중 하나가 선언했다.
“지금부터 1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담청은 천천히 문제지의 봉인을 뜯었다.
그리고 모의고사에서 연습했던 대로 1번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생각했던 것처럼 많이 떨리지는 않았다.
1번은 전형적인 ‘모두 고르시오’ 문제였다.
열 개의 보기 중에서 옳은 것, 혹은 옳지 않은 것을 모두 고르는 방식이었다.
운에 의지해서는 정답을 맞힐 수 없었다.
다행히 담청도 아는 문제였다.
서란이 빈출 문제라며 거의 노래를 불러 댔었다.
담청은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아냈다.
이후로도 담청은 막힘 없이 문제를 풀었다.
‘아, 이 문제 오늘 아침에 봤어.’
‘이거 헷갈리니까 조심하라고 했었지?’
‘모의고사에서 몇 번 틀렸던 거다.’
담청의 문제 푸는 속도는 느린 편에 속했다.
하지만 시험 시간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40점 턱걸이가 목표이기 때문에 후반부의 초고난도 문항 따위는 거들떠볼 필요조차 없었다.
담청은 마침내 문제 풀이를 모두 끝냈다.
아직도 문제지의 4할이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담청과는 상관없는 문제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적은 답안을 확인했다.
실수한 부분은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담청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시험이 종료되기를 기다렸다.
다른 필기 과목의 경우도 대동소이했다.
총 보름에 걸친 1차 필기 시험이 모두 끝났다.
담청의 필기 평균은 43점이었다.
과락은 하나도 없었다.
법관 고시 2차 시험 장소는 무기 구역 중심지에 위치한 도원향 총타였다.
1차 시험을 통과한 서란과 담청은 전송진을 타고 선계 중부로 날아갔다.
응시생 신분인 덕분에 따로 비용을 지불하거나 줄을 서서 대기할 필요는 없었다.
전송진 관리소를 나서자마자 무엇인가가 보였다.
새까맣고 거대한 정사각뿔 형태의 건물이었다.
저게 바로 도원향 총타, 흑단궁이었다.
담청이 솔직한 감상을 내놨다.
“참으로 못생긴 건물이구나.”
“그러게요, 꼭 석탄 더미 같네요.”
“도원향에는 건축가가 한 명도 없는 것이냐?”
서란이 관광 안내 책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음, 건축 당시에는 나름대로 궁전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오랜 세월 동안 개보수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처럼 변했대요. 극한의 실용성을 추구한 결과인가 봐요.”
“아무리 실용적인 게 좋아도 그렇지, 주변 미관을 혼자서 다 망치고 있지 않느냐.”
“실제로 민원도 엄청 들어온대요. 귓등으로도 안 들어서 그렇지. 참고로 지상으로 드러난 건 극히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전부 땅속에 묻혀 있다네요.”
담청이 지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일대에는 결계가 잔뜩 설치되어 있구나. 혹시 관광 안내 책자에 흑단궁의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나와 있느냐?”
“아뇨, 기밀 사항이라네요.”
“그래? 그거 아쉽구나. 그래도 흑단궁을 제외하면 예쁘고 화려한 건물들이 아주 많구나. 선계의 중심지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아.”
서란이 책자를 넘기며 대답했다.
“확실히 관광 명소도 많네요. 법관 고시 다 끝나고 나서 같이 둘러 보시죠.”
“좋은 생각이다.”
“일단은 예약해 둔 숙소로 갑시다. 2차 시험까지 며칠 안 남았으니 명상이라도 해야죠.”
서란과 담청, 수행원들은 숙소로 이동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담청이 문득 서란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걸 안 물어 봤구나.”
“뭔가요?”
“서란, 네 필기 점수는 몇 점이었느냐?”
서란은 책자를 덮으며 대답했다.
“제 점수요?”
“그래, 표정을 보아하니 괜찮게 본 것 같던데.”
“꽤나 잘 본 편에 속하죠.”
서란의 필기 평균은 61점, 선두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