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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난 담청이 물었다.
“서란, 저 섬이 영백도가 맞느냐?”
“맞아요. 꽤나 큰 섬이죠?”
“눈이 펑펑 내리고 있구나.”
영백도에는 연중 내내 눈이 내린다.
이름 자체도 영원히 하얀 섬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고시생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깨달음의 섬이었다.
일단 영백도에 발을 디디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모든 고시생은 법학에 통달해 법관이 되거나, 스스로의 한계를 절실히 체감해야지만 영백도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담청은 영백도를 유심히 살펴봤다.
섬 변두리에는 거대한 비행장이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착륙하는 범선들로 비행장이 소란스러웠다.
서란 일행이 탄 함선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수행원들은 짐 가방을 챙겨 잽싸게 하선했다.
계2 구역 중심지에서 배를 탄 이후 여태까지 선실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담청은 빈 손으로 털레털레 걷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커다란 선박에서 범인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일 년 내내 눈만 내리는 섬에 범인들이 정착하다니, 정말로 특이한 일이었다.
담청이 서란에게 물었다.
“저 범인들은 왜 영백도에 정착하는 것이냐?”
“정착이라고요? 아, 저 사람들이요? 정착이 아니라 일하러 온 거예요. 아침 일찍 와서 일하다가 밤이 되면 돌아가고 그래요.”
“매일매일 출퇴근 할 정도면 꽤나 가까운 장소에 사는 모양이구나.”
서란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쭉 날아가다 보면 범인들이 많이 사는 섬이 하나 있어요. 일 년 열두 달 날씨가 맑아서 상청도라고 불린대요. 식료품이나 의복, 장작 같은 물자들은 전부 거기서 들여와요.”
“하긴, 영백도에는 풀 한 포기 안 보이는구나.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눈밭이야.”
“우리처럼 수행원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경우에는 범인들을 고용하기도 한대요. 아, 저기에 인력 사무소도 있네요. 저기서 고용하는 건가 봐요.”
그러는 사이에 일행이 타고 온 범선이 떠났다.
참고로 담청은 돌아가는 길을 모른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잠만 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퇴로가 사라진 담청은 초긍정 회로를 가동했다.
서란과 함께 공부하면서 나태해진 마음도 다잡고, 동족 친구도 잔뜩 사귀면 된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담청은 그렇게 생각하며 비행장을 나섰다.
그런 낙관적인 기대는 반나절을 채 못 갔다.
담청은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안되는 건 뭘 어떻게 해도 안되는 거였다.
학원가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산재한 음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한숨, 또 저기서 한숨.
다들 생기 없는 얼굴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가 모의고사 날이었다.
어떤 고시생이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응, 해 봐! 어디 백날 떨어뜨려 봐! 백 년 뒤에 또 응시하면 그만이야!”
담청은 경악했다.
길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놀란 게 아니라, 아무도 그 기행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른 고시생들은 태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 정도는 일상이나 다름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더 황당한 건 따로 있었다.
미치광이처럼 굴던 고시생은 어느 정도 울분이 해소되었는지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했다.
그리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담청이 서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서란, 공부를 꼭 여기서 해야 하는 것이냐? 영영이 보니까 천라지망으로 뭘 공부하던데,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냐?”
“담청 님,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서 공부해야 모의고사도 보고 주관식 문제 첨삭도 받고 그러죠.”
“그래도 분위기가 좀...”
서란이 말했다.
“분위기가 왜요? 매일매일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아찔함, 한정된 자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경쟁자들, 숫자 하나에 갈리는 승패. 벌써부터 막 능률이 오를 것 같지 않습니까? 심지어 여기 모인 고시생들은 전부 용족이잖아요. 영생자들끼리 펼치는 무한 경쟁이라... 후후, 벌써부터 피가 끓어오르네요.”
“전혀 공감이 안되는구나...”
“그러신가요? 뭐, 금방 이해하게 되실 거예요. 육체적 싸움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그 무언가가 있거든요. 아, 행정사무처에 도착했네요. 어서 수강 신청하러 가죠.”
담청은 희희낙락 접수 창구로 달려가는 친구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가뜩이나 향상심이 하늘을 찌르는 서란이었다.
그런데 반인반룡이 된 다음부터는 그런 수행 중독 증상이 한층 더 심화된 것 같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담청은 서란의 목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창구로 향했다.
창구에는 젊은 용족 직원이 앉아 있었다.
여의주를 완성한 태성기 수사는 아니었다.
나이는 대략 2000살 정도로 보였다.
창구 직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안녕하세요, 수강 신청 때문에 오셨을까요?”
서란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혹시 빈자리 있나요?”
“그럼요 그럼요. 빈자리야 항상 있죠. 몇 년짜리 강의로 신청 하시겠어요? 백 년짜리부터 반 년짜리까지 빈틈 없이 구성되어 있거든요.”
“이번 시험부터 바로 응시하려고 하는데 혹시 몇 년짜리 강의가 제일 괜찮을까요?”
창구 직원이 책자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지금 시험일까지 6년 살짝 더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고객님 같은 경우에는 ‘필기 완전 정복’ 강의와 ‘실기 기초 숙달’ 강의를 조합하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둘 다 5년짜리 강의거든요.”
“그 두 개를 같이 들으라는 말씀이시죠?”
“예, 그렇죠. 하나는 오전 강의고 나머지 하나는 오후 강의예요. 그리고 시험일 1년 전부터 ‘실전 대비 종일반’ 강의를 들으시면 딱 6년이거든요. 이거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서란은 강의 설명서를 쭉 훑어보며 질문했다.
“그런데 3차 면접 준비는 따로 안 해도 되나요?”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실전 대비 종일반’ 강의 안에 3차 면접 대비 과정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합격 여부는 사실상 1차 필기와 2차 실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면접 준비는 시험일 1년 전부터만 해도 충분하실 거예요.”
“오오, 괜찮네요. 이걸로 할게요.”
창구 직원이 탁상형 단말기를 조작하며 말했다.
“확인하겠습니다. 5년짜리 강의 ‘필기 완전 정복’과 마찬가지로 5년짜리인 ‘실기 기초 숙달’ 하나씩 맞으시죠? 혹시 1년짜리 ‘실전 대비 종일반’ 강의도 미리 결제하실 의향이 있으실까요? 저희가 지금 행사 중이라서 묶음 신청하시면 특가를 적용해 드리거든요.”
“그래요? 그러면 같이 결제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결제는 할부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일시불로 하시겠어요?”
서란은 소매에서 단말기를 꺼내다가 말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 사람 더 있거든요. 담청 님! 담청 님도 빨리 이거 신청하세요! 묶음 결제하면 할인해 준대요!”
딴생각을 하던 담청이 허둥지둥 다가왔다.
서란이 창구 직원에게 말했다.
“강의 하나씩 더 결제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강의 여섯 개, 일괄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결제는 할부랑 일시불 중에 어떤 걸로 해 드릴까요?”
“일시불로 해 주세요.”
창구 직원이 옥판 하나를 내밀었다.
서란은 단말기를 옥판 위에 가져다 댔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결제가 완료됐다.
창구 직원이 말했다.
“필기와 실기 강의는 열흘 뒤부터 시작됩니다. 수강료 안에 교재비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별도 구매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혹시 따로 궁금하신 점 있으실까요?”
“어... 딱히 없네요. 끝인가요?”
“네, 다 되셨어요.”
서란은 단말기를 소매에 넣으며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담청 님, 가시죠.”
“으, 응? 아, 알겠다. 그대들도 잘 있거라.”
창구 직원도 조건 반사적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서란과 담청은 강의 설명서를 들여다보며 행정사무처를 떠났다.
둘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창구 직원은 옆자리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야, 방금 봤냐? 되게 어리지 않았냐?”
안 그런 척 모든 상황을 지켜봤던 동료가 말했다.
“봤지 봤지. 근데 진짜 뭐냐? 어떻게 그 나이에 태성기지? 암만 많이 쳐줘야 1500살도 안 될 것 같은데?”
“무슨 1500살이야. 딱 봐도 1100살 아니면 1200살 정도겠구만. 아, 부럽다. 무슨 선골일까?”
“흠, 좀 괘씸하네.”
부러움에 몸부림치던 창구 직원이 물었다.
“괘씸해? 뭐가 괘씸해?”
“아니, 2100살인 나도 여태 여의주를 완성 못했는데 1200살에 태성기? 안되지 안돼. 나 이거 못 참아.”
“못 참으면 네가 뭐 어쩌게?”
동료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울분, 상청도로 가서 해소한다.”
“상청도? 언제?”
“바로 오늘 밤...! 너도 같이 갈래?”
창구 직원이 군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 내 몫도 대신 내주는 거야?”
“남자도 아닌 너한테 왜 돈을 써야 하는데?”
“하긴, 그것도 그래.”
창구 직원과 옆자리 동료는 퇴근하자마자 상청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영백도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열흘 뒤, 강의 첫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