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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 의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얼마 뒤, 금영영에게 한 통의 서신이 도착했다.
내일부터 수뇌부 회의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수행 안 할 거면 남들처럼 일이라도 하라는 구박은 아니었다.
요즘 금죽문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수도자와 범인의 공존, 인근 해역의 정찰, 시설 확충, 정보 수집 등 처리할 문제가 태산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의사 결정 기관의 구조적인 개편이었다.
비승 이전, 금죽문의 수뇌부는 이영근 및 삼영근 결단기 수사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영근자는 의결권이 없었고, 사영근자나 오영근자는 결단기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선계였다.
외부 환경이 급변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조직 구조 또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그것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그런 이유로 금영영은 일영근자임에도 수뇌부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일영근자든, 선골 보유자든 본인의 경지가 결단기 수사이기만 하면 예외는 없었다.
당연히 호혜문과 장선화도 회의에 참석했다.
의장의 목소리와 함께 회의가 시작됐다.
“그러면 제32회 수뇌부 조직 구조 개편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접수된 개편안은 총 132개입니다. 그 중에서 자진 철회와 단일화, 폐지된 123개 개편안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9개만 남은 상황입니다. 각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 주세요.”
회의장이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현상 유지안이 가장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결단기에 도달한 모든 수도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하면 되지요. 조직 건전성의 관점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선택입니다.”
“그러면 의사 결정 참여자가 너무 많아지지 않을까요? 자칫 잘못하면 사소한 문제 하나 해결하는데 몇 달씩 걸릴 수도 있습니다. 건전성 측면에서는 물론 좋겠지만 대응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특히 지금은 선계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만 하는 시기입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 과정이 둔해지는 건 치명적입니다. 저는 차라리 수뇌부 총원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발 기준은 뭐죠? 역시 높은 경지인가요? 아니면 연령이나 공헌도, 평판? 또는 다른 무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지가 가장 낫겠군요. 공헌도나 평판처럼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지도 않고, 나이처럼 거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나마 분쟁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러면 이전처럼 경지를 기준으로 수뇌부를 선발하되 결단기보다 높은 경지를 하한선으로 잡아야겠군요. 저위계는 논외로 치는 게 맞겠죠?”
“최소한 운무기부터 시작해야죠. 아니면 구조를 개편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높은 경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될 테니까 적절히 잘 골라야겠죠.”
“기준을 제대로 정했다고 해도 유예 기간이 넉넉히 필요할 겁니다. 기준선을 점진적으로 올리지 않으면 사실상 수뇌부가 일시에 마비되는 셈...”
금영영은 필사적으로 하품을 참았다.
따듯한 날씨, 어려운 말을 주고받는 차분한 목소리들, 밤샘 익명 토론으로 누적된 피로.
결국 금영영은 고뇌하는 자세를 취한 채 꿀잠을 자기 시작했다.
장선화는 두 발 달린 짐승보다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반듯한 자세와는 달리, 머릿속은 논제와 무관한 딴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서란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글방 최고의 모범생이었었다.
호혜문은 성실하게 논의에 참여했다.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간간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금죽문의 미래가 참 밝았다.
의장이 회의를 잠시 중단했다.
“잠시 휴식하겠습니다.”
호혜문은 그 짧은 휴식 시간조차 무의미하게 그냥 흘려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관련 통계 자료를 훑어보는데 사용했다.
도원향에서 직접 발행한 ‘선계경지통계백서’라는 이름의 두꺼운 서적이었다.
목차를 보니, 영근 및 선골 자질별 실질 도달 가능 한계 경지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사영근자와 오영근자는 대개 원영기가 한계였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530세, 790세가 되면 원영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근이 너무 많은 탓에 오채지심 수행 도중 수명이 다하기 일쑤였다.
영근 조화 난이도는 다른 영근, 즉 장애물의 개수와 연관이 깊기 때문이었다.
이영근, 삼영근일 때는 별 차이가 없지만 사영근, 오영근일 때는 확연히 어려워졌다.
연구에 따르면 사영근자와 오영근자의 오채지심 소요 기간은 각각 1620년, 2160년으로 추정되곤 했다.
반면에 일영근자, 이영근자, 삼영근자의 평균 오채지심 수행 기간은 1260년으로 동일했다.
구간별 수행 기간은 180년, 180년, 360년, 540년 정도였다.
대략 1:1:2:3의 비율이었다.
단, 어디까지 범골 기준이었다.
호혜문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몹시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휴식 시간이 끝나 버렸다.
잠시 중단되었던 회의가 재개됐다.
호혜문은 읽고 있던 선계경지통계백서를 덮었다.
몇 년 뒤, 흰 연기로 가득 찬 좁은 밀실 내부.
“음...”
지니어스 드래곤 담청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왼쪽 머리를 긁적였다.
요즘 들어 왼쪽 뿔 부근이 간지러울 때가 많았다.
함께 법보 한증막을 즐기던 서란이 물었다.
“담청 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세요?”
“음, 그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서란이 팔꿈치로 담청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담청이 이히히 하고 웃었다.
서란의 얼굴에도 괜스레 웃음꽃이 피었다.
결국 담청이 입을 열었다.
“실은 독안룡과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독안룡은 갑자기 왜요?”
“그, 왜... 독안룡은 여의주를 세 개나 가지고 있었지 않느냐, 천겁을 견디고 억지로 승천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를 공격했던 거고.”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담청 님의 여의주를 노리고 달려들었었죠.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담청 님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 정말 강한 상대였지... 그런데 서란 네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때 독안룡이 노린 건 내 여의주가 아니었었다. 네 원영과 금단이었지.”
“예? 제 원영과 금단을 어디에 쓴다고요?”
담청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근거 없는 직감이지만, 너의 원영과 금단으로 인공 여의주로 만들 작정이었던 건 아닐까 싶구나.”
“인공 여의주?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글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여의주도 따지고 보면 용의 내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 수도자의 금단이라고 여의주가 되지 말란 법 없지. 실제로 서란 너한테는 용이 될 기회도 있었고.”
서란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담청이 아직 소용녀였을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여의주를 돌려주겠다던 서란에게 담청은 용이 될 기회를, 영생을 마다하겠느냐고 물었었다.
서란이 말했다.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요? 하지만 그건 담청 님의 여의주 때문이었잖아요. 여의주도 없이 인간이 어떻게 용이 되나요?”
“그렇게 따지면 나는 본래 잉어였다. 전대 용신과 독안룡 또한 날 때부터 용이었던 건 아닐 테지. 둘 다 선계 태생이 아니니까.”
“음,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러네요.”
담청이 본론을 꺼냈다.
“아무튼, 진짜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따로 있다.”
“따로 있다고요? 그게 뭔가요?”
“서란, 지금이라도 용이 되지 않겠느냐?”
상상도 못한 용건이었다.
운무기(화신기) 수사는 잉태 의식을 통해서 다음 경지인 태성기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에 용족은 여의주 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여의주를 완성하고 태성기에 도달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여정을 거쳐 온 인간과 용족은 태성기를 기점으로 경지 체계를 공유한다.
인간 수도자는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를 거쳐서 준선경 수도자가 된다.
용족 수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담청의 천재적인 발상은 바로 그 지점, 인간과 용족이 태성기부터는 같은 단계를 밟아 나간다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서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보고 잉태 의식 대신 여의주 의식을 치러서 태성기에 도달하라고요?”
“그렇게 하면 너도 용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종족이라는 게 그렇게 휙휙 바뀌는 건가요?”
담청은 본격적으로 설득에 나섰다.
“시도만 한번 해 보거라.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지 않겠느냐.”
“아니, 그랬다가 덜컥 용이 되면 어쩌고요?”
“그러면 더 좋지. 서란, 잘 생각해 보거라. 용이 되면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영생은 기본이고 뇌영근도 생길 테지. 아참, 비승하기 전에 내가 말해주지 않았던가? 삼라만상을 들여다보는 용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권능 또한 존재한다고. 어떠냐, 갑자기 막 용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느냐? 응? 응?”
결국, 서란은 부탁에 못 이겨 등백월을 찾아갔다.
담청은 자기 계획을 등백월에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등백월은 고민에 잠겼다.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등백월이 말했다.
“굳이 의식을 하나만 치를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둘 다 해 버리죠.”
서란은 깜짝 놀랐다.
졸지에 반인반룡이 되게 생긴 탓이었다.
참고로 담청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비승 23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