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229672/96.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5 KiB
Raw Blame History

어둠 속에서 별자리가 빛났다.

허나 별자리는 저 드넓은 밤하늘에 걸려 있지 않았다. 땅에 발을 디디고 선 어느 검사의 칼끝에 매달려 빛을 내고 있을 뿐. 인간의 칼끝에서 빛나는 별자리는 고요했으며 또 찬연했다.

검의 구도자, 나진.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나진은 검을 들어 올렸다. 칼끝을 따라 별자리가 움직였으며, 그 칼끝이 멈춘 곳에는 나진의 적수가 있다.

“···하.”

제게 겨누어진 칼끝을 바라본 제롤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상대이지 않은가. 조금 전 그가 느꼈던 찝찝함은 온데간데 없다. 저자가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순간부터 약자와 강자라는 구분은 무의미했다.

“클라우스.”

제롤드가 입을 열었다.

그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네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첫 일격은 내가 가져가도록 하지. 이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거 아쉽군. 똑같은 말을 하려 했는데.”

선수를 빼앗겼으니 어쩔 수 없지.

그리 말하며 클라우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제롤드는 도리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차례를 정해 도전하겠다는 듯한 모습. 이는 머릿수의 이점을 지우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이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소드 시커급의 강자는 걸어 다니는 하나의 군대와도 같다. 한 명이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 분의 일을 해내니 썩 틀린 비유는 아니리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만한 강자의 움직임에는 제약이 따른다.

검을 휘둘러 거목을 쪼개고, 일대를 난도질하며,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주변을 휩쓰는 것이 소드 시커급의 강자들이다.

미리 합을 맞추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함께 전장에 서지 않았다면···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는 일도 다분히 일어나곤 한다. 동시에 돌격했다간 서로의 검기와 오러에 아군이 휩쓸릴 게 뻔하니까.

그렇기에 어느 정도 자제해왔다.

클라우스도 제롤드도 마찬가지다.

전력을 다해 제 모든 것을 맞부딪치려 했다간 아군이 휩쓸릴 테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될 게 뻔하며, 수의 이점이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수의 이점은 무의미하다.

어중간하게 덤볐다간 박살 날 뿐이다. 길어질 대로 길어진 전투이며,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충분히 강력한 일격(一擊)일 것이다······.

“아니, 아니지.”

제롤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협동해서 공격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힘을 적당히 배분해서, 둘러싼다면 어쩌면 조금은 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하고 싶지 않았다.

우화(羽化)를 마친 검사. 칼끝에 별자리를 피워낸 저자는 분명히 말했다. 이는 명예로운 결투라고. 비록 지금의 제롤드에겐 명예를 외칠 자격도, 긍지를 품을 권리도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일격만큼은.

마지막 한합만큼은.

저자가 선언한 명예로운 결투에 어울리는 일격을 주고받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제 목숨이 달리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리하고 싶었다.

제롤드도 클라우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미련하다. 미련하지만.

나진의 선언으로 하여금 이것은 습격도, 암습도, 전쟁도 아닌 단지 결투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울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한때는 기사였던 자신들이 지켜야 할 도리이지 않겠는가.

제롤드가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어느 때보다 강맹한 검기를 뽑아냈다.

땅에 강하게 내디딘 오른발. 비스듬히 지탱한 왼발. 갈무리된 호흡. 그리하여 완성된 것은 그가 자랑하는 파쇄검(破碎劍)을 펼치기 위한 자세다. 숱한 악마와 악마 계약자를 깨부쉈던 검술.

비록 눈앞의 검사는 악마가 아니며.

사악하지도, 사이하지도 않다고 한들.

전력을 다해 부딪쳐야 할 상대였으므로.

대화는 필요 없었다. 제롤드가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쿵, 쿠웅 하고 뒤흔들렸다. 마치 한 마리의 황소가 돌격하듯이 그가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나무가 쪼개지고 파편이 흩뿌려졌다.

파쇄(破碎).

닿는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며 제롤드는 나진을 향해 질주한다. 그리고 나진은 검을 늘어트린 채 제롤드를 기다리고 있다. 물러서지도, 회피하지도 않겠다는 듯이. 얼마든지 와보라는 것처럼.

제롤드의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얼마나 긍지 높은 검사란 말인가. 이 와중에도 물러서는 법이 없다! 전력을 다한 일격을 정면에서 받아내 보겠노라고 외치고 있다! 이 시대에는 멸종하고 만 순수를 간직한 검사에게 제롤드는 감사함마저 느꼈다.

그리고, 격돌.

마지막 한 걸음을 제롤드가 내디디는 순간 땅이 쩌억, 하고 갈라졌다. 돌진의 무게가 그대로 실린 대검을 제롤드가 휘둘렀다. 검기에 담긴 심상은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며 돌진하는 황소.

쩌억, 쿵, 쿠웅······.

검이 완전한 궤적을 그리지 않았음에도 일대의 나무들이 쪼개졌다. 밀려드는 풍압에 흙먼지가 솟구쳤으며 공기가 요동쳤다. 그 모든 것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나진의 옷이 풍압에 흔들렸다. 살갗이 갈라져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진은 물러서지 않는다.

밀려드는 제롤드의 대검을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대검과 롱소드의 격돌. 본래대로라면 대검이 롱소드를 으깨고, 롱소드를 쥔 나진마저 짓뭉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드 시커급의 싸움에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법이다.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검기와 검기가 서로를 물어뜯는다.

나진의 검에 휘감긴 별자리는 제롤드의 검기를 온전히 받아냈으며,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밀어낸다. 점멸하는 별자리가 ‘티디디딕! 하고 새하얀 빛을 흩뿌렸다.

잠깐의 정적. 잠깐의 교착 상태.

체감상으론 수십 초지만 제삼자의 시선에선 고작 1초 남짓에 불과한 시간. 그리고, 균형은 깨진다. 나진이 이를 악물었다. 무게에 짓눌려 굽혀질 뻔한 무릎을 펴며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곤 서걱.

멈춰져 있던 나진의 검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간 검은 검기를 베었고, 대검을 베었으며, 제롤드가 펼친 기술을 양단했다. 먼저 검이 휘둘러지고 그 뒤를 따라 별자리가 흐드러졌다.

검의 궤적을 따라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빛.

그 빛은 검기의 집합체다. 제 눈앞에서 점멸하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제롤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완벽한 일격이었으며 자신의 패배였다. 직후, 검기가 만들어낸 반발력이 제롤드의 몸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땅을 쪼개며 내디뎠던 발걸음이 무색하게도 제롤드의 발이 공중에 떴다. 그대로 검기의 반발력에 휩쓸린 제롤드가 튕겨 나갔다. 한참을 날아간 제롤드는 거목 몇그루를 박살 내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피를 게워 내며 제롤드는 쓰러졌다.

나진이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검을 휘감은 별자리는 빛을 잃지 않았다. 아직 쓰러트려야 할 상대가 남아있기에. 고개를 든 나진이 제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지막 적수가 서 있었다.

클라우스 아텐.

프롤레아 왕국의 다섯 번째 날개.

최후의 푸른 날개 기병이 나진의 앞에 서 있었다.

“거참, 저리 시원스레 날아갈 친구가 아닌데.”

클라우스가 쓰게 웃었다.

그는 땅에 꽂아둔 창을 뽑아 들었다. 이 상황에 클라우스는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 소년은 이제 막 우화(羽化)를 경험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우화, 번데기를 부수고 나오는 행위.

숱한 이들이 우화 직후에는 재구성된 검기와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클라우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눈앞의 저 검사는 어떠한가?

‘이미 소드 시커에 수년은 머물렀다는 듯이, 자연스레 검기를 다루고 있다.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교단이 알려준 저 청년의 나이는 분명 18살이었을 텐데.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불세출의 천재, 그런 단어로는 표현되지 못할 무언가가 저 소년에게 있었다.

“어쩌면, 영광이겠군.”

클라우스가 숨을 내뱉었다.

머지않은 날 정점에 오를 소년. 그런 인물의 검을 받아낸다는 것은 영광이라 여길만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클라우스는 웃고 말았다.

결투, 이 얼마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울림인가.

결국에 일대일로 맞부딪치는 상황이 다가온 지금 클라우스는 웃었다. 오물로 얼룩진 제 인생의 최후가 이러한 결투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이 싸움에서 승리하던 패배하던 클라우스는 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명예와 긍지 모두 잃은 기사는 살아 숨 쉬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푸른 날개 기병의 최후는 처형이 아닌 자결로 마침표를 찍어야 했으므로.

제 동료를 모두 잃었던 4년 전 그날부터 클라우스 아텐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제 죽음은 동료의 명예를 회복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없이 뒤로 유예해 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가왔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망자의 생에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왔다. 영광스럽게도, 그 마침표를 찍어줄 인물은 긍지 높은 검사다. 제 전력을 다해 맞부딪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상대. 제롤드가 왜 웃음을 터뜨렸는지 클라우스는 진정으로 이해했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진.”

“클라우스 아텐.”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클라우스가 창을 들어 올리곤 자세를 낮추었다. 당장에라도 나진에게 튀어 나갈 것처럼 그 무게중심은 앞으로 쏠려 있었다.

“가겠다.”

“오십시오.”

클라우스의 몸 위로 오러가 피어올랐다. 휘몰아치는 오러는 창끝에 휘감겼다. 소용돌이치는 오러에 닿은 나뭇가지가 흔적도 없이 바스러졌다.

나진의 검 위로 별자리가 모여들었다. 길게 늘어져 있던 별자리가 롱소드를 휘감았다. 점멸하는 별자리에 휘감긴 롱소드는 마치 별의 검을 연상케 한다.

클라우스도 나진도 저마다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클라우스 아텐은 달린다.

그에겐 깃발이 없다. 왕국의 다섯 번째 날개임을 증명하는 영광을 더는 새길 수 없으므로.

그에겐 말이 없다. 제 동료들이 진창에 파묻힌 그날 그의 애마 역시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에겐 동료 역시 없다. 푸른 날개 기병은 전멸했으니. 명예도 긍지도 없는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럼에도 클라우스 아텐은 달린다.

깃발이 없어도 된다. 동료들과 함께 달렸던 기억이 제 심상에 담겨있으므로. 군마가 없어도 괜찮다. 두 다리로 땅을 박차면 되니까. 동료가 없어도 좋다. 여전히, 클라우스 아텐은 푸른 날개 기병이었다.

한낱 패전한 지휘관.

명예도 긍지도 잃은 기사.

클라우스 아텐은 달린다.

제 동료들의 명예를 바라기에 그는 질주했다. 두 눈을 뜨고 있음에도 그는 제 심상을 보았다. 드넓은 초원을 내달리는 기병들. 아아, 그들은 푸른 날개의 문양을 새긴 채 전장을 질주하고 있다.

그 선두에 자신이 서 있다.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동료들의 우렁찬 포효소리가 메아리친다. 클라우스는 더 속도를 올렸다. 용맹한 푸른 날개 기병이라면, 제 동료들이라면 얼마든지 따라와 줄 것이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 달리자.

가속, 그리고 또 가속.

클라우스 아텐은 자신이 꿰뚫어야 할 적을 바라봤다. 긍지 높은 검사를 보았다. 그자 역시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정면에서, 우직하게, 정직하게 자신의 창을 박살 내고자.

해봐라. 얼마든지.

속도를 더욱 올렸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클라우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오직 나진만을 바라본다. 그가 휘두르려는 검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클라우스는 알아차렸다.

지금 나진이 선보이려는 기술을.

저 기술을 클라우스는 안다.

기사 중의 기사, 아탕가의 기사들의 기술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저 소년은 아탕가의 기사의 종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던가? 그러한가. 명예도 긍지도 잃은 자신의 최후를 결정짓는 것은 아탕가의 검인가. 그래,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최후다.

그러나 곧이어 클라우스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 아니었다.

기사를 처단하기 위해 휘두르는 아탕가의 검은 저렇게 돌격해 오지 않는다. 저런 식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는다. 저것은 처단을 위한 검이 아니다.

당신을 적수로 인정한다는 뜻.

전력을 다해 깨부술 가치가 당신에겐 있다는 뜻을 내포한 검. 그 사실에 클라우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응해주마.

왕국의 다섯 번째 날개, 푸른 날개 기병의 지휘관이자 선봉장 클라우스 아텐은 창을 내질렀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종자 나진은 검을 휘둘렀다.

창과 칼이 교차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이 결투에 개입되지 않았다. 배경도, 소속도, 교단도, 그 모든 것이 한없이 무의미해졌다. 그저 한 명의 기병과 한 명의 검사는 서로를 향해 전력을 다한 일격(一擊)을 내질렀다.

결투의 승패를 가리고자.

승리를 쟁취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