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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6 KiB
Raw Blame History

이른 아침, 나진은 이반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반이 호출한 까닭이었는데, 정작 집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깥에 경비를 서는 조직원에게 물어봐도 이반은 어디 나간 적이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진이 이반의 집무실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집무실의 한구석에 놓인 서재를 발끝으로 콱, 하고 걷어찼다.

드르륵···.

서재가 옆으로 밀렸다. 서재가 밀리며 드러난 것은 건물의 지하로 향하는 통로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라면 막아두었을 지하실의 입구가 오늘은 열려 있었다.

‘들어 오라는 것 같긴 한데.

나진이 제 뒷목을 긁적였다.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나오는 것은 넓은 공터. 이반이 자신의 검기를 가다듬을 때 쓰는 수련장이다.

그리고, 그곳은 이반이 나진을 가르쳤던 훈련장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나진은 종종 지하실로 불려 가 이반에게 교육을 받곤 했으니까.

“······.”

나진이 말없이 제 어깻죽지를 매만졌다.

어깨에 길게 새겨진 흉터가 욱신거렸다. 이반이 자신을 이곳으로 부르는 이유는 하나 뿐일텐데.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진은 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한참을 계단을 내려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역시나 그곳엔 이반이 서 있었다.

“왔냐.”

“무슨 일이래요. 지하실로 다 부르고.”

“무슨 일이긴. 부를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데.”

이반이 무언갈 던졌다. 댕그랑, 소리를 내며 제 발치에 떨어진 것을 나진은 보았다. 그건 한 자루의 검이었다. 그것도 제법 날이 서 있는 철검.

“들어라. 오랜만에 실력 좀 보자.”

“···철검으로요?”

“그야 나도 철검 쓸 거니까.”

이반이 빙글 손목을 돌렸다.

그 손에 들린 것은 이반이 평소에 쓰던 검은 아니었고, 나진이 손에 든 것과 같은 평범한 철검이었다. 그러나 살을 찢고 뼈를 가르기엔 충분한 날붙이다.

언제나 목검을 들고 가르치던 것과는 달리, 오늘 이반은 철검을 손에 들었다. 나진은 괜스레 마른침을 삼켰다.

‘이반과 마지막으로 대련한 게 언제였지?

대련이라기보단 교육이었고, 교육이라기보단 몽둥이찜질에 가까웠지만··· 그마저도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나진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난 이후로는 ‘교육’을 받을 일은 없었으니까.

“나진.”

그렇게 나진이 잡다한 것들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다. 이반의 목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집중해라.”

서늘하고도 섬뜩한 목소리.

직후 이반이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들이마신 숨을 이반이 내뱉은 순간,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바닥에 떨어진 검을 낚아채며 나진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직감이 경고했으니까.

당장 거리를 벌리라고.

한 번의 호흡을 갈무리하며 이반이 눈을 가늘게 뜬 순간, 지하실의 공기가 한순간 무거워졌다. 단순한 착각은 아니었다. 나진은 누군가 제 어깨를 꾸욱 짓누르는 것만 같은 기이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스릉.

이반이 천천히 검을 늘어트렸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검날이 나진을 겨누었다. 서늘한 칼날을 마주한 순간 나진은 직감했다. 죽을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제 어깻죽지에 새겨진 것과 같은 흉터가 오늘 하나 더 늘어날 것이라고.

이반과의 대련이 나진은 달갑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에라도 오늘은 별로 몸이 안 좋다며 핑계를 대며 지하실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으니까.

학습된 공포였고, 동시에 몸에 새겨진 흉터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진은 이반에게 싸우는 방법과 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종종 대련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반은 가혹할 정도로 나진을 찍어 눌렀다.

뼈를 부러트렸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팼으며, 기절하면 물을 부어 억지로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반은 살아남기 위한 지식을 나진의 몸에 강제로 체득시켰다.

‘도움이 되긴 하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머리가 클 만큼 큰 나진은 이제는 알았다. 그것이 순수하게 가르침을 주려는 의도만은 아니었단 사실을.

그건 가르침인 동시에, 이반이 건네는 일종의 위협이자 경고이기도 했다.

네 재능을 과신하지 마라. 네 위에는 내가 있다. 결코 선을 넘지 마라. 내가 지어준 울타리를 넘으려 하지 마라. 난 언제든 널 짓밟고 꺾어버릴 수 있다. 그런 뜻을 담은 경고.

「나진.」

「큰 꿈을 꾸지 마라. 비참해질 뿐이니까.」

나진이 윗동네에 큰 관심을 가지고 꿈을 꾸던 열다섯 살 무렵, 이반은 대련에서 나진의 어깻죽지에 길게 흉터를 남겼다. 그건 명백한 경고였다. 주제넘은 꿈을 꾸지 말라는 경고.

그 경고를 나진은 알아들었고, 이반이 그어둔 선을 결코 넘는 일 없이 잘 지내왔다. 그 뒤로 이반도 나진에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고 대련을 하자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채찍은 충분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런데.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내가 뭘 잘못했나? 나진은 최근 자신의 행보를 되돌아봤다. 이반의 사냥개로서 역할에 충실했으며 선을 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일탈이라 해봐야 광장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구경하는 일뿐이었는데.

‘그건 이반이 허락했잖아.

그럼 이유가 뭐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없었지만, 지금부터 자신이 뭘 해야 할지는 알았다.

쿵.

나진이 땅에 발을 내려찍었다.

상대가 어떻게 들어오던 곧장 반응할 수 있게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그런 나진을 똑바로 노려보며 이반이 칼끝을 까딱였다.

“안 오냐?”

나진은 대답 대신 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이반은 더 질문을 던지는 대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무게를 실은 발걸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진과의 거리가 세걸음 안팎으로 줄어들었을 때.

쿠웅.

이반이 걸음에 무게를 실었다. 발을 땅에 깊게 파묻으며 이반이 검을 휘둘렀다. 걸음에 실린 무게가 검날에 더해져 한순간 칼날이 가속했다.

카아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나진은 이를 악물었다. 땅에 내디딘 발에 분명 힘을 주었을 텐데 수평으로 휘둘러진 이반의 검을 받아친 순간 발이 쭉 미끄러졌다. 검을 쥔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거대한 무언가 찍어 누르는 듯한 무게감. 어렸을 때야 저 일격에 곧장 검을 놓치고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진은 이를 악물고 검을 비틀었다.

카, 가가가각!

비스듬히 세운 검날을 따라 무게를 흘려보내는 기본적인 검술. 그러나, 검을 비스듬히 세운 순간 나진은 깨달았다.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이반은 기사이며 소드 엑스퍼트다.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우고, 실전을 통해 자신만의 검을 완성시킨 실력자. 애초에 그 기술을 나진에게 알려준 것이 이반이다. 당연하게도, 검을 흘리는 기술 따위가 먹힐 리가 없다.

빙글.

이반이 손목을 비틀었다. 비스듬히 세운 검날을 따라 미끄러진 이반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탁, 하고 칼자루와 칼자루가 맞물린 순간 이반의 검이 나진의 검을 휘감았다.

눈으로 보고도 나진은 한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피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직감적으로 깨닫곤 나진이 고개를 숙였다. 나진의 머리 위로 철검이 스쳐 지나갔고, 나진이 곧장 자세를 정비하려는 순간···.

쩌억.

“커윽!”

이반이 발로 나진의 배를 걷어찼다.

마나로 강화된 육체. 강화된 각력. 마치 몽둥이로 배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나진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나, 엎어져서 쉬고 있을 틈은 없다.

곧장 몸을 퉁기듯이 일어난 나진이 밀려드는 이반의 검을 받아쳤다. 검을 받아칠 때마다 검을 쥔 어깨와 손아귀가 비명을 질렀다.

‘숨을, 고를 틈도, 안 주고···.

배를 걷어차여 호흡이 흐트러졌다.

나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반의 검을 받아쳤다. 이반의 검만이 아닌 발까지 신경 써야 했기에 나진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눈동자는 여유롭게 이반의 움직임을 쫓으나.

나진의 몸은 이반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공격을 알고도 얻어맞아야 했으며, 파훼법이 보이는 기술도 몸이 따라주질 않아 번번이 받아치며 밀려나야만 했다. 그 순간순간에 나진은 짜증을 느꼈다.

‘마나, 마나, 마나.

저 빌어쳐먹을 마나.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진은 부러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결코 이반은 나진에게 마나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나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이반을 흉내 내는 것뿐. 눈을 부릅뜬 나진은 이반의 호흡을 흉내 내며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몸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무언가 제 등을 떠밀어 주는 듯한 느낌. 처음으로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몸이 움직여 줬다. 검이 맞부딪친 순간 이반의 검이 처음으로 밀려났다.

“······.”

그 순간 이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던 이반의 팔이 마치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리곤, 쾅. 마치 화살이 쏘아지듯이 휘둘러진 검이 나진의 검을 후려쳤다.

“윽···!”

검을 받아친 순간 나진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미끄러지듯이 뒤로 밀려난 나진이 고개를 휙 들었다. 그러나 나진의 예상과는 달리 이반은 곧장 나진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검을 들어 올리고 있을 뿐.

그것은 공격을 위한 자세가 아니다.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한 자세. 외눈의 이반이 자신의 비어버린 눈동자를 들어 올린 검날로 가렸다. 그 모습은 흡사 영웅담 속의 기사들이 행하는 검례(劍禮)와도 같았다.

그리고, 나진은 보았다.

파스슷······.

이반이 들어 올린 검날에서 고요하게 솟구치는 싯푸른 기운을, 그가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강자임을 증거하는 검기(劍氣)를 나진은 보았다. 검기를 두른 순간부터 이반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조잡한 철검 따위가 아니다.

오직 외눈의 이반만이 쥘 수 있는.

오직 그만을 위한 특별한 검이었다.

검기의 아름다움에 나진은 잠시나마 시선을 빼앗겼으나, 느긋하게 검기를 감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곤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이반. 잠깐만요.”

나진이 식겁하며 물러섰다.

“검기를 뽑는 건 이상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니에요?”

이상했다. 대련한 적은 많았지만, 이반이 검기까지 뽑아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진이 검기를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검기는 오직 검기로만 상대할 수 있다.

평범한 철검으로 검기를 받아내는 순간, 철검과 함께 검을 쥔 이의 몸도 한 번에 잘려버릴 테니까. 당황한 나진이 뒷걸음질쳤지만 이반은 말없이 나진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곤, 쾅.

이반이 땅을 박차고 나진에게 달려들었다. 싯푸른 검기를 품은 철검이 빛의 꼬리를 그리며 나진을 덮쳤다.

“···윽!”

나진이 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평범한 철검으로 검기를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검기를 두른 이반의 검이 나진의 검과 맞부딪친 순간, 나진은 똑똑히 보았다.

카각.

자신의 검이 잘려 나가는 모습을.

검기의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칼날이 우그러진다. 손에 쥔 검이 거칠게 요동쳤다. 철검을 절삭하며 이반의 검이 밀려들었다. 그 모든 풍경이 나진의 눈동자에는 느릿하게 보였다.

카가가각···.

검을 잘라내며 밀려드는 검날. 싯푸르게 번뜩이는 검기. 나진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죽는다.

나진은 죽음을 직감했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나진의 온 신경이 곤두섰다. 1초가 잘게 쪼개진 듯한 기이한 감각 속에서 나진의 몸이 움직였다. 정체 모를 힘이 나진의 몸을 떠밀었다.

그리고, 그 힘은 이제 몸만을 떠밀지 않았다.

번쩍.

절반쯤 잘려 나간 나진의 검이 점멸했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나진의 검에 빛이 깃들었다. 이반의 강맹한 검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아직 갈무리되지 못한 날것의 기운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분명한 검기의 편린이었다.

소년이 가져선 안 될 빛.

이런 지하도시에 묻혀 있어선 안 될 광채.

나진의 검에 깃든 광채를 마주한 순간 이반의 눈이 부릅뜨였다. 그의 입가가 크게 경련했다.

직후 검기와 검기가 충돌했다.

카아아아아아아앙!

거친 소리와 함께 나진의 검이 이반의 검을 밀어냈다. 허나 완전히 검을 밀어내기 전에 챙강, 소리를 내며 나진의 검이 부러졌다. 부러진 것은 나진의 검만이 아니었다. 이반의 검 역시 박살 났다.

두 자루의 검이 모두 부러졌다.

애당초 검기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검이 아니었다. 검기를 뽑아낸 순간부터, 그리고 검기를 받아낸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던 두 자루의 철검은 끝내 수명을 다했다.

댕그랑.

부러진 칼날이 땅에 떨어졌다. 직후 다리에 힘이 풀린 나진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욱, 헉, 허억···!”

나진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무언가 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감각에 나진의 숨이 거칠어졌다.

후두둑.

코에서 흐른 핏물이 땅에 떨어졌다. 밀려오는 두통과 탈력감 속에서 나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반이 있었다.

“······.”

이반은 말없이 나진을, 이어서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보았다. 부러진 검, 검기와 검기의 충돌이 만들어 낸 결과. 이윽고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난놈이야.”

이반은 빛을 보았다. 소년이 가진 광채 앞에 이반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광채를 마주한 순간 깨달았으므로. 깨닫고 말았으므로.

‘환장하겠군.

저건, 감히 자신과 같은 이가 묻어버려선 안 될 종류의 빛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