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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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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

캄브리아로 향하는 마차 내에서 나진은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나른하게 내리쬐는 햇살. 가을이 지나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라 그런지 각양각색으로 물든 낙엽이 거리에는 가득했다.

‘저게 낙엽입니까?

-응? 그게 무슨··· 아.

나진의 중얼거림. 그 뜻을 뒤늦게 이해한 멀린은 말끝을 흐렸다. 지하도시 아트만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나진이 가을을 경험했을 리가 없으며, 낙엽을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나진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하여간 새로운 것들뿐이다.

무언가에 익숙해졌노라 생각하면 또 새로운 것이 튀어나온다. 푸른 하늘도, 들판의 푸르름도, 알록달록한 낙엽들도··· 지하 도시에선 보지 못했던 색(色)으로 지상은 물들어있다.

신기했고 또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풍경에 소년의 눈동자가 물들기를 잠시, 나진의 눈동자에 차가운 노을이 담겼다. 노을빛으로 물든 눈동자는 가늘어졌다. 확실히, 바깥세상을 노 다니는 게 즐겁기는 한 모양이지.

‘그리 방심할 만큼 말야.

카프만과의 전투. 그가 자신을 급습하던 상황을 나진은 떠올렸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그 자리에서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허나, 동시에 나진은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 풀어져 있었노라고.

제게 추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어디에서 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낯선 것들에 익숙해지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이반이 지켜보고 있었다면 분명 혀를 찼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애당초 경계를 풀어선 안 됐다. 지하도시를 처음 나왔을 때 가지고 있던 경계심이 크게 희석됐음을 나진은 직감했다.

‘우스운 일이네요.

나진이 쓰게 웃었다.

‘아직 소드 마스터는커녕, 시커도 달성하지 못한 주제에 숨을 돌리고 있다니.

멀린은 침묵했다.

그녀는 그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나진에게 닿지 않았다. 나진의 머릿속에선 카프만의 화살에 꿰뚫리던 모습과······.

유엘 라지안. 교단의 처형인이 검을 들던 모습이 강하게 박혀 있었으니까.

유엘 라지안이 살기를 흩뿌렸을 때 나진은 자신의 목이 잘려 나가는 환상을 보았다. 한계까지 곤두선 감각이 미래를 보여준 것이다. 그 미래를 보고서도, 대응할 방법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죽음. 너무나도 간단한 죽음.

카프만과의 전투, 유엘과의 조우.

그 사건은 나진이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주기엔 충분했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에서든 제 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후우······.”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성휘 교단에도 등대지기라는, 소드 마스터급의 강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응, 있어.

‘그자가 저를 죽이러 올까요?

-아니, 그건 불가능해.

멀린은 딱 잘라 말했다.

-등대지기는 움직이지 못해. 그자는 특별한 존재라서 움직이는 순간 별들이 주목하거든. 등대지기가 움직이는 순간 온 세상이 너와 그자를 바라보겠지.

그렇게 되면, 하고 멀린은 말했다.

-그 자리에서 네가 엑스칼리버를 꺼내기라도 하는 순간 모든 게 뒤집혀. 성휘 교단이 엑스칼리버의 보유자를 죽이려 든다. 그 하나의 문장이 가지는 의미를 성휘의 주신이 모를 리가 없지.

등대지기는 성휘 교단의 주인인 등대의 사도와 같은 존재다. 교단의 주신인 등대가, 제 사도를 움직여 엑스칼리버 소유자를 짓밟으려 들었단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별들에게 개입할 명분이 주어져.

-성좌의 강림은 꽤 조건이 복잡한데, 이 경우에는 내륙에 별이 내려올 조건이 충족되는 거야.

별들의 개입.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단 뜻이었다.

-그건 네게도, 성휘 교단에게도 좋지 않은 이야기지. 그 자리가 곧 별들의 전장이 되는 거니까.

아서의 후계를 죽이려 하는 별들과.

아서의 후계를 지키고자 하는 별들의 전쟁.

-그 전쟁에선 승자는 없어.

-네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별을 가지게 된다면 또 몰라도··· 지금 상황에선 그래.

교단도 나진도 나란히 파멸할 뿐이다.

-하지만, 먼저 파멸하는 건 교단 쪽이지.

확실한 건 나진의 파멸보다 교단의 파멸이 빠르다는 것. 자신이 쌓아온 전부를 잃는 일. 그런 길을 등대가 고를 리가 없다고 멀린은 말했다.

-애당초 이 상황이 썩 이해가 가진 않아.

-교단 놈들의 독단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쯤 되면 그년도 알고 있을 텐데?

알고도 이 사건에 개입한다.

그 사실에 멀린은 헛웃음을 흘렸다.

-독단이라고 변명하며 아랫것들을 치워버려도 모자랄 상황에 왜 이런 일을?

-원탁에게 싸움이라도 걸 생각인가? 고작 별 여덟 개를 가진, 종교 놀이에 빠진 얼간이가? 내가 아는 등대는 그만한 배짱이 있는 별이 아닐 텐데.

멀린의 말을 귀 기울이던 나진이 말했다.

‘결국에, 해야 할 일은 똑같네요.

보아야 할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등대지기를 제외하면 교단에는 소드 마스터급의 강자가 더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소드 시커에 비견되는 강자들뿐.

애당초 이반도 말하지 않았던가.

네가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르면 교단에서도 네 존재를 무시하진 못할 것이고, 협상에 응하게 될 거라고. 물론 상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계획의 요점은 변하지 않았다.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다.

편린을 붙잡는 데 그치지 않고 그다음으로.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검기를 완전히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심상을 담기에 최적화된 형태의 검기를 가지게 될 수 있으니까.

지금의 자신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

편린에는 닿았으나 검기의 재구성을 이루지는 못했다. 완전한 소드 시커를 상대로는 밀린다. 카프만 테오시스와의 싸움처럼 요행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나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질리도록 널 찾아오겠지.」

카프만은 분명 그리 말했다.

더 많은 이들이 제 목을 노리고 덮쳐올 것이고, 때로는 다수와의 전투도 각오해야겠지. 그들 중에는 카프만과 같은, 혹은 카프만보다 강한 강자들 역시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적색 등급 모험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는 개인 훈련실 역시 있었다.

중앙 길드의 관리하에 운영되는 개인 훈련실.

적색 등급 이상의 모험가만이 이용할 수 있는 이 훈련실은 설비가 어찌나 좋은지, 귀족가에 소속된 기사들도 탐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의 시선이나 기술의 유출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찾기 어려운 법이다. 좋은 숲을 찾아냈더니, 며칠 뒤면 훈련 명소가 되어 사람이 붐비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그러니 적색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은 개인 훈련실을 애용하곤 했는데, 그들은 훈련실의 문이 쭉 늘어선 휴게실 겸 복도에서 잡담을 나누곤 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그리고 오늘.

휴게실에 모인 모험가들의 시선은 어느 수련장 하나로 고정돼 있었다. 그들은 굳게 닫힌 문 하나를 힐끗거리며 잡담을 이어갔다.

“어제부터 저러고 있었다고?”

“어제라니 이 친구야. 저러기를 벌써 일주일이야.”

등판에 상처가 가득한 중년의 모험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새벽마다 훈련장 쓰는 거 알지?”

“알지. 자네 용병단에 출근하기 전에 근육 좀 찢고 간다면서 그러길 벌써 몇 년짼데.”

“그래. 그래서 보통 새벽에 훈련장에 오면 내가 가장 첫 번째란 말일세? 한두 시간쯤 지나야 다른 놈들이 슬슬 오기 시작하고.”

“그런데?”

“그런데, 요 일주일간 항상 저 청년이 먼저 와있더군. 저 훈련장에 항상 불이 켜져 있어. 언제는 한 시간 더 일찍 왔는데, 그때도 있더군.”

중년 모험가의 말을 엿듣던 모험가 하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친구가 밤에도 저러고 있던데요?”

“그래?”

“예, 어찌나 쾅쾅 부숴대는지? 제가 바로 옆방 쓰는데 시끄러워 죽겠습니다. 뭘 그리 과격하게 휘둘러대는지 소리만 들어도 섬뜩해요, 그냥.”

그 소리가 대체 뭐길래, 하는 물음은 필요 없었다. 지금도 들려오고 있으니까. 굳게 닫힌 문의 너머에서 무언갈 부수고 쪼개는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음 처리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저걸 일주일 동안?”

“그런 것 같은데.”

“독종 중에 독종이구만.”

모험가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 역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고, 수련에 몰입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안다. 가끔 수련으로 머리를 비우고 싶은 날이 있으면 하루 이틀이고 수련장에 처박혀있곤 하지만······.

보통 그걸 일주일 내내 하진 않는다.

그것도 저리 과격하게는 더더욱.

“이름이.”

“이반이라 했었지 분명.”

“최근에 적색 등급이 된······.”

저 수련장을 쓰고 있는 청년의 이름을 모험가들은 곱씹었다. 근래 모험가 도시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청년이었으므로, 이반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저 청년은 왜 저러고 있는가?

“저리 수련하는 이유는?”

“뭐 그거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거 있잖아요.”

“카프만 그 양반······.”

백각 등급의 모험가, 카프만 테오시스.

그의 죽음이 공표되고 캄브리아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그와 같은 임무에 뛰어들었던 이반은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훈련실에 처박혀있다.

카프만의 죽음으로부터 무언가 큰 영향을 받았노라고, 모험가들은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끼이이익.

그들이 쑥덕이고 있자니 수련실의 문이 열렸다. 화악, 하고 열풍이 밀려드는 가운데 나진이 수련실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땀방울을 닦아내며 나진은 텅 빈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곤 도로 수련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험가들은 볼 수 있었다.

열린 문틈의 너머를. 나진의 수련장을.

그곳에는 검흔(劍痕)으로 가득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 흔적이 훈련실을 뒤덮고 있었다. 천장에, 벽에, 땅에, 그리고 표적이 되는 중앙 벽은 아예 크게 파여 있었다.

하루마다 관리인들이 청소와 복구작업을 한단 사실을 떠올리자면, 그리고 중앙 벽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광석으로 지어졌음을 감안하면 과연 놀라운 일이었다. 모험가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누군가 말했다.

“미친놈이군.”

그 말에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열린 문 너머로 바라본 풍경은, 최소한 제정신인 사람이 만들어낼 것 같은 풍경이 아니었으니까.

늦은 저녁. 12시를 넘긴 심야가 되어서야 나진은 훈련실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걸음을 옮기는 나진은 생각했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잠깐 눈만 붙였다가 다시 나가면 되겠구나.

그 독백을 엿듣던 멀린이 못 참고 내뱉었다.

-그만 좀 해. 언제까지 이러려고?

‘소드 시커에 올라야 할 거 아닙니까.

-알아. 아는데······.

멀린이 한숨을 내뱉었다.

-네가 급한 건 알겠는데, 이건 도움이 안 되잖아. 그렇게 무식하게 단련한다고 해서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 말야.

‘그래도 도움은 되겠죠.

-미치겠네 진짜.

귀가를 하는 와중, 멀린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진은 제 온 신경을 한없이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었다.

암살자가 온다면 곧장 대응하기 위해서.

훈련실은 물론이고 잠을 잘 때조차 검을 품에 안고 있으니··· 사실상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있지 않은 셈이었다.

지하도시에서 막 나왔을 때와 같다.

그간 풀어졌던 경계심이, 오히려 그때보다 더 솟구친 것을 보며 멀린은 혀를 찼다. 이래서야 망가지고 말 텐데. 하지만 이는 하루 이틀 사이에 고칠 수 있는 버릇이 아니었다.

나진은.

지하도시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한번 버려진 이들이 떨어지는 지하도시에서도, 다시 버려진 아이들이 사는 골목길에서 자라온 사냥개의 본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반의 사냥개로 일할 때도 그랬다. 사소한 실수. 목숨의 위험. 다가오는 죽음. 그런 것들을 경험할 때마다 나진은 병적일 정도로 제 몸을 혹사시켜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곤 했다.

그것이 자신을 살아남게 해주었고.

자신을 강자에게서 승리하게 만들어주었으므로.

어렸을 때 마주했던 그 강렬한 경험들은 나진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잠시 잊고 있을 순 있더라도 놓지는 못하는 것이다. 지금 나진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들을 보며 멀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잘그락.

여전히 나진은 검을 품에 안은 채 눈을 붙였고,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곧장 훈련실로 향했다.

“해도 안 뜬 새벽부터 바쁘시네.”

나진이 걸음을 멈췄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새벽녘의 거리.

“얼굴 한번 보기 참 힘들게.”

훈련실 앞에 놓인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깊게 눌러썼던 로브를 벗었다. 옅은 갈색의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꼈다.

“정말이지, 가끔은 좀 먼저 찾아오면 얼마나 좋아요? 제가 잘 다녀오시라고 말했잖아요? 그럼 돌아왔을 때, 잘 다녀왔다는 인사 정도는 하러 와도 괜찮잖아요.”

툴툴대며 그녀가 바닥에 깔린 낙엽을 잘근잘근 밟으며 걸어왔다. 그렇게 나진의 앞에 선 그녀가, 샛노란 눈동자를 게슴츠레 떴다.

“안 그래요? 나진.”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속삭인 이름.

“이런 새벽부터 무슨 일입니까? 상단···”

“이름.”

“···디에타.”

“뭐 꼭 별일이 있어야 들리나요. 우리가 그렇게 막연한 사이도 아니고.”

디에타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건 아니구.”

그녀가 나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랑 어디 좀 가요.”

“예?”

“같이 좀 가자구요.”

디에타가 억지로 나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쉽게 내칠 수 있음에도, 나진은 그리하지 못했다. 그렇게 끌려간 곳에는 마차가 하나 있었다.

마차의 앞에서 디에타가 제 검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배배 꼬았다.

“···데이트 신청이에요.”

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