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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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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뛰어난 반사신경이 오히려 독이 됐다.

지하 수로의 꺾인 길에서 팔 하나가 뻗어 나왔을 때, 나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 손에 들린 것을 확인하고 대비하기 위해서. 과연 나진의 반사신경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 의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이 꼭 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진은 보았다. 뻗어 나온 손에 쥐고 있는 등불을. 등불의 안에서 싯푸르게 타오르는 불길은 일렁였다. 일렁이는 불길이 나진의 망막에 맺힌 순간, 나진은 세상이 뒤집히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싯푸르게 타오르는 불길이 보인다.

타오르는 불길이 그림자를 만든다.

불그림자가 나진의 망막에 맺혔다.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났다. 가장 먼저 균형감각이 상실되고 두 번째론 눈으로 보는 풍경이 일그러졌으며, 세 번째로는 체내의 감각이 엉망이 됐다. 나는 지금 서 있는 건가? 쓰러졌나? 그게 아니면······.

시야와 감각의 혼동.

-나진!

하지만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마저 왜곡되진 않는다. 그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닌 영혼의 울림이었으므로. 멀린의 목소리가 메아리침과 동시에 나진은 까득, 하고 이를 악물었다.

감각이 엉망이 된 가운데도 나진은 ‘무언가’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제 직감을 믿고 나진은 팔을 뻗었다. 땅을 박찼다.

파바바바박!

쏘아진 뼈 말뚝이 나진의 몸에 처박혔다.

그러나 얼굴을 노린 뼈 말뚝은 나진이 앞으로 뻗은 손에 가로막혔고, 땅을 박찬 덕에 급소에 꿰뚫리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시야와 감각이 뒤엉킨 상태에서 보였다기엔 놀라운 움직임. 하지만 거기까지다. 주변을 보지 않고 도약한 나진이 지하수로에 흐르는 물길에 빠졌다.

풍덩, 그리고 쏴아아아······.

나진이 물에 빠진 것과 거의 동시에 한 발의 화살이 쏘아졌다. 쏘아진 화살은 길을 가로막은 시체들을 모조리 터뜨리며 등불을 쥔 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화살이 팔을 꿰뚫는 일은 없었다.

끽, 끼기긱. 끼이이익.

팔 위로 펼쳐진 방어 주문이 화살을 붙잡았으니까. 이윽고 파챵, 소리를 내며 주문이 박살 났다. 단 한 발로 마법사가 두른 방어막을 박살 냈단 점은 놀라워할 만하나···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또각.

이윽고 꺾인 길에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싯푸르게 타오르는 등불을 손에 쥐고, 인골(人骨)로 만들어진 장신구를 찬 여인. 이번 임무의 목표인 흑마법사 파우베가 미소 지었다.

“대단한데.”

투둑, 하고 끊어진 팔찌가 바닥에 떨어졌다.

방어 주문의 대가를 대신 짊어진 팔찌였다. 어지간한 소드 엑스퍼트의 검격 네 번은 버티는 팔찌가 일격에 박살 났다.

놀랄만한 위력이지만 정작 파우베는 짧게 감탄할 뿐, 크게 당황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몸에 지닌 유물은 아직 한참 더 남아있었으니까.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파우베가 자신에게 쇠뇌를 겨누고 있는 레인저를 바라봤다.

“그런데 괜찮겠어? 벌써 동료가 수로에 빠졌는데. 구하러 안 가봐도 괜찮아?”

그리 말하며 그녀가 손에 쥔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두들겼다. 그녀의 등 뒤로 고리가 떠올랐다. 파우베가 손에 든 등불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

“이거에 한 번 당한 채로 물에 빠지면··· 절대 못 올라올걸? 구하러 안 가면 익사할 텐데. 어서 물에 뛰어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하나의 고리. 뼈 말뚝.

쐐에에엑, 바람을 가르며 쏘아진 뼈 말뚝이 카프만에게 닿으려는 순간 카프만이 쇠뇌를 당겼다.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깊게 눌러쓴 판초가 흔들렸다.

콰직.

쏘아진 화살이 뼈 말뚝을 박살 냈다. 흩뿌려지는 뼛가루를 가르며 나아간 화살이 파우베의 코앞에서 정지했다. 이번에 화살은 파우베의 방벽을 박살 내지 못했다. 정면에 집중된 방벽은 화살을 붙잡아냈으니까.

“차가운걸. 의리가 없는 남자는 별론데.”

파우베가 끌끌 혀를 차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전위 없는 사수처럼 무력한 건 없을 텐데.”

하나, 둘, 셋.

세 개의 고리가 파우베의 등 뒤로 떠올랐다. 그녀의 등 뒤로 나타난 것은 고리만이 아니다. 꺾인 길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눈동자가 뒤집힌 시체들과 흑마법사 둘이다.

시체에는 기사와 이단심문관이 섞여 있었다.

먼저 돌입했거나, 혹은 얼마 전에 흑마법사에게 당했다고 알려진 이들일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프만은 혀를 찼다. 일이 귀찮아졌군.

레인저, 카프만 테오시스는 상황을 판단한다.

이환(二環)의 흑마법사 둘.

그리고 사환(四環)의 흑마법사 하나와, 그들이 매개로 부릴만한 시체가 스물이 넘어간다. 이것만으로도 ‘대비’하지 않은 상황에선 상대하기 어려우나···.

‘걸작마저 소유하고 있지.

등불 형태의 걸작. 불그림자.

그 걸작의 정확한 효과는 모른다. 하지만 저 등불이 일렁였을 때, 균형을 잃고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물에 빠진 그놈을 보아하건대······.

환각 혹은 감각 교란 계열이리라.

파우베가 손에 쥔 등불의 불길은 거의 사그라들어 있었다. 서서히 불꽃이 크기를 불려 가는 걸 보아하니 보아하니 재충전 시간을 요구로 하는 유물이겠지. 거기까지 판단한 카프만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까다로운 상대다.

그리고 이곳은 저들의 터전이다.

아직 사냥감에 대한 파악을 마치지 못했으며 불리한 전장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카프만은 레인저였고, 레인저이기 이전에 군인이었다. 유리한 상황보다 불리한 상황에서 싸운 일이 더 많다.

중요한 건 상황을 뒤집는 것.

시체들이 카프만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사와 이단심문관의 시체는 파우베를 지키고 서 있으며, 밀려드는 시체들의 뒤에서 파우베와 흑마법사들은 주문을 읊고 있다.

전위를 세우고 큰 마법을 준비한다. 흑마법사인 주제에 정석적인 방법을 쓰고 앉았다.

“쯧.”

혀를 차며 카프만은 발리스타의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발리스타의 반동에 몸을 맡겼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시체들에겐 굳이 조준이 필요 없었으니까.

터엉.

반동과 함께 카프만이 뒤로 크게 물러섰다. 물러서며 그는 발리스타를 놓았다. 쿠웅, 소리를 내며 발리스타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카프만의 손은 이미 판초의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

판초에서 빠져나온 손에 들린 것은 투척용 단검.

대형 화살에 꿰뚫려 크게 수가 줄은 시체들 사이에 단검이 파박, 소리를 내며 박혔다. 단검에 머리가 꿰뚫려 고꾸라지는 시체들 사이로 시야가 트였다. 저 너머에서 이쪽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 파우베가 있다.

파우베가 겨눈 지팡이 위로 핏방울이 떠 있다.

저 마법이 무엇인지 카프만은 안다.

선혈 학파 연금술사들, 그리고 사령술사들이 즐겨 쓰는 마법이다. 혈액을 매개로 한 마법. 대량의 혈액을 필요로 하기에 선혈 학파가 아니라면 쓰기 어려운 주문이나··· 흑마법사들에겐 예외다.

굳이 자신의 피가 아니어도 됐기에.

단검도, 화살도 맞지 않았음에도 쓰러져있는 시체들이 있다. 그들의 피부는 바싹 말라 있다. 마치 모든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시체에서 빠져나간 피가 파우베의 지팡이 위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세 개의 고리.

3서클 마법, 핏빛 광선.

붙여진 이름 그대로의 주문이 온다. 지팡이의 끝에서 피의 광선이 쏘아졌다. 파괴적인 위력과 더불어 흑마법사들이 애용하는 주문이기에, 카프만은 저 주문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파훼법 또한 마찬가지다.

카프만이 자세를 낮춘 채 손가락을 튕겼다. 시체들에게 처박혀있던 단검이 새파랗게 빛났다. 카프만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마도구를 다룰 줄은 안다. 쓸 수 있는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므로.

다섯 개의 단검에 새겨진 것은 ‘굴절’

새파랗게 빛나는 단검이 핏빛 광선을 굴절 시켰다. 이리저리 꺾이며 날아오는 광선을 피해 카프만이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 팔이 향한 곳은 파우베의 곁에 서 있는 흑마법사들이다.

파박.

손등에 달린 쇠뇌에서 화살이 쏘아진다.

쏘아진 화살이 주문을 읊는 흑마법사를 방해한다. 그리 하여 벌어낸 몇초의 시간. 카프만이 등에 짊어진 대궁을 뽑아듦과 동시에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수천, 수만 번이고 반복한 동작. 매끄러운 동작과 함께 활시위가 한계까지 당겨졌다.

치이이이이이이익!

굴절된 핏빛 광선이 지하수로의 벽을 녹이며 다시 돌아온다.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핏빛 광선. 저 광선이 제 등에 닿기 전에 수를 줄인다. 그런 생각으로 카프만이 당긴 활시위를 놓으려는 순간이다.

부글.

소리가 들렸다. 난데없이 들려온 소리.

직후 물살을 가르며 수로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수로에서 튀어나온 것은, 몸에 뼈 말뚝이 박힌 나진이다.

그 검에는 이미 검기가 둘러쳐져 있다.

공중에서 빙글, 몸을 돈 나진이 지하수로의 천장에 제 검을 박아 넣었다. 검을 벽에 꽂음과 동시에 검기를 거둔다. 그리하여 천장에 검을 고정한 나진이 천장에 두 발을 디뎠다.

여기까지가 1초.

천장에 꽂혀있던 검에 다시금 검기가 휘감기며 빛이 새어 나온다.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나진이 천장을 박차고 파우베를 향해 달려들었다.

“···!”

파우베가 카프만을 향해 겨누었던 지팡이를 휙, 꺾어 나진에게 겨누었다. 지하수로의 벽을 긁으며 돌아온 핏빛 광선이 나진을 향하려는 순간이다.

쐐엑.

곧장 상황을 판단한 카프만이 활시위를 놓았다. 쏘아진 화살이 노리는 곳은 파우베의 지팡이.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광선은 화살을 녹이지만, 완전히 녹기 전에 화살은 지팡이의 끝을 후려쳤다.

나진에게 겨누어지던 지팡이의 궤도가 틀어졌다. 핏빛 광선이 아슬아슬하게 나진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고, 몸을 비튼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검기가 순백의 궤적을 그린다. 반월의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기가 파우베가 몸에 두른 방어 주문 위로 내려쳐졌다. 엑스퍼트의 검격은 족히 네 번은 막아서는 주문이지만······.

쩌억.

나진의 검격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새하얀 검기가 방어 주문을 쪼갰다. 거세게 요동치는 검기가 파우베의 목덜미에 닿으려는 순간, 쩌엉 소리를 내며 방어 주문이 폭발했다.

2서클 주문, 거부의 장막.

발생한 척력에 나진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카프만이 서 있는 곳까지 밀려난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곳엔 카프만이 어이없단 눈치로 나진을 흘겨보고 있었다.

“···거 용케도 살아났구먼.”

어이없다는 중얼거림.

나진은 물에 빠진 순간부터 검기를 두른 검을 벽에 박아 넣고, 무작정 물살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단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짧게 정보만을 전달했다.

“저 환각, 1분 30초 정도 됩니다.”

감각이 뒤틀린 순간부터 나진은 속으로 시간을 쟀다. 불그림자인지 뭔지 하는 저 걸작이 영향을 미치는 시간. 그 시간을 전달하며 나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몸에는 뼈 말뚝이 박혀있었고.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했기에 호흡 또한 가파르다.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정보 없이 첫 조우에 치명상을 입은 까닭이다. 나진이 몸에 박힌 뼈 말뚝을 뽑아내며 호흡을 골랐다.

“카프만 님.”

“말해라.”

“몇 명까지 상대할 수 있으십니까?”

“너 먼저 말해라.”

나진이 검을 늘어트린 채 눈앞을 바라봤다.

파우베와 함께 모여있는 흑마법사 둘과, 그들이 사역하는 시체들. 이단심문관과 기사들의 시체를 보아하니 혼자서 상대하긴 다소 까다로워 보였다.

“이 미친 새끼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파우베는 눈을 부릅뜬 채 나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부의 장막을 사용했음에도, 밀려나기 직전 나진의 검기는 기어코 파우베의 살갗을 할퀴었다.

목덜미에서 흐르는 핏물. 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짓누른 채 파우베가 이를 갈았다.

그녀가 욕설을 뇌까리며 제 허리춤에 달린 등불을 거칠게 두들겼다. 충전이 끝난 불그림자가 다시 한번 싯푸르게 일렁였다. 일렁이는 등불을 보며 카프만이 눈을 감으려는 순간이다.

“저년은 제가 조집니다.”

카프만의 귀에 나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남은 놈들은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뭐?”

명령조의 말.

그게 뭔 정신 나간 소리냐고 되묻는 것보다 먼저 나진이 땅을 내려찍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수로의 바닥에 금이 내달렸다.

한순간의 가속.

땅을 박차고 나진이 내달렸다. 눈을 감고 있어 카프만은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는 숨을 헛삼켰다. 한순간 느껴졌던 기척이 너무나도 사나웠기에.

땅을 박차고 나진은 질주했다.

한순간에 끌어올린 마나와 함께 질주하는 나진의 속도는 소드 시커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나진의 모습을 흑마법사들은 두 눈으로 쫓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진이 그들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으니까.

그러나 기사와 이단심문관들의 시체는 나진의 움직임에 뒤늦게 나마 반응했다. 그들이 나진을 향해 검을 내려쳤고, 파우베가 나진을 향해 등불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미 나진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았으나 기척은 느껴진다.

나진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내디딘 속도를 그대로 살려,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거부의 장막이 박살 나며 나진의 몸을 밀어내려 하는 순간 나진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거부의 장막의 척력은 ‘두 번’ 발생한다.

첫 번째는 장막을 박살 낸 무기에 집중해 즉각적으로 발생하고, 두 번째 척력은 잠깐의 틈을 두고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그 사실을 멀린에게 들었고 방금 경험했다.

경험했기에 나진은 그 틈을 노렸다.

경험했기에, 한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장막을 깨트린 검과, 검을 쥔 왼손이 뒤로 휙 젖혀졌지만 오른손은 남아있다. 나진이 앞으로 뻗은 오른손이 파우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척력에 나진의 몸이 뒤로 떠밀리는 순간 파우베의 목이 당겨진 로브에 조여졌다.

“컥!”

흐트러진 호흡. 흐트러진 마력.

그 틈을 나진이 놓칠 리가 없다. 들어 올린 발로 땅을 내려찍으며 나진이 팔을 휘둘렀다. 자신을 밀어내는 척력마저 이용해 나진이 파우베를 내던졌다.

파우베가 저 멀리 내던져진다.

그녀를 보조하는 흑마법사와, 그녀를 지키는 시체들과 거리가 벌어진다. 뒤늦게 시체 기사가 검을 휘두르고 이단심문관이 창칼을 휘두르지만··· 이미 그때 나진은 땅을 박차고 파우베에게 내달리고 있었다.

고립된 파우베를 향해 나진이 질주했다.

여전히 나진은 그 두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은 채 달려드는 나진을 바라보며 파우베가 이를 악물었다. 아예 눈을 감고 싸울 생각인가?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봐라. 그녀가 제 목덜미를 매만지며 등불을 크게 휘둘렀다.

불그림자는 걸작이다.

눈을 감는 정도로 파훼 된다면, 걸작이라 불릴 리가 없다.

‘한 번 더 당하는 순간.

이번엔 저 몸통을 핏빛 광선으로 뚫는다.

그렇게 파우베의 입가에 웃음이 맺히는 순간이다. 나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곤 일렁이는 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부릅 뜬 눈동자.

그 눈동자는 백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