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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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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흑마법사와 흑마법은 전염병과도 같다.」

「사람에게 몹시 해롭단 점과, 내버려두면 창궐해 영지 하나를 말아먹는 게 순식간이란 점에서 그렇다.」

제국의 역사서에 적힌 글귀였다.

이 글귀를 읽은 숱한 흑마법사들이 음해라며 들고 일어섰지만, 역사서에 저 한 줄의 문장을 새긴 서기관의 귀에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법은 없었다.

궐기한 흑마법사들은 모두 죽은 까닭이다.

누구에게? 제국의 기사와 이단심문관들에게.

제국은 흑마법과 악마에겐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한다. 목적이 무엇이든, 주체가 누구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연관된 것들을 모조리 섬멸(殲滅)하라. 제국이 선포한 이 규칙은 신분은 물론이고 국경마저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제국의 사명이었으므로.

“흑마법이 왜 흑마법이겠어?”

마차에서 눈을 감고 명상하던 나진은 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담벼락에 걸터앉은 멀린이 턱을 괸 채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마법은 시간을 굉장히 많이 써야 하는 학문이야. 나처럼 천재가 아니라면 마법의 기초가 되는 문자부터 시작해서, 회로의 짜임새, 서클의 이해, 마법의 구조 등등··· 배워야 할 게 많거든.”

멀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 같은 천재는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

“멀린 이야기는 됐으니까, 요점만 말해줘 봐요.”

“···너 요즘 나한테 쌀쌀맞지 않아?”

적당히 끊어야 할 부분을 알게 됐을 뿐입니다.

나진이 그리 중얼거리자, 멀린은 툴툴거리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흑마법에 대한 설명이었다.

“요점은 그거야. 흑마법은 복잡한 과정을 ‘단축’ 시켜줘. 그것도 엄청나게.”

그 방법이 무엇인가?

멀린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산 제물을 쓰는 거야. 마법을 사용할 때 필요한 대가나 과정을 모조리 남에게 떠넘기는 거지. 제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위력도 올라가고.”

그녀가 흙바닥 위에 그림을 그렸다.

“인간의 손가락, 인간의 뼈로 만든 장식품, 그리고 때로는 살아있는 인간을 ‘담아둔’ 플라스크까지. 흑마법사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지.”

듣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물건이다.

나진이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흑마법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네요.”

“그렇다니까.”

여하튼, 그리 중얼거리며 멀린이 말했다.

“그걸 공략하는 게 핵심이다 이거지. 흑마법사가 통상의 마법사보다 우위에 있는 게 뭐야? 바로 제물을 통한 주문 시전의 단축과 강화야. 제물이나 매개로 사용할 물건을 죄다 박살 내면 그걸로 끝인 거지.”

그다음엔 요렇게 펑펑.

멀린이 손가락을 튕겨 뭔갈 터뜨리는 시늉을 했다.

“내가 흑마법사 여럿 갈아버리며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니까,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놔.”

그리 말하는 멀린은 어깨를 으쓱였는데, 제 지식을 뽐낼 수 있게 된 사실에 기분이 좋은 듯싶었다.

레겐오프 도시.

마차에서 내려 기사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이들이 모인 회의실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나진을 반기는 것은 고용주쯤 돼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모험가님.”

사내가 살갑게 나진을 맞이했다.

레겐오프 시의 영주에게 이번 작전의 지휘권을 맡은 사내는 본인을 하이트라고 소개했다.

나진이 도착한 이후로도 차례로 사람들이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이단심문관들이 모이고 나니 하이트가 작전의 개요를 설명했다.

“저희의 목적은 추정 사환(四環)의 흑마법사 파우베입니다. 특이 사항으로는 걸작 ‘불그림자’를 소유하고 있단 점이고······.”

한동안 이어진 설명.

파우베에 대한 정보는 기사에게 들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이트의 설명을 흘려들으며 나진은 회의실에 모인 인물들을 확인했다.

‘기사, 용병단장, 거기에 이단심문관.

나진의 시선이 잠시 이단심문관에게 머물렀다.

새하얀 사제복에 핏빛 자수를 새긴 이들.

성혈(星血) 교단의 상징을 새긴 전투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제들처럼 법전과 메이스를 들고 다니는 대신, 날카롭게 갈린 장검과 창을 소지하고 있었다.

“파우베의 위치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지하수로입니다. 지하수로에서 목격담과 동시에, 흑마법의 흔적이 지속해서 발견되고 있지요.”

“거기까지 들으면 될 것 같군.”

하이트의 설명을 끊으며 사제가 일어섰다.

이단심문관들의 단장 격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하이트에게 짧게 설명했다.

“우린 지하수로를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움직이겠다. 성혈 교단에는 교단의 방식이 있는 법이니.”

양해를 구하지도 않는 모습.

하지만 하이트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별 반감을 느끼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예로부터 흑마법사를 잡아 족치는 건 성혈 교단의 일이었으니까.

이 분야에선 저들이 전문가였으니,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듯싶었다.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이 떠나고 나서 하이트는 말을 이었다.

“교단의 사제분들이야 잘 알고 계시겠지만, 흑마법사에 낯선 여러분들에게 주의할 점과 공략법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혹시 알고 계신 것이 있는 분?”

나진이 손을 들었다.

“흑마법사들이 제물이나 매개로 쓰는 것들을 박살 내면 공략에 유용하다고 들었습니다.”

멀린에게 들은 정보였다.

흑마법사를 여럿 갈아 마시고 다닌 전문가에게 들은 정보이니 정확할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진의 대답을 들은 하이트는 다소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좀 많이 오래된 방법이지요. 요즘엔 거의 쓰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가 난감해 하며 난처한 듯 웃어 보였다.

애써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그건 한참 전에 쓰인 구닥다리의 방식이란 뜻이었다. 나진은 가만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흑마법사 공략법이라면서요?

-······.

멀린은 침묵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멀린이 입을 열었다.

-···쟤가 몰라서 그래. 나 때는 다 그랬어.

거의 천 년쯤 전에 활동했던 멀린의 정보를 걸러 들을 필요가 있음을 나진은 깨달았다.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여기에 요약해 두었으니, 한 번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서류를 나눠준 뒤 하이트가 숨을 가다듬었다.

“이반 모험가님은 이쪽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따로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단장과 기사들이 자리를 뜨고, 하이트와 독대하게 된 나진이 듣게 된 것은 이번 의뢰에 걸린 특수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니까······.”

나진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최대한 빨리, 되도록 이단심문관들보다 빠르게 일을 처리해 주었음 좋겠단 이야기입니까?”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하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의뢰의 보수를 올려주겠노라고 그는 약속했다.

“애초에 이단심문관님들에게만 맡겨도 될 일을, 왜 모험가님까지 고용했겠습니까? 이 일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설명한 이유는 대개 이러했다.

이미 파우베에게 이단심문관 다섯이 죽은 마당이다. 여기서 그 수가 더 늘어나거나, 파우베의 추정 위험도가 높아지면 매우 곤란해진다······.

“곤란해진다니?”

그 이유에 대해 나진은 물었고.

하이트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성혈 교단의 처형인께서 걸음 하실 겁니다.”

성혈 교단의 처형인.

그건 나진 역시 알고 있는 존재였다.

“처형인이라면··· 유엘 라지안 님?”

“예, 그분이 맞습니다.”

성휘 교단에는 등대지기가, 성체 교단에는 성육신이 있다면 성혈 교단에는 처형인이 있다.

소드 마스터, 유엘 라지안.

살인귀라고 불리는 그 존재에 대한 정보는 나진도 얼추 접해본 적이 있었다. 유엘 라지안은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 있는 후보에 있던 존재였으니까.

“그분께선 일정 등급 이상의 위험도를 지닌 흑마법사가 있다면··· 직접 움직이시곤 합니다.”

소드 마스터씩이나 되는 인물이 움직일만한 일이 아닌데도, 유엘 라지안은 움직인다. 제 칼에 피를 묻힐 명분만 생긴다면 그녀는 기꺼이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이다.

교단의 교황이 가진 것 이상의 면책권과 초법권, 즉결 심판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이 바로 성혈 교단의 처형인이다. 그만한 인물이 영지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만다.

“흑마법사 하나 잡다가 영지 하나 다 태워 먹는단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영주님께선 성혈 교단의 처형인께서 움직이기 전에 이번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 합니다.”

유엘 라지안이 움직이는 순간.

영지는 피바다가 될 것이며, 한창 성장 중인 상업 도시의 모든 사업은 동결되고 만다. 그런 일까지 번지는 것을 막고자 너를 고용했노라고 하이트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저 하나로는 부족한 것 아닙니까?”

이야기를 듣던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력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이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 하나론 부족한 것 아닌가. 그렇게 걱정됐다면 더 많은 인원을 고용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나진의 물음에 하이트가 웃었다.

“이반 님과 함께 모험가 도시에서 아주 실력 좋은 모험가 한 분을 더 고용했지 뭡니까? 아마도 그분과 함께 움직이시면 될 듯합니다.”

아마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이트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를 뒤따라 걷다 보니 도착한 곳에는, 판초를 깊게 눌러쓴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

그가 말없이 나진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진은 제 등줄기가 곤두섬을 느꼈다. 섬뜩한 시선. 마치 맹수의 눈동자와도 같은 시선이다. 그런 섬뜩함을 느끼기도 잠시, 나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사내의 인상착의를 나진은 알고 있었다.

중앙 길드에 걸려있는 초상화로 보았으니까. 시선이 마주한 순간, 나진은 사내의 이름을 떠올렸다.

‘카프만 테오시스.

매의 눈, 카프만 테오시스.

도시에 다섯뿐인 백각 등급의 모험가 중 하나.

매의 눈, 카프만 테오시스.

전(前) 테첼 산맥의 레인저였다던 저 모험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모험가 도시의 정점인 백각 모험가들은 하나 같이 유명인인 데다가, 카프만이란 사내에 대해선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으니.

카프만 테오시스는 레인저다.

그리고, 레인저라 하면 나진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지하도시의 지배자 중 하나였던 ‘호르세’다.

‘물론 호르세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레인저라 불리는 이들의 전투 방식에는 관심이 좀 있었다. 그렇게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카프만이 먼저 나진에게 다가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목덜미에 걸려있는 명패가 흔들렸다.

새하얀 순백의 명패.

캄브리아의 정점인 백각 등급의 모험가임을 증거하는 명패였다.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나진 또한 카프만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탁.

중간지점에서 멈춰 선 카프만이 먼저 나진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듯한 모습이었고, 나진은 그 손을 붙잡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카프만이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적색 등급의 모험가, 이반. 이번 일에서 합을 맞추게 됐군. 나는 카프만 테오시스다. 소개가 필요하나?”

나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야기 빨라서 좋군. 우선 우리도 지하수로로 잠입해 흑마법사를 추격할 거다. 의뢰 내용은 들었겠지? 고용주께서 속도가 생명이라니 빠르게 움직일 생각이다.”

카프만이 지하수로로 통하는 입구를 가리켰다.

“이단심문관들을 앞지른다. 흑마법사 파우베가 사상자를 더 내기 전에, 빠르게 사살한다. 이해했나?”

요점만 빠르게 정리한 말.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움직이도록 하지.”

별다른 잡담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지하 수로로 통하는 입구를 지나치려는 순간이다. 카프만이 발리스타에 화살을 당기며, 나진에게 질문했다.

“랜턴은 필요하나? 난 밤눈이 밝은 편이라 필요가 없지만, 너는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저도 밝은 편이라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야 뭐······.”

지하수로에 드리운 어둠을 바라보며 카프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조심해라.”

철컥, 하고 쇠뇌에 화살이 장전되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이런 어두운 지하수로에선 누가 사냥감이 되고, 누가 사냥꾼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