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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검성, 검의 교단을 설립한 어느 검객은 검의 경지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소드 엑스퍼트.
소드 시커.
소드 마스터.
세 가지로 분류된 경지는 주로 검기(劍氣)를 통해 구분되곤 했다. 검기만큼이나 명확하고 뚜렷한 구분 점이 달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드 시커’와 ‘소드 엑스퍼트’ 단계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소드 마스터는 다르다.
그들은, 무언가 별개의 존재들이다.
일찍이 세 가지로 분류된 경지를 두고 시커와, 마스터 사이에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그 사이에 놓인 간극은 어마어마했다.
경지에 오른 소드 시커들은 말한다.
제 앞에 거대한 벽이 놓여있는 것 같다고.
검을 단련하고, 실력을 쌓아 정진할수록 그들은 벽을 향해 다가가게 된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벽은 너무나도 거대하여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벽의 앞에서 숱한 소드 시커들은 문득 헛웃음을 흘리고 만다.
엑스퍼트니 시커니 하는 것들.
그 경지의 구분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지 않았나, 자신이 단련해 온 세월은 무의미 하지 않았나, 하는 허탈감이 들고 마는 것이다. 제 앞에 세워진 거대한 벽은 말하고 있으니까.
세상은 단지 이분(二分)돼 있을 뿐이라고.
소드 마스터와, 그렇지 않은 자.
인간을 초월한 초인과 한낱 범인(凡人).
소드 시커급에 오른 무인조차 한낱 범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들. 그것이 바로 소드 마스터란 존재들이다. 그 무엇으로도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이질적인 존재들.
「소드 엑스퍼트는 검기를 뽑아내는 걸로, 소드 시커는 검기에 심상을 담는 것으로 구분하면 소드 마스터는 뭐로 구분하냐고?」
누군가 최초의 검성에게 던졌던 질문. 그 질문에 최초의 검성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답했었다.
「구분하고 자시고가 있냐?」
그냥, 하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검을 뽑은 순간 알 거다.」
「아, 이 새끼 소드 마스터라고.」
그 기록을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상은 최초의 검성이 남긴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소드 마스터가 검을 뽑아 든 순간 싫어도 깨닫게 된다.
눈앞에 서 있는 이가 정점이라고.
검(劍)이란 무구의 극한에 오른 초인이라고.
역사상 등장했던 소드 마스터들이, 지금의 시대를 견인하는 세 소드 마스터들이 그러했으므로.
···그리고.
그 말을 뼈저리게 체감 하고 있는 사람이, 이곳에도 하나 있었다.
“헉, 허어억······.”
소드 시커, 로젤린 아스칼로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다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제 앞에 서 있는 사내가 소드 마스터라고. 검성, 카론이라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로젤린을 향해 카론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마치 사신이 다가오는 듯한 공포 속에서 로젤린이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멈춘 걸음 소리. 코 앞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척.
그리곤 툭툭.
카론이 로젤린의 어깨를 두들겼다. 로젤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엔 로브를 눌러쓴 카론이 미소 짓고 있었다.
“아, 드디어 기억났군.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 자네가 그 로젤린 아스칼로 아닌가?”
카론이 반갑다는 듯 말했다.
“젊은 나이에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랐으며, 걸작마저 다루는 이름 난 용병. 한 번쯤은 검을 맞대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반갑네. 나는···.”
“크흠!”
카론이 제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로젤린의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그곳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중위 사제 볼크만이 서 있었다.
신분을 감추고 자네와 동행하겠다.
분명 그리 말했던 카론이다.
그러나, 정작 제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카론의 모습에 볼크만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비공식적인 방문. 그 사실이 알려졌다간 정말, 정말 귀찮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
“이거 실례했군.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상황···.”
“카, 카, 카, 카론 경을 뵙습니다.”
“이런.”
떨면서 답하는 로젤린의 말에 카론이 난처한 듯 제 뒷목을 매만졌다. 들켜버렸군, 하는 표정으로 그가 볼크만을 흘겨봤다. 볼크만은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렇게 된 김에.”
카론이 짧게 숨을 뱉었다.
“자네, 이반이라는 모험가를 알고 있나?”
“···예?”
“내 그자를 보러 이곳에 걸음 한 거라. 알고 있다면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겠나? 내 사례는 하도록 하지.”
소드 마스터 카론.
검의 교단의 주인, 검성.
거물 중의 거물이라 불리는 이가 건네는 부탁.
물론, 머리에 검(劍) 밖에 들어찬 게 없는 카론의 입장에서야 별생각 없이 건넨 부탁이며 거절해도 별 상관 없는 부탁일 테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카론의 생각일 뿐이다.
“최선을 다해!!!!!”
이는 로젤린의 입장에선 목숨을 걸고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완수해 내야만 하는 특급 임무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수준이 아니라, 대마법사의 메테오가 떨어진 수준이었다.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상황은 지금에 이른다.
로젤린의 손에 이끌려 나진이 붉은 눈 용병단의 거처에 도착한 순간이다. 1층의 문을 열고 나진이 들어선 순간, 모여있던 용병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나진에게로 쏠렸다.
“허억!”
“드디어 왔다!”
“빨리, 단장 빨리···!”
그들은 마치 구세주라도 본 얼굴로 나진을 바라봤다. 숨 막히는 분위기에서 드디어 해방될 수 있음에 그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나진의 등을 계단으로 떠밀었다.
“최상층,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빨리! 최대한 빨리···!”
나진은 영문도 모른 채 그들에게 등을 떠밀려야만 했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힐끗 돌아보자, 용병단들이 꺼내든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채 숨을 몰아쉬는 로젤린이 보였다.
애들아 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진짜 존나 힘들다······.
로젤린의 한탄 어린 목소리와, 그녀의 말에 맞장구 치는 용병단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나진은 계단을 올랐다. 소드 마스터 카론이 자신을 찾아왔다니. 그 이유를 나진으로선 알 수 없었다.
‘설마, 제가 엑스칼리버를 뽑았다는 걸 눈치챈 걸까요?’
-단언컨대, 그럴 일은 없어.
멀린은 딱 잘라 말했다.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이야. 이쯤 되면 네가 있던 지하도시란 곳 자체에 뭔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긴 한데······.
잠깐의 고민 후 멀린이 말을 붙였다.
-아무튼, 교단에서 귀띔을 해준 게 아니라면 들킬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애초에, 카론이란 자는 교단에 휘둘릴 만한 인물도 아니고.
‘검성에 대해서 좀 아세요?’
-알고 있지. 원래 엑스칼리버를 뽑을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니까.
세 후보 중에서도 가장 유력했던 후보가 바로 검성 카론이다. 그렇기에 카론에 대한 정보는 멀린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카론이란 그자, 최초의 검성과 닮았더군요.」
「검술이 아닌 성격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검(劍)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들고요.」
베디비어가 평하기를, 검 밖에 모르는 이.
모든 가치의 위에 검이 있을 뿐 그 심성은 올곧다고 베디비어는 평가했다.
‘일단 만나봐야 알 것 같네요.’
나진은 숨을 고르며 걸음을 옮겼다.
이미 자신을 찾아온 상황이라면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가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는 감이 안 잡히지만, 최소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
계단을 올라 최상층의 집무실의 문 앞에 도착한 나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똑똑, 문을 두어번 두들기고선 집무실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안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다. 나진의 감각이 곤두섰다. 등허리를 타고 번개가 내달리는 듯한 기이한 감각. 한순간에 눈이 부릅 뜨이고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아, 드디어 오는군.”
목소리가 들렸다.
나진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익숙한 얼굴의 사내··· 중위 사제 볼크만과 함께 누군가 앉아있었다.
이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
로브를 벗어 제 얼굴을 온전히 드러낸 그자가 바로 검성 카론임을 나진은 직감했다.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저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진의 감각이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으니까.
“···이반이라고 합니다.”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은 나진이 말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렇지.”
카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갑네. 이미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카론이라고 하네. 이리 통성명을 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악수나 한번 하지.”
그가 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나진의 입장에선 식은땀이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눈앞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검성 카론, 검의 교단의 주인이다.
그가 받은 명예 작위와 권력만 하더라도··· 공작은 우습게 상회하며, 때에 따라선 제국의 태양과도 겸상할 수 있는 인물이지 않던가.
제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 한들, 정치를 하지 않으면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없다곤 하나··· 그건 충분히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따라오는 문제들이다. 단신으로 국가를 전복할 수준의 무력을 가지게 된다면 권력과 작위는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 게르드가 그러했고.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이 그러했으며.
눈앞의 사내, 검성 카론이 그러했다.
그런 인물이 제게 악수를 건네고있다. 그러나 나진이 누구인가. 저 밤하늘의 초월자인 멀린의 앞에서도 쫄지 않았던 사내다. 나진이 숨을 가다듬으며 카론의 악수를 받았다.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볼크만에게 들었다. 듣기론 재능이 비범한 검사라고 하던데······.”
악수하며 카론이 미소 지었다.
“내 자네를 찾아온 데 큰 이유는 없어.”
순수한 미소.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눈동자. 카론의 눈동자는 나진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이나 한번 맞대볼까 싶어 왔다네. 자네를 검의 교단으로 불러도 좋겠지만, 그래서야 자네에게 너무 이목이 쏠릴 테니··· 뭐, 이걸로 만족해야겠지.”
카론이 어깨를 으쓱였다.
“할 말은 이게 끝이네.”
“···예?”
“자네도 더 할 말 없지 않나?”
물어보고 싶은 게 더 있나? 있으면 빨리 말해라. 그렇게 말하는 카론에게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뒤에 앉아있는 볼크만이 쓰게 웃을 뿐이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볼크만이 짓고 있는 쓴웃음의 의미를 나진이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이나 나눠보도록 하지. 밖으로 따라 나오게. 이 도시에 오는 길에 봐둔 좋은 장소가 있으니.”
카론은 그렇게 말하며 짐을 싸서 일어섰다.
물론 짐이라 해보아야, 그가 벽에 기대어 세워둔 한 자루의 검밖에 없었다. 나진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소드 마스터 카론.
그만한 거물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검을 맞부딪쳐 보고 싶었다’ 하나뿐이라니.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분명 다른 의도가···.’
나진이 그리 카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무렵이다. 문을 열어젖힌 채 카론이 휙 고개를 돌렸다.
“뭐하나. 어서 안 따라오고.”
제 어깨에 검을 걸친채 카론이 재촉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당장 검을 맞부딪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진의 옆에 다가온 볼크만이 속삭였다.
“···원래 저런 분일세.”
“예에···?”
“내 미안하게 됐어. 그래도 자네에게 도움이 될 기회이니 아무쪼록 용서하게.”
볼크만이 나진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잠시.
숲을 지나쳐 탁 트인 공터에 도착한 나진과 카론, 그리고 볼크만은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카론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이.
물어야 할 것이 있다면 검으로 묻겠다는 듯이.
마차에서 내린 나진은 카론이 서 있는 쪽을 흘겨봤다. 제 맞은편에 서 있는 카론은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팔을 한 바퀴 빙글 돌린 그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캉.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뽑아 든 검을 들지는 않았다. 검을 바닥에 꽂아둔 채 그가 검집을 손에 들었다. 검집을 손에 든 채 그가 공중에 두어 번 검집을 휘두르다가··· 감을 잡았다는 양 힘을 주어 휙, 하고 휘둘렀다.
쩌억.
땅이 일(一)자로 깊게 파였다.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카론이 무슨 묘기를 부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검기를 두른 것 같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진이 당황하는 와중 카론은 제 손목을 빙글 돌리며 만족스레 웃었다. 마치, 이 정도면 됐다는 듯이. 그가 휙 고개를 돌려 나진을 바라봤다.
“뭐하나? 검 안 뽑고.”
카론이 검집을 까딱이며 말했다.
조금 전 카론이 검집을 가볍게 휘둘러, 땅을 깊게 파헤침을 똑똑히 보았던 나진이다. 잘못 얻어맞았다간 그대로 즉사하는 미래가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혹시, 대련이 아니라 나를 죽이려 하나?
나진으로선 가져볼 만한 합당한 의심이었다. 나진은 한숨을 쉬며 캉, 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상황이야 어쨌든 간 좋은 기회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점을 경험할 기회.
상황을 따라가진 못하겠으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뽑아먹을 수 있는 데까진 뽑아먹겠다. 그리 다짐을 한 나진이 자세를 다 잡았다.
-소드 마스터의 앞에서 뽑아먹는단 생각을 하는 미친놈은 내가 장담하건대, 너밖에 없을거야.
‘예? 뭐라구요?’
-아냐, 그냥 하던 대로 해······.
어이없다는 듯한 멀린의 목소리 사이로, 나진이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