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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 베른하이겐.
그가 속해있던 가문은 슐하우저. 그가 강탈했다고 알려진 악마가 담긴 유물 역시, 슐하우저 가문이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관리해오던 것.
의뢰서에 적힌 정보.
그 정보를 확인한 순간부터.
멀린은 베른하이겐이 계약한 악마의 진명이 무엇인지, 어떤 개념을 관장하는 존재인지 전부 꿰뚫어봤다. 모를 리가 없었다. 슐하우저라는 가문은, 멀린이 활동했던 시대에도 존재하던 가문이었으니까.
-상급의 악마.
-관장하는 개념은 어둠, 공포, 맹인.
-진명은 아르칸드(Arkand).
수백 년 전, 멀린과 아서가 활동했던 시대에 존재했던 고대의 악마. 당시 변방의 용사라 불렸던 슐하우저에 의해 봉인되었던 악마였다. 그 악마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멀린은 미소 지었다.
아르칸드는 강력한 악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제 아무리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봉인돼 약화했다곤 하나, 아르칸드가 지닌 권능은 우습게 볼 게 못 된다. 그가 권능을 사용한 시점부터 나진은 결코 베른하이겐을 이길 수 없다. 덤벼봐야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 뿐이다.
결계의 안에서 베른하이겐은 소드 시커의 중상위권조차 압도하는 힘을 지닌다. 그에 비해, 나진의 육체는 약화되고 마나의 출력은 떨어진다.
상대를 약화시키고 자신을 강화하는 결계.
그 결계 안에서 나진은 절대로 베른하이겐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절대적인 격차이며, 규칙이다.
그럼에도 멀린이 나진을 말리지 않은 것은, 나진이 베른하이겐과 단신으로 맞부딪치는 길을 고르도록 내버려둔 것은······.
-아르칸드의 권능은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
아르칸드가 지닌 권능의 특성 때문이다.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르칸드의 권능이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
별빛도, 햇빛도, 그 무엇도 닿지 않는 밀폐된 공간. 그 공간 안에서 별들의 축복을 빌려 검을 휘두르는 성기사들은 빛을 잃고, 마탑의 지원을 받아 마법을 휘두르는 마법사들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그것이 아르칸드가 악명을 날렸던 이유.
하지만 그 결계는 나진에게 있어선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외부와 단절된다는 것.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고립된 공간이라는 것. 그것은 나진에게 있어······.
-보는 눈은 없고.
-베어야 할 악마는 있지.
더 이상,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
-저 고대의 악마에게 알려.
멀린은 웃었다.
나진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너희들의 천적이 돌아왔단 사실을.
철컥, 하고 나진이 롱소드를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나진이 손을 뻗었다.
-천 년의 세월을 넘어, 너희의 천적이, 너희에게 다만 영원한 죽음을 안겨줄 존재가 돌아왔음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손.
그 손목에 새겨진 별자리가 빛났다.
······다시 말하지만.
결계의 안에서 나진은 베른하이겐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절대적인 격차이며, 결계의 규칙이다.
하지만 나진은 가지고 있다.
모든 규칙의 위에 존재하는 것을. 모든 격차를 뒤집을 거대한 변수를. 악마가 만들어낸 어둠 따위에 가려지지 않을 찬란한 빛을.
콱.
나진이 들어 올린 손을 움켜쥐었다.
허공에 떠오른 열세 개의 별자리.
직후, 어둠 속에서 별빛이 범람했다.
악마 기사, 베른하이겐은 보았다.
갑작스레 검을 검집에 밀어 넣는 나진의 모습을. 적이 다가오는데 납검하다니? 저항하기를 포기한 것인가. 아니, 저놈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포기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저 눈동자는 승리를 갈망하고 있었으니.
승리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는 눈동자.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백금색의 눈동자. 노을빛에서 백금색으로 변한 나진의 눈동자에 베른하이겐이 위화감을 느낀 순간이다.
나진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목에 새겨진 열세 개의 별이 빛나기를 한순간, 어둠 속에서 별빛이 범람했다.
화악!
빛을 집어삼키는 어둠조차 나진이 만들어낸 별빛을 가리지는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나진이 붙잡은 것은 감히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빛이기에.
별빛이 닿지 않는 땅 아래 깊은 곳에서도.
악마들이 날뛰는 마경에서도.
별들이 추락하는 나락의 땅, 캄란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기에 영웅의 상징이었고, 인류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었으며··· 또한 승리의 상징이었던 한 자루의 검(劍).
콱.
나진이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을 움켜쥔 순간, 범람하던 별빛은 한 자루의 검이 된다. 주변에 드리운 어둠을 모조리 불태우며 홀로서 빛나는 검. 그것을 베른하이겐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별의 검, 엑스칼리버.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잊혀졌던 성검이 한 소년의 손에 의해 현실로 끌려나왔다.
베른하이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별의 검이 만들어내는 빛이 어둠을 모조리 불태웠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별을 집어삼키고자 결계가 출렁이나, 엑스칼리버가 만들어내는 빛은 그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캄란의 마녀조차 가리지 못했던 빛이고.
나락의 용조차 삼키지 못했던 빛이다.
한낱 악마가 만들어낸 어둠이 엑스칼리버의 빛을 가릴 수 있을 리가 없다. 타들어 가는 듯한 별빛에 베른하이겐의 시선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엑스···칼리버···?’
보고도 믿을 수 없다.
저 성검이 왜 저놈의 손에 있는 것인가. 엑스칼리버를 뽑아낸 건 세 명의 소드마스터 중 하나가 아니었단 말인가?
모조품, 가짜, 거짓된 것.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악마가 만들어내는 어둠을 저런 식으로 불태우는 건 교단이 축성한 성유물로도 불가능하다. 베른하이겐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검을 쥔 베른하이겐의 손가락이 덜덜덜 떨렸다.
그것은 근원적인 공포다.
베른하이겐이 느끼는 공포가 아닌, 그의 육체와 동화된 악마가 느끼는 공포. 고대의 악마 아르칸드는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악마라는 종족 전체에 아로새겨진 천적에 대한 두려움이다.
별의 검, 엑스칼리버.
저 성검은 악마의 정신을 쪼갠다. 악마의 영혼을 불태운다. 불사의 존재인 악마를 죽인다는, 모순을 가능케 만든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 땅에 너희가 발 디딜 곳은 없다.」
모든 법칙의 위에 존재하는 저 한 자루의 검을 쥔 채··· 수백, 수천의 악마를 쓸어넘긴 아서의 모습을 아르칸드는 기억한다.
「두려워하라. 이 빛을.」
「기억하라. 이곳은 너희의 땅이 아님을.」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 현세에 다시금 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포에 떠는 아르칸드는 도망치고자 하나, 도망칠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물에 봉인된 아르칸드는 베른하이겐이란 계약자를 통해서만 도망칠 수 있다.
아르칸드가 공포를 느낀다.
죽지않는 존재일 악마가,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그 모순된 상황 속에서 베른하이겐은 나진을 마주했다. 찬란히 빛나는 별의 검 앞에, 베른하이겐의 검을 휘감고 있던 새까만 검기는 타들어 갔다. 그 몸에 흘러넘치던 전능감 역시 사그라졌다.
치이이이이익···.
나진의 육체를 약화하고, 그 마나를 옭매던 어둠 역시 별빛에 타들어 갔다. 타들어 가는 어둠 속에서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엑스칼리버를 불러낸 순간부터, 성검의 축복은 강화됐다.
베른하이겐의 전투에서 입었던 부상이 순식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난다. 한계를 넘어 마나를 운용한 대가로 뒤집혔던 속이, 모조리 수복되기 시작한다. 가히 기적이라 부를만한 회복력이다. 지하도시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축복에 나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때보다 네가 강해진 탓이겠지.
멀린은 미소 지었다.
캄브리아에 도착한 아래 나진은 성장했다. 육체가 성장했으며, 영혼이 성숙했다. 그 성장을 엑스칼리버가 증거하고 있었다.
-길게 시간을 끌 필요는 없고.
-엑스칼리버의 빛을 이 결계가 얼마나 막아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까, 하고 멀린이 말했다.
-내가 뭔 말을 하려는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나진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았다.
‘일격에 끝내라, 그거 아닙니까.’
-바로 그거지.
고대의 악마와 계약한 존재를, 하물며 그 권능까지 부리는 이를 단 일격(一擊)에 끝내라. 이는 소드 시커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진은 천천히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파스스슷!
엑스칼리버를 검기가 휘감았다.
몇 배는 증폭된 순백의 검기 위로 백금색의 입자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백금색의 검기. 역사상 오직 아서만이 다룰 수 있던 검기다.
“넌··· 너는 대체···.”
베른하이겐이 뒷걸음질쳤다.
공포에 질린 베른하이겐을 앞에 둔 채 나진은 숨을 내뱉었다. 지금 나진이 떠올리는 것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
떠오르는 기술은 하나뿐이었다.
“베른하이겐.”
나진은 무릎을 굽힌 채 검을 들어 올렸다. 구태여 입을 연 것은, 지금 자신이 펼칠 기술의 의미를 이제는 나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명예를 버렸다. 너는 긍지를 잃었다.”
아탕가의 검술.
별을 쫓는 기사 이반이 보여준 검.
“그러므로, 너는 기사의 이름을 더럽혔다.”
명예와 긍지를 잃은 이를 벌하기 위한 검.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기사와 정 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베른하이겐을 향해 나진은 선언했다.
“나는 나진.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종자.”
아직 기사가 되지 못했으며.
명예를 가지지 못했지만.
긍지가 무엇인지 나진은 알게 됐다.
“너를 베겠다.”
그거면 충분했다.
아탕가의 검을 휘두를 이유와 명분으론.
너를 베겠다는 선언.
나진은 별의 검을 쥔 채, 아탕가의 자세를 취하고, 아탕가의 구절을 읊었다. 그것은 기사왕이라 불렸던 아서가 선포했던 계율이자 가장 오래된 계율이다.
악마를 베어라.
기사의 이름을 더럽힌 이를 벌하라.
아서가 선언했던 계율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그 후계자의 입을 통해 다시금 발음됐다. 그 선언 앞에 베른하이겐은 깨달았다. 결코 도망칠 수 없음을.
더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베른하이겐은 결국 선택한다. 괴성을 내지르며 베른하이겐이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화된 악마의 육체는 여전히 강건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어둠이 출렁인다.
쿠웅!
땅을 내려찍으며 베른하이겐이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의 자랑이자 상징과도 같은 기술. 그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 거대한 트롤조차 일격에 갈라낸 검을 베른하이겐은 선보였다.
휘두르는 검을 따라 풍압이 인다.
어둠이 휘감긴 검은 가속한다.
그야말로 베른하이겐이 보일 수 있는 최강의 일격. 그의 모든 것이 담긴 일격이다. 그 일격을 나진은 흘려보낼 생각도, 회피할 생각도, 중간에 틀어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정면에서 모든 걸 꺾어낸다.
그것이 아탕가의 검이고 이반의 검이었기에.
베른하이겐의 대검이 최고속도에 도달한 순간 나진의 검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베른하이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별빛을 끌며 나진의 검이 약진했다.
서걱.
울려퍼지는 것은 고요한 절삭음.
베른하이겐이 휘둘렀던 대검이 서걱, 소리를 내며 잘려나갔다. 최고속도에 도달한 대검을 나진은 너무나도 쉽게 갈라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진의 검은 베른하이겐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성검(星劍)이 어둠을 가른다.
성검(聖劍)이 악마를 벤다.
베른하이겐의 왼쪽 옆구리에 파고든 검은 베른하이겐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베어 가르며 튀어 올랐다. 그 검격에는 조금의 결림도 없었다. 악마의 육체가 지닌 저항력은 엑스칼리버 앞에선 다만 무의미했으므로.
정면에서 상대의 기술을 박살내며 압도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탕가의 검술이다. 나진은 일격에 악마를 양단했다.
엑스칼리버가 베고 지나간 궤적을 따라 별빛이 솟구쳤다. 솟구친 빛은 악마의 영혼과 정신을 불태우고, 그 존재를 말살한다. 베른하이겐의 육신에 깃들었던 고대의 악마 아르칸드가 한 줌의 재로 사위었다.
쿠웅.
절단면을 따라 베른하이겐의 상반신이 기울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쿠웅,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진 베른하이겐의 시체. 그 너머로 나진은 보았다.
땅에 길게 새겨진 검흔(劍痕)을.
대검을 가르고, 베른하이겐을 베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나진이 휘두른 검은 땅에 길다란 흔적을 새겨놓았다.
그 흔적을 바라보며 나진은 검을 갈무리했다.
권능을 부리던 베른하이겐의 죽음. 결계는 흐릿해지고 어둠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나진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엑스칼리버를 수납했다. 별빛으로 변한 엑스칼리버가 손목에 새겨진 별자리로 빨려 들어갔다.
“후우······.”
그렇게 나진이 호흡을 가다듬고, 전투의 희열을 갈무리하고 있을 무렵이다.
“진입···! 진입하라!”
결계의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른하이겐의 죽음으로 사라져가던 결계가 파창, 소리를 내며 바깥에서부터 박살 났다. 그렇게 결계를 박살 내며 누군가 결계의 내부로 발을 디뎠다.
갑옷을 입고 대열을 갖춘 기사들.
그 갑옷에 새겨진 것은 아탕가의 문양이다. 악마 기사와 결투를 벌이던 용맹한 청년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악마의 결계에 맨몸으로 뛰어든 것이다.
“청년을 보호하라! 대열을 갖춰 베른하이겐을··· 압박···?”
그 선두에 서서 지시를 내리던 아탕가의 기사, 아르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반으로 갈라진 베른하이겐의 시체와 멀쩡히 서 있는 나진의 모습을 발견한 까닭에.
파스슥.
이내 결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햇빛이 내리쬈다. 쨍하니 내리쬐는 태양 빛 아래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