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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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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용병단.

그들은 캄브리아에 본진을 두고 있긴 하나, 그 활동 범위는 단순히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 한정되지 않았다. 용병들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도 한몫하겠지만, 용병단의 단장이 워낙 거물인 까닭이 컸다.

캄브리아에 다섯 뿐인 백각(白角) 중 하나.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검사.

붉은 눈, 로젤린 아스칼로.

용병 업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이자, 걸작을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강자 중의 강자. 소드 시커급의 강자가 이끄는 용병단은 내륙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에, 붉은 눈 용병단의 명성은 캄브리아 바깥에서도 통했다.

캄브리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인 가르체아 상단과 전속계약을 맺었으며, 캄브리아의 내외에서 모두 이름을 떨치는 용병단.

그렇기에.

붉은 눈 용병단은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 들어온 모험가들이 한 번쯤은 꿈꿔봤을 최고의 직장이었다.

[붉은 눈 용병단 발주.]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

[최소 수주 등급 청(靑).]

그런 붉은 눈 용병단이 주기적으로 발주하는 의뢰가 하나 있다. 그것은 가르체아 상단이 상로(商路)로 쓰곤 하는 도첸베르크 삼림에 모여든 마물들을 소탕하는 의뢰다.

주기적으로 마물을 소탕해야 하기에, 세네달에 한 번씩 열리는 의뢰. 이는 얼핏 보기엔 평범한 의뢰에 불과하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서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은 이런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붉은 눈 용병단의 입단 시험.

그 의뢰에서 실력을 증명한 이들이, 로젤린 아스칼로의 눈에 들어 붉은 눈 용병단에 입단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현재 붉은 눈 용병단의 부단장을 맡고있는 바르거란 인물 역시 그런 사례였고.

‘실력을 증명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끌리는 의뢰.

그렇기에 이는 누군가에겐 자신을 증명할 기회였고.

또 누군가에겐 출세의 기회였으며.

“가볼까요.”

그리고 또 누군가에겐······.

“멀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낼 기회였다.

도첸베르크 삼림 토벌전.

삼림의 초입에 모여든 모험가가 많았다.

그들 중 태반이 청색 등급의 모험가였으며, 개중에는 녹색 명패를 달고 있는 모험가 역시 존재했다.

흑, 자, 청, 녹, 적, 백.

여섯개로 분류된 등급 중 청색과 녹색에 속한다는 것은 이 도시에서 구를 만큼 구른 모험가란 뜻이었다. 수많은 의뢰를 수행하며 실적을 쌓고, 제 실력을 증명한 도시의 고참 모험가들.

또한, 그들은 정체된 이들이기도 했다.

녹색 등급까지 오르는 일이 힘들다곤 하나, 적색 등급의 모험가부터는 ‘무언가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으니까.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모험가들의 태반은 청색과 녹색 등급에 머무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번 의뢰는 그들에게 있어선 기회였다.

붉은 눈 용병단의 단장의 눈에 든다면, 오랜 정체를 깨고 위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삼림의 초입에 모여든 모험가들의 기세는 살벌했다. 평소라면 서로를 견제하며 날을 세웠을 테지만······.

“······.”

오늘만큼은 달랐다.

서로에게 향해야 할 모험가들의 시선은 분산되지 않고 한군데로 쏠려 있었다. 그곳에는 새까만 명패를 달고 있는 청년이 하나 서 있었다.

흑색 등급.

깜댕이라 불리는, 이 기회의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등급. 특별할 거라곤 하나도 없으며 아직 실적도, 경험도 쌓지 않는 초짜 중의 초짜들이 머무르는 등급이었다.

“···쯧.”

누군가 혀를 찼다.

흑색 명패를 달고 있는 청년에게 들으라는 양 모험가들을 쑥덕댔다. 그것은 조롱이었으며, 또한 비난이었다. 당연하게도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 의뢰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 의뢰를 수주할 자격을 지니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모험가들 모두가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수많은 의뢰를 수행하며 실적을 쌓아왔고, 등급을 올리기 위해 발버둥 쳐 온 것이다. 노력 끝에 그들은 제 명패를 청색과 녹색으로 물들이며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저 청년은 어떠한가.

어떠한 실적도 쌓지 않고, 어떠한 노력도 없이 흑색 등급의 명패를 보란 듯이 달고 이곳에 나타났다. 디에타 상단의 보증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청년이 목에 걸고 있는 흑색 명패는 이곳에 모인 모험가들에 대한 조롱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분 나쁘네.”

“이럼 우리가 뭐가 돼?”

반감을 사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상황.

선배 모험가들의 날이 서 있는 시선. 혀를 차는 소리. 조롱과 투덜거림. 그것을 당사자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장난 아니네.

‘그러게요.

나진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쏠려있는 시선과 선배 모험가들의 살벌한 분위기를. 그들의 감정을 나진이라고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 사람들 입장에서야 당연한 거죠.

저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으니.

저들은 저 등급에 오르기까지 분명 숱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겠지. 자신의 명패를 밝은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그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노력해 온 저들의 입장에선.

당연하게도 자신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왜 고개 숙이기라도 하게?

‘그건 아니죠.

나진이 피식 웃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요.

저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저들의 장단에 자신이 맞춰줄 이유는 없었다.

나진은 저들의 눈치를 볼 생각도.

저들에게 미안해할 생각도.

하물며 몸을 사릴 생각도 전혀 없었다.

지하도시에서 벗어난 그날, 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맹세한 순간부터 나진은 각오를 다졌다.

‘정점에 오른다는 것은···.

수많고 수많은 이들을 짓밟고.

그들의 노력을 짓밟고, 그들의 한평생을 한순간으로 일축하며 그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것이 정점에 서고자 하는 이가 가져야 할 각오.

겨우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걷기 시작한 길이 아니었다. 선배 모험가들의 시선에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러들기는커녕 나진은 어깨를 펴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어디 노려볼 거면 노려보라는 것마냥.

-그래, 그거지. 뭘 좀 아네.

그런 나진의 태도에 멀린이 만족스레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나진의 귓가에 울려 퍼질 무렵이다.

쿠웅.

한순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거대한 무언가가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엄습했다. 압박감을 느끼는 건 나진뿐만이 아니었다. 삼림의 초입에 모여있던 모험가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압박감.

털썩, 하고 몇은 제자리에 주저앉았고.

서 있는 이들조차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땅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진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강자들이 내뿜는 기세. 과거 이반에게서 종종 느껴본 기세였다. 하지만, 이반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짙은 기세. 이는 이 압박감의 주인이 자신보다 강자임을 의미했다.

‘하지만.

나진이 숨을 내뱉었다.

아래로 향하려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경험해 봤다.

이반의 것보다 강하다곤 하나, 최근에 나진이 경험해 본 어느 별자리의 것에 비교해 보면 한없이 가벼운 압박감이었다.

멀린과의 첫 조우.

그곳에서 멀린이 내뿜었던 위압감을 맨몸으로 받아낸 나진이었고, 그 압박감을 떨쳐내 본 나진이었다. 멀린은 후에 그것이 진심을 낸 것이 아니었음을 피력했지만··· 그거야 뭐 어쨌든 간.

성좌의 압박감조차 떨쳐냈는데, 이 정도 압박감을 떨쳐내지 못할 리가 없다.

꾸욱.

주먹을 쥔 채 나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이 압박감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진이 확인하려는 순간이다.

“이야, 반응 좋네.”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울렸다.

고개를 든 나진과 시선을 마주친 것은, 검은 머리칼을 한갈래로 땋아 내린 여인이다. 여인의 붉은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딱 보니 네가 그놈이구만?”

뱀년이 보증했다는 깜댕이.

그녀가 미소 지으며 팔을 들어 올렸다. 숲의 초입에 모여있던 모험가들을 찍어 누르던 압박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라진 압박감은 오직 나진에게만 향했다.

“와, 이래도 고개를 들고 있네. 너 뭐냐?”

신기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

그 여자의 이름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길드의 회관에서 관련된 본 적이 있었으니까.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백각 등급의 용병.

붉은 눈 용병단의 단장, 로젤린 아스칼로.

“마나를 많이 쌓아둔 것 같지도 않고, 마나 양을 보면 소드 엑스퍼트도 아닌 것 같은데··· 뭐지? 너 뭐 숨기고 있는 거 있냐?”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흥미가 더해졌다.

로젤린이 직감한 것은, 눈앞의 청년이 무언갈 숨기고 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고자 그녀가 나진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다.

파직!

불똥이 튀었다. 나진을 찍어 누르고 있던 로젤린의 마나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그 순간 로젤린은 보았다. 사방의 마나가 한순간에 나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는 흐름.

그 흐름에 그녀가 시선을 빼앗긴 찰나다.

콱.

나진의 손이 움직였다. 움직인 손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로젤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로젤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하는 겁니까, 이게?”

나진이 쏘아붙였다.

저 손이 제 몸에 닿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나진은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직감을 믿고 움직인 행동. 그것이 최선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와.”

감탄을 내뱉는 로젤린의 모습에서, 자신의 행동이 최소한 오답은 아니었음을 나진은 알 수 있었다.

“와!”

로젤린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제 뒤에 서 있던 용병단의 부단장 바르거를 향해 나진에게 붙잡힌 손목을 들어 올렸다.

“바르거 보이냐? 얘 내 손목 잡았어!”

“잘 보입니다. 돌발 행동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드렸는데, 왜······.”

“이야, 신기하네. 너 방금 그거 뭐냐?”

바르거의 말을 잘라낸 로젤린이 휙, 고개를 돌려 다시 나진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나진은 대답하지 않았고, 로젤린은 미소 지었다. 적당히 손을 흔들어 나진의 손길을 떨쳐낸 뒤 그녀가 제 턱을 매만졌다.

“하긴, 그 뱀 년이 괜히 보증을 서줬을 리는 없지. 신기한 놈이네. 이거 마음에 드는데······.”

로젤린이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품에서 동전 한닢을 튕겼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낚아챈 나진은 제 손바닥에 들린 동전을 보았다.

백금화였다.

청색 모험가들조차 한두 달을 바짝 일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백금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나진에게 튕긴 로젤린은 나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실례했다. 그걸로 없던 셈 치자고.”

마나를 거둔 채 로젤린이 툭툭, 나진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기고선 몸을 돌렸다. 삼림의 초입에 마련해 둔 단상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나진은 말없이 바라봤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느낌.

동시에 나진은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모험가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음을. 그들은 모두 보았다. 어깨를 찍어 누르는 거대한 압박감 속에서 로젤린에게 저항하는 나진의 모습을.

백각 등급의 모험가.

소드 시커가 내뿜는 기세.

나진은 그 기세를 정면에서 받아쳤으며, 로젤린의 손목을 낚아채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모험가들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과 같은 경멸과 분노 대신 경악과 의문으로 가득 찼다.

밑바닥 중의 밑바닥, 흑색 등급의 모험가가.

도시의 정점, 백각 등급의 모험가에게 저항했다.

그 사실에 청색과 녹색 등급의 모험가들은 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악했고, 나진에게서 등을 돌린 채 단상으로 올라가는 백색 등급의 로젤린은 제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마치 사냥감을 찾았다는 것처럼.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백각 등급 모험가가 벌인 소동에 정면으로 항의할 만한 용기를 지닌 모험가는 없었고··· 의뢰 보수금을 인상해 줄 것을 로젤린이 약속한 시점에서 잡음은 나오지 않았다.

“뭐, 그건 그거고.”

짧게 상황 설명을 한 로젤린이 뒤로 물러섰다. 제 뒤에 서 있던 바르거를 그녀가 앞으로 떠밀었다.

“의뢰 내용은 얘가 설명해 줄 거야.”

“···붉은 눈 용병단의 부단장, 바르거다.”

떠밀리듯 앞으로 나온 바르거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의뢰의 내용은 단순하다. 삼림의 중심, 등급이 높은 마물들이 모여있는 곳은 우리 붉은 눈 용병단이 담당한다. 너희들은 숲의 외곽을 돌면서 튀어나오는 마물들을 사냥하면 된다.”

삼림의 지도를 걸어놓은 채 그가 말했다.

“인당 최소 토벌 수는 열 마리다. 마물에 따라 계산되는 마릿수는 다르니 이 점은 앞서 의뢰서에 적힌 정산 방식을 참고하도록. 그리고 최소 토벌 수를 넘겨 사냥한 마물에 대해선 추가금을 지불하겠다.”

주의할 점과 특이 사항.

그리고 몇 개의 조항에 대한 안내를 그가 마쳤을 무렵이다. 바르거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로젤린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지.”

그녀가 세 손가락을 쫙 펼쳤다.

“상위 세 명에겐 추가 보수가, 그리고 가장 많은 마물을 토벌한 사람에겐 특별 보수를 약속하지. 나 로젤린 아스칼로의 이름을 걸고 말하건대, 보수가 섭섭하진 않을 거야.”

로젤린 아스칼로가 미소 지었다.

“아, 그리고 주의 사항.”

그녀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경쟁을 위해 어느 정도의 견제는 이해하지만, 선은 넘지 마라. 걸리면 알지?”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모험가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로젤린은 단상에서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진을 한번 흘겨보고선, 바르거를 대동한 채 숲의 중심으로 향했다.

의뢰는 시작됐고 모험가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는 모험가들을 흘겨보며 나진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호흡을 고르고, 허리춤에 걸어둔 칼자루를 단단히 조였다.

-목표는?

귓가에 울리는 멀린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뭘 당연한 걸 묻습니까.”

나진이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당연히 1등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