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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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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자네, 검의 교단에 입문해 볼 생각이 없는가?”

볼크만이 건넨 제안 앞에 나진은 침묵했다.

말투는 가벼우나, 이것이 가볍게 던진 제안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안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제 앞에 서 있는 볼크만이란 사제가 특별한 걸 수도 있겠지만, 볼크만과 검을 나누며 나진은 교단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됐다. 눈앞의 사제에게선 순수한 열망이 느껴졌으니까.

눈앞에서 기술을 베껴도, 그가 단련해 왔을 한평생을 한순간으로 일축해도, 볼크만은 조금도 꺼리지 않은 채 오히려 더 다양한 기술을 보여줬다.

마치 이것도 한번 베껴보라는 양.

그 모든 기술을 받아마신 입장에서 나진은 볼크만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종의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열등감, 질투, 허무함··· 그러한 감상에 젖는 행위 자체가 손해라는 양 검(劍)에 몰입하는 볼크만의 모습은 존경할 만한 것이었으니.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물론 교단의 모든 인물이 볼크만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검에 진심인 이들만이 모이는 곳이다. 뒷배경도, 출신도 따지지 않는 곳이니 입문한다면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나진은 고민했고, 멀린은 침묵했다.

멀린은 길잡이일 뿐 길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떤 길을 걸을지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길을 걷는 이의 몫이었으므로.

매력적인 제안.

쉽고 안정적인 길.

눈앞에 놓인 잘 포장된 도로를 바라보던 나진은 이내 쓰게 웃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이런 길로는 자신이 바라는 곳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나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진이 볼크만에게 고개를 숙였다.

검의 교단에 속한 채, 벽을 보고 수련을 해 경지를 올리는 것은 쉽고 간단한 길. 하지만 나진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나진은 이제 막 세상에 나왔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을 배워야만 더 넓은 곳으로 향할 수 있을 테니까. 쉽고 간단한 길이 아닌 거칠고 위험한 길을 걸어야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아서왕이 그랬던 것처럼.

아서와 같은 길.

그것이 나진이 걷고자 맹세한 길이었으므로. 나진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볼크만은 나진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자네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자네에겐 자네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제안을 거절해 실망한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왜인지 그럴 것 같았다는 양, 볼크만은 제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러다가 ‘아’ 하고 짧게 탄식을 내뱉고선 그가 입을 열었다.

“이반 자네, 이 도시에 머무를 생각이겠지?”

“예, 최소한 1년 정도는 머무를 생각입니다.”

“기간이 꽤 구체적이군. 목표하는 거라도 있나?”

잠깐의 고민 후 나진은 말했다. 포부를 밝히는 것쯤이야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될 테니까.

“백각(白角) 등급에 오르는 것입니다.”

백각 등급.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의 정점. 소드 시커급의 강자들이 속한 등급이었다. 나진의 포부를 들은 볼크만은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앞의 청년은 이제 막 검게 물들인, 흑각의 명패를 쥔 초짜중에 초짜일 뿐이다. 그런 초짜가 고작 1년 만에 이 도시의 정점에 서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허황된 망상이었고, 모두가 비웃을 만한 말.

그러나 볼크만은 나진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나진의 어깨를 투박한 손으로 툭툭 두들겼다.

“암, 꿈은 크게 꾸어야지.”

눈앞의 청년에겐 재능이 있었으니까.

물론 1년 안에 백각 등급에 오르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청년이 이 도시의 정점에 오르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보아하니 소드 엑스퍼트에 근접한 듯한데···.

검기를 뽑아내는 걸 보지 못해 확신을 하진 못하겠지만, 저 청년이 소드 시커에 오르기까지 얼마만큼의 세월이 필요할까? 그 기간을 가늠해 보다가 볼크만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재에게 범인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멍청한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숨기고 있는 게 많은 것 같았으니까. 그 이름도, 나이도, 하물며 경지까지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가 없었다.

‘수상쩍긴 하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야, 검에 진심인 청년이었으니까.

볼크만은 나진과 검을 맞부딪치며 알 수 있었다. 검을 배우려는 자세는 진지했고,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한계까지 제 몸을 몰아붙이는 집념이 느껴졌으니까.

“그렇다면.”

볼크만은 나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나진에게 제안했다.

“내 도움을 주도록 하지.”

“···예?”

“나는 종종 내 검을 시험할 자리를 찾아 이 도시에 찾아오곤 한다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찾아오지. 그때마다 자네의 검을 봐주겠네.”

“그건······.”

“자네의 검술 스승이 되어주겠단 이야길세. 뭐, 이미 오늘 밑천까지 탈탈 털린 것 같긴 하다만.”

볼크만이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가 검기를 뽑게 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지. 검기를 사용한 검술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긴 하지만···.”

나진이 머뭇거렸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너무 자신에게 형편이 좋은 이야기였으므로. 그래서야 볼크만이 득 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 나진의 눈빛에 볼크만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자네, 검의 계율을 다 알고 있는 것 아니었나? 설마 내게 검투를 걸 때 쓸만한 계율만 외운 것은 아니겠지?”

뜨끔한 나진이 시선을 살짝 내린 가운데, 볼크만은 웃음을 흘렸다. 나진이 얄팍한 수로 자신을 검투에 끌어들였음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알고 있었음에도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검을 나눴을 뿐이다.

“검의 계율에는 이런 문장이 있지.”

볼크만이 제 칼자루를 매만졌다.

“가르침을 구하는데 높고 낮음은 없다.”

상대가 불세출의 천재든, 뒷골목의 부랑배든,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이든··· 상대가 검을 들고 있다면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있다.

“자네와의 대련은 내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어. 덕분에 검이 더 날카로워진 기분이군. 그러니,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입장이야.”

“그러시다면야.”

나진이 미소 지었다.

볼크만이 건넨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할 말일세. 이반.”

“얼떨결에 검술 스승을 얻었네요.”

-원탁의 기사들이 저런 애들을 참 좋아했지. 특히 베디비어가 저런 애들 보면 아주 환장을 했어.

멀린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낭만이 있다나 뭐라나. 하나에 몰두해서 미쳐 사는 애들을 보면 가슴이 들끓는다나?

그건 그렇고.

멀린이 짧게 숨을 내뱉곤 이야기했다.

-아까 좀 괜찮더라.

‘뭐가요?

-거 왜. 볼크만인가 하는 사제 놈 제안을 거절한 거 말야. 그거 좀 괜찮았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나진의 모습에 멀린이 멋쩍은 듯 답했다.

-네가 속으로 말한 거 있잖아. 어렵고 험한 길이 가치가 있다고. 그 부분 좀 괜찮았다고.

‘그게 들렸어요?

-네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은 거의 다 들려. 그러니까 내 험담 할 생각 마.

음험한 마법사 같으니라고.

-들린다니까? 너 진짜 죽을래?

멀린의 으름장에 나진이 웃었다.

그렇게 멀린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진은 길드의 창구에 들어섰다. 오크의 목이 담긴 자루를 제출하고 의뢰 완수금을 수령했다.

딸깍.

길드의 창구에 놓인 마도구에 명패를 끼워넣자 숫자가 올라가며 정보가 갱신됐다. 마도구를 조작하니 지금까지 나진이 수행한 의뢰 목록이 쭉 올라왔다. 아직은 별 볼 것 없는 잡심부름만 가득한 의뢰.

‘슬슬 제대로 된 의뢰를 받아야겠네요.

슬슬 등급을 올리긴 해야 했다.

등급을 올려야 더 높은 수준의 의뢰를 받을 수 있고,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흑. 자. 청. 녹. 적. 백.

여섯 개의 등급으로 분류된 등급.

당장 다음 목표인 자색으로 등급을 올리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의뢰를 하나둘 쌓아가다 보면 금방 올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천천히 갈 생각은 없었다.

바깥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췄다. 마나 연공법과 검술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으며, 이 도시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도 얼추 감을 잡았다.

이 정도면 됐다, 라고 나진은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고.

단순한 의뢰들을 받아 가며 안주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지금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이니까. 실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

엑스칼리버와 백금색의 검기는 숨긴다 쳐도, 검기의 편린 정도는 뽑아내도 괜찮으리라.

‘높은 등급의 의뢰를 받을 수 있음 좋겠는데.

문제는 나진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간단한 의뢰야 그냥 받을 수 있겠지만, 용병과 모험가도 결국엔 신뢰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어느 정도 실적이 쌓여야 제대로 된 의뢰를 받을 수 있단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진에겐 실적이 없었다.

대뜸 검기의 편린을 보여준다 해도 실적이 없으니 중요한 의뢰를 맡겨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찾아보면 하나쯤은···.

그렇게 나진이 길드의 창구에서 의뢰 목록을 살펴보고 있을 무렵이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나진에게 다가와 툭툭, 하고 나진의 어깨를 건드렸다.

나진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엔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서 있었다. 풀어헤쳐 놓았던 저번과는 달리, 한 갈래로 정갈하게 묶어 내린 연갈색의 머리칼. 그리고 번들거리는 샛노란 눈동자.

“여기서 또 보네요?”

디에타 상회의 주인.

디에타 아르베니아가 나진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보아하니 괜찮은 의뢰를 찾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녀가 제 가슴팍에 달아둔 명패를 가리켰다.

길드에서 공인한, 이 도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거대 상단의 상단주. 첫 만남에서야 몰랐지만 지금의 나진은 안다. 눈앞의 소녀가 이 도시에서 얼마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저랑 거래 하나 하실래요?”

그녀가 주섬주섬 장갑을 벗었다.

그리곤 나진에게 맨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거절 안 하실 거죠?”

검의 교단의 본산.

밤늦게 교단으로 복귀한 볼크만은 짐을 풀어놓고선 곧장 수련실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나진과의 검투를 몇번이고 복기했던 볼크만이다.

‘검을 휘두르고 싶다!

훅 불면 사라질 것 같은 깨달음.

그 깨달음을 당장 몸에 새겨넣고자 볼크만은 수련실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수련실에서 볼크만은 한동안 검을 휘둘렀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서 마주친 청년.

자신이 청년에게 기연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청년 역시 볼크만에게 기연이었다. 청년과 나눈 검투 덕에 자신의 검이 그리는 궤적이 훨씬 정교해졌음을 볼크만은 느꼈다.

“후우.”

그렇게 만족스레 검을 휘두르고 땀방울을 닦아내고 있을 무렵이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오자마자 수련이라니. 자네답군.”

“···자네 있었나?”

볼크만이 뒤를 돌아봤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거늘, 그곳엔 자신의 오랜 친우가 서 있었다. 마흔 줄인 자신의 또래이지만 겉보기엔 20대라 해도 믿을만한 검사. 그가 제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이 더 날카로워졌군?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그리 말하며 그가 손에 쥔 술병을 흔들었다.

한잔하자는 뜻이었다. 수련장에서 술병을 깠다간 고위 사제들에게 한소리 들을 게 뻔했지만, 볼크만은 웃음을 흘리며 그가 건넨 술잔을 받아들였다.

고위 사제들조차 술잔을 흔드는 저 사내에겐 한마디도 꺼낼 수 없을 테니까.

“좋은 기회를 잡아 깨달음을 얻었지.”

“호오. 좋은 기회?”

“그렇다네. 내가 캄브리아에서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술잔을 기울이며 볼크만은 말했다.

본래대로라면 캄브리아에서 만난 청년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줄 생각은 없었다. 청년이 가진 재능은 위험한 것이었고, 누군가는 그 재능을 시기하고 강제로 청년을 교단에 입문시키려 할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눈앞의 사내에게만큼은 달랐다.

그럴 위인이 아님을 알고 있을뿐더러, 누군가의 재능을 시기할 만큼 그릇이 작은 사내도 아니었으니.

“대단한 청년이었어. 말하기엔 이십 후반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십대로 보이더군.”

“그렇단 말이지.”

“내 밑천을 다 털렸지 뭔가? 내가 한평생 단련해 온 검술을 눈앞에서 베껴가는데 어이가 없더군. 크게 될 청년이야. 배움에 대한 의지도 강하고.”

볼크만의 말에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술잔을 기울이며 그가 미소 지었다.

“그거 흥미롭군.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보통내기가 아닐 텐데.”

사내는 안다. 제 오랜 친우인 볼크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볼크만은 무언갈 과장하는 법 없이 담백하게 검을 휘두르는 사제였으니.

“한 달마다 찾아간다 했나?”

“그럴 생각이네.”

“그럼 다음에 그 도시에 들를 땐 나도 동행하도록 하지. 한 번쯤은 그 청년을 봐보고 싶으니 말일세.”

“······자네가?”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 한때 나도 거쳐 갔던 장소이지 않은가. 오랜만에 방문해도 좋겠어.”

활짝 열린 수련실의 창문 너머.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에서 여섯 개의 별이 반짝였다. 그것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내가 지닌, 오직 그만을 위해 빛나는 별이었다.

검의 교단의 주인.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연소 소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검의 교단의 정점.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여섯 개의 별을 지닌 검사.

검성(劍聖), 카론은 미소 지었다.

“그 청년이 내게도 기연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