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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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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나진은 갱도를 달렸다.

그것은 지하도시의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었으며, 이반이 열어준 길이기도 했다. 그 길을 따라 달리며 나진은 이를 악물었다.

소년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반이 어떤 결심으로, 어떤 생각으로 이 길을 열어주었는지 나진은 모르지 않았다. 나진도 알고 있다.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반이 죽는단 사실을. 이반 또한 어쩔 수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반은 나진을 보내줬다.

그것은 이반이 죽음을 각오했음을 의미했다.

검을 들어올렸던 이반의 얼굴에 머물렀던 고뇌가, 흔들리던 이반의 칼끝이, 자신을 갱도 안쪽으로 떠밀고 입구를 막아섰던 이반의 모습이 나진의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나진은 이를 좀 더 세게 악물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거냐고. 왜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거냐고. 그 이유를 나진으로선 알지 못했다. 그간의 정으로 이반이 자신을 보내줄 리가 없었으니까.

명예와 긍지.

그것의 무게를 소년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이반이 마지막까지 무엇으로 남고자 했는지 어린 소년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선택을 한 순간 이반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났음을 소년은 기억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그곳에서 외쳐라.」

「내가, 아탕가의 기사 이반이 있었음을.」

빛나는 눈동자로 꿈을 이야기한 어느 기사의 모습은 나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 지닌 무게였다.

결코 가벼워질 수도.

결코 잊어버릴 수도 없는 것.

꾸욱, 심장을 짓누르는 무게감을 느끼며 나진은 달렸다. 갱도는 어둡고 차가웠으며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광석등의 불빛조차 사라진 어두컴컴한 갱도를 나진은 하염없이 달렸다.

어느 용병과 별을 쫓는 기사.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무게를 짊어진 채 소년은 높은 곳을 바라봤다.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년은 맹세했다.

저 밤하늘에 자신만의 별을 새기겠노라고.

가장 높은 곳에 자신의 별을 걸어두겠노라고.

별을 쫓아온 추격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낡은 갱도로 향하는 입구가 있다. 그곳으로 소년이 도망쳤단 사실을 짐작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갱도로 들어가 소년을 죽이는 간단한 일뿐이었으나.

“······.”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갱도의 입구를 지키고 선 이가 있었으며, 그 존재가 내뿜는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으므로. 저 갱도로 들어서기 위해선 저자를 쓰러트려야 함을 추격자들은 직감했다.

캉.

추격자들이 하나둘 검을 뽑아 들었다.

협력자로 알고 있었던 전(前) 기사를 향해 그들은 검을 겨누었으나, 그들이 착각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이반.”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명예를 잃고 지하도시에 떨어진 반쪽짜리 기사가 아니다. 비록 명예를 잃었을지언정 그는 마지막까지 긍지를 지켰고, 먼 훗날 빛날 별을 위해 제 목숨을 내던졌다.

맹세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사이고자 한 이.

미련하지만, 미련하기에 또한 숭고하다. 그 숭고함을 감히 누가 비웃을 수 있을까.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기사다.

“아탕가의 기사이며.”

별이 뜨지 않는 지하도시.

어스름한 광석등만이 낮게 깔린 죄인들의 도시에서.

“별을 쫓는 기사, 이반이다.”

기사의 검에 검기가 휘감겼다.

싯푸르게 빛나는 검기. 그것은 흔한 색의 검기이며 특별한 것도 없는 검기다. 나진이 쥔 별의 검처럼 지하도시를 환히 밝히지도 못하며, 나진의 검기처럼 별빛을 닮지도 않는 흔해 빠진 것.

하지만, 그럼에도.

이반이 쥔 검은 빛나고 있다.

“이 앞으로는 한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

빛나는 검을 쥐고.

무언갈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반은 저 자신에게 떳떳하게 외칠 수 있었다. 자신이 기사임을. 아탕가의 기사이자 별을 쫓는 기사임을 자랑스레 외칠 수 있었다.

그 사실에 이반은 미소 지었다.

미소 짓는 이반을 향해 추격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추격자들은 열이 넘어가며, 그들이 든 검은 날카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반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아탕가의 기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것이 아탕가의 긍지이기에.

이반은 빛나는 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종자가 이 도시를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 자신이 소년에게서 빼앗은 만큼의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서.

‘와라. 얼마든지.

명예도 긍지도 모르는 이에게 길을 열어줄 만큼, 나의 긍지는 가볍지 않으니.


교단의 기사 베를로.

별빛이 솟구쳤던 곳에 뒤늦게 도착한 베를로의 얼굴은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베를로가 기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므로.

사방에 낭자한 핏자국.

잘려 나간 팔다리.

그리고, 널브러진 암부들의 시체들.

얼핏 수를 세봐도 스물이 넘어갔다. 이 도시에 투입됐던 암부의 태반이 이 자리에서 명을 달리했다. 크나큰 손실이었으나, 목적만 이룬다면 이 정도 손실은 감수할만했다.

하지만 그 목적 또한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이곳에 별의 검을 뽑은 소년의 시체는 없었으니까. 베를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그곳엔 이 참상을 만들어 낸 범인이 서 있었다.

이반.

갱도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제 오랜 후배의 모습에 베를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이 무슨 미련한 짓이란 말인가.

자신이 건넨 호의를 짓밟은 이반에게 베를로는 분노를 느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표정이 구겨졌다.

“이반, 자네 미쳤나?”

이반은 답하지 않았다.

“나와 싸움이 될 거라 생각하나? 교단 전체와 싸우기라도 할 셈이야? 이 무슨 미련한···!”

베를로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일이 꼬였다. 대사제 오를랑께서 맡긴 임무. 이 임무의 책임자는 자신이었고, 이래서야 처벌을 피할 수가 없었다.

홀로서라도 추격을 계속해야 했다.

신경질적으로 검을 뽑아내며 베를로가 한 걸음 내디딘 순간이다. 침묵한 채 미동도 하지 않던 이반이 입을 열었다.

“거, 선배.”

이반이 히죽였다.

열이 넘는 암부를 한꺼번에 상대하며 그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길게 베인 어깨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뱉는 숨은 거칠고 호흡 또한 일정하지 않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

그러나 이반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이반이 쥔 검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꼴이 그게 뭐요?”

“···뭐?”

“꼴이 그게 뭐냐고 물었소. 명예도 긍지도 버리고 기사단을 떠나길래···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붙잡았나 싶었더니만.”

이반이 조소했다.

“붙잡은 게 아니라 목줄을 붙잡힌 것 같은데? 여기 널린 시체들이랑 선배가 다를 게 뭐요? 내 눈에는 똑같은 교단의 사냥개로밖에 안 보이는데.”

명백한 조롱이자 비웃음.

베를로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순 없군. 이는 교단에 대한 모욕이다. 그 말을 철회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크하하!”

이반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탕가의 기사단을 떠나더니 기사로서의 마음가짐도 잊어버린 모양이요. 잊어버렸다면 이 못난 후배가 직접 알려드려야겠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검.

“모욕은 결투로 씻어내는 것. 명예와 긍지는 검으로 증명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사의 계율(戒律)이다. 교단의 더러운 사냥개야.”

“···하!”

명백히 선을 넘은 도발. 머리를 뜨겁게 달구는 폭언에 베를로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검기를 뽑아냈다. 이반의 것과 같은 싯푸른 검기. 그러나, 이반의 것처럼 빛나지는 않는 검기가 베를로의 검을 휘감았다.

검을 휘감은 채 베를로가 이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이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툭 밀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방심해선 안 됨을 베를로는 알았다. 궁지에 몰렸다 한들 이반의 눈동자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 눈빛에서 베를로는 섬뜩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자가 내뿜는 기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검을 놓지 않기를 맹세한 이의 기백.

어둠 속에서 검과 검이 맞부딪쳤다. 검기의 편린이 튀어 오르고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그것은 어느 기사가 흘리는 피였고, 또한 기사의 삶이었다. 검을 맞부딪치며 이반은 미소 지었다.

더는 들리지 않았으니까.

등 뒤에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이걸로 시간은 번 거다. 빌어먹을 종자 놈아.

제가 모셔야 할 기사를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게 만드는 종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딨을까. 하여간 빌어먹을 애송이 같으니라고.

마지막까지 이반은 웃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기사일 수 있었으므로.

물길이 떨어지는 폭포.

가파르게 떨어지는 절벽에 말뚝을 박아 넣으며 나진은 땅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미끄러운 절벽과 물방울에 손이 미끄러져도 몸에 묶어둔 밧줄과, 몸의 반동을 이용해 나진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연속된 전투에 지친 몸이었지만 나진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 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절벽에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물길이 나진의 눈에도 보였다. 마지막까지 나진은 신중히 절벽을 내려갔다.

탁.

바닥에 착지한 나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말뚝을 어찌나 세게 붙잡았는지, 손바닥을 펼쳐보니 살갗이 다 벗겨져 있었다.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붕대로 묶은 나진은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떨어지는 폭포.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듯이, 다만 한 방향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를 나진은 말없이 바라봤다. 자신이 태어났고 유년기를 보냈던 지하도시. 그곳에서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곱씹으며 나진은 고개를 돌렸다.

보아야 할 곳은 흐르는 물길이 향하는 곳.

한번 달리기 시작한 이상 멈춰설 수도, 돌아설 수도 없었다. 흐르는 물길이 어디로 향할지는 나진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 별이 있으리란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물길을 따라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길의 끝.

길은 끝났고 벽이 나진을 가로막았지만, 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오펜은 말했었다. 길의 끝에서 숨을 참고 잠수하라고.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하기에 나진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후우.”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밀려드는 물길에 제 몸을 맡겼다. 거친 물살이 나진을 휩쓸었다. 휩쓸리는 물살 속에서 나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휩쓸리다 못해 몸이 가라앉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계에 도달했을 때 나진은 고개를 들었다. 보이는 것은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의 수면.

수면에 무언가 비춰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반짝이는 빛이었다.

빛을 향해 나진이 움직였다. 가라앉는 것만 같던 몸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컥, 허억···! 후우···!”

물살 위로 고개를 든 나진이 숨을 몰아쉬었다.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나진은 천천히 강가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몇번이고 강가에 튀어나온 돌뿌리를 붙잡기를 실패하고, 몇번이고 돌뿌리에 몸을 긁히고 나서야 나진은 간신히 물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온몸이 쑤셨다. 차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나진은 물에 젖은 채로 강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그렇게 들판에 누워 숨을 몰아쉬던 나진은 깨달았다. 조금 전 수면에 비춰 보이던 빛이 무엇이었는지. 몇번이고 눈을 깜빡인 나진은 18년 생에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

그곳에 수많고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동화 속에서 읽었던 어떤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처음으로 올려다본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그 무엇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