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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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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륀벨이 창을 내질렀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크륀벨이란 이름에 담긴 무게를 감안하면 이 문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크륀벨은 한 자루의 창으로 초월에 오른 무인이다. 소드마스터가 검을 휘둘렀다, 라는 문장이 가진 무게감만큼이나 ‘크륀벨이 창을 내질렀다’라는 문장이 가진 무게는 무거웠다.

그가 발을 내려찍을 적 폭풍이 몰아쳤고, 팔을 앞으로 뻗을 적 폭풍이 창대에 휘감겼으며, 그 창이 일직선으로 허공을 꿰뚫은 순간.

창끝에서 폭풍이 휘몰아쳤다.

충각(衝角).

크륀벨이 가진 최강의 일격. 설령 그 창날에 더는 심상이 담기지 않으며, 그가 더는 초월자가 아니게 됐다 한들 그 기술만큼은 빛바래지 않았다. 단지 그 기술을 견딜 무기가 없었기에 쓰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르다.

그의 손에는 십자별 창이 들려있다.

제국의 명장들이 단조했고 크륀벨이 이뤄낸 위업이 깃든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창. 제 주인의 손에 들린 창은 크륀벨의 기술을 온전히 견뎌냈다. 십자별의 형상을 띤 창날은 제 주인을 위해 반짝였다.

그리하여 완성된 기술은 이해를 거부한다. 으레 초월자들이 타인의 이해를 거부하듯, 크륀벨이 펼친 기술도 마찬가지다. 1초를 잘게 쪼개, 찰나의 시간을 쪼개며 내지른 쾌속의 찌르기는 한순간이지만 투구기사의 반응속도를 상회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땅을 헤집고, 가로막는 것들을 문자 그대로 갈아버리며 폭풍은 다가온다.

뒤늦게 투구기사가 반응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옆에 있던 창대를 움켜쥐고 폭풍을 향해 휘둘렀지만, 창대는 박살 났고 폭풍에 휩쓸린 투구기사는 옆으로 내던져졌다.

마치, 내 앞에서 비키라는 것처럼.

애초에 폭풍이 노리는 것은 투구기사가 아니었다. 그 뒤에 서 있던 나진이었다. 투구기사가 위력을 조금이나마 줄였다고 한들, 크륀벨이 펼친 충각은 초월자의 일격에 비견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나진이 받아낼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까득.

하지만 나진의 눈동자, 그 눈동자와 반응속도만큼은 초월자에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다.

하물며 저 충각이란 기술은 투구기사를 통해 몇 번이고 본 기술이다. 쳐내거나 회피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받아내는 것이라면 아슬아슬하게······.

‘아.

그러나 자신의 검기와 폭풍이 맞부딪친 순간,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나진은 깨닫게 됐다. 착각이었다.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투웅.

나진의 발이 공중에 떴다. 폭풍이 검기에 닿은 순간 나진의 검기가 실낱처럼 풀어 흩어졌다. 검을 쥔 손가락이 부러졌다. 기술을 받아내기 위해 검면을 지탱했던 팔이 ‘우득’ 소리를 내며 비틀렸다.

드드드드드드드득!

갈려 나간다. 검기가, 나진의 몸이, 폭풍의 경로에 있는 것들이 전부. 폭풍에 휩쓸려 뒤로 내던져지며 나진은 보았다. 폭풍이 지나간 곳에는 곱게 갈린 먼지만이 흩날리고 있는 것을. 그리고, 견디지 못한다면 자신도 저것과 똑같은 꼴이 될 거란 사실을.

까득, 나진이 이를 악물고 검을 놓지 않았다. 심장이 요란스레 박동하며 쉴 새 없이 검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이 검기가 완전히 흩어진다면 검이 부러지고 제 몸이 꿰뚫릴 게 분명했다.

‘버텨라, 버텨라, 버텨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줄다리기에서 승리한 것은 나진의 검기다. 폭풍이 흩어지며 마지막으로 나진을 떠밀었다. 콰앙, 소리를 내며 나진이 바위에 처박혔다.

후두두둑.

무너진 돌무더기가 나진의 머리를 두들겼다. 팔은 부러졌고, 눈과 코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컥, 하고 막힌 숨을 토해내자 검은 피가 토해져 나왔다.

속이 엉망이 된 모양이군.

숨을 쉬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고작 일격. 일격에 나진의 몸은 걸레짝이 됐다. 흐릿한 시야에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푸른 머리칼이 나진의 앞에서 흔들렸다. 나진의 길잡이, 멀린이었다.

까득.

그녀는 제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멀린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으며, 하늘을 향해 제 손을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눈치. 나진은 그 모습에 쓰게 웃었다.

‘멀린.

-아.

나진과 멀린의 눈동자가 마주했다. 그제야 흔들리던 멀린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 멀쩡합니다.

-너, 너 진짜······.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시려고?

-내가 진짜 미치겠다, 응? 미치겠어 진짜.

멀린이 신음했다. 그녀가 간신히 숨을 가다듬으며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진의 선택을 존중해 참견을 안 하고 있다곤 하지만, 가슴을 졸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함께 사경을 넘나들었던 아서 때와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나진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비틀거리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뭐?

‘알 것 같다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나진은 잠시 눈을 감고 조금 전 보았던 풍경을 떠올렸다. 나진의 머릿속에서 크륀벨의 동작 하나하나가 분해되고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투구기사가 선보인 충각.

그리고, 크륀벨이 내지른 충각.

둘 사이의 차이점을 나진은 불현듯 깨닫는다. 나진이 투구기사에게 배운 충각의 원리와 동작, 그리고 그것들을 크륀벨이 어떻게 변형해 사용했는지 나진은 제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갔다.

제 아무리 초월자의 기술이라 한들······ 같은 기술을 반복해서 눈에 담다 보면, 하물며 몸으로 직접 흉내를 내본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았으니까.

크륀벨의 창을 받아내며 투구기사는 크륀벨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더 빨리 반응했어야 했는데. 그는 나진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분명 저 바위였는데.

쿨럭, 컥······.

그곳에는 피를 게워 내고 있는 나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진은 만신창이였다.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 투구기사는 신음하며 나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진을 데리고 도망칠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진은 그 손을 붙잡지 않았다.

“비키십시오.”

그렇게 말했을 뿐.

커헉, 퉷.

피를 게워 내며 나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킬 때마다 으득, 드드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나진은 발을 내려찍어 뼈를 맞췄다. 어깨를 맞추고 손가락들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니, 저걸 뼈를 맞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차라리 조립하는 것에 가까웠다. 가공할 재생력에 의지해 나진은 제 몸을 조립하고 있었다.

“비켜요. 앞 가리지 말고.”

“뭐?”

“상대가 안 보이지 않습니까.”

머리에 피가 오른 나진은 예의 따위 집어 치운 채 투구기사에게 손짓했다. 내 앞에서 비키라는 손짓이었다.

“너, 그 몸으로 다시 싸우겠단 거냐?”

“못 할 건 또 뭡니까. 저쪽은 머리 없이도 싸우는데.”

“무모하다.”

“원래 무모함과 위업은 한 끗 차이인 법입니다.”

“너 지금······.”

더 말하려던 투구기사는 나진이 검을 늘어트린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진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나진의 검기는 조금 전과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단 말입니다.”

나진이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니까, 비키십시오.”

백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투구기사를 빤히 바라봤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에선 여전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진은 시선으로 말했다.

방해하지 말라고.

아직 결투는 끝나지 않았으며, 내겐 상대가 보인 최선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허.”

투구기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이로군.”

“이제 아셨습니까?”

입가를 틀어 올린 채 나진이 투구기사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그 걸음을 투구기사는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초월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애송이가 내뿜는 기세에 밀렸다. 그 사실을 투구기사는 인정해야만 했다.

탁.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채 나진이 크륀벨을 노려봤다. 크륀벨 역시 여전히 나진을 보고 있었다. 그 창끝은 투구기사가 아닌 나진을 향해 있었으며, 크륀벨 또한 이 결투의 결판을 짓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당신이 망자든, 망성이든, 추락한 별이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적어도 나와 검을 맞부딪치는 동안 당신은 기사다. 당신이 그러려 하지 않아도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나진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곤, 소리쳤다.

“크륀벨——!”

상대를 호명하며 나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검 끝은 크륀벨의 심장을 겨눴다.

“오십시오.”

나진이 미소 지었다.

입꼬리를 틀어 올린 채, 핏발이 선 눈동자로 오직 크륀벨만을 바라보며 소년은 선언했다. 와라. 당신이 가진 최강의 일격으로.

“이번에는 정면에서 박살 내드릴테니.”

나진의 선언을 크륀벨이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진의 동작에 담긴 의미와, 그 목소리의 열기만큼은 크륀벨에게 닿았다. 크륀벨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완벽한 자세. 강렬한 기백. 일대를 찍어 누르는 압박감.

그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도 나진은 결코 자신(自身)을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자세를 잡았다.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오만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본래 무모함과 위업은 한 끗 차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은 채 도전하는 이들만이 초월에 오른다. 나진은 결코 물러서지 않은 채 눈앞의 적에게 도전했다.

나진이 가진 첫 번째 별, 도전의 별이 빛났다.

도전(挑戰)이란 정면에서 상대를 맞서는 것.

새로운 위업을 써 내리려는 제 주인을 위해 별은 기꺼이 빛을 흩뿌렸다. 나진의 검기에 별이 깃들었다.

충각(衝角).

금빛 뿔 기사단의 대표 격인 기술.

이는 머나먼 옛적 바다를 항해했던 그들의 선조에게서 유래 된 기술이다. 그들의 선조는 바람을 벗 삼아 망망대해를 가로질렀다. 그들의 뱃머리에는 언제나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금빛 뿔의 유래이기도 했다.

나아가라. 나아가라. 나아가라.

바다를 가로질러, 빙하를 꿰뚫고, 가로막은 것들을 뿔로 들이받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가리라.

뱃머리에 매단 금빛 뿔은 그들이 최초로 손에 쥔 창이었고, 무기였으며, 앞을 가로막은 것들을 꿰뚫을 수단이었다. 뱃머리로 냅다 들이받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에 그들은 충각(衝角)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금빛 뿔의 유래이자.

충각이란 기술의 시작점이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와 금빛 뿔의 유래는 잊혀졌고, 그들의 의지를 이은 금빛 뿔 기사단조차 역사에서 지워졌지만······.

쿠웅.

이곳에 역사의 산증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크륀벨이다. 그의 호(號)는 침묵의 기사이며, 그의 별에 붙은 이름은 호각성(號角星)이었고, 그의 소속은 금빛 뿔 기사단이다.

크륀벨은 십자별의 창을 움켜쥐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금빛 뿔 기사단을 동경했다. 제국의 깃발을 내걸고 질주하는 그들의 함성에 매료됐으며, 단장이 들고 있던 십자별 창에 마음을 빼앗겼다.

크륀벨은 자신을 단련했고, 기사가 됐으며, 금빛 뿔 기사단에 입단했다. 수많은 위업을 세우고 기사단장에게 인정받아 그의 부관이 됐다. 본래 단장만이 쥘 수 있는 십자별의 창을, 기사단장은 기꺼이 크륀벨에게 하사했다.

기사단장은 자신은 창보다 검을 더 잘 다룬다며 변명하긴 했지만, 그가 창을 넘긴 의미를 크륀벨은 모르지 않았다.

다음 기사단장은 너다, 크륀벨.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영광스러운 나날이었다. 크륀벨은 뿔피리를 불며 진군했다. 제 단장을 따라 하염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러나 끝은 다가오는 법이다.

「죽음이 어째서 고결해야 하나요?」

여인이 미소 지었다.

「삶은 하나의 희극,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두 광대극에 불과하답니다. 그리고 소인은, 본인은, 본녀는, 저는, 나는, 죽음이 어째서 고결하고 정적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광소했다.

「어째서 웃지 않나요? 어째서, 춤추지 않나요?」

여인이, 손짓했다.

「웃어요. 노래합시다. 춤춥시다. 떠듭시다. 악기를 켜세요. 요란하게! 삶은 희극, 죽음조차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으니, 이 지옥아래 환락(歡樂)만이 유일한 가치이리라!」

광대들이 춤추었다. 웃음소리가, 노랫소리가,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악기들의 소리가······.

투욱.

크륀벨의 목이 떨어졌다. 목이 떨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저따위 광대놀음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떨어진 목을 절단면에 붙인 채 그는 질주했다.

금빛 뿔 기사단은 멈추지 않는다. 진군하라. 나아가라. 적을 꿰뚫어라. 우리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몇 번이고 머리가 떨어졌다. 머리가 짓뭉개지고, 몸이 불타고, 육신이 가루가 되도록 그는 진군했다. 제 몸에 드리우려는 실들을 끊어내며 그는 포효했다. 광대들의 웃음소리와 악기 소리를 떨쳐내고자 호각성은 뿔피리를 불었다.

뿔피리를 불어라. 나아가라. 적을 꿰뚫어라······.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는 잊어버렸다. 스스로를 잊어 그는 망자가 됐다. 빛나던 여섯 개의 별은 추락해 검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리친다.

‘뿔피리를 불어라. 나아가라. 적을 꿰뚫어라.

호각성이 뿔피리를 불었다.

침묵의 기사가 땅을 내려찍었다.

크륀벨이 창을 뻗었다.

충각(衝角).

창을 내지르는 순간만큼은 그는 기사였다. 그 창날이 향하는 자가 그것을 바라고 있었으므로, 크륀벨은 기사일 수 있었다. 무릇 결투의 의미란 맞부딪치는 상대가 결정짓는 것이었으므로.

밀어닥치는 폭풍에 나진은 정면으로 달려든다.

그 눈동자는 폭풍의 궤도를 읽는다. 두 다리는 땅을 박차며 앞으로 질주한다. 들어 올린 검은 새하얗게 번뜩이며 크륀벨의 창을 빛나게 만들었다.

겨루어보자.

나의 검이 당신의 폭풍을 가를지, 당신의 폭풍이 나를 꿰뚫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