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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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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깨진 하늘에 걸려있는 수백 개의 별.

하늘을 쪼개고, 조각내 저마다의 영역을 나누어 가진 별들을 나진은 말없이 바라봤다. 깨진 유리창을 연상케하는 하늘. 낮의 푸르른 하늘과 새까만 밤하늘이 뒤섞인 풍경은 기괴하면서도 신비했다.

그리고 그런 하늘을 장식하는 별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풍경을 보았더라면 절경이라 느낄 법도 하지만, 지금의 나진은 저 신비로운 하늘의 풍경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별들이 마치 누군가의 눈동자처럼 느껴졌으니까.

수십, 수백에 이르는 눈동자.

수백에 이르는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

도시의 모험가들이나 행인들이 보내는 시선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대한 존재의 시선은 단지 시선만으로 무언갈 느끼게 만든다.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 꿰뚫리는 감각. 등줄기를 타고 소름 끼치는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콱.

나진이 제 혀끝을 살짝 씹었다.

따끔한 감각과 피 맛이 입안에 조금 맴돌았다. 그제야 나진은 혼란에서 벗어나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여전히 시선은 느껴졌지만 견딜 만했다.

-아직은 시선뿐이야. 여긴 경계선 근처니까.

멀린이 담담히 말했다.

-안으로 갈수록 ‘더 많은 게’ 가능해져. 네 눈앞에 문자를 띄우거나, 귀에 대고 속삭이거나, 시련을 내리거나. 그런 식이지.

캄란의 인근쯤 가면 그냥 땅 아래로 내려와서 돌아다니고 있을 거고. 그리 중얼거리며 멀린이 나진을 흘겨봤다. 그 눈빛은 평소와 달리 차분했다.

-저번에 말한 거, 잊지 않았지?

‘들려준 말이 워낙 많아서,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자신(自身)을 자신(自信)해라.

멀린이 나진의 심장을 손끝으로 눌렀다. 지금 나진의 눈에 보이는 멀린은 환영일 뿐이고, 그 손가락 끝이 나진의 심장에 닿는 일은 없었지만 약간의 온기가 느껴진 것 같았다.

-주의 사항도, 알아야 할 것도 산더미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네 주관을 확실하게 세우고 네가 옳다고 여기는 걸 행하는 것.

멀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 별자리들한테 휘둘리지 말란 뜻이야. 뭐, 아직은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지만.

나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진은 외륙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완전히 새로운 무대. 여태까지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곳. 그러니까, 모든 것이 낯선 세상.

-너 말야.

나진의 귓가에 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보면 멀린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웃고 있어?

나진이 제 입꼬리를 만져보곤 이내 웃음을 흘렸다. 왜 웃고 있냐라, 그 이유야 별거 없었다.

‘똑같잖아요.

뭐가, 라는 멀린의 질문에 나진은 답했다.

지하도시를 처음 나왔을 때와 같다고.

새로운 풍경. 낯선 것들.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끝없이 펼쳐진 장소.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듯한 이 감각이 나진은 싫지 않았다.

쿵.

나진은 힘을 주어 걸음을 내디뎠다. 외륙(外陸)에 자신이 발을 디뎠다는 흔적을 남기겠다는 듯이.

세상의 바깥, 외륙.

하늘에선 별들이 내려다보고, 다소 지랄맞은 것들이 돌아다니며, 비일상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곳이라곤 하나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경계선과 인접한 곳에 지어진 국가.

악마를 사냥하는 악마 사냥꾼.

경계선을 넘어 인류의 땅을 침범하려는 마물과 마족들을 막아서는 군대와 기사들.

각양각색의 사람과 세력들. 결국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금 걷다 보니 나진은 어느 주점에 도착했다.

주점 겸, 보급소 겸, 여관 겸, 길드.

사실상 그냥 주점이라 불릴 뿐 모든 종류의 업무를 해결하는 ‘거점’과도 같은 곳이라고 나진은 이해했다. 주점에 가득 쌓여있는 물자들은 마부들을 통해 외륙의 각지로 옮겨지고 있었다.

‘말이 아니라 마물이네.

평범한 말은 이곳에서 힘을 못 쓰기에 개량된 종이거나 마물들을 통해 마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흘겨보며 나진은 주점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이익, 하고 주점의 문을 열어젖히자.

주점의 안쪽에 모여있는 이들의 시선이 나진에게 쏠렸다. 마치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하려는 시선. 나진 역시 그들을 마주 바라봤다.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주점 안에 모여 있었다.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

가벼운 차림의 용병.

온갖 도구를 꺼내놓고 정비하는 사냥꾼.

그들과 나진의 시선이 교차했다. 누구인지 확인하려던 그들의 시선은 이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야 그들에게 있어 나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니까.

“뭐야. 신입이야?”

“오랜만인데.”

“새로 입대한 친구일 수도 있지.”

“동부 전장에? 이야, 제대로 구르겠구만.”

“기사단일 수도 있지 않아?”

“그건 아니지. 갑옷을 안 입었잖아. 기사들은 자고로 갑옷에 문양을 새기는 맛에 사는 놈들이거든. 갑옷, 하다못해 각반, 견갑 하나쯤은 차야 기사라고.”

나진을 놔둔 채 그들은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나진은 주점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주점의 주인장에게 나진은 금화 몇닢을 내밀곤 말했다.

“와이번을 사냥하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점주가 가만히 나진을 바라봤다. 그리곤, 나진이 내민 금화 다섯닢 중 두닢만을 채가곤 짧게 답했다.

“외륙은 처음인가?”

“예.”

“야생 와이번을 사냥하는 건 쉽지만, 야생 와이번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 꼭 와이번을 잡아야겠다면 소개해 줄 만한 전장이 있긴 한데······.”

점주가 나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썩 추천하진 않는데.”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초짜 티 팍팍 내는 놈한테 소개해 주기엔 좀 험한 곳이거든. 괜히 소개해 줬다가 시체로 돌아오면 내 기분이 더러울뿐더러, 저놈들한테 욕 잔뜩 먹을걸?”

그가 쓰게 웃으며 나진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술잔을 쥔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탁, 하고 나진의 옆에 술잔을 내려놓고선 대화에 끼어들었다.

“점주, 호지킨 전선 소개해 주려 그랬지? 와이번 부대가 자주 출몰하는 건 거기니까.”

“그렇지.”

“거긴 아니지. 가면 무조건 죽을걸.”

“어이, 신입. 내륙에서 뭘 하다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전장을 가는 건 좋지 않아. 이곳 마물들의 생태도 잘 모르잖아.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

텃세를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니 진심으로 조언하려는 듯싶었으니까. 나진은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옷 안에 넣어두었던 목걸이를 빼 점주에게 건넸다.

백각 등급의 증표.

그 증표를 알아봤는지 점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증표는 눈앞의 인물이 소드 시커급의 강자란 뜻이었고, 각종 임무에 경험이 많다는 뜻이었으니까. 뭔가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는 듯 점주가 눈살을 찌푸린 채 나진에게 질문했다.

“자네, 이름이?”

“나진입니다.”

나진이 그리 답하자 점주가 눈을 크게 떴고, 이야기에 끼어들었던 사내들 중 하나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나진, 나진··· 그리 중얼거리던 사내가 아, 하고 짧게 탄식했다.

“나진이면··· 그 최연소 소드 시커?”

“최연소 소드 시커는 카론 경 아닌가?”

“바깥소식이 느리구먼. 그 기록 갱신된 지 몇주 됐다. 신문 좀 읽고 살라니까.”

“갱신? 얼마나 갱신했길래?”

“열여덟살.”

“뭐?”

“열여덟살이라고.”

질문했던 사내가 침묵한 가운데.

대화에 끼어든 사내들은 물론이고, 주점에서 술을 홀짝이던 이들의 시선이 나진에게 쏠렸다. 외륙의 주민들이 세상의 안쪽이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다곤 하나, 최연소 소드 시커에 대한 소식만큼은 예외였다.

제국을 뒤흔든 대사건이었고, 무인(武人)인 그들의 흥미를 끌 만한 소식이었으니.

“호지킨 전선이란 곳,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 되묻는 나진의 모습에 점주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서류 몇장을 꺼내왔다.

“그러니까, 우리 부대에 지원하겠다고?”

호지킨 전선의 와이번 사냥 부대.

부대의 지휘관, 질레트 레긴퍼트는 연초를 태우며 눈앞의 소년을 바라봤다. 소드 시커부터는 젊은 육체를 유지한다곤 하나, 그걸 감안해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다.

‘최연소 소드 시커, 나진.

점주의 소개장에는 눈앞의 인물이 근래 제국을 뜨겁게 달군 그 소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가. 어려 보이는 게 아니라 어린 거였나.

“이거 영광이군. 제국의 최연소 소드 시커께서 우리 부대에 지원해 주겠다니. 지원 이유는 뭐지?”

“와이번 사냥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거 깔끔한 이유로군. 그래서 전투에 몇 번 함께하겠다?”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질레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별종이로군. 와이번 잡겠다고 외륙에 찾아와선 대뜸 군대에 지원하는 놈을 다 볼 줄이야.”

“날아다니는 마물을 떨어트릴 방법을 좀 알고 싶은데, 내륙에선 썩 시원찮더군요.”

“확실히 와이번만큼 화끈한 놈이 또 없긴 하지.”

목적이 시원해서 마음에 드는군. 그리 중얼거리며 질레트는 나진에게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거 우리 부대에서 몇 년 동안 일할 게 아니라면, 기술 같은 건 교육해 주기 좀 그래. 기껏 교육해 놓아봤자 열흘쯤 뒤에 돌아갈 거 아냐?”

걸음을 옮기며 질레트가 말을 이었다.

“여긴 전장이야. 애송이 가르치고 돌보는 곳은 아니지. 보여주긴 할 테지만 따로 도움을 기대하진 말란 뜻이다.”

다 태운 연초를 툭, 던진 그가 나진을 흘겨봤다.

“방해되면 바로 쫓아낼 테니 그리 알도록.”

전장에 같이 서는 걸 허락해 줄 뿐.

네가 외부인임을 잊지 말란 뜻이었다. 때마침 전장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이번 부대가 출몰했다는 신호. 질레트가 끌끌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끝내주는군. 가지.”


마왕, 악마들의 군주.

군주의 아래에는 당연히 군(軍)이 존재하는 법. 와이번 부대 역시 그 일종이었다. 그리고··· 군이 출몰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전장일 수밖에 없다.

캉, 카앙!

『밀어붙여!』

콱, 콰드득.

『아아아아악!』

『밀어, 밀어라!』

『좌익, 좌익에서 출몰!』

창칼이 맞부딪치는 소리.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고함소리. 질레트를 따라 나진이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전장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전선을 유지하는 병사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기사들.

『와이번, 와이번 부대다!』

그리고 그곳에 나진의 목표 역시 있었다.

땅에 그림자를 드리운 존재들. 하늘 높이 떠 있는 와이번과, 그 등에 올라타 있는 마인들. 와이번 부대라 불리는 군대였다.

나진은 제 옆을 흘겨봤다.

나진과 함께 전장에 도착한, 질레트를 필두로 한 와이번 사냥 부대. 오직 와이번 부대를 담당하기 위해 구성된 유격대였다.

“간다.”

짧은 지시와 함께 질레트가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맞춰 몇몇이 땅에 대형 발리스타를 박아 넣었고, 몇몇은 ‘챠르륵’ 소리를 내며 사슬을 끌었다. 사슬의 끝에는 말뚝이 박혀있었다.

나진은 가만히 그들을 바라봤다.

이곳에 나진이 온 것은 결국 ‘날아다니는 대상’을 사냥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고, 와이번 사냥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좋은 교본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웅!

발리스타로 요격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나진은 시선을 두지 않았다. 나진이 시선을 고정한 것은 사슬을 늘어트린 이들. 원거리를 공격할 수단 없이 ‘어떻게’ 저 멀리서 날고 있는 이들을 사냥하는가?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면 수십미터 떨어진 대상을 베어낼 방법도, 날아다니는 마물을 떨어트릴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초월에 이르지 못한 검사는 결국 검과 검기가 닿는 곳만을 베어낼 수 있으니.

닿을 수 없는 거리 차이.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간극.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가.

챠르르르륵!

질레트 곁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그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는 늘어트린 사슬을 손으로 잡고 돌리며 전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쿠웅.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사슬을 하늘 높이 투척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말뚝이 와이번의 살가죽을 비집고 틀어박힌 순간, 그가 사슬의 반동으로 뛰어올랐다. 몸을 비틀며 붙잡은 사슬을 휘감고, 공중으로 치솟는 병사의 모습을 나진은 시야에 담았다.

병사 한명 뿐만이 아니었다.

저마다 사슬을 돌리며 병사들은 전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부대의 마법사는 하늘을 나는 와이번을 직접 노리기보단, 그들이 발을 디디고 도약할 발판을 만들었다. 대형 발리스타를 쥔 병사들은 사슬이 연결된 화살을 절벽에 박아 넣었다.

마치, 그물을 치듯이.

그렇게 만들어진 그물을 타고 병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전장을 달렸고, 누군가는 절벽에 단단히 고정된 사슬을 밟고 달렸다. 전장에 혼재한 병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들의 손에 사슬 말뚝이 쥐어져 있단 사실 뿐이었다.

“어이, 신입.”

나진이 옆을 돌아봤다.

그곳엔 씨익, 웃고 있는 질레트가 있었다. 와이번 사냥 부대의 지휘관. 그가 나진에게 사슬 말뚝을 던졌다.

“검기를 수십미터씩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와이번 사냥에 사슬 말뚝은 필수야. 하나 빌려주지.”

질레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쓰려면 최소 한 달은 사슬 돌리는 걸 연습해야 하니 쉽지는 않겠······.”

그렇게 중얼거리며 질레트가 제 사슬을 돌리려는 순간이다. 탁, 하고 질레트의 옆으로 나진이 스쳐 지나갔다.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는군, 하고 질레트는 쓰게 웃었다.

‘기세 좋게 달려가긴 하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되겠는가.

괜히 와이번 사냥 부대가 따로 편성된 것이 아니다. 사슬 말뚝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번에게 말뚝을 맞추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세월 사슬을 다루는 법을 익히고, 사슬 말뚝에 숙련된 일부 병사만이 이 부대에 속할 수 있다.

최연소 소드 시커라느니, 제국을 뒤집었다느니, 소문이 무성하긴 하나 전장에서 요구되는 건 재능이 아닌 숙련된 기술과 즉각적인 판단이다. 저리 기세만 좋아서야 고꾸라지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질레트가 혀를 끌끌 차려는 순간이다.

챠르륵, 빙글.

나진이 사슬 말뚝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질레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제 사슬을 돌리는 것도 멈춘 채, 질레트는 나진을 노려봤다.

사슬을 잡은 위치, 파지법, 돌리는 속도와 말뚝의 각도······.

각 요소를 확인할수록 질레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저 소년은 오늘 이 전장에 처음 발을 디뎠으며, 방금 막 사슬 말뚝을 받아 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 움직임은 뭐란 말인가.

모든 동작이 정확하다. 숙련됐다. 신입이 아니다. 최소 수년은 와이번 사냥 부대에서 구른 듯한 노련한 병사의 모습이 소년과 겹쳐 보였다. 자신의 착각인가? 하지만 그 생각마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탁, 그리고 투웅.

나진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사슬 말뚝을 투척했다. 공기를 가르며 쏘아진 말뚝이 와이번의 뱃가죽에 깊게 박힌 순간, 나진이 사슬의 반동을 이용해 튀어 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사슬을 감아올린 나진이 제 몸을 가속했다.

그 모든 동작이 완벽했다.

지휘관인 질레트가 보기에도 흠이 없었다.

“허.”

질레트 레긴퍼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새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