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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드래곤(Dragon)이란 무엇인가?
태초의 시대, 혼란의 시대를 거쳐 아서를 필두로 숱한 영웅들이 탄생한 신화시대에 이르기까지 용들은 그 모든 시대에 존재했다. 세상의 시작과 함께 눈을 떠선 종말이 찾아오거든 눈을 감는 존재들.
불변, 불멸, 영원의 존재.
그것이 용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혹자는 말한다. 그들은 한때는 고고했을지언정 지금은 한낱 짐승에 불과하다고. 생명을 잡아먹고 불태우는 데 희열을 느끼는 추악하기 짝이 없는 괴물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용을 손가락질한다.
“틀린 말은 아니야.”
용들의 타락이 시작된, 신화시대를 살아온 마법사는 턱을 괸 채 한숨을 내쉬었다.
“용이란 본디 고고한 존재들이었어. 모두가 그렇진 않았지만, 고고하고 고결한 용도 분명 존재했지. 나락의 용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야.”
호수의 마법사, 멀린.
“용이란 종족은 본류(本流)를 거스를 수 없어. 첫 번째이자 마지막 용. 태초이자 최후의 용인 나락의 용. 그 괴물이 세상의 종말을 바란 시점에서, 모든 용이 맛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제는, 한낱 짐승으로 전락했더라도 용이란 종족 자체가 가진 신비가 사라지지 않았단 거지.”
“신비?”
“응, 저번에 말했던 거 기억하지? 본래 신비란 특수한 종족이나 사물에 깃드는 거라고.”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었다. 일전에 신비가 깃든 인간인 유엘을 가리키며 멀린이 설명해 준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 종족 중 하나가 용이야.”
“그럼 용이 가진 신비가 뭡니까?”
“불변, 불멸, 영원.”
불변(不變), 변하지 아니하며.
불멸(不滅), 바스러져 없어지지 아니하며.
영원(永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
“내가 신비라는 개념을 정의했을 때, 가장 어이가 없었던 종족이 세 개 정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용이야. 남은 둘은 마녀랑 거인이고. 이놈들은 그냥 존재 자체가 사기야. 종족 단위로 사기를 치고 있다구.”
멀린이 끌끌 혀를 찼다.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해. 완벽한 채로 영원을 살아가지. 그 도마뱀들이 두른 비늘은 어지간한 검기는 물론이고 5 서클 이하의 마법은 모조리 튕겨내지. 어디 그뿐일까?”
멀린이 입을 벌리고 캬아아 소리를 냈다.
나진이 ‘당신 뭐하냐’는 눈빛으로 흘겨보자 멀린은 머쓱한 듯 제 머리칼을 배배 꼬며 말했다.
“거기다 브레스쯤 가면 최소 6 서클 마법이야.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단지 태어났단 이유만으로 성벽째로 녹여버리는 불을 뿜어대. 나락의 용쯤 가면 뭐······ 떠올리고 싶지도 않네.”
심지어 그 입 안은 어떠한데?
한번 삼켜지면 그걸로 끝이야. 용의 입 속은 전혀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곳이니까. 그리 중얼거리며 멀린이 기지개를 켰다.
“뭐 아무튼, 설명이 길어졌는데.”
나진의 곁으로 자리를 옮긴 멀린이 손가락을 휘둘렀다. 공중을 떠다니던 물방울이 나진의 코앞으로 옮겨졌다. 백색과 적색으로 물든 물방울.
“네가 이번에 상대할 용. 적룡과 백룡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해. 관건은 신비를 일시적으로 분리하는 방법인데··· 그건 뭐 차차 설명해 줄 거고.”
“잠깐만요, 멀린.”
나진이 멀린의 설명을 끊었다.
용의 토벌에 대한 설명을 듣는 건 좋았는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으니까.
“용을 잡는 건 좋습니다. 별을 얻을 기회라는 것도 좋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응.”
“백룡과 적룡은 봉인된 거 아닙니까? 스톤헨지 아래에요. 멀린 당신이 봉인했다고 영웅담에 적혀있던데.”
몇번이고 나진이 읽었던 아서 일대기.
그 첫 번째 장에 등장하는 백룡과 적룡은 아서에 의해 땅 밑으로 떨어졌고, 멀린에 의해 스톤헨지 아래 봉인됐다. 분명 그랬을 텐데 봉인된 두 마리의 용을 어떻게 사냥한단 말인가?
“설마 봉인에서 꺼내기라도 하려고요?”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봉인된 용을 바깥으로 꺼내 사냥해 봐야 그건 자작극이지 않은가. 자작극 따위로 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아니? 그걸 내가 왜 꺼내?”
나진의 질문에 멀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걔네가 알아서 깨고 나올걸?”
“그게 무슨 소립니까?”
“너 엑스칼리버 뽑았잖아.”
“그렇죠?”
“엑스칼리버를 뽑은 게 너라는 걸 모를 뿐, 성검이 뽑혔다는 사실은 온 세상에 알려졌어. 내륙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바깥, 그리고 캄란에까지.”
나진이 엑스칼리버를 뽑았던 그날.
아서의 별자리를 필두로 밤하늘은 뒤흔들렸다. 요동치는 하늘. 점멸하는 별자리들. 그들이 만들어낸 흔들림은 잠들어있던 이들을 깨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천년간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멀린의 푸른 눈동자가 나진을 응시했다.
“새로운 신화가 다시 쓰이려 하는데, 잠들어 있던 신화시대의 존재들이 몸을 일으키지 않을 리가? 적룡과 백룡은 시작일 뿐이야. 더 많은 것들이 일어나겠지. 아서가 쓰러트렸던 것, 아서에 의해 추락했던 것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할 거야.”
그녀의 손가락이 나진을 가리켰다.
“아서의 후예를 죽이기 위해서.”
용 사냥에 대해 멀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지 이틀째, 중앙 길드로부터 호출령이 떨어졌다. 다름 아닌 승급에 관한 일이었는데, 이번 경우에는 별도의 시험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소드 마스터 셋과 황제의 앞에서 나진은 소드 시커임을 인정받았다. 황제가 그 사실을 직접 축하한 가운데, 별도의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황제의 권위를 모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도 캄브리아 내외에서 나진의 소속을 두고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에, 중앙 길드 입장에서도 나진을 빠르게 승급시켜 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나진의 승급식은 이례적인 속도로 진행됐다.
나진은 적색 등급의 모험가였고.
적색 등급의 위에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백(白)색, 백각 등급의 모험가. 모험가 도시의 정점이라 불리는 등급. 지금의 나진을 붙잡아두기엔 백각 등급이란 자리가 그리 매력적이진 않으나, 캄브리아 재단의 비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나진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승급식은 캄브리아의 전통에 따라, 모든 모험가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졌다. 중앙 길드의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으며, 최연소 소드 시커라 불리는 나진의 얼굴을 보기 위해 캄브리아의 외부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자가 최연소 소드 시커.』
『생각보다 더 어리군.』
『젊긴 하나 눈빛이 살아있다. 전사의 눈이다.』
『숱한 전투를 경험한 이다. 자세가 잡혀있다.』
그중에선 제법 이름을 날리는 기사나 용병도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단상에 올라와 있는 나진을 바라보며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탁.
그리고 약속한 시각이 됐을 때 귀족 하나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백각 등급은 캄브리아를 대표하는 모험가나 다름없었기에, 승급식에 캄브리아 재단의 귀족이 참가하는 게 전통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경우엔 에델마르 후작이 재단의 대표로서 단상에 올랐다. 나진과 친분이 존재하며 재단에서 신분이 가장 높은 인물이기에, 에델마르 후작은 승급식을 주관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승급을 축하하네.”
그가 목함에서 명패를 꺼냈다.
다른 명패들과는 달리 희귀 금속으로 제작된 명패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순백으로 이루어진 명패에는 이반이 아닌 나진이라는 이름이 각인 돼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나진에게, 에델마르 후작이 캄브리아의 대표로서 명패와 훈장을 수여했다. 이로서 나진은 백각 등급의 모험가가 됐다. 캄브리아에 발을 디딘 지 8개월째 되는 날, 나진은 도시의 정점에 올랐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 사이로 나진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많은 모험가와, 외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진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최연소 소드 시커이자.
최연소 백각 등급 모험가.
도시에선 백각 등급 모험가들에게 이명을 붙여주는 게 전통이었는데, 나진의 경우엔 너무나도 유명 인사가 된 나머지 굳이 모험가들이 붙여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세간에서 나진을 부르는 이명이 있었으니.
신성(新星).
갑작스레 나타나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소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명이었다. 나중에 그 이명을 디에타를 통해 전해 들은 나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별도 못 얻었는데 신성이라니.”
그리 웃으면서도 나진은 그 이명이 썩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저 신성이란 이명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쓰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나진은 알았다.
신성은 갑작스레 빛나는 별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한 번의 반짝임과 함께 사라지는 별을 의미하기도 했으니까.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이명이었다.
그 두 가지 의미 중 어느 쪽 의미로 쓰일지는 앞으로 자신이 보일 행보에 의해 결정되리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진은 잠깐 반짝이고 사라질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신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별’ 하나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백각 모험가에 오른 직후.
나진에겐 한 통의 서신이 더 도착했다. 비밀리에 도착한 서신은 ‘백각 등급 소집령’이었으며, 중앙길드에서 의뢰하는 대형 퀘스트에 대한 서신이었다.
그러니까.
머지않아 부활할 두 마리의 용(龍) 토벌에 대한 이야기가 서신에 적혀있었다.
중앙길드의 깊은 곳, 엄중한 보안을 거쳐 들어간 곳에는 회의실이 하나 마련돼 있었다. 회의실에는 좌석 다섯개가 존재했는데 그중 세 자리는 나진이 도착했을 때 이미 매워져 있었다.
바셴 코르테.
리하르트 폴센.
로젤린 아스칼로.
셋 모두 백각 등급의 모험가였으며, 그중 둘은 나진과 일면식이 있었다. 바셴 코르테와 로젤린 아스칼로. 바셴은 일전에 교단의 습격자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로젤린과는 평소에도 교류가 잦았다.
“이야, 애송이랑 여기서 다 보게 되네. 반갑다야.”
나진이 소드 시커에 오른 직후에는 ‘이반’이라고 불러주었으나, 그 나이가 밝혀지고 난 뒤부터 로젤린은 나진을 애송이라 불렀다. 한번은 그 사실에 대해 나진이 의문을 표했었는데.
『아니, 십팔, 열여덟살 짜리를 애송이라 부르지 그럼 뭐로 불러?』
『이름으로 불리고 싶으면 나보다 세진 다음에 요구해. 그럼 이름에 님자까지 붙여서 불러줄테니까.』
이런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나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로젤린이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들겼다.
“어디가? 여기 앉아.”
“거기 제 자리 아닌데요?”
나진이 자리에 올라와 있는 명패를 가리켰다.
명패에 새겨진 이름은 그리젤 파라멜트. 나진의 자리는 그 맞은편이었다. 명패를 집어 들어 그 이름을 확인한 로젤린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휙, 하고 명패를 맞은편 자리에 집어 던졌다.
“자리야 바꾸면 되지. 난 애 옆자리에 앉기 싫어. 저 그리젤이란 놈, 기분 나쁘거든.”
나진은 본래 제 자리에 놓여있던 명패를 들고 로젤린 옆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만족스레 웃으며 로젤린이 나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애송아, 너 제국제일각이랑 한판 떴다면서?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렇게 됐죠.”
“그래서 어땠냐? 너 카론 경이랑도 만나봤잖아. 둘 중에 누가 더 세?”
로젤린이 눈동자를 빛냈다.
꼭 호랑이랑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고 물어보는 어린아이 같은 눈동자였는데, 나진으로서도 답하기가 제법 곤란한 질문이었다. 애당초 상대가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나진이 답을 고민하는 가운데.
회의실의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발을 내디딘 것은 두 사람이었는데, 하나는 백각 모험가를 소집한 중앙 길드의 길드장이었고······.
남은 하나는 그리젤 파라멜트.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백각 모험가였다. 나진은 그리젤을 바라봤다.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그리젤이 착석하자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백각 여러분을 이 자리에 한데 부른 것은, 앞서 서신을 통해 전달해 드린 것처럼 스톤헨지 아래에 봉인된 용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스톤헨지 아래 봉인된 두 마리의 용. 캄브리아란 도시가 형성된 전설의 중심에 놓인 이야기.
“스톤헨지에 새겨진 봉인식이 마모됐고, 8개월 전을 기준으로 효력을 차츰 잃어가고 있습니다. 제국의 중앙에서 판단하기를 1개월 내로 효력이 상실, 두 마리의 용이 풀려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나진은 멀린에게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하기야, 봉인식이 깨지는 걸 모를 리가 없지. 제국에서도 눈치챈 모양이네.
멀린이 그리 중얼거리는 가운데, 길드장은 말을 이었다. 토벌권은 캄브리아에서 우선으로 가져갔다는 이야기. 제국이 이에 협력한다는 이야기와 이 사실이 함구 되어야 한단 말이 한동안 이어진 뒤.
길드장은 토벌의 상세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제국에서는 기사단을 지원할 것이며, 해당 토벌은 소수 정예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이곳에 모인 백각 다섯 분과 황실의 기사단을 필두로 토벌전은 진행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서류.
그 서류를 흝어보던 나진은 고개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토벌이 진행된다면, 이건······.
고개를 든 나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나진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백각 모험가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시선의 의미야 분명했다. 얼핏 보면 다섯이 하나의 팀이 되어 토벌하는 것이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전혀 달랐다.
‘경쟁이다.’
이건 토벌이라기보단 경쟁이었다.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우는가. 누가 용을 떨어트리는 영광을 차지하는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