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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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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소드 마스터, 유엘 라지안.

성혈 교단의 대사제와 동급의 직위를 가진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살벌하기 짝이 없다. 살인귀, 광인, 학살자, 처형인······ 그녀를 수식하기보단 그녀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명에 더 가까운 것들.

그럴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유엘 라지안은 위험한 인물이니.

그녀는 적당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기꺼이 칼을 뽑아 든다. 기꺼이 사람을 죽인다. 살인을 함에 있어 막힘이 없고 망설임 또한 없다. 그저 ‘이 자를 죽여도 뒤탈이 없는가?’를 아주 짧게나마 고민할 뿐.

『정신병자다.』

『세상의 상식과 동떨어진 광인이다!』

『저런 자가 별의 뜻을 대리한다니, 성혈 교단도 갈 때까지 갔구만······.』

감히 그녀의 면전에 대고 떠들진 못하지만, 숱한 권력자들은 유엘의 성정에 대해 논하곤 했다. 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허나, 외견을 논하자면···.』

하지만 대화의 주제가 조금만 바뀐다면.

가령, 유엘 라지안의 외모에 대한 주제로 넘어간다면 부정적인 의견은 깔끔하게 증발하곤 했다.

『가히 절세라 불릴만한 미인이다.』

『새하얀 머리칼, 붉은 눈동자, 한없이 차가운 얼굴. 무표정하기에 자칫 생기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조차도 하나의 매력이 된다.』

『무언가에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긴다. 그녀에게 처형당한 시체들은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지 아니한가? 속에는 피에 미친 살인귀가 들어있거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절세의 미인이다.』

『오히려 그 부분이 매력 아닌가?』

『음, 동의하는 부분일세.』

살인귀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외모. 그렇기에 숱한 귀족들은 사교회의 뒤편에서 유엘의 외모에 대해 떠들곤 했다. 그야 본인의 앞에서 떠들었다간 목이 떨어질 게 분명하니까.

『표정이 없음에도 예술품과도 같다.』

『거기에 웃음이란 생기가 더해진다면?』

『아주 값비싼 술을 대접하면 미소 지어주신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

『성혈주(星血酒)급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유엘 라지안의 미소 한 번을 보기 위해 금화를 쏫아붓곤 했다. ‘부르는 게 곧 값인 최고급 포도주와 독주들을 한가득 진상하면 엷게나마 미소를 짓곤 하시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 라고 유엘의 미소를 본 귀족들이 떠들곤 했으니까.

유엘 라지안의 미소에는.

백금화 수백 닢의 가치가 있다.

권력가들 사이에 그런 소문마저 돌고 있는 가운데, 여기 한 명의 소년이 있다. 소년의 앞에는 환히 미소 짓고 있는 유엘 라지안이 있었다. 그 웃음이 참으로 아름답긴 하지만······.

‘이거 좆된 거 같은데.

소년, 나진은 그 웃음을 보고 아름답다는 감상을 느끼진 못했다. 저 웃음의 뒤편에 자리 잡은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으므로. 나진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설명 하십시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여전히, 유엘 라지안은 미소 짓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백금화 수백 닢을 털어서라도 보고 싶을 미소였지만, 나진에게 있어선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어지게 만드는 미소였다.

나진의 귓가에 멀린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눈을 가늘게 뜨면 제 배를 붙잡고 깔깔대고 웃고 있는 멀린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너 제대로 찍혔나보다, 끅, 끄흐윽······.

누군 진지하게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길잡이란 사람이 저래도 되는 건가. 나진이 차게 식은 눈동자로 멀린을 흘겨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멀린은 이제 ‘깔깔’을 넘어서 ‘끅끅’대며 웃어 재끼고 있었다.

“사실 설명할 필요가 있는 일은 아니긴 합니다.”

나진이 침묵하고 있자니 유엘이 입을 열었다. 마치 지금까지 보낸 살기가 일상적인 회화에서 오가는 인사말이었단 것처럼,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름은 듣지 않았으나 나이는 들었고, 그것이 사실이었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검성과 먼저 조우한 것이 다소 마음에 안 들긴 하나······.”

그녀가 안주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오늘 당신이 보여준 것을 보아 그 또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보여준 것이라니?”

“검기를 말하는 겁니다. 별자리의 형태를 가진 검기. 아름답더군요. 예,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유엘이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 동작이 무엇인지 나진은 눈치챘다. 그녀의 무장인 성혈 대검을 불러내기 위한 동작이었다.

“무심코 검을 뽑아 들 뻔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베고 싶어지기에. 다행히 두 소드 마스터와 황제께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참아냈지만······.”

살기가 가득 담긴 핏빛 눈동자로 유엘이 나진을 흘겨봤다. 나진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검을 바라보며 그녀가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여전히 탐나는군요. 어떠십니까. 저와 결투 한번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 검기를 한번 잘라보고 싶군요. 해체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저번에 분명 미뤄둔다고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습니다만, 말이란 본디 이쪽으로 튀고 저쪽으로 튀기도 하는 법입니다.”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아쉽군요.”

유엘이 술을 홀짝였다.

무척이나 불편한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군가 접견실의 문을 두들겼다. 그 순간 유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녀가 권위주의적인 인물은 아니었으나 이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으므로.

자신이 선객(先客)으로 와있다. 교단의 처형인이자 소드 마스터인 자신이 눈앞의 소년과 대작하고 있거늘, 감히 누가 이 값진 시간을 침범한단 말인가?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았단 사실에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지기도 잠시,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을 확인한 순간 유엘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그곳엔 이 시간을 방해할 가치를 가진 인물이 서 있었으니까.

“이거, 먼저 온 손님이 있었군.”

검의 교단의 주인. 검성, 카론.

그가 제 뒷목을 긁적이며 접견실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카론 역시 유엘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이긴 했다. 언제든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이를 누가 좋아할까.

그럼에도 그가 이곳에 걸음 한 것은, 유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 접견실에 발을 들인 것은··· 다름 아닌 나진을 도와주기 위함이다. 카론이 나진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구세주를 발견한 어린양마냥 나진은 카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모습에 카론은 쓰게 웃으며 접견실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자리를 함께해도 되겠지? 유엘.”

“물론입니다.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으니. 당신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사양하지. 그 술은 더럽게 맛이 없어서.”

“뭐라 하셨습니까?”

“독하기만 하지 맛이 없지 않은가, 맛이.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뜨거움만 느껴지는 술을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유엘이 눈을 부릅뜨고 카론을 노려보는 가운데, 카론은 슬쩍 시선을 돌려 나진을 바라봤다.

“이름이 나진이었군? 나이도 내 생각보다 더 어리던데. 하여간 난놈이야. 최연소 소드 시커가 된 걸 축하한다. 소년.”

그리 말하며 카론이 한 자루의 검을 나진에게 휙 던졌다. 검의 교단의 문양이 새겨진 검이었다.

“검의 교단의 주인인 나, 검성 카론이 교단을 대표하여 건네는 선물이자 내 개인의 호의로 건네는 선물이기도 하지.”

나진이 받아 든 검을 바라봤다.

검집에서 살짝 검을 뽑아보자 새까만 검신이 드러났다. 명장들만이 다룰 수 있다는 ‘레어 메탈’로 단조 된 검이었다. 부르는 게 값인 그야말로 최고급품.

나진이 눈을 크게 뜨고 카론을 바라봤다. 카론은 씨익,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검의 교단은 최연소 소드 시커의 탄생을 축복한다. 검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검사에겐, 그 명성에 어울리는 검이 쥐어져야 하는 법이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네가 본래 쓰던 롱소드를 들고 나중에 마탑을 찾아가 보도록. 레어 메탈은 잘 정제된 금속을 흡수해 보강하는 성질이 있으니··· 지금 쓰던 검과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진은 본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과 카론에게 받은 검을 번갈아 바라봤다. 호겔 영감이 만들어주었던 검. 슬슬 날이 무뎌지고 망가지고 있던 터라 교체해야 했지만, 뭔가 아쉬워서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나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행이군요. 조금 더 함께하고 싶었는데.”

“원래 처음으로 맞춤 제작한 검에는 애착이 가는 법이지. 이해한다. 내가 지금 쓰는 검에도 내 스승에게 받았던 첫 번째 검이 녹아있으니.”

카론이 제 칼자루를 두들기며 웃었다.

그리 두 사람이 웃고 있는 가운데, 유엘은 말없이 술만을 홀짝였다. 그러기를 잠시 그녀가 탁, 하고 큰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려뒀다.

“······.”

카론과 나진의 시선이 유엘을 향했다.

마치 뭐 할 말이라도 있냐는 것처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저 또한 빈손으로 온 것은 아니니. 제게도 입장이란 게 있습니다.”

“···예?”

“전 성혈 교단의 처형인입니다. 대사제와 전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이긴 하나, 일단은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니 일은 해야겠지요.”

그녀가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다.

“제국의 태양 앞에서 당신이 맹세한 것들을 감안해보면, 특정 집단에 소속될 생각은 없겠지요. 그러니 교단에서 보내온 서신은 의미가 없을 테고···.”

유엘이 꺼내든 서신은 다섯 장.

의미가 없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손가락을 휘적이자, 그중 넉 장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남은 하나의 서신을 유엘이 나진에게 건넸다.

“일전, 흑마법사 파우베 토벌과 악마 기사 토벌전의 공을 높게 사는바. 성혈(星血) 교단은 당신에게 걸작 소유권을 허락합니다.”

그리 건넨 서신에는 이란 글자가 적혀있었으며, 성혈 교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예로부터 성혈 교단은 제국의 중추와 함께 걸작을 관리, 감독해 왔습니다. 제국이 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소유할 권리인 은 성혈 교단이 지니고 있지요.”

유엘이 나진이 쥔 서신을 가리켰다.

“그것은 당신이 허락되지 않은 걸작을 소유한 이를 상대하거나, 토벌할 경우, 혹은 새로운 걸작을 발견할 경우 해당 걸작을 소유할 수 있게끔 해주는 권리입니다.”

가령 파우베를 토벌했을 때 그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신은 걸작 ‘불그림자’를 소유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 설명하며 유엘이 짧게 숨을 뱉었다.

“마경에선 걸작을 소유한 이들을 제법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마경을 지배하는 고위 마족은 걸작을 소유하고 있으니. 아마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걸 내게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눈동자로 흘겨보는 나진에게, 유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성혈 교단은 당신의 공을 높게 친다고. 앞으로도 악마와 흑마법사 사냥에 도움을 주라는 의미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뇌물인 겁니다.”

무얼, 하고 그녀가 말했다.

“언제 여유가 될 때 성혈 교단의 본교회에 방문해 밀센티아 대사제를 찾아가 보십시오. 그녀는 당신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황실에서 나온 나진이 접견실에 머무르고 있다. 그 소문이 황도에 퍼지자, 숱한 이들이 나진이 머무는 곳을 향해 걸음 했다.

최연소 소드 시커, 나진.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루었으며 향후 전망도 밝은 인물이다. 만일 나진이 황실의 기사단에 소속됐다면 채갈 생각은 깔끔히 접어야겠지만, 황실은 아직 어떠한 추가발표도 내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다. 만일 소년이 고민 중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낚아채 갈 절호의 기회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황도에 자리 잡은 숱한 집단들이 저마다 사람을 보내기 시작했다. 뇌물을 한가득 담은 이들이 나진이 머무르고 있다는 접견실을 향해 걸음 했다. 마탑, 길드, 기사단, 용병단······.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거대 집단들이 파견한 인력.

그들 모두가 어디 가서 꿀릴 일은 없는 이들이다. 어디 어디에서 사람을 보내왔단 소식이 들리거든, 어지간한 귀족들조차 화들짝 놀라 귀빈으로 모시는 이들이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나진을 채갈 궁리를 하면서도, 나름의 품위를 지켜 접견실의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접견실의 앞에 도착한 순간.

그들중 어느 누구도 감히 접견실의 문을 두들기지는 못했으며, 품위를 내던지고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접견실 안에는 두 명의 초월자가 있었으니까.

검의 교단의 검성, 카론과 성혈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두 명의 소드 마스터가 선객(先客)으로 와있거늘, 감히 누가 저 문을 두들길 수 있겠는가.

초월자 앞에선 어느 집단이든 체면을 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바깥에 도착해있단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 채, 몇 시간이고 바깥에 말없이 서 있었다.

저벅.

그렇게 그들이 문 바깥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이다.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또 기다릴 사람이 늘었군.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번엔 어느 집단의 인물일지 확인하려던 이들은, 새로운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눈을 부릅뜬 채 곧장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탁.

고개를 조아린 이들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노인은 문 앞에 멈춰 섰다. 감히 그 누구도 초월자가 머무르고 있는 저 문을 두들길 수는 없었지만, 문 앞에 멈춰 선 인물만큼은 별개였다. 그 인물 역시 한 명의 초월자였으니.

제국의 첫 번째 기둥.

제국제일각, 게르드가 접견실의 문을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