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229672/10.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이반은 기사다. 더는 자신이 기사라 불릴 수 없음을 알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기사라 여겼다.

기사란 명예와 긍지를 지키는 이.

이반은 명예를 잃었지만 긍지만큼은 놓지 않았고, 오른쪽 눈을 잃었지만 한쪽 눈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이반은 절반이나마 기사였고, 외눈이지만 하나 남은 눈으로 빛을 볼 수 있었다.

장님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기사였기에.

‘···빌어먹을 애송이 같으니라고.

이반은 나진이 만들어 낸 광채를 보았고, 그 광채가 지닌 가치를 이해했다. 그것은 거대한 가능성이었다. 이런 지하도시에 묻혀있어선 안 될 찬란한 빛이었고, 윗동네의 누군가 알아차린다면 반드시 짓밟아 꺼트리고자 할 불길이었다.

나진이 지닌 광채는.

나진이 내보인 가능성은.

캄란의 저주받는 것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이단들이 떨어진 이 도시에서 나와선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반은 고뇌했다.

그의 귓가에 맴도는 것은 어젯밤 술자리에서 오펜과 나눴던 대화다. 죽이든가, 아니면 살려서 키워보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죽이는 게 옳았다.

후자는 도박수였으니까. 수틀리면 나진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마저 잘릴 게 뻔했다. 그것은 이반의 기준에서 명백한 ‘선을 넘는’ 행위였다.

욱씬.

잃어버린 오른쪽 눈이 지끈거렸다.

사람은 주어진 대로 살아야한다. 제 주제를 알지 못하고 선을 넘는다면 비참해질 뿐이다. 그 사실을 이반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알을 파내라.」

「걸작을 압수하고 떨어트리도록.」

「너는 더이상 아탕가의 기사가 아니다, 이반.」

「감히 별에 손을 뻗은 더러운 이단일 뿐이지.」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었다가 모든 것을 잃었으니까. 빛도, 별도 보이지 않는 지하에 처박히게 됐으니까.

‘죽여야 한다.

사람은 제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 명백한 위험 요소가 될 나진을 죽이거나, 하다못해 더는 검을 못 들게 만드는 게 옳았다.

지하도시의 지배자로서 자신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기사로서의 자신은 다른 답을 내놓는다.

기사였을 시절 한때는 정점을 꿈꿨고, 한때는 저 밤하늘에 자신의 별을 걸기를 소망했던 이반이다.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쫓아 달렸던 기사는 이야기한다. 눈앞에 네가 놓친 꿈이 있다고.

그 꿈을 너의 더러운 발로 짓밟을 것이냐고 기사는 질문한다. 그 질문에 이반은 답하지 못했다.

“······.”

이반은 침묵했다.

침묵 끝에 이반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돌아버리겠군, 정말이지.”

······이반은 기사였다.

여전히, 그는 기사이고 싶었다.

이반은 결정을 내렸다.

“돌아버리겠군, 정말이지.”

이반이 헛웃음을 흘렸다.

숨통을 조여오던 압박감이 사라졌음을 나진은 느꼈다. 한순간에 풀어진 분위기. 눈앞의 이반은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런 걸 가져선, 왜 그런 걸 보여줘선···.”

그가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반은 나진을 바라봤다. 망설임이 느껴지는 눈동자.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결심을 내린 듯 이반이 입을 열었다.

“나진.”

“···왜, 요.”

숨이 차서 나진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반을 바라보는 나진의 시선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검에 깃들었던 빛에 대한 의문 역시.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동자.

그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이반이 말했다.

“오늘 나는 오펜하고 호르세의 영역에 잠입할 거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사흘에서 나흘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될 텐데······.”

이반이 허리춤에서 검을 풀었다.

그가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두 자루의 검. 한 자루는 윗동네에서 가지고 온 기사의 검이요, 남은 한 자루는 지하 도시의 대장장이 호겔 영감이 만들어 낸 역작이었다.

그중 이반은 호겔 영감의 역작을 나진에게 건넸다. 나진은 영문도 모른 채 검을 받아들었다.

“그동안 네가 내 자리 지키고 있어라. 내가 자리 비운 동안 깝치는 놈 있으면 그걸로 베어버려. 그 검을 너한테 맡겼다는게 네가 내 대리인이라는 증거니까.”

검을 건네며 이반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반이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돌아오면 검기 다루는 법을 알려주마.”

그간 미루고 미뤘던 것.

그걸 가르쳐준다는 이반의 말에 나진이 눈을 깜빡였다. 이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영 못 믿겠다는 눈치구만.”

“저 방금 죽을 뻔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죽일까 봐 무서운데.”

“얌마, 내가 그렇게 망나니로 보이냐?”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은 쓰게 웃었다. 하긴 부정할 수는 없겠군.

“믿진 않겠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다. 거기서 반응 못 했으면 어깻죽지에 흉터나 하나 더 새겨줄까 생각하긴 했지만.”

“완전 쓰레기네 이 사람.”

“다 큰 뜻이 있어서 그런다. 이 빌어먹을 애송아.”

여전히 미심쩍은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진의 모습에 이반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뭐, 못 믿는 것도 당연하지. 그러니까, 믿을만한 걸 걸도록 하마.”

“뭘요?”

“뭐긴 뭐야. 내가 걸 수 있는 제일 무거운 거지.”

허리춤에 남은 한 자루의 검.

아탕가의 문양은 지워지고 없지만, 기사로서의 이반을 상징하는 그의 반쪽과도 같은 검. 그 칼자루에 손을 얹은 순간 이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긍지에 걸고 맹세하지.”

지하 도시의 지배자 외눈의 이반이 아닌.

아탕가의 기사 이반으로서 그가 말했다.

“이건 거래다. 나진.”

상대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음을 인정하고 건네는 제안이자 거래.

“난 지금부터 네게 투자할 거다. 검기를 뽑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네게 가르칠 거다.”

조금 전 네가 내보인 광채.

그 빛에 내 모든 걸 걸어볼 거다.

“그러니, 넌 반드시 나보다 높은 곳에 올라라.”

소드 엑스퍼트에 그치지 않고.

그다음의 경지에 올라라.

내가 닿지 못했던 곳에 닿아라.

“올라서, 내가 저 빌어먹을 윗동네에 놓고 온 것들을 되찾게 해다오. 저 윗동네와 협상을 할 만큼의 강자가 되란 뜻이다.”

“···윗동네에 놓고 온 게 뭔데요?”

“명예.”

긍지와 함께 기사가 가져야 할 것.

“아탕가의 기사라는 작위와, 한때나마 별을 쫓는 기사였다는 명예.”

그가 나진에게 손을 뻗었다.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그 손길이야 말로 이반이 건네는 제안이었다.

“······.”

나진은 잠시동안 망설였고.

망설임의 끝에 이반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확, 하고 나진을 일으켜 세운 이반이 웃었다.

“오늘부터 넌 내 종자다.”

종자, 견습기사 스콰이어.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종자.”

이반의 집무실.

자리를 비운 이반을 대신해 나진은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평소 이반이 앉아있던 의자에 걸터앉은 채 나진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지.”

툭툭. 검지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니까.

‘도대체 뭐지.

떠올리는 것은 몇시간 전의 일.

나진은 이반과의 대련을 곱씹었다. 생각해 보면 대련을 하자고 한 것부터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심지어 평소와 달리 철검까지 들고 말이야.

철검에 마나로 육체 강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끝내는 검기까지. 이반이 검기를 두른 검을 휘두를 때 나진은 정말로 죽음을 직감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고 칼날에 광채가 맺혔다. 제아무리 마나와 검기에 무지한 나진이라고 한들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검에 맺힌 게 무엇인지 모르진 않았다.

‘빛. 마나. 검기의 편린.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무인의 증거.

그럼 자신이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건가?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진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검을 움켜쥔 채 손아귀에 힘을 콱 주었다.

검기는 뽑히지 않았다. 쩝.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나진은 검에 광채가 깃들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무언가 등 뒤에서 몸을 떠밀었고, 광채가 맺힌 순간 몸에서 느껴지던 탈력감. 본능으로 행했던 그 일련의 과정을 떠올려 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꿈이라도 꾼 기분인데.”

그러나 손바닥과 몸에 남은 통증. 그 아릿한 통증이 자신이 꿈을 꾼 게 아님을 증거했다.

그럼 내가 정말로 검기를 뽑아냈다고?

마나 연공법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지하도시에서 그 답을 알려줄 만한 인물이라 해보아야 이반과 오펜뿐이었는데, 그 둘은 안타깝게도 지금 호르세의 영역으로 떠난 뒤였다.

“···돌아오면 물어보지, 뭐.”

이제는 물어볼 수 있을 테니까.

떠나기 전 이반은 분명히 말했다. 호르세의 영역에서 돌아오면 검기와 마나에 대해 전부 알려주겠노라고. 그것은 지난 수년간 나진이 갈망해 온 지식이었다.

갈망했지만, 배우고 싶어 했지만, 결코 이반이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네게는 너무 이르다며 대답을 회피하곤 깊게 물어보면 그만하라며 경고하던 것들.

「돌아오면 가르쳐주마. 검기 다루는 법을.」

이반은 대뜸 그런 것들에 대해 가르쳐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나진으로선 자신을 죽이려 드나 싶더니,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꾼 이반의 생각을 알 수는 없었지만······.

한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반이 진심이라는 것.

자신에게 검기를 가르쳐주겠다는 것.

그 말을 이반이 가볍게 내뱉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긍지에 걸고 맹세하지.」

그야 이반이 자신의 긍지를 걸었으니까.

이반이 아탕가와 긍지, 그 두 단어와 함께 입에 담았던 말들은 반드시 지켜졌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말야.

그것이 아탕가의 무게였고, 기사로서의 이반의 말이 지닌 무게였으며, 외눈의 기사가 아직 버리지 못한 과거의 무게였다. 물론 나진은 거기까진 알지 못했다. 그냥 이반이 아탕가를 언급하면 아무튼 지켜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

‘무엇을?

약간의 웃음과 함께 나진이 중얼거렸다.

“마나, 검기, 제대로 된 검술.”

이제부터 자신이 배울 수 있게 된 것들.

그것은 이 지하도시에선 손에 넣을 수 없었던 특별한 무언가였다. 그간 이반이 그어둔 선의 바깥에 놓여있었기에 감히 넘볼 수 없었던 것들.

그리고, 그건······.

나진이 언제나 들고다니는 동화책에 등장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아서왕과 아서를 따르는 기사들에 대한 묘사에서 ‘찬란한 검기’는 빠지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 묘사를 떠올린 나진은 미소 지었다.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지만.

조금은 별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종자.”

기사의 종자, 견습 기사 스콰이어.

이반의 사냥개가 아닌 스콰이어.

그 단어가 만들어 내는 울림을 곱씹으며 나진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검을 매만졌다.

썩 괜찮은 울림이었다.


“이반이 미끼를 물었다.”

채굴장과 연결된 지하 갱도.

갱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땅거미 호르세는 입을 열었다. 혼잣말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까.

“약속했던 걸 내놔라.”

“그렇게 안 보채도 줄 거야.”

호르세의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아 있는 여자. 그녀가 히죽이며 호르세의 앞에 약 봉투를 던졌다. 호르세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제야 손의 떨림이 멎었다.

호르세는 깊이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자를 흘겨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치광이. 그녀를 노려보며 호르세가 말했다.

“이제부터 어쩔 생각이지?”

“들어서 뭐 하게? 알 거 없어. 넌 시킨 일만 잘하면 돼.”

그녀가 턱을 괸 채 히죽였다.

“그러고 보니 네 첫 번째 다리, 아놀드가 도망쳤던데. 네가 시킨 거니?”

“···내가 관여하진 않았다.”

“뭐, 상관없어. 이반은 꾀어냈으니까.”

“아놀드는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긴. 규칙을 어겼으니까···.”

그녀가 손을 뻗어 집무실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엔 철창에 갇힌 채 축 늘어져 있는 호르세의 조직원들이 있었다.

“쟤들처럼 되겠지.”

여자가 손을 까딱였다.

찌르르, 울려 퍼지는 소리. 직후 조직원 하나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르세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튀어 오르는 핏물과 살점.

아, 아아··· 하고 울려 퍼지는 힘없는 신음소리.

집무실에 메아리치는 소음들 사이에서 호르세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