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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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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유나는 전직 여돌(여자 아이돌)이었다.

딱히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은, 적당히 먹고 살면서 활동하다 수명이 다 되어 멤버들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난 그런 수준의 아이돌. 각 멤버들끼리 가끔 만나기도 하고, 여행을 같이 떠나기도 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찍기도 하며… 그런 것들이 기사 하나도 나지 않거나, 고작해야 하나둘 정도 나올 수준의 아이돌.

다른 멤버들이 전부 각자의 삶을 찾아서 배우, 직장인, 주부로, 트레이너로 떠나는 동안, 유나는 싱글 가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메보(메인 보컬) 멤버는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데 서브였던 자신이 가수의 길을 걷는 게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는 고작 몇 년 아이돌로 활동했다고 이 판을 떠나 무경력자로 살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든 연예계에서 살아남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요새 애들 너무 젊어…’

물론 목표를 가진다고 해서 그게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시대에 따라가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인 시대. 그녀는 그런 종류의 위기감을 받으며 회의실의 내부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던 회의실은 어느새 수다로 시끌벅적해졌다. 분명 조금 전에 얼핏 듣기로는 죄다 생전 처음 보는 사이라고 했는데 어느새 30년 정도는 같이 본 사이처럼 친해진 네 사람.

저런 게 적응이라는 것이겠지.

그녀 자신은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이었다. 저 멀리서 혼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어린… 여고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만이 그녀의 동지였다. 그녀는 그 사실에 왠지 모르게 그 애에게 친숙함을 느꼈다. 너도 낯을 가리는구나 하고.

“안녕하세요~ 김가은 피디입니다! 이전에 여러분과 인사는 드렸었죠! 다들 오랜만에 뵙는 얼굴들이라 반갑네요!”

쾌활하게 들어오며 인사를 건네는 김가은 피디.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자신의 입장으로 인해 정적이 감도는 회의실의 분위기에 어색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인사는 다들 나누셨을…”

“했어요!”

“저희 벌써 친해졌어요~”

“아, 저쪽 분들이랑은 안 했어.”

“그래? 아 그랬지.”

“어… 그러면 다들 인사부터 나눠볼까요!!”

왜 인사를 안 하고 그랬냐, 라는 그런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 그녀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이돌을 할 시절 가장 어려운 것이 첫인사였기에. 친해진 사람과는 말하기가 편하고 쉽지만, 정작 친해지는 것 자체가 힘든 그런 느낌.

“안녕하세요! 저는~”

이미 친해진 네 사람이 까르르 웃으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던 분위기는 그녀의 차례가 오자 금세 가라앉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싱어송라이터, 하유나입니다. 전에는 헤일로스에서 서브보컬을 맡았었어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유나는 떨리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빠른 속도로 말을 주워섬겼다. 잘 모르는 친구가 갑자기 선물을 떠넘기고 도망쳐버리는 듯한 기세에, 사람들은 살짝 압도된 채로 손뼉을 쳤다.

“안녕하십니까. 그룹 사운드 하수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사람. 유나가 친근감을 가졌던 아이. 차가운 외모와 표정 없는 얼굴로 일어선 그 애는, 딱딱하다 못해 콘크리트 글러브로 사람을 때리는 듯한 느낌의 말투를 사용했다. 한순간에 얼어붙어 버리는 분위기.

“어, 어, 어! 저, 그, 수연님? 수연님 방송에서 봤어요. ‘다에요’ 그거로!”

“다에요가 뭐야?”

하지만 그 분위기는, 누군가의 외침 때문에 풀렸다. ‘다에요’가 뭐냐는 질문에 친절하게 영상을 보여주는 그 사람. 아무렇지 않은 표정 뒤로 귀만 빨갛게 달아오르는 수연을 두고, 나머지 네 명은 영상을 본 후 연신 수연을 귀엽다고 칭찬했다.

‘이런 프로그램 잘할 것 같은 애네.

유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가운 이미지지만, 부끄러워하는 면이 있는 아이. 이런 살짝 개그가 섞인 힐링 프로그램에 꽤나 어울릴만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인상은,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깨어지고 말았다.

“어~! 나 이 노래 잘 모르는데!”

“피디님, 이거 좀 다시 돌릴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요? 저희가 잘할게요.”

촬영이 시작되고. ‘버스킹을 해서 그날의 식비를 충당한다’라는 컨셉에 따라 출연진들이 여러모로 종횡무진하는 동안, 수연은 그야말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단지 배경에서 살짝 경직된 미소를 방긋방긋 지으며 가만히 있었을 뿐.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유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분명 미팅에서는 말투가 조금 딱딱했을지언정 이야기는 곧잘 했고, 꽤 재미있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촬영 중에 긴장했다고 봐야 할까? 그런 것도 좀 아닌 것 같았고.

“컷! 잠시 쉴게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는 동안, 유나는 가은 피디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피디님…”

“아, 네~ 유나 씨! 왜 그러세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 줄 이유는 없었다. 하하 호호하지만, 결국 연예계며 방송가는 경쟁 사회. 자리를 굳힌 다음에는 수행할 수 있는 ‘롤’이 달라지니 완전한 경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작은 규모에서는 일단 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밀어내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하지만 유나는 왠지 저 애가 짠해 보였다. 잘할 수 있어 보이는(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아마 그 이유는…

“지금 저 수연 학생이 프로그램 내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어서요.”

“네? 아, 음… 음, 그렇긴 하네요!”

“약간 뭐 촬영 컨셉적인 부분이 좀 잘못된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음…”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한 가은 피디를 두고, 유나는 과거를 떠올렸다. 아까는 전혀 웃고 있지 않던 아이가 이제는 방긋방긋 웃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은 그녀가 아이돌 시절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전혀 맞지 않았던 컨셉을 고수해야 했던, 방송도 잘 안되고 유나 자신도 괴로웠던 그 일을.


“죄송해요!”

몇 번의 커트 사인이 오간 이후, 피디가 그를 불러 말한 첫 마디는 바로 사과였다. 상당히 미안하다는 표정의 가은 피디.

“왜 그러십니까.”

“제가 괜히 이상한 컨셉을 말씀드리는 바람에…”

쭈글쭈글해진 피디. 이 타이밍에는 “아니 그러진 않았습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할 부분이지만, 명전은 차마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컨셉이 이상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는 그놈의 ‘발랄한 느낌’을 유지하고자 전력을 다했다. 계속해서 방긋방긋 웃고, 최대한 동작을 크게 하고.

하지만 그런 것들을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멘트를 치고 들어간다거나 적재적소에 이야기한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은 명전으로서는 불가능했다. 프로 방송인이라면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셨다고 다른 분이 그러셔서…! 제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하수연’을 보고, 가은은 정말 구멍이라도 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데려온 사람 아닌가. 방송에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데려온 아인데, 정작 이상한 컨셉을 줘서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었다니.

“제가 말했던 ‘발랄한 컨셉’은, 안 하시는 쪽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그냥 수연 출연자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좋아 보여요!”

그렇게 말하는 가은 피디. 명전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 말에 피디는 “예를 들어서 인베이전 2024때 보여주셨던 모습이라던가… 그런! 약간 음악적 지식을 보여주는 그런 느낌으로!” 라며 이야기를 한 후, 잠시 고민해 보라고 하며 자리를 떴다.

‘나 자신 본연의 모습? 음악적 지식을 보여달라고?

하지만 명전은, 그 말에 뭔가 조금 더 헷갈리는 기분이 들었다. ‘수연 출연자님 본연의 모습’이라… 마치 별생각도 안 해봤는데 ‘너답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분.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따라 나오는 말이 있다. '나 다운게 뭔데? 같은 대사.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인가?

명전은 그렇게 고민하며 머리칼을 살짝 꼬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밖에 해석이 되지 않아, 그는 싸매던 머리를 그대로 둔 채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어차피 잘 모르겠으니,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가자.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수연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아까는 웃고 있으나 경직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무표정이긴 해도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 표정을 굳히고 정색하고 있다기보다는 집에서 편하게 아무런 표정 없이 놀고 있다는 인상.

"자! 그러면 이제 다시~ 시작을 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돌리실 분은…?"

"아, 저네요."

가은은 그런 수연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촬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출연자 중 한 명이 돌린 룰렛은,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한 곳에 도착했다. 선택된 장르는,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 들어본 사람 있어요?”

“어, 나는 없는데.”

왠지 모르게 삐죽삐죽대고 있는 수연을 무시한 채로, 가은은 계속해서 촬영을 진행했다. 블루스라. 아마 스태프가 구색 상으로 넣어놓은 것인 것 같긴 한데.

“다들 잘 몰라요?”

“네. 들어본 곡도 없어요.”

“완전 할아버지들이 하는 장르 아닌가? 그 옛날, 뭐 한 60년대 70년대.”

가은의 말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출연자들. 그녀는 이걸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이 분량은 테이프를 자르고 넘어갈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결국 방송에서 중요한 것은 재미다. 여기 있는 6명 전원 다 블루스를 알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겠는가. 어차피 두 번 세 번 블루스가 찍힐 일도 없고 룰렛에 들어간다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구색만 맞춘다고 치고 한 번 더 돌리면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가은은 입을 열려 했다. 출연자들 뒤에서 수연이 말하기 전까지는.

“블루스는 할배들 장르가 아닙니다…”

“… 네?”

“그야말로 근본, 뼈대. 애초에 60년대 70년대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1900년도쯤부터 시작한 시작한 장르이며, 락의 근간을 이루는 장르이기도 하단 말입니다. 완전 인식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뒤쪽에서 살짝 열을 받은 듯 걸어 나오며 말을 이어 나가는 수연.

“예를 들어서 비틀즈! 롤링 스톤즈! 밥 딜런! 그 외 많은 락 스타! 한국 뮤지션! 전부 다 블루스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렇게 말하고는 촬영 현장 구석에 세워져 있던 통기타를 들어 올리는 수연. 그리고 그녀의 손끝에서 퍼져 나오는 연주. 상당히 친숙하면서도 신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곡.

“다 들어보셨겠지만, 이 곡부터 해서…! 현재 대중음악이라는 게 대부분 다 블루스에 연관된 것들이란 말입…녜요!”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수연은, 마지막쯤에 갑자기 혀라도 깨문 듯 입을 급격하게 멈추며 ‘에요’를 덧붙였다. 귀여운 발음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며 화기애애해지는 촬영장.

“프흐흐흫ㅎ핳!”

“헉… 진짜 귀엽다…!”

“와 대박. 저게 진짜였어?”

그 모습에 출연자들이 몰려들어 “아니 왜 갑자기 그런 발음을 하는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지고, 수연이 “… 원래 말투가 너무 딱딱한 것 같다고 느껴서입니, 아니 느껴서에요.”라고 대답하는 동안.

가은은 그런 수연의 모습을 보고, ‘발랄한 여고생’보다 훨씬 나은 캐릭터를 떠올렸다. 수연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세상에 둘이 없을 만큼 독특한 그런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