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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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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서하와의 대화 이후, 명전은 정태영 피디의 프로그램에 출연을 결심했다. 서하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이 한몸 희생한다는 느낌으로.

‘결국 소문은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야. 그 다음 남는 건, 그 때 일었던 소문으로 인한 이득이다.

명전은 그렇게 되뇌었다. 다에요 여고생이니 뭐니,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지만 어찌되었든 그게 자신에게 엄청난 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전의 학교폭력 누명(엄밀히 말하면 누명은 아니지만)처럼 해소하지 않으면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유명세를 타게 내버려두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 아닌가.

물론, 부끄러움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길게 보자, 명전아. 한 순간 부끄러우면 될 일 아니냐.

이를 악물면서,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은 그냥 한때의 이슈로 불어닥치고 말 일이다.

세상에 이슈 될 일 한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감전도 되고, 지방흡입 했다고 울고, 잘 나가는 아이돌 사칭도 하고, 인터넷 방송에서 위안부 보고 창녀라느니 아이돌들 성희롱이니 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명전이 한 일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다. 과거 ‘서명전’일 시절의 말씨를 조금 ‘여고생화’(적어도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하려다가 그냥 혀가 꼬였을 뿐인 그런 일. 그냥 인터넷에서 귀여워~ 하고 끝나는 것.

[안녕하세요. 하수연입니다.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출연 승낙 메일을 썼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모른 채로.


[안녕하세요! 채널 프리프루의 김가은 PD입니다! 정태영 PD님 통해서 관련 내용 전달받았습니다! 출연해주시기로 한 것에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면서…]

명전은 글을 읽어내려갔다. 이전에 자신이 보냈던 메일의 답장. 출연 제안을 했던 정태영 피디가 아니라 실제로 그가 출연할 서브채널의 피디가 답장을 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를 출연시키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글로만 봐도 긍정적인 느낌이 가득한 사람. 게다가 세션 일이 있어서 주말에 힘들 것 같다 하니, 그럼 자기가 찾아오겠다고 하는 열의까지. 접한 것은 상대의 글 밖에 없지만, 명전은 여러모로 상대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

그들이 만난 곳은 명전의 집 근처였다. 최근 새로 생긴 곳. 타일 바닥에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를 풍기는, 멋 부리긴 하지만 요즘 흔한 풍의 카페.

명전은 비어있는 카페 안쪽에서 크림을 잔뜩 올린 커피를 마시다, 문을 열고 그의 쪽으로 리트리버마냥 뛰어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안녕하십니까.”

“와…! 안녕하세요! 김가은 피디입니다!”

헥헥대며 숨을 잠시 고르다, 의자를 드르륵 꺼내 앉는다. 그러고는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켜 다시 커피를 주문하고 앉은 후,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사라진다. 뭔가 정신없지만 활기찬 사람이라는 느낌.

“아, 죄송해요! 제가 좀, 음, 좀 뛰어와가지고! 좀 힘이 드네요!”

“괜찮습니다. 잠시 앉아서 숨 좀 고르시죠.”

“아 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순식간에 들이키고는, 의자에 앉아 후우후우 하며 숨을 고른다. 그렇게 얼마간 있다가 정신을 차린 김가은 피디는, 명전에게 명함부터 건네왔다.

“김가은입니다! 명함부터 받아주시구요!”

“아 네. 저는 드릴 명함이 없는데…”

“괜찮습니다! 연락처는 받았으니까요! 원래 명함이라는 게 필요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그런 물건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하는 가은 피디. 명전은 흥미롭게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펜도 나오고, 노트도 나오고, 이것저것 뭔가가 나온다. 구겨지고 부서진 상태로 포장된 쿠키도 나왔지만, 가은의 침울한 표정과 함께 가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 주려고 한 건가?

그 모습에, 명전은 가은이 자신의 팬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출연자에게 저렇게 정성들여서 포장한 쿠키까지 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눈빛만 오가도 손만 살짝 닿아도 손자까지 생각하는 사춘기 청소년은 아니더라도, 일정 이상의 호의에 대해 이유를 찾는 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다.

“저 완전 팬이라서, 정말 뵙고 싶었어요! 수연 님의 작업물이나 노래, 방송 출연분 같은 것들 보고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태영 피디님한테 말씀을 드렸었는데 기억하고 계셨나봐요!”

“아, 감사합니다.”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역시 이놈의 인기란. ‘서명전’시절에도 인기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하수연’이 된 이후로는 인기가 완전 폭발해버린 느낌이었다. 이렇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면 음악 생활을 이어가는데 좀 힘이 든단 말이지. 다들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혹시 어떤 곡을 듣고 팬이 되셨습니까?”

“아… 어떤 곡을 듣고 팬이 된 건 아니구요! 저번에 음악편지 나오셨을 때…”

그 말에 명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떤 곡을 듣고 팬이 된 건 아닌데, 음악편지를 보고 팬이 되었다고? 곡을 듣고 팬이 되지 않았다면 추측할 요소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다에요! 라고 하시는 거 보고! 아, 이게 실례될 수도 있는데…! 너무 귀여우셔서!”

“그…그믑습느드…”

“네?”

“고맙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나간 인사. 가은의 반문에, 명전은 자신의 그런 행동을 자책하며 다시 정상적으로 인사를 했다. 아무리 그런, 명전이 싫어하는 계기로 인해 팬이 되었다고 한들 팬은 팬 아닌가.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그런 계기로 팬이 안 되었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이지만.

그 뒤로는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쭉 했다. 무슨 리트리버라도 된 마냥 ‘하수연’을 본 것을 좋아하던 김가은 피디도, 방송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진지해진 모습이었다.

“포맷은 대충 이런 느낌이에요.”

PPT와 콘티 몇개를 가져와 설명을 해 주는 가은. 그녀의 말에 의하면, 명전이 출연할 프로그램은 이번에 가은이 새로 런칭하는 신생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뮤지션… 그런 좀 유명한, 혹은 케미가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특정 도시에 떨어트려 놓고, 버스킹으로 돈을 벌게 해서 생존하는… 그런 방식의 프로그램이 될 것 같아요.”

“뭐 1박 2일 그런 느낌으로 가는 겁니까?”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명전이 그 설명을 듣자마자 떠올린 것은, 옛날에 방영했던 ‘나만 아니면 돼’ 정신으로 유명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딱 봐도 그런 느낌 아닌가? 몇명 모아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거지 되고. 나는 돈 잘 벌었다~ 이런 느낌으로.

“힐링, 감성… 그런 쪽으로 갈 거에요. 유머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참가자들의 노래나 끼 같은 것을 뽐내고 그걸 시청자분들이 좋아하는 그런 방향으로.”

“좋습니다.”

명전은 동의를 표시했다. 요즘 대세가 힐링이고 뭐고 그런 것이니만큼, 그걸 거스르면서 방송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명전의 견해였다. 대세라는 건 잘 되니까 대세인 법이다.

“다만, 일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전에?”

“네. 캐릭터성 관련해서 태영 피디님이 전달해주셨을텐데, 아무래도 방송인 만큼 그냥 방송을 찍는 것만으로는 재미를 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캐릭터성을 만들어야 하게 되는 거죠.”

‘즉, 일반인들 몇명 모아서 방송 찍어봐야 재미도 없을 테니까 캐릭터성을 주고 거기에서 재미를 뽑아내겠다… 뭐 그런 건가.

이해는 할 만한 선택이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결국 방송은 재미를 뽑아내기 위한 것이니까. 다큐를 보여줘도 재미있는 다큐를 보여줘야지 그냥 일반인 몇명이 지들끼리 ‘아… 안녕하세요…’ 이러다가 노래 부르고 겸연쩍어하다가 밥 먹고. 이런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참여하시게 되면 수연 님의 캐릭터는 ‘다에요’와 발랄한 여고생, 그런 쪽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 발랄한 여고생이요?”

명전은 어처구니가 없어 되물었다. 발랄? 미친 게 아니고서야 나올 수가 없는 발상인데. 도대체 명전의 어디가 발랄하다는 것인가. 게다가…

“일단 인베이전 2024에서 나왔던 제 캐릭터가 발랄한 캐릭터가 전혀 아닐 텐데요. 그런데 갑자기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쪽의 캐릭터를 부여해버리면 좀 그렇지 않을지.”

“아… 괜찮아요! 긴장했다고 하면 되니까.”

“그게… 음… 아닙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명전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기왕 하게 된 거 그냥 군소리 없이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래야 이미지도 좋아지고, 어쩌고 저쩌고…

출연 관련 이야기가 전부 마무리된 후.

“수고하셨습니다.”

명전은 지친 정신을 되잡으며 가은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고생들의 정신공격도 골치아팠지만, 어떻게 된 게 그렇게 많던 여고생들보다 이 사람 단 한명의 정신공격이 더 강한 느낌이었다.

“아…! 수연 님! 잠시, 잠시만요.”

“네?”

“제가 딱 하나만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무례할 수도 있지만…!”

무례한 걸 알면 말을 안 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하고 명전은 생각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본인도 아무튼 그런 것을 무릅쓰고라도 이야기를 해야 되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말을 했겠지.

“-다에요 말투 한번만 부탁드릴게요…!”

‘전혀 아니었군.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은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써주려고 하는 사람이니 뭐라 하기도 그렇고. 게다가 팬이라고까지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매몰차게 거절을 하겠는가.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일단 보여주긴 해야겠지.

“알겠다에요.”

하지만 명전이 해 준 말에, 가은은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했다.

“약간… 약간 다른 것 같은데요…!”

“저는 그냥 평소대로 했습니다만…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에요.”

‘다에요’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가은.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해보였으나, 명전은 그냥 이대로 끝내기로 했다. 나는 보여주었으니 이걸로 끝이다. 만족을 못 하면 본인의 문제인 것이지.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에요.”

명전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다, ‘다에요’를 지켜야 해 말을 살짝 꼬았다. 그 말에 눈을 빛내며 “그거에요!” 라고 외치는 가은.

“제가 보고 싶었던 것! 바로 그거에요! 그 무표정을 가장한 실수에 부끄러워하는 표정! 살짝 빨개진 귀! 어찌할 바 모르는 손!”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자신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말하며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열거하는 오타쿠처럼 흥분하는 가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한참 더 부끄러워져 도망이라도 가고싶어진 명전. 그 촌극을 바라보는 카페 주인까지.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었다.


그는 김가은 피디 밑에서 일하는 스태프다. 촬영 현장에서 그다지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는. 하지만 꼭 필요하긴 한 그런 역할의 스태프.

“자, 오늘은 미팅 하고. 그 다음 첫 번째 촬영 바로 들어갈 겁니다. 들어가기 전에 파이팅 한번 외치고 가죠. 다들 오세요.”

매일 방긋방긋 웃으며 활발하게 다니는 가은 피디의 진지한 면모. 그렇게 변모한 모습에 그는 이질감을 느끼며, 화이팅을 외치고는 다시 자리로 복귀했다. 그러는 사이 속속 도착하는 출연자들.

‘미팅을 뭐 언제까지 하려나? 길게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한 대기 같은 건 겪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소망을 들은 모양인지, 살짝 길어지는 듯 보이던 미팅이 끝나고 출연자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와, 저 애는 진짜 이쁘네.

그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본 사람부터, 아예 처음 듣는 사람까지. 6명의 출연진을 훑어보던 그는 엄청난 미인 한명을 발견했다. 아직 앳된 티가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미인인 것이 확실히 티가 나는. 완전히 성장했을 때는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잘 오지 않는 아이.

“자, 그럼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6명의 출연진을 앞에 둔 채, 그렇게 외치는 김가은 피디. 그 말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