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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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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아까 전 그들이 연주했던 ‘과오’는, 살짝 부족한 감이 있었다. 관객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감상하는 정도의 반응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떨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연을 불러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본인 맞지? … 맞겠지?

아까 그렇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수연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맞았다. 평균적인 키에, 날카로워보이는 인상. 길게 길러 한쪽을 넘긴 장발까지.

하지만 그는 의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세상사 별 일 다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한국 음악 듣다가 TOP100 차트에서 한국 락을 발견하고 들어봤는데 은근히 좋아서 아 이거 한번 다음 번 공연때 불러봐야지, 라고 생각해서 불러봤는데 하필 그 원작자들이 자신이 공연을 하는 라이브하우스에 와서 그 노래를 듣는 일’ 같은 게 어디 세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이 사람 뭐라는 거야?”

“그룹 사운드… 보컬 맞냐는데요…”

“맞아요. OK. i am.”

… 은근히 그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같이 다가온 여고생의 말에, 자신이 맞다고 담담하게 인정하며 그를 보는 수연.

그리고 그는 생각이 멈췄다.

맞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저 애들이 대신 연주할 수 있게 자리를 내 줘야 하나?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하우스의 분위기는 조금씩 차가워져갔다. 관객들은 지금 상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여러분, 아까 불렀던 곡… 과오. 지금 여기에 원작자 밴드가 와 계십니다!”

그는 우선, 본능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반응하는 관객들. 일단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도 있고, 웅성거리는 관객들도 있다. “방금 곡 좋던데, 한국에서 만든 거라고?” “한국어이긴 했지.” “저 여자애들 어려보이는데 저런 곡을 썼다는 건가.” 같은 말들도 들려왔다.

그 틈을 타 그는, 무대 밑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수연에게 위로 올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완전 망해버린 분위기를 좀 회복하기 위해서.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무작위로 틀어진 것 같은 대기 음악을 배경으로, 가라앉아버린 분위기의 라이브 하우스. 자기들끼리 쑥덕이던 이야기는 끝난 모양인지, 기타를 잡고 있던 멤버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명전에게 기타를 넘겨주었다.

“우와아아!”

관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 명전은 과연 저 중 얼마만큼의 감정이 진짜일지 고민해보았다. 그렇게 크지는 않을 듯 했다.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들은 것은, 무슨 말인지 모를 일본어. 현아가 올라와 통역을 해 준 이야기는, “보컬… 좀 서 달라는데요.” 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일축하고 싶었지만, 밴드맨으로서 더이상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을 볼 수 없어 명전은 제안을 수락했다. 대신, 기타를 자신이 잡는 조건으로.

‘이게 뭐하는 짓인지…’

건네받은 기타는, 야마하 퍼시피카다. 구입 금액 자체는 수입가 백만원 정도로 그렇게 비싸지 않다. 하지만 ‘가성비의 야마하’라는 말 답게 가격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는… 그의 실력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기타.

“스타토? 웨이토?”

“고, 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 보컬의 물음에 명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무대 아래의 관객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보이는 것은 약한 기대감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걱정과 기막힘.

“자, 그럼 다시 곡 한번 시작해보겠습니다. 보컬과 기타는 원곡을 불러주셨던 밴드, ‘그룹 사운드’의 보컬이자 기타 ‘하수연’ 양이 맡아주시겠습니다! 그럼 들어주세요! 과오!”

보컬의 소개에 들려오는 박수 소리. 내려쳐지는 드럼 스틱의 신호와 함께 리버브를 잔뜩 먹인 피아노가 들어온다.

명전은 그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진심으로 쳐 볼까.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는 라이브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벽 쪽에서 역광으로 비쳐오는 조명 탓에, 무대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 표정에 어린 것은 어찌보면 황당함인 것도 같고, 어찌보면 자신감인 것도 같아 보인다.

3번째 공연. 그가 이름을 들어보진 못했지만, 꽤 실력이 좋아 기억 속에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한 밴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의 락을 공연하겠다고 했을때도 괜찮았다. 한국에도 당연히 락이 있을테니까. 그리고 곡 자체도 괜찮았다. 쟁글한 사운드의 모던 락. 한국 락은 이렇구나~ 같은 느낌으로 경험에 의의를 둘 만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좀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그 곡의 원작자가 나타났다고 하질 않나, 생전 처음 보는 여고생을 불러올리질 않나, 등장이 합의가 안 됐는지 라이브 하우스 관계자와 밴드, 한국인들끼리 이야기를 짧게 나누질 않나, 그렇게 마무리된 다음에는 보컬과 기타를 동시에 잡질 않나.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잘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못 미더운데.

그는 일본 대단해! 같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본 밴드들이 한국 밴드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물며 밴드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여고생이라면 어떻겠는가. 여기 있는 리스너들의 귀를 만족시킬만한 곡이 나올 것이긴 할까.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기타가 첫 피킹을 시작하자마자 깨어졌다.

“우오오-!”

들은 것은, 단지 첫 마디의 연주.

터져나오는 환호성은, 마치 곡이 끝나기라도 한 듯한 크기.

하지만 그럴 만 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방금 전의 연주와는 ‘확실히’ 다른 연주였기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더욱 더 리듬감이 있고 더욱 더 선명하고 좋게 들리는… 굳이 묘사하자면, 프로 세계에 입문한 기타리스트와 이미 완숙의 경지에 오른 거장을 비교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까 전과 완전 같은 멜로디인데 말이지.

분명 곡은 같다. 기타도 같다. 이펙터나 톤 세팅? 따로 한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리듬감이나 사운드, 그리고 톤… 그 모든 것이 전부 다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과 다른 것은 연주자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날 네가 수많은 길들 중에

그 중에 하나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나는 너에게 과연

가지 말았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멜로디가 끝나며, 한숨처럼 내뱉어지는 한국어. 공백 속에서 뱉어지는 가사는, 전혀 모르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간결하고 좋은 멜로디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조금씩 발과 고개를 까딱이며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아까와는 전혀 달라.

지금의 연주는 밴드보다는 아티스트와 세션의 결합에 가깝다. 다른 악기들은 기타와 보컬을 돋보이게 하려는 곁들임에 불과한, 밴드의 연주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전혀 조화로운 형태의 연주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전의 연주보다 지금의 연주가 훨씬 낫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는 왜일까.

‘기타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야.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기타에게 쏟아지는 환호. 저것을 보라. 저 엄청난 존재감의 기타는, 다른 모든 악기들을 전부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만들고 있다. 마치 수면 밑 거위의 발이 얼마나 움직이든 간에, 물 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처럼…

몇 분간의 연주 뒤.

적막이 가라앉고, 마지막 가사가 중얼거려진다. 그 뒤, 수연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터져나오는 환호성은 언어라기보다는 괴성에 가깝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그 하나하나에 수연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관객 중 한명은 아까 어디서 주워들은 수연의 이름을 “수욘! 수욘! 수욘!” 이라며 외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두가 행복했다.

딸이 외국까지 나와서 인정(?)받으며 연주를 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혜인도, 그룹 사운드의 노래가 타국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듣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대충 기타를 후려갈기고 있는 명전도, 어둑한 변두리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이런 수준의 기타를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관객들도.

단지 잘못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주인공 자리를 뺏겨버린 밴드만이 좀 우울했을 뿐이다.


‘부킹 우선권, 노르마 면제… 어이가 없는 소리구만.

연락 한번 달라며 라이브하우스의 오너가 건네준 명함. 명전은 대충 바지 주머니에 명함을 쑤셔넣으며 다시 눈 앞의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연대를 알 수는 없어도 상당히 오래되어보이는 물건들.

이서와 서하는 에어컨을 쐬며 앉아 있고, 현아와 혜인은 활기차게 가게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아는 ‘진짜 오타쿠 플레이스’를 와봤다는 느낌으로, 혜인은 자신이 옛날에 보던 만화 관련 물건들이 꽤나 있었기에.

‘나카노 브로드웨이라고 했던가.

현아의 말로는, 이전에 가봤던 ‘아키하바라’ 와는 다르게… 옛날 일본 만화나 게임 관련된 물건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과연 그 말대로, 그로서는 어떤 것인지 연원은 알 수 없었으나 아무튼 오래된 물건들이 많아 보이는 장소.

“수연아, 이거 봐.”

“네?”

별 생각 없이 아무거나 뒤적이던 명전은, 혜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혜인이 들고 있는 것은 만화였다.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일명 ‘청순만화’의 그림체를 가진 책.

“엄마가 어릴 때 보던 만화야. 예전에는 이렇게 막 화려하게 안 되어 있고, 배경이나 이런 거 막 지우고 먹칠하고 이렇게 해서 들어온 게 많았어.”

혜인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때는 정말 재밌었지. 밤 새서 이런 만화책 읽고…” 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보랏빛 안개가 낀 듯 했다.

“지금은 안 읽으세요?”

“지금은 좀 그렇지.”

“왜요?”

“글쎄, 잘 모르겠네. 흥미가 떨어진 것도 있고, 이런 걸 읽을 시간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혜인의 얼굴은 뭔가 쓸쓸해보였다. 지나가버린,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에 대한 추억. 지금에 와서 다시 재현한다고 한들, 그 시절의 감성을 되돌릴 수는 없으리라. 그녀도 본능적으로 아는 듯 했다.

“그래도 기념으로 하나 사시는 건 어때요. 얼마 하지도 않으니까.”

그 말 이후 다시 책을 집어넣으려는 혜인에게, 명전은 그렇게 제안했다. 잠시 망설이던 혜인은, “그럴까?” 하고 바구니에 책을 집어넣은 후 말했다.

“수연이 너도 좀 둘러보렴. 재미있는 것들 많으니까.”

“네.”

‘라고 해도, 재미있는 게 있을까…’

명전은 생각했다. 혜인이야 이런 곳에 ‘추억의 물건’ 같은 게 존재할 나이긴 했다. 얼마 되지도 않고, 젊으니까.

그러나 그는 전혀 아니었다.

그의 추억을 불러일으킬만한 물건은, 이런 곳보다는 박물관이나 수집가들의 창고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일반적인 가게에서 찾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시대여야, 그에게 ‘옛날에 이런 것도 있긴 했지.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심드렁하게 물건을 뒤지다, 낯익은 물건을 보기 전까지는.

“엥?”

명전은 무심코 그런 말을 내뱉으며 인형 하나를 슬쩍 들어올렸다. 상당히 꾀죄죄하고 낡아버린 물건. 등짝에 붙은 가격표는 1천엔. 한국 돈으로 1만원도 안 하는 가격.

하지만 명전은, 이제는 살아가면서 어렴풋이조차 떠올리지 않는 오래 전 기억 속에서… 이 인형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거… 아버지가 나 어릴 적에 사줬던 것 같은데.

아주 먼 옛날. 명동이었던지 어디였던지. 외식을 하기로 결정됐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사업 관련된 일이 생겼다며 급하게 외박을 하고 온 날이 있었다.

아마 그때 그는 엄청 울었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외식을 못해서 실망했다기보단, 항상 바쁘던 아버지랑 오랜만에 나가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그걸 취소하고 나가버리다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런 심정으로 펑펑 울어댔었다.

그런 그 다음 날, 아버지가 사온 것이 이 인형이었다. 다 낡아빠질때까지 아꼈던 인형. 이사를 가는 와중에 없어져버렸던, 그래서 다시 그 동네 가야한다고 대성통곡했던 그 인형. 기억속에 잊혀졌던 그 인형.

“살까.”

그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며, 인형을 집어들었다. 1천엔. 추억의 가격치고는 너무도 싼 가격이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를 되새길 실마리가 되어주면 충분할 뿐.

“너 그거 사게?”

“응.”

“그거 완전 틀니 만화 아냐? 전에 위키 찾아보니까 거의 뭐 유물 수준이던데…”

그런 명전을 느닷없이 공격한 것은 이서였다. 천진난만한 이서의 말투. 명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 왜?! 왜 화났어? 미, 미안해. 화 풀어. 응? 옛날 만화를 좋아할 수도 있잖… 아니 왜? 옛날 만화 아니라는 거야? 아니 근데 옛날 만화… 아니 미안…”

그렇게 사과하는 이서를 뿌리친 채로, 명전은 카운터로 향했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아직 어른은 제대로 되지 못한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도 틀니는 너무한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