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211768/45.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6 KiB
Raw Blame History

어쩌면 음악에 담을 쌓았다가 갑자기 음악을 급격하게 들이부어 혹사된 하수연의 귀가 그렇게까지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전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잘못 들었으면 했으니까.

‘수영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 좀 놀아본다 하는 21세기 현대인들 정도는 애송이로 취급할만한 향락을 즐겨본 명전마저도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수영복을 입는다는 그런 일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 명전은 남성이었으니까.

지금은 여성의 몸으로 여성의 수영복을 입는 것이니까 다르지만, 그거야 남들이 그렇게 본다는 거고 명전 자신은 좀 다르게 생각했다.

‘내 치마나 미니스커트 같은 것들은 버텼더래도 수영복은 좀…’

헐렁헐렁한 느낌이 좀 곤란하더라도, 짧은 반바지 입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그만인 일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적응도 빨리 되어서 남들 앞에서 속옷 보여주는 일도 없었고.

하지만 수영복은 속옷 그 자체 아닌가. 젖지 않는 팬티와 브라를 입고 남들 앞에서 “이거 속옷 아닙니다~” 라고 하는 꼴이다. 대명천지에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인가? 속옷을 보여주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물론 명전은 남성 시절에 해외에서 누드비치 방문하면서 속옷 뿐만 아니라 그 밑의 무언가도 내놓고 다닌 적이 많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나이가 들면 예전 기억은 잊혀지기 마련.

‘내가 여자도 아니고.

명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수영복이니 하는 것은 ‘아가씨’나 ‘여자애들’ 같은 그런 여자들이 입는 옷이지, 자신이 입을 것은 아니었다.

물론 초창기에는 믹스커피만 마시고 국밥만 먹으며 대충 옷장에 있는 옷 걸치고 나다니다가, 이제 와서는 달달한 커피에 마라탕 엽떡 잘만 먹고 애들이 와서 “야 이게 유행하는 건데~” 이러면서 하자 하면 안내키는 척 가서 해준 다음 은근히 사진 나한테도 에어드랍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자기인식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남이야 어찌되었든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원래 꾀병 부리는 애도 ‘집에 가고 싶다’ 라고 생각하면서 꾀병 부리면 절대 못 빠진다. ‘나는 진짜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프다! 라고 생각하면서 바둑 두던 관우마냥 계집애같은 비명을 질러야 빠질 수 있는 법이다.

물론 명전의 심정은 계집애같은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삼삼이다! 이건 무효야!” 를 외치며 집에 가고 싶어하는 관우 정도는 됐다.

하지만 탈주하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명전은 기타를 잘 치는 것이었지 힘이 좋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빠져나가려고 해도 이서가 슬 끌어와버리면 탈탈 털리면서 질질 끌려와야 되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몇번의 시도 끝에 그는 포기하기로 했다.

첫 번째 행선지, 오타쿠 샵.

“이게 요즘 유행하는 건데 말이죠…”

현아가 소개한 것은, 잘생긴 남자들이 여러 형태로 그려진 그림. 그 그림들은 아크릴 쪼가리에 그려져 있거나, 쿠션에 그려져 있거나, 스티커로 되어 있거나, 데포르메 되어 있기도 했다.

“뭘로 유행하는데?”

“이게 뭐냐면, 버추얼 유튜버라는 건데요.”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명전은 현아의 설명을 들으면서 여러모로 어질어질함을 느꼈다. 가상의 캐릭터가 있는데 이 캐릭터는 흡혈귀라는 설정인데 사실 좀 멍청한 면이 있어서 그런 면에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런 가상의 캐릭터를 연예인으로 만들었다는 거지? 어디 만화나 영화 이런데 나온게 아니라. 그리고 사람들은, 아니 현아 너는 그런 가상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거고. 그래서 이런 걸 사는 거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쿳쨩은 진짜 귀엽다니까요. 그리고 실존하는 사람이라니까.”

“그런 거 맞는 것 같은데.”

들어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은 이야기를 내버려둔 채, 명전은 아크릴 스탠드 하나를 집어들었다. 푸른 색 계열의 교복을 입고, 마작패를 들고 있는 장발 머리의 캐릭터.

“그게 마음에 드세요? 학생회장이라는 캐릭터인데…”

“이름이 학생회장이야? 이름을 정말 성의없이 지었구만.”

“그런 게 아니라 직책이 그렇다는 거고…”

그 캐릭터는 마작을 좋아하는데 정말 진심이고, 어쩌고 저쩌고. 명전은 점점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현아를 두고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행선지, 옷 가게.

“이거 이쁘다.”

“그러게.”

“다 비슷비슷 한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피곤해서 의자에 주저앉아 있는 명전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옷을 보면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패션에 민감한 이서와 의외로 뭔가 잘 아는 것 같은 서하. 그리고 별 생각 없어 보이는 현아.

‘근데 현아 쟤는 좀 심하네. 나도 저정도 차이는 알 것 같은데.

날 때부터 여성인 현아보다 여성 옷을 잘 안다는 시점에서 이제는 뭔가 좀 위화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명전은 아무튼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 현대인의 덕목은 자기세뇌다.

“너도 입어 볼래?”

“나는 됐어.”

“그러지 말고 입어 봐.”

“내 취향에 안 맞아.”

이서는 과연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중요한 무대’에서나 치마 같은 거 입는 정도지 원래 저 애의 취향은 검고 하얗고 포멀한 거 두르는 스타일이다.

“그럼 이건?”

“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명전은 아무 위화감 없이 그 옷을 받아들고는, 탈의실에 들어갔다 나와 옷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오~ 하는 시선. ‘내가 여자도 아니고’ 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건만 어느새 여성복을 사고 있는 것은 그의 잘못은 아니다.

원래 사람은 변한다.

굳이 길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죽은 나이 든 인간이 술 먹고 킥보드 타다 머리깨져서 죽은 여고생 몸에 빙의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 나랑 같이 공 차던 애가 고등학교 와서 만나니 침 찍찍 뱉고 담배 피우는 그런 애가 되어 있는 일은 흔하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쟤는 평생 딸배나 하다 죽겠군’ 하던 애가 어느새 견실하게 가다판에서 땀흘리며 노력하는 청년이 되어 있는 일도 많다.

그런 것처럼 명전도 많이 변한 것이다.

타인이 그렇게 봐주지 않는데, 언제까지고 자신을 21세기보다 전쟁이 가까운 시절에 태어난 사람으로 취급하긴 힘들다. 명전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원래 그런 생물이 못 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리고 명전은 인간이므로, 명전은 적응했다. 남들이 보는 시선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거 못 입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형태의 수영복은 절대 입을 수 없다는 것이 명전의 의견이었다.

“이쁠 것 같은데. 수연이 피부가 하얗잖아. 이런 검은 비키니 입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데…”

“너나 입어라! 나는 못 입는다.”

“그럴까? 내가 입어볼까?”

세 번째 행선지, 수영복 가게. 명전의 신경질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싱글거리며 탈의실에 들어간 이서.

기다리는 사이, 점원이 슬쩍 다가오더니 “대학생분들이세요?” 라고 물어보았다. 아니라고 하니 “아니 저분이 너무 크셔서… 크헣… 죄송합니다…” 라고 하며 사라지는 점원.

“어울리냐?”

그리고 그런 말을 하며 나오는 이서를 보고, 명전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속옷 위에 올라간 수영복이라 좀 언밸런스하긴 하지만, 대체로 어…

‘내가 이런 걸 봐도 되는 걸까.

명전은 왠지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내가 이 애들 사이에서? 아니 뭐 못 할 건 없는데.

“그럼 이제 너도 입어야지.”

“내가 왜??”

명전이 내지른 비명은 아무튼 말에 가까우려고 노력은 했다는 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명전은 왜놈 피해 도망치던 선조마냥 빠르게 대피해보려고 했으나, 전주 이씨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서에게 바로 잡히고 말았다.

“죽고 싶다.”

그리고 잡힌 댓가는 래쉬가드 착용이었다. 배꼽이 살짝 드러난 크롭 래쉬가드 상의와, 하이 웨이스트형 노멀컷 하의.

연신 자신의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올려야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혜인 씨가 보고 싶었다.

“재밌었어요.”

“그러냐…”

간만에 싱글대는 현아의 얼굴을 보며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피곤했고, 옷을 이렇게까지 사야 하는 이유가 뭘지 알 수 없었다. 옷이야 시간 날때 사면 되는 것 아닌가.

“무슨 소리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우중충한 옷만 입고 다니는 거지.”

“이게 어때서?”

이상한 뱃지나 쓰잘데기 없는 MGM 명품 가방 등 우중충한 것 입고 다니기로는 명전에 충분히 비견될 수 있는(적어도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서의 말에, 명전은 반박했다.

“패션은 자기를 나타내는 거라니까. 응? 밴드들도 막 그런다고 하잖아. 패션 가지고 어필을 하고… 나는 잘 모르지만. 비틀즈도 예전에 무슨 패션의 붐을 일으키고 그랬다던데, 우리도 의상 같은 걸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비틀즈는 모드 패션의 발상자들은 아니지만 유행시키는데에는 상당한 공헌을 했다. 이서는 엉겁결에 그 점을 짚은 셈이지만, 명전은 그보다는 좀 더 강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렇긴 하다.

이제까지의 명전, 아니 ‘하수연’ 또한 의상을 활용해본 적은 있다. 중요한 거리 라이브때 일부러 이목을 끌 만한 치마를 입고 나간다던가. 라이브 녹화때도 마찬가지로.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이목을 끌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단순히 ‘이쁘면 더 잘 봐주겠지’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명전이 떠올린 생각 또한 그와 비슷하다. 하지만 결론이 비슷할 뿐,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로버트 플랜트가 금발머리에 웃통을 까지 않는 프론트맨이었다면 어땠을까? 시드 비셔스가 그런 또라이가 아니었다면? 액슬 로즈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성이었다면? 커트 코베인이 나른한 그런지 패션을 한 금발머리 남자가 아니라, 그냥 말쑥한 사람이었다면?

그렇다 한들 그들의 음악성이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인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을까?

패션은 분명 밴드의 인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크나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음악적인 인기가 아니라 대중의 인기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명전은 모종의 이유로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그런 쪽으로 한번 해 보자.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 본다. 그것이 명전이 이번 오디션 우승을 위해서 세운 지침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키니를 입을 것은 아니긴 하지만.


하지만 초빙된 전문가의 손에 의해서 세심하게 설계된 코디를 맞춘다고 할지라도, 무대에 서면 그 옷들이 튀어나가 이제 나의 시간이다 하며 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하지 않는다.

결국 그런 건 다 부차적인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연습. 그것도 엄청난 양의 연습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명전은 그 날 자신을 백화점에서 고생시킨 값을 10배로 받아내겠다는 듯 애들을 쥐잡듯이 몰아댔다.

“그 비싼 워윅 베이스 들고 도대체 뭐 해!”

베이스에 적응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적응을 해 오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지 명전의 잘못이 아니니까.

“라이브감 주겠다고 필인 넣는 건 좋아. 그런데 그 다음 박자가 흐트러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중요한 건 박자와 음정, 그리고 강세. 그게 안 되는데 나 잘합니다 하고 연주를 뽐내봐야 무슨 소용이냐.”

“그리고 드럼도 지금 쉬었다고 그러는지 아니면 EP 냈다고 이제 뭐 메이저 밴드 됐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박이 안 맞고.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지금 진짜 메트로놈 틀어놓고 처음부터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이러면서 연주 할까?”

“예전까지는 내 박자를 보고 맞춰도 되지만, 이제는 아니라니까. 왜 자꾸 나를 보고 맞추려고 하냐? 베이스하고 드럼이 박자를 제대로 맞춰줘야 기타가 튀어나가든 말든 할 거 아냐. 내가 조금만 엇박으로 틀어도 둘 다 우당탕탕 하고 있는데 이걸 뭐 어떻게 해야 하냐?”

첫 연습에 명전은 과감하게 아이들을 혼냈다. 풀이 죽은 모습이 불쌍하긴 했지만, 이 때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허파에 딱 바람 들어갈 시기 아닌가. 뭔가 자기가 이뤄낸 것 같고, 이제 나도 프로 같고.그런 생각은 빠르게 깨부숴줘야 한다.

왜냐하면 오디션은 본격적인 경쟁이니까. 내가 잘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남보다 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행히 키보드는 그닥 혼낼 게 없네…’

명전이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멈추는 사이, 연습실 책상에서 요란하게 진동소리가 났다. 핸드폰인가. 받아든 전화는 박휘석 피디의 것이었다. 뭐 세션 외주라도 주려고 하나?

“네, 하수연입니다.”

“아, 나 박휘석이에요.”

“네 피디님. 어쩐 일로? 세션 의뢰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그런 거 아니고. 내가 뭐 그런 일이 있어야만 전화를 거는 사람인가?”

“그런 뜻은 아니구요~”

딱 들어도 뭔가 소식을 가지고 온 것 같은 뉘앙스. 명전은 참 까다롭다고 생각하며 기름칠을 조금 해주었다. 제가 그런 게 아니고. 언제 한번 뵈어야 하는데 참 시간이 안 나서 아쉽다 등.

“아니 뭐냐하면… 얼마전에 뭐 오디션 프로? 인베이전 프롬 서울? 그거 정보 좀 알아봐달라고 했잖아요? 내가 오늘 관련 스텝들이랑 밥 먹다가 이야기를 해 봤거든. 근데…”

“근데?”

“그거, 현장 라이브로 심사를 한다던데? 예선 밴드 전부 다. 현장 관객들 불러다 놓고.”

“네??”

명전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나. 그게 무슨 소리인가. 완전 라이브라고? 오디션 프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