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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제자인가? 명전 선생님이 마지막에 거둔 제자? 재능을 알아보고 가르치던…?’
그렇게 생각하던 준홍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명전 선생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게 제일 합리적이긴 했지만, 또 제자라고 생각하고 아까 일을 생각해보면…
‘제자라고 한다면, 기타의 출처를 물어보았을 때 제자라고 밝히면 될 일이지 않나?’
하지만 준홍은, 그 이상으로 설득력이 있는 가설을 찾지 못했다. 당연하다. 준홍은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시민. 괴력난신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과학적 사고를 가진 자랑스러운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준홍은, 밝히지 않은 것을 추궁하기보다는…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밝히지 말라는 말을 들은 걸까?’
말이 되는 이유라고 준홍은 생각했다. 왜냐하면 명전 선생님은 까다롭기도 했지만, 약간 특이한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명전 선생님에게서 기타를 배운 것은 준홍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세션 기타리스트 몇몇도 그 시기 명전의 집에 묵으며 기타를 배운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명전은, 그들에게 단 한번도 ‘스승’이니 ‘선생님’이니 기타를 가르쳐 주셨느니 뭐 그런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배웠으면 배운 거지, 무슨 스승이며 선생님이며… 할 짓 없으면 집에 가라!”
그렇게 말하며 쫒아내는 게 전부. 그 때문에 씬에는 명전을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들이 꽤나 있었지만, 딱히 모임을 만들거나 뭉치거나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서로 모르니까.
‘저 애한테도 그렇게 말하신 걸까?’
만약 그렇다면, 제자라고 말을 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스승이 그렇게 말을 했는데, 제자가 어떻게 ‘나 그 사람에게서 배웠소’라고 말을 하겠는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느낌으로 혼자 납득을 하는 준홍의 표정을 보며, 명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전에 그렇게 말해둬서 다행이지…’
명전은 옛날의 자신에게 감사했다. 그가 어디 가서 자기가 기타 가르쳤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명전이 가진 자괴감과 타인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기타를 잘 치면 뭐하는가. 정작 중요한 ‘음악’에서는 자신이 훨씬 뒤떨어지는데. 내가 누구를 가르쳤소 걔가 내 제자요 하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쪽팔리는 일이라고, 당시의 명전은 생각했다.
하지만 명전은 죽었고, 수연만이 남았으니… 누구도 이유를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 중.
수연이 Eric Clapton의 Change the world를 연주하자.
= ㅠㅠㅠㅠ
= 와 진짜 감동
= 헉
= 개쩌네
=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 클랩튼 영감 불륜남인데 왜 저렇게 좋아하나요? ㅡㅡ
= 필링이 장난 아니네요 ^^ 연주 잘 들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진짜 잘 치신다구요? 그렇죠? 저도 엄청 놀랐습니다. 감동도 했구요. 한국에 이런 실력의 기타리스트가, 그것도 이렇게 젊은, 게다가 이렇게 이쁜 사람이 있다니…”
이리저리 잔뜩 올라오는 채팅. 준홍은 멘트를 주워내며 방송을 진행했다. 자신이 요 근래에 들어본 기타 곡 중에 제일 좋았다, 실력이 진짜 10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등등.
“그럼 White Room… 님께서는 따로 예대 같은 곳이나, 이런 곳은 지망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네. 저는 뭐 따로 그런 쪽으로 갈 생각은 없구요.”
“어~ 기타 치는 거만 들어보면, 예대는 그냥 문 부수고 들어가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준홍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갈 수 있다면 가는 게 이득 아닐까? 준홍 또한 예대 출신이기도 했기에.
“뭐 굳이 그런 데를 가야 할까요. 배울 것도 없는데.”
“오~~ 자신감.”
하지만 명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는 필드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습득했던 사람이기에,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학원이니 학교니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버클리라거나 이런 데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국내 아니더라도 외국에는 충분히…”
“글쎄요…”
물론 토모 후지타(Tomo fujita) 같은 엄청난 실력의 기타리스트들이 포진하고 있는 버클리라면, 배울 것이 있기도 할 것이다. 존 메이어(John Mayer)도 버클리 출신 아닌가.
하지만 명전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기타리스트였다. 존 메이어조차도 버클리를 중퇴한 마당에, 몇십년 넘는 세월동안 기타를 쳐 본인의 스타일을 완성한 명전이… 굳이?
“뭐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일단 지금으로써는 고려하고 있지 않네요.”
“아~ 알겠습니다.”
준홍은 채팅방을 바라보았다. [예대 무시하나?], [잘 치긴 하는데 부족한 면도 있는 것 같은데;;] 같은 채팅들.
그런 채팅을 밴하면서, 그는 생각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은데, 확실히 오만한 곳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을 만한 실력이었다. 만약 준홍이 저 나이때 저 실력이었다면, 세상을 모두 자신의 발 아래 둔 것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능히 그럴 수 있는 실력이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논란을 만들 수 있는 화법이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데서 [예대 가는 새끼들 = 그냥 실력 좆도 없는 병신들 이라고 말한 여고생.jpg] 라고 요약될 수 있는 내용 아닌가.
‘그냥 평범하게 초대만 한 유튜버였다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냥 내버려뒀겠지만…’
선생님의 제자로 추정되는 이상,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준홍은 이것 외에도 어느정도 지원을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멘트를 던졌다.
“이제 슬 라이브도 끝나가는데요, 혹시 마지막으로 자작곡 연주 괜찮으시다면 한곡 들을 수 있을까요?”
“음… 자작곡인가요.”
명전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맨 처음 협의를 할 때는, 그의 두번째 자작곡을 치기로 협의를 했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첫 밴드곡이 완성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메일이 오가는 동안, 밴드곡의 편곡은 완료되었다.
그렇기에 명전은 오늘 방송 전 준홍에게 다른 곡을 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무슨 중요하지도 않은 기타 관련 이야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말을 하지도, 파일을 건네주지도 못한 상황.
하지만 뭐, 괜찮지 않을까?
오히려 다른 소리가 없는 게, 그의 실력을 드러내는 데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배킹 트랙이 없다면,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을 기타 실력으로 커버해내면, 오히려 찬양을 받게 되겠지.
“선생님. 잠시만…”
그래서 명전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살짝 난감해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준홍.
준홍이 안내 멘트를 하는 동안, 명전은 뒤로 살짝 빠져서 장비를 손보았다.
연주의 시간이었다.
“자. 이번에 화이트 룸 님께서 연주하실 곡은… 현재 몸담고 계신 밴드에서 만든, 첫 자작곡이라고 합니다!”
그 말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준홍. 시청자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기타를 잘 치는 건 알겠는데, 그 정돈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얼마나 기타를 잘 쳤는지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 못한다. 이 채널을 구독하고 라이브를 들을 정도의 리스너라고 해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뭐든지 그렇다. 볼 한번 차본 적 없는 사람이 프리미어 리그의 스트라이커 중 누구의 실력은 병신이고 누구는 갓이니 뭐니를 논한다. 실제로 축구장에서 만나면, 공에 발 한번 대지 못하고 털릴 수 있는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것이 엄청난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원래 그러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배격한다. 화려해보이는 테크닉에 집착한다. 실제로는 단단한 기본기가 몇배는 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수연이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을 때, 라이브를 보던 사람들은 깨달았다.
진정한 고수는, 기본기에서부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전혀 평탄하게 이어지지 않는 연주. 굽이치는 물결처럼, 몰아치는 파도처럼… 빠졌다가 들어오고, 나아갔다 물러나는 리듬.
분명 박자가 살짝씩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위화감 없이 진행되는 곡. 펜타토닉과 블루노트 스케일을 기반으로 한, 구슬픈 멜로디가 이어진다.
자신의 실력에 맞지 않는 곡을 연주했을때의 급함이라던가, 박자를 파악하지 못해 아무렇게나 치는 듯한 느낌이라던가…
그런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화면 속의 그녀는, 음 하나하나를 전부 다 통제하고 있다. 자신의 의도를 온전히 담아서.
채팅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한다. 키보드를, 혹은 자판을 두드리느라 곡을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의도에서.
그리고 흐르는 허밍.
곡에 절묘하게 섞여들여가며… 라이브를 듣는 사람들을, 어떤 풍경 하나로 인도한다.
그 날은, 바람이 치던 겨울날이었던 것 같다. 창문 바깥으로 싸락눈이 조금씩 내리던 그 날. 약속 시간이 되어가는데, 너에게서는 어떤 소식도 닿지 않았던 그 날.
한쪽 카페 구석에 앉은 줄쟁이가, 블루지한 음색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카페에서…
창문 바깥을 다시금 바라본다. 왠지 모르게, 시간은 이미 다 된 것 같다. 카페 한 구석에 걸린 괘종시계는 약속시간으로부터 30분이 훌쩍 지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오지 않는 너.
일어나 카운터로 향한다. 전화를 요청하고, 다이얼을 돌려 너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전화를 받은 너의 가족은, 이미 네가 나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커피값을 카운터로 내던지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너의 집까지 계속해서 달린다.
하지만 너는 없다.
싸락눈이 계속 내리고, 눈발이 점점 거세지는데도 너는 없다.
카페와 너의 집을 수십번을 오갔어도, 너는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찾고 있어, 만나지 못했던 그날의 너를…”
보컬의 끝과 함께, 이때까지 잔잔하게 울던 기타가 포효한다. 싸락눈이 몰아치던 그 날 밤, 몇번이고 말라붙은 눈으로 거리를 오가던 그 사람의 심정을 말해주듯이.
끊임없이 고조되던 솔로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이제까지는 보여주지 않았던 속주와 함께, 인위에 의해 흔들리는 피치.
사정없이 뒤틀리는 음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껄끄럽게 느끼지 않았다.오히려 사람들은 그것이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느껴보지 못한, 기타 연주의 필링(feeling)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지나, 잔잔하게 가라앉는 연주.
“감사합니다.”
인사를 듣자마자, 준홍은 박수를 그야말로 사정없이 쳤다. 자신의 손이 붉어지고,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아악! 아이고, 너무 세게 쳤네. 아무튼… 엄청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연주였습니다! 세상에, 진짜 10대 기타리스트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준홍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재능을 알았기에, 명전 선생님께서 이 아이를 제자로 두신 걸까. 마치 돌아가신 명전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신 것 같은 느낌.
“이 곡의 이름이 뭔가요?”
자신과 같이, 들끓다 못해 평소보다 5배는 빨라진 채팅방을 보며 준홍은 질문을 던졌다.
“그날의 너 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 곡을 연주할 저희 밴드는… Group Sound. 그룹 사운드라고 합니다.”
명전은 그렇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