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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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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흑요석을 연상시키게 하는 윤기를 가진 검은 머리는 어깨 너머까지 내려온다. 회의실의 조명빛이 피부에 반사되어 찬란한 빛깔을 내는 가운데, 차가운 눈동자에서 빚어지는 시선은 좌중을 살짝 주눅들게 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냉엄하게 다른 사람을 질타할 것 같은 입술에서는, 기대와는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음… 잘못 온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아뇨, 그 오늘 프로그램 회의 하러 오신 분 아니세요? 밴드 오브 기타리스트.”

“네.”

“그럼 여기 맞아요.”

“아, 감사합니다.”

군대를 방불케 하는 절대적인 성비, 남성 100%을 자랑했던 회의실 안에 들어온 단 1명의 여성. 성비가 약간 변동되었다고 해서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 상황. “누구야?”, “모르겠는데.”나 “저 사람 그 그룹사운드 아닌가?”, “맞나? 아닌 것 같은데.” 같은 이야기들도 오간다.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하수연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아는 기타리스트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다.

“아니, 여기서 뵙습니다 선생님.”

“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아니 이런 말은 좀 그렇구만.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사람한테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건 좀 그런 이야기긴 하네. 으핳ㅎ핳! 아 손 선생님. 여기는 제가 아는 학생입니다. 하수연이라고, 요즘 유명한 [공중정원], 그거 만든 학생.”

“아! 그거! 잘 들었어요. 아주 통통튀는 음악이던데?”

그런 식으로 몇번 세션을 같이 했던 기타리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김에 다른 사람들을 소개받거나.

“안녕하십니까. 요수아의 한성진 선생님 맞으시죠?”

“어… 맞는데, 혹시 누구…?”

“아 저는, 그룹 사운드라고 작게 밴드 하고 있는 하수연이라고 합니다. 유튜브 재미있게 보고 있고 [창조론]도 정말 좋게 들어서, 한번 인사한번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그래요? 어이구 반갑습니다. 아 생각해보니까 하수연이라고 하면, 그 명전 선생님 제자분 맞으시지?”

“네 맞습니다.”

“아이고, 배분으로 치면 완전 대선배시네~ 호영아! 여기 니 선배님 오셨다. 뭐하냐? 빨리 인사 안 드리고.”

젊은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혹은 워낙 명성이 높기에 접근하지도 못하는 원로 기타리스트들. 하지만 ‘하수연’은 아주 스스럼없이 다가가며 그들에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의 호감도가 올라간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작 본인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지만.

‘예전에는 그냥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이 녀석들이 다들 자동으로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그랬는데.

그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원로 취급을 받던 시기쯤 되서는, 세션으로 나간다 해도 그 날 출연하는 밴드 애들이 다들 와서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했다. 그런 예의범절이 살아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현재 가장 막내 취급일 ‘하수연’이 원로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다른 놈들은 멀뚱멀뚱 앉아만 있다. 이게 나라가 이래서야 제대로 될 게 하나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기 유리할 때는 ‘옛날이 좋았지’, 자기 불리할 때는 ‘늙은이들은 이래서 안돼’라는 기적의 논리였다.

“저기… 다들 오셨을까요? 혹시 안 오신 분… 성진현 기타리스트님? 계시네요. 윤명환 기타리스트님? 계시고…”

그러는 사이에 작가가 들어와서 인원체크를 한 뒤 나간다. 몇분 있다 들어온 것은 꽤나 풍채가 좋은 피디였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이야, 다들 모이셨네요. 북적북적하니 이게 마음에 듭니다. 반갑습니다! 임종환 피디입니다. 저랑 안면 있으신 분도 계시고, 아닌 분도 있으시고.”

너스레를 떨던 피디는, 턱을 잠시 쓰다듬으며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경직된 분위기네. 우리 이러지말고 어차피 뭐, 그래도 몇시간 정도 찍을 건데. 자기 소개나 한번 하고 넘어갑시다.”

“우리가 그런 거 할 연령대인가?” 하던 분위기는 금새 가라앉는다. 결국 갑의 말은 따라야 하는 법이니까.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한성진입니다.” 와 같이 쭉 이어지던 인사’는, 하수연’의 차례가 되어 잠시 멈춘다. 더벅머리 젊은이들과 ‘메탈정신’으로 덥수룩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분위기를 피우며 일어난 여자아이.

“안녕하십… 세요. 저는 그룹 사운드의 리더를 맡고 있는 하수연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같이 서기에는 너무 경력이 짧긴 하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컨셉은 대충 이 정도고… 다들 뭐 우려하시는 부분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쪽으로는 편집 안 할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프로그램 설명. ‘각자의 밴드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MR을 활용하여 서로의 곡을 쳐 봄으로써 일종의 콜라보레이션 효과를 통해 흥미를 유도한다’라는 컨셉.

다르게 보면 ‘이거 경쟁유도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기에 아주 쉬운 포맷. 그렇기에 피디는 설명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덧붙였다.

“어차피 이거 그냥 파일럿 프로그램이니까. 간 보자는 거지 시청률 막 끌어올리고 이럴라는 거 아니거든요. 걱정하지 마시고, 실력 한번 보여주신다 생각하고 부담없이 재미있게 찍어 봅시다.”

그 말에 일단 동의하는 참가자들. 빡세게 연습 좀 해야겠다며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동안, 피디는 한 30분 쉬자는 이야기를 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다시금 적막해진 대기실 속에서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는 기타를 끌러매어 이리저리 매만졌다.

‘그냥 스트랫 들고 올걸.

[별이 되어가는 것] 음반에서는 재즈마스터를 쓰긴 했으나, 이것은 언제까지나 일시적인 일일 뿐. 그의 주 악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트랫이었다. 그렇기에 약간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 그의 앞에 누군가가 와서 섰다.

“그, 저기…”

“네?”

고개를 들어보니 누군가 앞에 서 있었다. 그냥 평범한 기타리스트. 아까전에 분명 소개를 듣긴 했는데, 누구인지는 잘 모르는 것을 보면…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듯 했다.

“아까 이야기 들었는데. 그룹 사운드의 하수연 기타리스트님이시라고요. 맞나요?”

“아 네, 맞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카프카의 신상우라고 하는데요. 이번에 [공중정원] 내신 거 진짜 잘 들었거든요. 팬입니다.”

“어… 감사합니다.”

그는 답을 하고는 다시 기타를 쳐다보려 했다. 그냥 인사 한번 건네러 온 사람인 것 같아서. 하지만 눈 앞의 사람은 전혀 갈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그가 기타를 잡기 전에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공중정원] 관련해서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음… 네. 말씀하세요.”

“제가 궁금한 게…”

그렇게 운을 띄우며, 상대방은 작곡이론적인 이야기를 엄청 물어보았다. 머니코드 사용하셨던데 원래는 블루스 스케일 쪽을 사용하시지 않았냐. 스트랫 말고 재즈마스터 쓰신 이유는 뭐냐. 이 부분에서 이렇게 표현한 게 상당히 새로운데, 이유가 궁금하다 등.

그는 뭘 이런 걸 물어보냐는 생각을 하며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머니코드를 쓴 이유는 당연히 흥행을 위해서다. 하지만 머니코드를 쓴 곡은 당연하게도 먹던 걸 또 먹는 맛이니 지루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즈마스터를 활용한 슈게이징 사운드를 사용해서 그런 친숙함을 지우고 참신함을 넣는다. 그와 동시에 J-Rock의 베이스 진행 방식을 참고하여 그 분위기를 배가한다… 와 같은 이론적인 이야기. 그리고 기타의 운용방식에 대한 이야기.

“여기서 예를 들어서 이렇게 쳐야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걸 음… 뭐라 설명하기가 그런데. 이렇게 따다닥 치면 별 거 아닌데도 듣기에는 딱 리셋이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거든. 졸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어깨를 탁 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인데, 이 다음에 싸비(후렴구)를 딱 넣게 되면 처음에는 이질적이다가도 그 다음에 확 집중이 되는 그런 느낌이 있는 건데…”

그는 별 생각 없이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주위에 뭔가 몰려 있는 사람들. 그 중의 누군가는 “저도 좀 질문이 있는데요.” 같은 소리를 했다. 그런 분위기에 그가 흠칫 놀란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젊은 친구가 이론에 빠삭하네. 혹시 서 선생님이 그런 것도 가르쳐주셨나?”

“어…”

그는 순간 고민했다. 여기서 맞다고 이야기하면 ‘서명전’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도리어 다른 식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서명전 그 인간은 자기도 곡 못쓰면서 제자 여자애 가스라이팅이나 했다더라.”식으로.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가 옆에서 그 이야기를 되받았다.

“형님, 서 선생님이 기타는 잘 쳐도 작곡은 못 하셨잖아요.”

“아니, 이론은 알 수도 있지. 그 저번에 추모콘서트 때 유작 연주한 거 있었잖아.”

“그렇긴 한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반박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았다. 역시 인터넷이 옳았다. 세상에서 제일 참기 힘든 욕구는 반박하고 싶은 욕구라고. 그게 아니라고? 이런, 참지 못하셨군요.


회의가 끝나고, 피디는 참가자들에게 “혹시 유튜브 하시는 분들 이번 파일럿 프로그램 이야기 한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저희가 홍보 돌릴 단계는 아니긴 해서,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만 좀… 하하하.”라는 당부를 했다.

사실상 무료 홍보를 부탁한 셈이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출연하기로 한 이상, 자기들도 좀 프로그램의 효과를 받으려면 홍보를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 누군가는 울며 겨자먹기로,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이 라이브를 켜서 이야기를 했다. 홍보라는 티는 안 내도록.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 프로그램 회의 갔다왔습니다. 기타리스트들 모아서 하는 프로인데요, 누구누구 있어가지고… 그런 거 말해도 되냐는 분이 계시네요. 거기 피디분이 자유롭게 말해도 된다고 하셔서.”

“이야~ 오늘 내가 말이지. 방송국에 갔다 왔는데. 어? 줄쟁이들 다 모아가지고! 방송을 하겠다고 말이지. 피디님이 음청나게 이게 계획이 있더라고.”

“조만간에 재미있는 방송 하나 할 것 같아요. 길게는 아닌데… 오늘 회의 들어가보니까 기타 치시는 분들 잘 치는 분들 많더라고요. 나이 드신 분들만 있으신 게 아니고, 요즘 젊은 분들 있잖아요. 잘 치시는 신예분들. 그런 분들도 있어서. 이게 재미있을 것 같아.”

“아. 저 오랜만에 방송 나갑니다. 네 반갑습니다. 어떤 방송이냐고요? 아마 기타리스트들끼리… 대결? 그런 건가? 잘은 모르겠네요. 네 저도 저녁 방금 먹었고요. 콘서트는 어, 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각자의 파급력은 아주 미약하다. 파도라기보다는 그냥 시냇물에 가까운 그런 움직임. 하지만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SNS나 라이브, 주위 입소문 등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뮤지션의 팬들에게도, 그리고 음악의 팬들에게도 점점 그 소식이 퍼져갔다. “지상파에서 오랜만에 밴드 관련해서 큰거 온다더라!!” 하는 식으로.

그리고 그 소식들의 중점에 있는 것은,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날 회의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사람.

“아니 나는 진짜 처음에 곡만 잘 쓰는 애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럴 수 밖에 없다니까? 모든 악기는 결국 세월이라는 게 있다니까. 데릭 트럭스가 완전 천재잖아. 근데 그 사람도 스무살쯤 돼서야 만개를 했어. 걔는 뭐 1년밖에 안 배웠다매? 이게 그냥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 치기가. 근데 들어봤는데 와…”

“저는 기타 실력이라는 건 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다 잘하는 분야가 있거든. 그런데 그 분 연주 들으니까 그, 롤 같은 거 보면 그런 말 있잖아요? 벽 느낀다고. 딱 그런 느낌이었어. 벽이 느껴지더라고. 내가 저거보다 잘 칠 수가 있나? 그 생각을 하니까 막 연습을 하는 거 자체가 좀 무의미하다고 해야 하나? 저게 재능인가? 최근에 좀 우울했어요 그거 때문에. 그래도 계속 해야겠죠.”

“돌아가신 서 쌤이 이제 무협지로 따지면 내 사조라 캐야 하나. 그니까 내를 가르친 분이 서 쌤한테 배우셨고. 그담에 나를 가르친긴데. 이제 가는 서 쌤의 직계 제자니까 나한테는 사숙이라카죠? 그런긴데. 와… 내는 이게 왜 서쌤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르칬는지 알긋같더라고. 딱 누가 연주해보라캐서, 가가 이제 누구 스트랫 잡고 딱 지미의 All along the Watchtower! 완전 근본이제. 그거 연주하는데 그냥 와… 걍 욕밖에 안 나와.”

서로 말을 맞추지는 않았다. 그저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는데, 감명이 깊었던 순간에 대해서 말을 할 뿐. 하지만 너무나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이거 바이럴 아니냐? 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 “도대체 그 분은 얼마나 잘하는 거에요?” 라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기타리스트 하수연’에 대한 소문은 인터넷에서 서서히 증폭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