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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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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이서는 모자를 벗어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밤이라고 한들 이제 점점 더워질 계절. 조금 쌀쌀할까봐 입었던 옷이 거추장스러워질 정도의 열기.

“이제 저희도 갈 시간이 되었네요.”

수연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가지마!!”와 비슷한 함성 소리가 관객석에서 쏟아진다. 어차피 다들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해 주겠지만, 영혼 없는 반응이라기에는 확실히 진심이 실려있는 것 같아 이서는 기분이 좋았다.

“세존(부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기를, ‘은혜와 사랑으로 만난 것은 이별하지 않는 것이 없다(恩愛合會, 無不別離.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라고 하셨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 뒤에는 또다시 만남이 있는 법…”

여전히 뜻모를 소리를 하는 수연. 무대에만 서면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가 되는 걸 보면, 사람이란 정말 알 수 없다고 이서는 생각했다.

“오늘의 무대에서 작별할지라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죠. 그날까지 모두 건강하게 계시길 바라겠에요! … 저희는 이만 이제 마지막 곡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중간에 말을 씹어버린 수연은, 사람들의 반응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맺었다. 흔적이라고는 귀가 빨개진 것 뿐. 다시 조명이 암전되고 싸늘한 그림자가 무대를 뒤덮은 가운데… 드럼의 신호에 힘입어 이서는 베이스를 치고, 수연은 마이크에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 언제나

할머니 집에 가보면

빛바랜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벨몬트 유리병

베이스 하나 하나의 노트마다 흥겨워하는 사람들.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 효과음이라던지 조명 효과라던지 호응을 유도하는 말들이라던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들.

가끔씩 난 가끔씩

유리병 안의 액체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며

눈을 질끔 감고 마셨어

박수를 치는 수연을 보며 이서는 생각했다. 이서 자신의 말에 따라 ‘날것’, ‘즐거운’ 공연을 강조하던 수연. 하지만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도, 이서는 수연이 거기에 동참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차갑게 연주를 하는 그런 모습만이 상상되었기에.

생각이 나

그날 마셨던 액체는 바로

왠지 모르게 들어 있던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

하지만 친구가 보여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이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색하지만 확실하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 평소처럼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기타만을 연주하는, 인터넷에서 [저년 동상이냐?] 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모습이 아닌.

할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알고

그 냉장고 안의 유리병을.

‘좋은 일이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입속에 되뇌이며 베이스 솔로를 쳐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디서 생겨났는지, 기타를 뒤로 매고 탬버린까지 치며 사람들에게 손을 작게 흔들어주는 모습.

사람들은 춤추고, 그렇지 않다면 앉아서 박수를 친다. 학생 뿐만 아니라 구경 나온 다른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하나되어, 다음 차례라고는 잊어버린 채 즐겁게 놀고 있는 광경.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반응이 뜨거운 것은 그 날 관객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신나게 환호하며 즐겁게 놀던 관객들 중에는, 만족했는지 집에 가버리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이후 마지막 무대에 선 가수가(이름값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당황할 정도로.

하지만 이번 언플러그드 공연은, 그런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공연을 통해 수익을 얻고 이름값을 알린 것은 확실히 좋았지만… 원래의 목적인 ‘소비자층의 확장’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연 한번 하자고 한 일도 아니고, 수익적으로는 이득이지만 기회비용을 따지자면 손해니까.

그리고 그 목적은,

“아직 단언하기는 힘듭니다만, 확실히 우리의 의도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아직 다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멜론 쪽에서 들어온 데이터라던가, 유튜브 쪽에서 들어온 데이터를 보면…”

고경민은 그렇게 말하며 프로젝터를 띄웠다. 조회수 중 1~20대 사용자와, 그 외 연령대 사용자의 비율을 나타내주는 차트. 기존의 음원과 달리 언플러그드 음원은 확연히 다른 분포를 보여주고 있었다.

“멜론에서는 그런 기능을 지원하지는 않습니다만, 유튜브는 알고리즘이 있다보니, 간접적으로 플레이리스트에 포함되거나 유입되는 시청층이 꽤나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이 한번 곡을 듣고 이탈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곡을 듣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요.”

즉, 타겟으로 지정했던 30~50대 연령층이 의도대로 끌려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해보자라는 식의 프로젝트이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성공하는 것이 더 좋으니까.

“음반 판매량의 경우, 이번 음반의 경우 따로 특전 등을 지급하지 않고 사전 예약을 통한 한정 수량 발매만 하게 된 관계로… 그렇게 판매량 자체는 높지 않습니다. 약 2천장 정도 판매되었네요.”

“그래도 특전 같은 걸 넣는게 좋았을까요?”

살짝 후회된다는 듯한 혜인의 말. 하지만 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번 음반은 그런 목적으로 설계된 게 아니니까요! 특전 같은 걸 발매하게 되면 수량을 맞추기가 힘들어져서, 재고가 발생될 위험이 큽니다! 게다가 음악 자체도 기존 음반을 재녹음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안 한 것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실물 음반은 어디까지나 덤일 뿐이고, 중요한 건 음원과 공연 실황의 재생수 및 파급력이죠.”

스트리밍용 음원으로 발매된 이번 언플러그드 음반, [休息(휴식)]은 총 24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다. 녹음실에서 녹음한 기본 음원 8곡, 현아의 대학교 축제에서 녹음한 라이브 음원 8곡, 카페나 도서관, 혹은 다른 휴식 공간에서 부담없이 틀 수 있도록 제작한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반주) 8곡.

Inst로는 카페 등에서 배경음악으로 재생되는 것을 노리고, 기본 음원은 플레이리스트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을 노린다. 라이브 음원의 경우에는 듣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이 밴드 라이브 공연 영상 없나? 한번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떠오르도록 관객들의 반응을 조금 많이 넣었다.

그런 전략은 상당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라이브 무편집 풀영상, 조회수 약 20만.

듣기 좋게 곡마다 나눠놓은 영상, 평균 조회수 약 45만.

게다가 조회수는 계속 오르는 중이었으며, 그가 봐도 명확하게 다른 시청자층이 유입됨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 문득 노래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투브가 추천해 준 노래. 정말 마음에 드네요. 건행하시고 성료하십시오.

  • 노래가 재미있네요

얫날 배철수 시나위 산울림

그 시절 밴드들 아~

청춘이 그립습니다

추천합니다

  • 요즘 아이돌 노래가 판치는데 이런 밴드 나와줘서 좋긴 함…

  • 저는 이장르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밴드는 진짜 노래 자체를 진짜

농담이 아니라 기가막히게 잘부르네..

댓글을 그렇게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가다 [공중정원]이나 [별이 되어가는 것]의 댓글을 보면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내용.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연령층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정하기는 싫지만, 예전의 나랑 비슷한 느낌의 내용이네…’

왜 인터넷 놈들이 그가 글을 적을 때마다 [-틀-]이니 [늙은이], [틀딱;;] 같은 댓글을 달았는지 알 것 같다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예전에 계획했던 대로 다음 EP 제작으로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야 너 뭐 일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을 하려고 하냐. 너 워커홀릭이야? 아니면 무슨 돈 필요해? 악기 사고 싶은 거 있어?”

기겁하며 외치는 서하. 하지만 그는 머리를 살짝 꼬며 대답했다.

“원래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젓는 거니까.”

“좀 그만 저어요…”

원망섞인 현아의 푸념을 그는 외면했다. 놀거 다 놀고, 할거 다 하면서 음악 하면 도대체 어떻게 성공을 하겠는가. 때로는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단기적 매출을 보자면 그 쪽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 축제로 물꼬를 트기도 했으니, 방송 출연 하면서 EP 준비하고 다시 릴리즈하면서 적극적으로 행사를 돌면 수익이 확실히 증대되겠죠. 페스티벌 쪽도 돌 수 있겠구요. 하지만…”

고경민은 PPT를 확확 넘겨 문구를 하나 제시했다. 최초에 그가 설정했던 목표. ‘단독 콘서트 투어’.

“우리가 계획한 것은 이 쪽이니까요. 한정된 팬층을 잡기보다는, 전연령/전국적 인기를 얻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라이브 투어 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 계획이 진행되는 대로 말씀드릴테니… 일단은 쉬시죠.”


‘휴식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정말로 간만에 찾아온 휴식기. 그렇게 오래 가는 것도 아닐 것이고, 당장 섭외나 스케줄 같은 것이 오면 나가야하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까 본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휴식이다!!”

“자유다!!”

그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흡사 노예해방이라도 맞이한 듯 난리를 치며 뛰어나가던 세 사람. 그런 모습을 보고도 “야 내가 생각해놓은 게 있는데…” 라면서 뭔가 제시하기는, 그가 아무리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좀 그랬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뭔가 이 기간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게릴라 버스킹이라던가, 송캠프(단체로 숙박을 하며 작곡을 하는 일)라던가, 아니면 숙박 합주라던가. 그런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을 하지 못한다는 게 참으로 아쉽긴 했다.

“수연아!”

“네.”

그렇게 생각하며 노트북을 키자, 갑자기 방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비척비척 나가보자 혜인이 옷을 잔뜩 차려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 무슨 일 있어요?”

“너 오랜만에 쉬잖아. 엄마랑 같이 쇼핑 좀 가자.”

“… 에에에… 별로 안 가고 싶은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같이 가야지. 엄마가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장님이 하는 소리라고 생각해. 응? 명령이야, 명령.”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는 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딸과 정말 오랜만에 나온 쇼핑!’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무슨 옛날 바비인형처럼 끌고다니며 옷을 이것저것 입혀보던 예전의 혜인과는 달리, 지금의 혜인은 상당히 침착해진 편이었다. 걸음걸이부터 상당히 느긋했으니까.

“그거 사자. 진짜 잘 어울려.”

“옷 이미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

“어울리는 옷은 사야지. 수연아. 음식은 먹으면 결국 없어지고 집은 남한테 보여줄 수도 없어. 의식주중에 제일 중요한 게 의, 즉 옷이란다. 응? 옷에 돈 아끼면 안 돼.”

물론 옷 갈아입히기는 그칠줄을 몰랐지만. 그는 쇼핑백을 들고 혜인을 계속 따라갔다. 그칠 줄 모르는 혜인의 쇼핑욕구를 막은 것은, 그에게 온 전화 한통이었다.

“지금 저 전화 좀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어, 어? 어 그래! 잠시 여기 앉자.”

쇼핑백을 잠시 벤치 옆에 내려놓은 후, 핸드폰을 본다. 화면에 떠 있는 수신자는 호인예대의 채호근 교수였다. 오랜만에 보는 이름.

“네, 하수연입니다.”

[“어 수연학생! 나 채호근입니다. 오랜만이네요.”]

“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제가 먼저 전화드렸어야 했는데.”

안부를 묻는 미사여구가 잠시 오간다. 그 다음, 채호근 교수는 바로 본론을 물어왔다.

[“수연 학생, 최근에 시간 됩니까?”]

“음… 이제 좀 휴식기로 들어갈 것 같긴 합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얼마 전에 부탁이 하나 들어와서. 기타리스트들끼리 뭔 방송을 하나 한다는데, 적합한 사람이 없어서 피디가 막 나한테까지 전화를 돌리더라고. 혹시 해볼 생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