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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풓흫ㅎㅎ으헣헉헉흑…”
“그만 웃어요.”
차가운 중얼거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깔깔대는 정유영. 1분 정도를 계속 그러고 있다가, “아… 재밌었어요!”라며 종이를 한장씩 더 나눠주었다.
“그럼 이제 첫 인상 말고, 현재의 인상을 써 볼까요?”
“이거 저한테는 상처밖에 안 남는 것 같습니다만. 굳이 더 할 필요가 있을지.”
“에이~ 무슨 소리야! 지금 저 맑은 눈빛들이 안 보이세요?” 정유영의 말에 명전은 세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았다. 최대한 눈을 초롱초롱하게 떠보이는 아이들. “양아치니 일진이니 그런 건 그냥 다 과거에 불과하다는 거죠.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한들 현 인상이 안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잖아요?”
“정말입니까?”
“물론 거기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는 없죠!”
그럼 무슨 소용이냐고. 명전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정유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맑게 웃으며 종이를 작성하기를 독촉했다. 다른 세 아이들은 이미 뭘 써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뭘 적어야 할까.’
그는 머리를 살짝 꼬며 생각했다. 우선 첫 인상이 ‘양아치’라는 것은 가감없이 그를 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울 것이다.
그 사실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하수연’의 현재 인상은?
명전은 최대한 부정적으로 자신의 행보를 되돌아보았다. 자화자찬은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으나, 이 상황에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미 망해버린 그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했던 일은… 매일 연습 정도일까. 연습 시키는 사람. 매일 부정적인 이야기하는 사람, 독재자… 뭐 그런 이미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을 중화시킬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의외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은 의외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이서나 현아, 서하가 하는 말을 절대 무시하지 않고. 나름대로 의견을 수용해서 반영을 하고. 남이 안좋은 말을 해도 얼굴 붉히지 않고.
‘생각해보면, 그게 사실 아닌가?’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적던 단어. 하지만 몇초 동안에 생각은 정 반대로 바뀌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 말은 딱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에 끄적끄적 적은 것은, 요즘 유행어긴 하지만…
“자, 그럼 수연 양의 ‘자기가 생각하는 현재 인상’은… [대인배]!”
“크하학! 대인배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웃는 이서. 다른 아이들의 모습도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했다. 어떻게든 웃음을 참는 현아와 피식피식 웃어대고 있는 서하.
“대인배가 뭐가 어때서.”
“음! 대인배! 글쎄요, 꽤나 괜찮은 대답이긴 하네요! 그럼 다른 밴드원들의 인상은…!”
정유영의 말에 세 사람 모두 덮어놨던 종이를 들어보였다. 거기에 적인 단어는…
[틀딱]
[노인]
[틀니]
“…야.”
“일단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명전은 분개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틀니’니 ‘틀딱’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 아닌가.
애시당초 ‘틀니’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도 무례한 이야기였다. 아니 자기들은 이빨 안 좋아질 거 같은가? 게다가 그의 이빨은 죽기 전까지 튼튼했다. 틀니는 커녕 임플란트도 한 적이 없는, 충치 하나 없는 그런 튼튼한 이빨이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디가 틀니라고…
“일단 수연이 너무 옛날 사람 같아요. 예전에도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욜로’보고 요즘 유행하는 단어라고 하질 않나, 핸드폰 같은 거로 뭐 보기 힘들다고 출력해서 보고 있지 않나. 뭐 먹자고 하면 무조건 국밥 먹자고 하고.”
그러면서 이서는 그가 작성한 종이를 가리켰다. ‘대인배’라는 요즘 유행어가 적힌 종이.
“저 ‘대인배’라는 거도 그래. 요즘 저런 단어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 뭐야 스타크래프트? 그런 거 하는 늙은 분들이나 저런 단어 쓰지. 아무튼 총체적으로 약간 사고 난 다음에 정신이 한 30년 먼저 늙어버린 것 같아.”
“그렇게 말할 것 까진… 없지 않나…?”
말이 심하다는 듯 이서를 멈춰세우는 현아. 하지만 그런 현아의 종이에도 선명하게 적혀 있는 [노인]이라는 단어.
“어차피 언니도 수연이가 좀 그런 끼가 있으니까 노인이라고 적은 거 아냐. 쟤 좀 완전 늙은이 다 됐다고. 가방 뒤져보면 홍삼캔디나 누룽지 캔디 이런거 있을지도 몰라.”
이서는 그렇게 수군대며 명전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홍삼캔디를 들고다니는 것은 진정으로 진실이었으므로 더 그랬다.
“자, 그럼 다른 사람은 어떨까요?”
그의 마음에 상처만을 입힌 ‘하수연의 첫 인상 & 현 인상’이 종료된 후. 이 상황을 불러온 정유영은 아주 쾌활하게 다음 타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유영의 말에, 이서가 손을 들고 의견을 피력했다.
“저희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뭔 개소리야. 빨리 해.”
퉁명스럽게 뱉은 말에, 옆에서 들려오는 “수연이 빡쳤나봐.”라는 소리. 그는 더 화가 났다. 지금 이 상황에 화가 안 나고 배기겠는… 아니, 이런 태도는 어른스럽지 못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굴 수 밖에 없다. 이럴수록 침착하게, 화를 내지 않고 어른답게 굴어야 이미지가 좋아지는 법이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화 안 났어.”
“난거 같은데?”
“…화 안났다고…”
“저거 봐, 진짜 화났다니까. 막 이 악물고 말하는 거 봐. 완전 화난 사람 표정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그는 간신히 참았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어떻게든 참아야 한다. 어차피 이제 곧 공수가 전환될 것이므로…
최이서.
“나는 뭐, 첫 인상이고 지금 인상이고 다 좋지 않을까? 그럴 수 밖에 없잖아.”
그녀의 첫 인상.
[난잡한 패션으로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고 있음.]
[트위터에서 만난 약간 컨셉 잡는 이상한 사람]
[패알못]
그녀의 현 인상.
[은근히 자기가 베이스에 재능있다고 자꾸 어필하고 있음.]
[요즘에는 착함]
[패알못]
정현아.
“저… 저는… 그래도 제가 좀…”
그녀의 첫 인상.
[좀 음침한 게 친구 없어 보이는 애.]
[말 엄청 많은 사람(인터넷에서)]
[소꿉친구]
그녀의 현 인상.
[오타쿠.]
[인터넷 여포]
[애가 좀 이상해졌음]
유서하.
“나는 뭐 나쁜 말을 들을 게 없는 거 같은데. 나만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드럼 실력 좋지, 옷 잘입지, 교우관계 좋지, 기타 등등.”
그녀의 첫 인상.
[실력도 안 되면서 깝쭉대는 애.]
[완전 잘난척 하는 재수없는 언니]
[어릴때 봤던 착한 애]
그녀의 현 인상.
[얼마 전에 거울 보고 자기가 잘생겼다면서 자화자찬 하고 있었음.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교정이 필요함.]
[아무래도 패션을 좀 더 공부해야 할 듯]
[교회 다니다가 조금 이상해짐]
“이게… 맞나요?”
가감없이 이야기하라던 정유영 과장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첫 인상과 현 인상. 점점 강도가 에스컬레이트해가는 것이 그야말로, 상호확증파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고 명전은 생각했다.
“나 베이스에 재능 있는 거 아냐? 아니 사실이잖아? 1년만에 나만큼 따라오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이거 완전 진짜 실화인데.”
“호… 호랑 저거 진짜야…?”
“… 묻지 마. 그보다 너 저거…”
“너… 너도 그랬잖아…!”
그야말로 상처만 남은 자체컨텐츠. 명전은 그 가운데에서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그는 이미 수도 없이 두들겨맞았기 때문에 딱히 더 상처를 입을 것이 없었다. 원래 매도 먼저 맞고 시작한다고 하던데, 지금 그의 심정이 거기에 적합한 것 같았다.
‘아니, 좀 너무했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신이 써낸 대답을 다시 쳐다보았다. 조금 너무한 것 같기도 했다. 이서는 베이스에 재능이 있는 것이 맞았으며, 현아는 이제 더이상 음침하지 않고, 서하 또한 뭐, 십대는 다들 그러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자신이 받은 인상표를 보고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틀니라니. 진짜 너무한 것은 저 애들 아닌가. 게다가 쟤들도 자기들끼리 막 서로 공격하고 그랬는데.
아무리 봐도 그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자신이 공격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명전이 살아온 세월은 다른 아이들보다 몇배는 차이났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는 17세 여고생이었다.
“…자!”
침울해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정유영은 박수를 한번 쳤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나머지 4명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첫 인상, 현재 인상을 알아봤으니… 다음 코너를 진행해보죠! 다음 코너는… ‘서로에게 칭찬 해 주기’입니다!”
“… 이제와서요?”
“이제와서라뇨! 다들 이제 가감없이 속에 있는 말을 털어냈으니까, 그 다음에는 이제 서로를 보듬어주는 시간이 되어야겠죠!”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이서와, 그에 답하는 유영의 말. 명전은 옛날에 봤던 예능 하나를 떠올렸다. 그 뭐야, ‘그랬구나’ 였던가? 나쁜 말 다 늘어놓고 “그랬구나~” 해버리는. 지금 이 상황이 약간 그런 느낌 아닌가?
하지만 그는 용서하기로 했다.
아무튼 저 애들이 먼저 자신보고 ‘양아치’니 ‘틀니’니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이 아니면 누가 용서를 하겠는가.
‘그래,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지. 이 애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먼저 하겠어.’
원래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그렇다. 한번 삐뚤어져버리면 바로잡는 것도 힘들다. 왜냐하면 다들 손을 먼저 내미는 것 자체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하지만 진정으로 이기는 사람은, 손을 먼저 내미는 사람이다. 자신의 미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고 진짜 강자인 법. 어린 아이들에게 진심이 되어버린 그가 잘못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살기를 수십년을 더 살았는데, 도대체 애들에게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 건지.
‘어쩔 수 없지. 틀니라고 놀림받는다지만, 그것 자체가 어른스럽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어른스러움을 보여줄 때다.’
최대한 어른스럽게, 이 애들의 장점을 칭찬해주면서… 그렇게 훈훈하게 자체 컨텐츠를 마무리짓는, 그런 광경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럼 처음은 우리의 리더! 하수연 양이 다른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정유영의 말에,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들 앞에 섰다. 이서, 현아, 서하. 그가 ‘우선은 이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하며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할 때.
눈 앞의 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모양으로만 말을 전달했다. 아주 명확하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늙 은 이]
“야이 개같은-”
그는 바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이서에게 집어던졌다. 방금 전까지의 생각은 다 잊어버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