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6 KiB
“내가 맞추는 거라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수연. 서하는 정말로 궁금했다. 이미 자신은 충분히 맞추고 있다. 유진 언니와 베이스, 키보드 오빠. 수연과 서하 자신에 비하면 정말로 비교가 되지 않는… 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하는, 충분히 그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 연주를 했다.
그런데 뭘 더 맞추라는 말일까.
“이미 맞추고 있잖아.”
“아니, 너는 딱히 연주를 맞춘 적이 없어. 오히려 저 사람들이 너한테 맞추고 있지.”
“뭔 소리야?”
서하의 심기를 건든 어휘는 ‘오히려’였다. 오히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걸까. 서하 자신의 실력을 따라오기에도 급급한 저 사람들이, 도대체 뭘 맞추고 있다는 걸까? 서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밴드 사운드의 핵심은 조화와 화합. 같이 가는 것.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 대로. 보컬, 기타와 베이스, 드럼과 키보드. 다섯 개의 악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밴드의 핵심이지.”
서하의 물음에 턱을 살짝 매만지더니,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기 시작한 수연. 서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보자 하는 심정으로 수연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너는 지금 다른 밴드원들을 리드하고 있어. 아니 리드하고 있다기 보다는, 억지로 끌고가는 느낌.”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못 따라오니까…”
“그게 억지로 끌고 가는 거지. 아니야?”
그게 억지로 끌고 가는 건가. 서하는 잠시 손끝을 쳐다보았다.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묶여 있는 것 같았다. 충분히 치고 나갈 수 있는데. 드럼을 잘 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는데. 텅 비어버린 사운드를 꽉 채울 수 있는데.
이 밴드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발목이 붙잡힌 채, 그저 박자만 맞추기만 하고 있는 신세다. 이게 뭐가 맞추지 않는 것이고, 뭐가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맞추고 있다는 걸까.
“인정 못 하겠어?”
그런 그녀에게 던져진 수연의 질문. 서하는 고개를 들어 수연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한살 어린 아이. 하지만 마주본 그 눈동자는, 그녀가 봐왔던 누구보다도 깊다.
“그럼 하나만 생각해봐.”
“뭐를?”
“너는 지금 네가 잘 치니까. 다른 사람들이 너를 따라와줘야 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 것 같아?”
그 질문에 서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 보니 수연의 연주는, ‘그룹 사운드’에서나 여기에서나 동일한 느낌이었다.
‘왜 그렇지?’
서하 본인이 느끼기에도, 자신의 연주는… ‘그룹 사운드’때와 비교하면 턱턱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애들끼리 합주하던 때를 떠올리며 드럼을 치면, CCM 밴드원들은 이내 꼬여버리거나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수연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연주를 하고 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걸까? 서하는 강렬한 의문을 느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단순한 연주에 맞춰주면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걸까.
“맞추고 있는 것 같지.”
“응… 그런데 어떻게?”
“글쎄.”
수연은 대답 대신 캔커피를 홀짝였다. 이어지는 것은 말이 아닌 침묵. 도통 답을 해줄 기미가 없는 수연을 보고, 서하는 갑갑함을 느꼈다.
“어떻게 그게 되는 거야?”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뭐?”
황당한 대답에 서하는 반문했다. 하지만 수연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연습실로 돌아가려다, 발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부모님에게 연주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지. 좋은 연주를. 잊혀지지 않는 그런 걸. 만약 그런 걸 보여주고 싶다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걸. 좋은 연주란 뭘까. 음악이란 뭘까. 조화란 뭘까… 하나만 말해주자면.”
수연은 씩 웃었다. 지금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울리는. 그런 미소가 그녀의 입에 머물렀다.
“좋은 기술이 좋은 음악을 담보하진 않아. 결국 음악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니까.”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수연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서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뜻이었을까?’
수연이 던지고 간 문제를 서하는 도저히 풀지 못했다. 며칠을 고민해봐도 답을 제시할 수 없어 서하는 수연에게 대놓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결국 답이 뭔데?”
“그건 네가 알아내야 된다니까.”
그래도 답을 모르겠다고 하자 수연이 던져준 것은, 그녀의 말로는 ‘힌트’였다. Cream이 2005년 Royal Albert hall에서 했던 재결성 공연 DVD. 다른 세션 한명 없이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 3인만이 무대에 올라 했었던 공연.
“그걸 보면 대충 알 수 있지 않을까.”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수연의 이야기를 듣고, 서하는 교회 창고를 뒤져 DVD 플레이어를 꺼내 몇번이고 그 공연을 다시 돌려보았다. 지나가던 집사들이 “사단의 음악을 들으면 안 돼.” 라고 해도 서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024년에 무슨 헛소리인가.
몇번이고 돌려본 결과, 서하는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도저히 모르겠어.’
뭔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긴 했다. 전성기였던 60년대를 한참 지난 사람들. 얼굴을 봐도, 육체를 봐도 늙은 것이 한참 느껴지는. 목소리도 마찬가지. 올라가지 않는 목소리와 늙어버린 육체를 이끌고 선 세 명의 뮤지션.
그들의 연주는, 어디도 비어있지 않았다. 적어도 서하는 그렇게 느꼈다.
‘물론, 음향 기술적으로 메꾼 것도 있겠지만…’
분명히 있겠지. 열대가 넘는 스택 앰프. 다양한 이펙터. 오디오 보정. 그 외 수많은 기술들이 그들의 공연에 들어갔을 것이다. 서하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거기에는 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밴드, ‘그룹 사운드’의 공연을 돌려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은 것 같은 수연의 연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서하는 수십번이고 그들 자신의 공연을 보았다. 그 공연에도 있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테크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공연 당일.
CCM 공연은 오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수연은 그 시간에 맞춰 오기로 했기에, 서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교인들과 집사, 권사분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고. 밴드 멤버들도 자신이 할 일을 맡아서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서하는 탁자에 앉아 턱을 괴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이야기라도 좀 했지만, 다들 눈치를 보다 일을 하러 가버리고. 그렇게 혼자 남아 버린 상황에, 서하는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럴거면 그냥 수연이 빨리 오라고 할 걸 그랬나. 같이 이야기나 좀 하게.’
하지만, 서하 본인도 지금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혀 관계없는 외부인인 수연이가 와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서하는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버린 후, 크림 콘서트나 한번 더 봐야되지 싶어 이어폰을 찾았다.
“서하야!”
“네.”
그런 서하를 불러세운 것은 교회 안수집사의 목소리였다.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거는 집사.
“유 목사님 30분 뒤에 오신댄다.”
“진짜요? 빨리 오시네. 오후에 오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너랑 점심 드시러 빨리 오시는 거라더라.”
그 말에 서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알겠어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좋아지는 기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진로에 대해, 음악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더라도… 결국 그들은 서하의 부모였기에.
“잘 지냈니? 교회는 잘 나오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첫 인사. 서하는 좋았던 기분이 다운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그런 사람들인 것을.
“어… 네. 잘 나가고 있어요.”
“그래. 그분께서는 언제나 지켜보신단다.”
서하는 아무 말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안은 후, 자리에 앉았다. 가족끼리 만난 그 자리에서, 단 한순간만이라도 신앙이니 신실이니 교회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걸까. 이미 이해하기로 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
“그냥 뭐… 학교 다니고, CCM 밴드 하고. 그러고 있어요.”
“할머니는?”
“잘 계시죠. 맨날 무릎 아프다고 그러세요. 주물러 드려도 힘드신가봐요.”
아버지의 물음에 서하는 대답했다. 요즘 자신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얼마 전에는 한창 바빴는데, 왜 바빴더라. 과거의 일을 되짚어가던 서하는,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 하나를 떠올렸다.
“아 맞다. 엄마, 아빠. 저 그 말 안한 게 있는데요.”
“응?”
“저 밴드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했어요. 상금도 탔어요. 1억원. 박 집사님한테 이야기하긴 했는데…”
아직 지급되지 않은 상금. 수연이네 어머님이 다 받아서 세금 최대한 줄인 다음 나눠주신다고 했던 그 돈. 서하는 부모님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디션 프로 우승에다가, 상금 1억원까지? 어느 부모가 놀라지 않겠는가.
“밴드 오디션 프로?”
“네. 그, 현아랑. 다른 학교 후배들이랑. 같이 나가서 우승했어요.”
“잘 됐구나.”
“축하한다. 그런 곳에서 우승하는 건 좋은 일이지.”
부모님이 지어주는 흐뭇한 미소. 서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 정도 결과라면 엄마 아빠가 인정해주실 만 하지 않을까. 밴드 공연까지도 갈 필요 없는…
“그럼, 계속 할 거니?”
듣기에는 상냥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 서하는 좋았던 기분이 단순간에 추락하는 것을 느꼈다. 계속 할 거냐니. 계속 할 거냐니…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계속 할 거냐고?
그 뒤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계속되었으나, 사실상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넘지 못하는 벽.
서하와 부모님 사이에 쌓인,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벽.
서하는 그 벽을 바라보았다.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고, 무너트리기에는 너무나도 견고하다.
그녀는 그저, 벽 앞에 쭈그려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서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공연 직전이었다. 대기실 안, 서하의 앞에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다른 밴드원들과 수연이 있었다.
“서하야.”
유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서하는 그저 짜증날 뿐이었다. 도대체 왜, 부모님은 그렇게 말한 걸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걸까. 도대체 왜, 이런 일에 놓여버린 걸까.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밴드 먼저 준비해주세요. 서하는 제가 데리고 갈테니까.”
“…네.”
수연의 말에 유진과 밴드원들이 자리를 떴다. 남은 것은 서하와 수연. 아무 말 없이 침묵만이 이어진다.
“유서하. 힌트를 하나 더 줄게.”
지금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하지만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수연의 담담한, 그러나 단단한 눈길이 그녀에게 향해 있었다.
“자기의 마음, 기분을 잘 반영할 줄 아는 음악인이 결국은 끝까지 남는 법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잘 생각해봐. 3분 정도 남았으니까, 마음 정리 좀 하고 무대에 올라오면 돼.”
그렇게 말한 후, 수연은 대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서하는 잠시 자신의 손을 쳐다보다가, 축 늘어트렸다. 리허설도 못한 채 공연 직전인가. 이래서야 공연을 망칠 수 밖에 없다.
‘망치면 어때?’
드는 생각은 그런 것 뿐이었다. 망치면 어떠한가. 아무리 연주를 잘 해도. 오디션에 우승을 해도. 재능을 보여도. 결국 부모님이 보는 것은 그놈의 신앙, 그 뿐…
사회를 맡은 집사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서하는 그저 멍한 채로 드럼 앞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유진이 다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베이스나 키보드 오빠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1년 동안 매일 봐 왔던, 수연의 연주 시작 제스쳐.
서하는 본능적으로 드럼을 넣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곡이 진행된다. 생각하기 전에 손은 움직인다. 결국 수연의 말에 따라 ‘밴드원에게 맞춰서’ 빈 공간을 허망하게 휘젓는 듯한 연주.
‘슬프다.’
부모님은 대체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계속 할 거냐니.
계속 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오디션 프로로도 부족했을까?
아니면 그냥, 음악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인정을 할 생각이 없는 걸까?
‘짜증나.’
모든게 짜증났다.
말을 들어먹지 않는 밴드원들도.
그들의 늘어나지 않는 실력도.
수연의 아리송한 이야기도.
강제로 맞춰진 연주도, 비어버린 소리도.
바로 지금, 왠지 모르게 자기 멋대로 튀어나가는 손도.
‘열받아.’
도대체 왜 자신은 이러고 있는가.
부모가 뭐길래.
나를 내버려둔 채로 그들은 지방으로 떠났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그런데 나는 왜 슬퍼해야 하지?
그들의 마음에 들지 못해 힘들어해야 하지?
왜 내가 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지?
서하는 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자신의 마음을…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다.
드럼의 소리가 바뀐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메트로놈과 같았던 그 소리에는, 조금씩 색채가 더해져간다.
어쩌면 붉은 색. 어쩌면 푸른 색.
어쩌면 다른 색깔일지도.
그녀는 꽃봉우리를 보았다.
그 꽃봉우리는, 그녀의 손 끝. 드럼 스틱에서 하나씩 피어오르고 있다. 풍부하고 다채롭게 회관을 물들이며 퍼져나가는 꽃들.
그때 서하는 깨달았다.
‘자기의 마음, 기분을 잘 반영할 줄 아는 음악인이 결국은 끝까지 남는 법이야.’
이것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고.
이것이 수연이가 말한 그것이었다고.
그것은, 바로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