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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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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하고 나서 카렘은 그동안 전생에서 보고 듣기만 했지 실재하지는 않았던 것에 나름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했다.

당장 가장 가까이 있는 두 대마법사부터가.

허구한 날 서로 마법을 쏴갈기면서도 용케 주변은 멀쩡하게 내버려 두는 두 사람은 에우로파의 마법사라면 모두 우러러보는 불로의 현자들인데.

두 사람을 빼도 찐따미가 철철 흘러넘치는 엘프 네크로맨서도 하나.

그 외에 마법사의 탑에 이젠 잔뜩 포진한 마법사들.

거기에 그동안 짬짬이 봤던 고블린, 슬라임, 아이스웜에 헌터 드레이크, 말하는 유사 거대 까마귀 몬스터와 그 외의 각종 몬스터의 박제와 부산물.

앞서 언급한 몬스터가 무색해지는 실물 매머드까지.

심지어 이곳에는 전생이라면 진작에 멸종했던 매머드마저 네 발로 대지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적응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다.

물론 드워프니 엘프니 다크엘프니.

뭔가 매우 익숙한 종족들이 마음껏 이 세상을 거니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카렘은 드디어 깨달았다.

자신은 아직 적응하려면 멀었다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놈들의 앞니와 꼬리를 조심해라!"

"제길! 몇 년 조용하더니만 슬슬 올 때라고 생각했는데!"

조악한 석제 무기를 휘두르는 곰만 한 거대한 몬스터.

그리즐리 비버의 침공에 맞서 구출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카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즐리 베어, 불곰 혹은 그보다 조금 더 큰 비버.

그리즐리 비버라는 말 그대로 그리즐리 비버였다.

그런 놈들이 석기를 휘두르고, 이빨로 물어뜯고, 꼬리로 후려치고, 몸으로 밀어붙이는 등 외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것만 떼어놓고 보면 정말 하찮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 결과 피와 살점, 뼈와 내장이 흩날리지만 않았더라면.

그것들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뻔했다.

뭔가 현실감이 들지 않는, 하찮은 동시에 어렸을 때 봤던 잔인한 플래시 애니매이션이 떠올랐다.

피비린내에 섞여 있는 카렘에겐 익숙한.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떠올락 말락 하는 달콤한 냄새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상황에서 마법사들보다 돋보이는 것은 두 사람.

고든, 그리고 아이오나였다.

"망할! 아이오나님! 연세도 많으신 분은 뒤로 빠지십쇼!"

말 그대로 동에서 번쩍.

그리고 서에서도 번쩍.

도망치던 것이 무색하게 고든은 구출대의 전력이 합류하자마자 그대로 반전해 몬스터 무리를 역습.

소드마스터의 칼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리즐리 비버의 머리와 살점을 비롯한 생명이었던 증거들이 무참히 흩날렸다.

고든은 범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 속도로 롱소드를 휘둘러 주변의 그리즐리 비버를 도륙내는 것도 모자라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지원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고든은 그저 빠르게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요리 원툴인 카렘의 눈으로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전의 실력자랑은 자랑이 아니라 고작 내숭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내숭을 좀 떨 수도 있는 거니까.

정녕 카렘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바로 옆의 풍경이었다.

"흐아아아압! 어림없는 소리! 노구는 !"

강타, 강타, 강타, 강타, 강타!

뚱뚱한 몸에 얼음으로 된 갑옷을 두른 아이오나의 두 손과 두 발이 그리즐리 비버를 마구잡이로 두들겼다.

새하얀 한기가 주변으로 파동쳤다.

대단위 전투에서 모름지기 기세란 중요한 법.

독보적인 그 모습에 구출대 또한 불타는 사기로 그리즐리 비버에 맞섰다.

하지만,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즐리 비버는 하나를 죽이면 두 마리가 숲에서 몰려나왔다.

용병술이라고는 포위섬멸진 말고는 잘 모르는 카렘의 눈으로도 이대로 가다간 크게 일이 벌어지겠단 건 확실했다.

카렘은 캐서린을 돌아봤다.

"어어, 이제 조금 위험한 거 같은데-"

"꼬마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히 밀리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슬슬 나서 주셔야 할 때가 아닐까요?"

"확실히,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캐서린은 지팡이를 쥐고 목책을 강하게 두드렸다.

피비린내와 달콤한 냄새에 마비되어 있던 카렘의 코를 때아닌 한겨울의 공기가 스쳐 지나갔다.

"어우, 추워라!"

"어린 것이 참을성 없기는."

"참을성 없는 어린애는 좀 떨어져 있겠습니다."

"그래. 곧 끝난다."

"아니, 나서지 말게."

캐서린의 앞에 놓인 목책을 누가 턱 하니 짚었다.

창문 밖으로 훌쩍 도망쳤던 자이언트였다.

"아니 뭔-"

"마법 전력은 되도록 아끼는 게 낫지 않겠나?"

"어이, 소드마스터 전력 또한 아끼는 게 당연한 건 아니고?"

"리무스!"

"어이!"

"어디 있나. 리무스!"

"어이. 무시냐. 어이! 윽!"

말이 무시당한 캐서린은 무심코 자이언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깡!

하지만 정작 아픈 건 캐서린이었다.

게다가 위치가 안 좋았는지 소리가 매우 청명했다.

"끄으으으윽!"

"아이고. 아타니타스님."

"저, 저!"

파하하하하하! 자이언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허겁지겁 목책 위로 올라온 리무스가 경례했다.

"스콰이어 리무스! 대령합니다!"

"기병대는 어디에 있지?"

"정찰을 나가신 분들을 제외하고 모두 출진을 준비 중입니다!"

"흠, 그렇다면 시간을 끌어야겠군. 좋다! 승리의 구령을 외쳐라!"

"넵!"

자이언트는 족제비같이 날렵하게 훌쩍 목책 위로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소드마스터. 발사!"

쾅-! 우지끈!

자이언트는 그대로 도약.

목책 일부가 반동에 부서지면서 그리즐리 비버를 향해 발사.

어느샌가 자이언트의 손엔 거인이 휘두를 법한 거대한 양날 도끼가 잡혀 있었다.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구출대를 공격하던 그리즐리 비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기세 죽이지 않고 그리즐리 비버를 반으로 쪼갰다.

그 반동에 대지가 진동했다.

사실상 인간의 형상을 한 폭탄.

카렘은 왜 구출대의 대장인 자이언트가 없어도 구출대가 굴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두 소드마스터와 구출대의 병력.

그리고 기병대의 출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즐리 비버 무리는 참혹하게 후퇴했다.

전투는 종료되기까지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승리를 축하한 구출대는 그리고 목표였던 아이오나와 호위대, 그 은인인 고든과 용병 무리로부터 짐작하던 생각이 확실하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즐리 비버의 대규모 발생.

하지만 카렘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스랜드 토박이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귀찮음 반에 환호 반이 섞인 복잡미묘한 반응들이었다.

그리고 카렘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즐리 비버는 비버답게 강, 호수에 댐을 짓고 사는 몬스터.

당연하지만 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이스랜드 사람들의 상당수가 벌목으로 먹고살았다.

즉, 필요 자원과 활동 반경이 겹쳤다.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좋게좋게 타협의 여지라도 있지.

그리즐리 비버는 비버같은 외형과는 달리 엄연히 몬스터였다.

몬스터와 타협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당연히 피해가 발생하면 모험가들이 토벌하고 그걸로 끝.

이었으면 모두가 행복할 결말이었겠지만, 아이스랜드에선 몇 년에 한 번씩 그리즐리 비버의 개체 수가 폭발해 대규모 토벌 의뢰가 벌어졌다.

블랙우드 마을에 도착한 구출대는 아이오나 구출이라는 목표를 달성.

그리즐리 비버 대규모 발생을 확인하고는 알프레드에게 연락.

구출대는 곧 모험가 길드와 연계하여 토벌대로 전환했다.

덕분에 블랙우드 마을은 이전보다 한층 더 시끄러웠다.

"와, 씨. 이거 보면 볼수록 적응이 안 되는데."

"그래도 이놈들 모피가 따뜻한 남쪽에서는 제대로 먹혀줍니다."

"촉감이 이렇게 뻣뻣한데요?"

"그거야 무두질을 거치면 되는 문제이지요."

부산물. 즉,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바르는 모험가들과 적당히 스몰토킹하며 카렘은 그리즐리 비버를 자세히 살폈다.

"보니까 전부 뼈만 바르던데. 고기는 안 먹나요?"

"기름과 살이 잔뜩 오른 가을이라면 모를까. 봄, 여름의 그리즐리 비버의 고기는 맛이 형편없습니다. 맹수나 몬스터조차 굶주린 게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을 정도입니다."

"호오오..."

가을이 아닌 그리즐리 비버의 고기는 맛이 없다.

체크. 그리고 감상은.

'음, 이렇게 보니 또 별로 귀엽진 않은 듯.'

멀리서 봤을 때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거대한 버전으로 가까이서 보니 귀엽다기보다는 징그러웠다.

비버의 귀여운 점이라 하면 북실북실한 몸과 동글동글한 눈.

그리고 몸에 비해 한없이 짤막한 네 다리와 노를 닮은 꼬리.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버전으로 보자 귀여웠던 점들이 모조리 빛이 바래버리고 말았다. 곰같이 귀엽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주기적으로 대량 발생한다고 했던가.

"뭔가 메뚜기 떼 같은 느낌인데."

"메뚜기 떼?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익숙한 목소리에 카렘은 고개를 돌렸다.

이번 구출대의 귀인이자 펠윈터 가문의 은인, 한창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기 만점이었을 고든이 지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꼬마 천재 요리사 카렘! 이런 누추한 곳에서 이렇게까지 귀하신 분을 친히 보게 될 줄이야! 전에 봤을 때보다 키도 컸잖아!"

"거 참. 사람 부끄럽게 만드시네요."

"네 그 뛰어난 요리실력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하! 여기저기서 들어보니 콜던에서도 보통 날뛴 게 아니던데?"

하 참. 이런 대놓고 하는 칭찬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카렘은 무안한 마음에 말을 얼버무리면서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이 달콤한 냄새는 그리즐리 비버 때문에 나는 건가요?"

"뭐, 그런 편이지. 덕분에 놈들의 기습을 알아차리는 건 쉬운 편이야."

"기습."

비버라는 단어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무리를 짓는 몬스터이니 당연하게도 전술을 사용할 줄 알겠지.

거기에 조악하게나마 무기를 만들고, 사용할 줄 아는 머리를 가졌다.

몬스터 중에 도구를 사용하는 놈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라. 얘네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놈들 아닌가?

"왜, 이게 어디서 나는지 궁금해?"

"저 그리즐리 비버한테서 나는 거라면서요?"

"일단 따라와 봐라."

그리고 카렘이 고든을 따라 도착한 곳은 갈무리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죽은 그리즐리 비버 더미.

고든은 그중 하나를 발로 걷어차 엎었다.

죽은 그리즐리 비버 하나가 철퍼덕 배를 까뒤집었다.

그리고 덜렁.

진하고 매혹적이며 달콤한 향기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아 제발! 신이시여! 고든의 수상한 취향은-"

"어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X알을 말하는 게 아니면 뭔가 "

"아니, 저게 그 원인이라고. 원인! 네가 알려달라며!"

카렘은 긴가민가했다.

잠시 고민하는사이 실눈 사이로 보이는 혐오스러운 광경.

카렘이 그러거나 말거나.

고든은 맡아보라는 듯이 연신 그리즐리 비버를 걷어찼다.

그에 따라 진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뭘 그렇게 징그러워하고 있어? 그래 봤자 고작-"

"X알인 거 알겠으니까요! 그만 좀!"

"그래 그래 그래. 뭐라더라.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냄새라고 하던가. 아니, 그 반대라고 했던가? 여튼. 사향같은 물건이라지."

일부다처제니, 댐이 장난 아니라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현대인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냄새.

아니 잠깐.

시야를 가리던 손을 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드러누워진 몬스터의 고간 사이를 노려보았다.

'...이거 바닐라 냄새잖아.'

시발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러고 보니 바닐라가 한창 금값이나 다름없던 시절.

더욱 값싼 대체품과 질 좋은 모피를 찾던 이들에 의해 비버가 멸종위기종으로 전락했던 적이 있다는 진위여부가 의심되는 정보가 떠올랐다.

비버의 말린 그것이 바닐라와 향이 똑같다고 하던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리즐리 비버의 덩치에 걸맞게 그 크기도 굉장했다.

생각해보니까 해물탕 먹을 때도 정소는 멀쩡하게 먹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거부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익숙하기 짝이 없는 냄새.

카렘의 눈빛은 소드마스터 고든조차 흠칫하고 한발 물러설 정도로 박력 있게 변했다.

"워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관심을 보이던 건 돈이랑 요리밖에 없지 않았어?"

"돈은 이제 충분한걸요."

"그거 이상한 말인데. 어쨌든, 왜. 저걸 먹을 생각이라도 들었냐?"

"........"

"어, 농담으로 한 건데. 설마 진짜로?"

카렘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고든을 지긋이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