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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거스비.
"그러면 다치지 않게 조심들하고."
"걱정하지 마십쇼. 촌장님. 자! 모험가님들. 잘 부탁합니다!"
펑거스비 촌장은 모험가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끼를 들고 숲으로 향하는 마을 남자들과 일꾼들을 배웅했다.
펑거스비에 난데없이 닥쳤던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원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가 남기고 간 일의 뒷수습을 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법.
콜던으로 복귀하는 캐서린이 마을을 원상복구 하는 데 지원을 약속하였기는 했지만, 솔직히 펑거스비 촌장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인명 피해, 재산 손괴의 문제는 별것 아녔다.
마을을 지키느라 다친 일부 모험가와 자경대원.
모험가가 다치는 것은 일상이고 자경대원을 뺀 마을 사람은 토벌대를 따라갔다가 다친 이들을 빼면 한 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신이 펑거스비를 도왔다고 촌장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파손된 목책을 수리하고 해체했던 건물을 복구하는데 목재와 품이 들기는 하겠지만, 본래 아이스랜드에서 나무란 언제나 넘쳐나는 것.
펑거스비 인근 숲의 생장률이 아이스랜드 평균 이하라고 해도 수년 이내로 복구되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마을이 새로 모시게 된 캐서린이 각종 지원을 서면으로까지 약속한 상태.
이 기회를 놓친다면 촌장의 자격은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노후화된 우물 보수 및 확장.
목책을 구성하는 통나무의 전면적인 교체.
최신 공법 도입 등 그동안 미뤄두었던 작업을 전부 끝내버릴 좋은 기회였다.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소모하는 일들.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펑거스비가 원래부터 부촌이었고, 저축한 돈이 없었다면 그 모든 일을 한 번에 해치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을에 도시 만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마차와 수레, 일꾼과 모험가가 드나드는 것을 보던 촌장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는 촌장의 집에 모인 여타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수익 수단을 찾아야 할 거다. 저 숲은 이제 아쿠사레 버섯을 뱉어내는 금광이 아니라 몬스터의 둥지야.'
시간은 저녁.
촌장의 소집에 모인 사람들은 고심했다.
"일단 그동안 마을이 돈을 숲에 갖다 버리고 있었던 건 확실하군. 골렘에서도 기름이 나오던데 그걸 어떻게 팔순 없나?"
"아쿠사레 버섯 골렘의 기름은 마법 재료로는 상품성이 전혀 없다고 하던데."
"그동안 버린 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다 터지네."
"골렘의 핵이란 물건이 그렇게 돈이 된다는데, 중계 사업을 하는 것은 어떻소?"
"마을의 주력 사업으로 하기엔 도시의 큰 손들이 좀 거슬리는데."
"그러면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숙박업? 요식업? 어떤 걸 말하는 거지?"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잔뜩 길러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아, 그러고 보니 요새 콜던에서 대유행이라고 했었죠?"
그렇게 의견이 오가는데, 촌장의 곁에 앉아있던 촌장의 딸.
이세트가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런데 뭐가 됐든 아쿠사레 버섯만큼 돈이 되지는 않겠죠."
그리고 시장바닥이 조용할 만큼 시끄럽던 거실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귀족의 사치란 단순히 사치를 위함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가문이, 영지가 잘 나간다는 것을 다른 귀족들에게 은연중에 내비치는, 주변에게 날 건들면 딱히 좋을 것 없다는 고슴도치성 방어수단에 가까운 행위.
비싼 옷과 고급스러운 요리, 금은으로 장식된 가구는 서로에게 견제를 날리는 것이 일상인 귀족들의 창칼.
덕분에 펑거스비는 아쿠사레 버섯 수확 및 판매를 한 이후로 호황이 아닐 때가 없었다.
그야말로 숙박업, 요식업, 농사 따위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알짜배기 사업.
하지만 그것도 올봄으로 끝이다.
수십 년 전의 기근을 기억하는 노인들의 편집증으로 저축한 돈 덕분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지만, 게으름을 부린다고 좋을 건 없었다.
그래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초를 치다니.
"그러는 넌 좋은 방도가 있다고? 계속 입만 다물고 있던데."
비꼬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네! 물론이죠!"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촌장의 딸, 이세트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비꼬던 마을 사람은 역으로 당황했다.
"하, 하?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거냐?"
"그야 전 지금 당장 대비책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이세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돌진.
곧이어 그들은 커다란 냄비에 가득 담긴 황금빛 기름을 볼 수 있었다.
"뭐어? 아쿠사레 버섯 기름? 이거 독 아니었어?"
"뭘 말하나 했더니. 뭐 독물 장사라도 하자고?"
수십 년 동안 쓰레기라 생각하고 숲에 폐기한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 법.
마을의 젊은이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거 마법사님이 독이 아니라고 했는데."
"아타니타스님의 시종, 아니 요리사분이 이걸로 간식도 해주셨어요!"
"견과류를 한가득 씹는 것처럼 고소하더구나."
하지만 이 자리엔 직접 보고, 먹은 이들이 있었다.
신전에 잠시 몸을 피신했던 어린아이들과 노인들.
특히나 마을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의 두둔에 이세트를 비꼬던 이들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바글바글바글바글바글-
차르르르르르르-
노란 튀김옷을 입은 각종 고기와 채소가 맹렬한 기포를 내뿜으며 황금빛 기름에 튀겨지는 광경.
나름 기름을 아낌없이 식용으로 쓰던 펑거스비 사람들도 본 적 없는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조리법에 넋이 나간 사이.
이세트의 손에 의해 하나둘 건져진 튀김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반응은 빨랐다.
"젊었을 땐 상상도 못했던 사치를 이렇게 부릴 수 있게 될 줄이야."
"하나는 너무 작은데. 하나만 더 먹어봐야겠어!"
"아니, 채소가 이렇게까지 맛있어진다고?"
바삭바삭한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호평 일색.
한층 업된 기분으로 이세트는 거실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저는 기름 장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
"가죽 주머니 하나만으로 한솥 가득히 나오는데! 모두 버섯 골렘의 크기를 생각하면 대체 얼마나 많은 기름이 나올까요?"
아쿠사레 버섯.
성인 주먹만 한 크기가 평균.
아쿠사레 버섯 골렘.
아무리 작아도 성인 남성 체형보다는 컸다.
거실의 분위기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은 금방이었다.
"저 커다란 것들에서 기름을 뽑아내기만 하면....!"
"잠깐, 이러면 가죽 포대로는 안 되겠는데. 배럴을 사는, 아니지. 장인을 통째로 고용하는 게 좋겠어."
"씨도둑질은 못 한다고 하더니. 여자라고 해도 촌장의 자식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알겠으니까 그 튀김 하나만 더 주면 안 되겠니?"
이세트를 비꼬던 소수의 마을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아이스랜드에서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 바로 기름이었고, 하물며 식용 기름은 더더욱 귀한 것이 현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세트는 자신 있었다.
아쿠사레 버섯 기름은 여전히 찬란하고 투명한 황금빛을 잃지 않았다.
몇 번이나 사용하고,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특유의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세트."
튀김을 천천히 씹으며 튀김과 기름을 관찰하던 펑거스비 촌장이 자신의 유일한 혈육에게 시선을 돌렸다.
"버섯 골렘의 기름으로는 실험해 보았느냐?"
"....아!"
"그래, 우선 그것부터 해봐야겠지."
아쿠사레 버섯과 아쿠사레 버섯 골렘.
당장 버섯 골렘의 기름부터 그냥 아쿠사레 버섯 기름처럼 마법 재료로는 전혀라고 하다시피 가치가 없었다.
캐서린이 장담했다.
버섯 골렘의 잔해를 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목책 바깥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된 잔해가 한가득하였으니까.
촌장의 명령에 순식간에 준비를 마친 마을 사람들.
냄비에 넣은 골렘의 잔해에 소금을 뿌리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음, 색이 좀 많이 옅은 것 같은데?"
"냄새도 좀 덜하지 않나?"
"맛도 조금 덜한 느낌이야."
"일단 직접 비교해보도록 하지."
아쿠사레 기름 냄비를 옆에 두자 차이는 확연했다.
아쿠사레 버섯 기름은 황금을 녹여내어 투명하게 만든 것 같은 신비로운 빛깔과 방 전체를 휘감는 짙은 견과류 냄새가 특징.
하지만 골렘의 기름은 투명한 노란색에 냄새 또한 한없이 옅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두의 생각대로 기름의 양 만큼은 아쿠사레 버섯보다 골렘의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
"품질이 확연하네요."
"아니, 오히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훌륭하다."
촌장은 낙담하는 이세트의 말을 부정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품질이 낮아졌다고 해도, 비교적 접하기 쉬운 소기름이나 돼지기름 따위보다는 품질이 압도적이다."
"네? 아버지. 그러면-"
"그래. 문제가 있다면 도시의 길드 놈들일 텐데."
길드.
고기, 빵, 채소, 유통, 목재, 목수, 대장장이 등 도시의 상권을 차지한 터줏대감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들에 모두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런데, 콜던에 기름 길드는 없다만."
"예? 어르신. 기름 길드가 없다니요."
"콜던에서 만들지 않는 유일한 것이 바로 기름이야. 작년에 콜던에 들렀을 때도 그 많고 많은 길드 중에 기름 길드는 없더구나."
마을 원로의 그 말에 이세트의 눈빛이 변했다.
"흐음, 초기 비용이 걱정인데-"
"마을 차원에서 비축한 돈은 아직 넘쳐나잖아요. 무엇보다 일당에 기름을 같이 좀 쳐준다고 하면 사람이 잔뜩 모이지 않을까요?"
"허."
아이스랜드에서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열량.
오히려 다른 아이스랜드 전역에서 사람이 몰릴 것은 당연했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도.
"아타니타스님께서 숲은 골렘을 끊임없이 내뱉는 던전이라고 고하셨지. 반대로 생각해보게."
"그게 다 기름 덩어리라는 말이지. 그런데 운송은?"
"그것만큼은 콜던의 수송 길드와 모험가 길드를 이용해야겠지. 마침 거리도 반나절밖에 안 되지 않나. 누구 수송 길드에 아는 사람 없나?"
"걱정하지 마. 거기 부길드장이 내 친구야. 그보다는 다른 길드의 텃세가 더 걱정인데."
"마을에서 가져다 바친 아쿠사레 버섯이 얼만데. 염치가 있다면 콜던의 권력자와 귀족들이 우리의 뒤를 봐줄 걸세."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모시게 된 분이 공작 각하의 최고 마법 고문이지 않나?"
"그러면-"
마을의 원로들.
젊어서 기근을 경험하고 마을이 사업을 확장하는 동안 온갖 경험을 쌓고 늙어서는 촌장을 도와 마을을 운용하는 살아있는 경험 집단.
어쭙잖은 젊은이들은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가운데.
"아버지. 이 기름 사업 우리가 먹죠."
이세트가 열정적인 눈빛으로 펑거스비 촌장을 돌아보았다.
"촌장. 최소 마을을 유지하거나 크게 넓히기 위해서라도 이만한 사업은 없을 걸세."
"우리 마을이 대대로 쌓아 올린 인맥을 써먹는데 이만한 사업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장 먼저 앞장섰던 촌장의 딸, 이세트.
마을의 원로들.
그에 설득된 마을 사람들까지.
"...도시와의 거리, 인맥, 자금, 토지와 마을 사정까지."
말없이 고민하던 펑거스비 촌장은 씨익 웃었다.
"그래, 이세트. 네 말대로 이 사업. 우리가 먹자꾸나."
촌장의 집은 한순간에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