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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동안 카렘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풍채가 좋은 것처럼 성격도 좋아 보이는 아이오나는 나이가 많은 노인답게 이것저것 말하기를 좋아했는지 카렘이 딱히 무언가를 묻지 않았는데도 아이스랜드에 뭐가 있는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환생하고 나서 인생의 9/10 이상을 마을에 갇혀있던 카렘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물론 공작 가문의 시종장을 겸직하는 한 종교의 장로쯤이나 되는 사람을 거부할 수도 없었겠지만.
캐서린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카렘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
그녀가 귀족, 그것도 알프레드 펠윈터 아이스랜드 공작의 전속 마법사로 초청/고용을 받았다는 것도 아이오나를 통해 확정할 수 있었다.
아이오나의 수다를 빙자한 정보 수집, 캐서린의 식사 시중, 때가 되면 잠자기.
그 외에 카렘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아니, 있어도 카렘에게는 시키지 않았다.
안내 행렬의 요리사와 시종들은 카렘이 못 미더운지 불에는 가까이 가기는커녕 조리기구를 만지는 것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 아니냐? 너의 나이도 나이지만 네가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상급자에게 불벼락이 떨어질 테니. 공작이 친서까지 보내면서 고용한 마법사의 어린 전속 시종이 이동하던 도중에 해코지를 당했다. 모가지 당하기 딱 좋은 안건이로군."
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캐서린은 두루마리를 흔들며 단언했다.
카렘은 순식간에 납득했다.
현대로 치자면 난데없이 사장이 고용한 외부 고문의 비서가 회사 급양실에 난입했던 꼴. 비서가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눈에 불을 켤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카렘은 요리사와 시종들을 위해서 적어도 펠윈터 령에 도착할 때까지는 요리를 놓아버렸다.
묵직한 손맛과 불길이 그리워 손이 근질거리기는 했지만.
카렘이 아쉬움을 삼켜가며 아이오나 장로의 수다를 듣는 동안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안내 행렬은 드디어 아이스랜드에 진입했고, 과연 카렘은 왜 아이스랜드가 "아이스"랜드인지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보더스터를 벗어나 아이스랜드에 진입하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졌다.
기온이 한 자릿수, 영하로 떨어졌을 때의 시리고 서늘한 겨울의 냄새가 폐부 깊숙이 느껴졌다.
가볍게 숨만 쉬어도 뼈부터 위장까지 차가워지는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짐칸에 실려있던 두꺼운 망토가 배부되었다. 카렘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원인은 카렘이 기어코 이끼 멧돼지의 (생) 가죽을 뒤집어쓰려 해서였고.
"아, 그러고 보니 아이스랜드에 진입했으니 슬슬 기름을 발라야겠구나."
"기름이요?"
"그래. 아이스랜드는 겨울이 될수록 심하게 건조한 편이라서 말이다."
"아, 그래서였군요?"
카렘은 금방 기름을 바르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이스랜드에 진입하자 추위는 둘째치고 피부가 조금씩 땅겨오는 것을 느꼈다.
대기가 건조하다는 명백한 증거.
건조한 대기와 추운 겨울의 콜라보라면 현생의 카렘은 아니지만, 전생엔 매우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로 경험했다.
"꼬마. 잠자코 발라라. 칼바람에 얼굴 찢어지기 싫으면."
"히엑."
카렘은 옛날에는 겨울 칼바람에 피부가 찢어지는 게 빈번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피부에 기름을 바르거나 목도리를 두르는 것은 당연했다.
전생의 그도 겨울만 되면 건조해지는 피부에 로션을 바른 경험이 종종 있어서 익숙했다.
다만 이렇게 쌩 기름을 바른다는 건 또 어색하고 신선한 경험이라서 그렇지.
끼익-
삐이이이이이이-!
돌연 마차가 정지. 밖에서 독수리 울음소리 같은 세 된 소리가 마차 바깥 가까이서 울렸다.
누가 들어도 뻔한 경고음이었다.
"음? 경고음?"
"습격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아타니타스공. 잠시-"
똑똑똑-!
캐서린의 말에 아이오나가 긍정하기 무섭게 마차의 문을 누군가가 노크하더니 마차의 창문이 벌컥 열렸다.
차가운 외부 공기와 함께 바이저만 보이는 기사가 경고했다.
"아이오나님. 습격입니다."
"몬스터? 도적? 이번엔 어느 쪽이지?"
"헌터 드레이크 무리가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헌터 드레이크. 카렘은 현실감이 들지 않아 두 눈만 깜빡거렸다. 일단 드레이크가 뭔진 아는데, 헌터 드레이크? 카렘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캐서린을 응시했다.
의문이 가득 담긴 그 시선을 느낀 캐서린은 두루마리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드레이크는 웜, 와이번, 린드부름과 같이 드래곤의 피가 옅게 흐르는 아룡이다. 그 중에 헌터 드레이크는 늑대와 같이 무리를 형성하지."
캐서린의 설명은 무척이나 간결하고 알아듣기 쉬웠지만, 호기심은 커졌다.
그야 그도 그럴 게, 그가 현생에서 봤던 몬스터라고는 고블린이랑 슬라임이 전부인데 갑자기 드레이크라니? 없던 호기심도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게 당연했다.
"도마뱀이랑 비슷한가요?"
"비늘과 갑각, 깃털을 가진 늑대와 도마뱀의 혼종이라 생각해라."
"헌터 드레이크는 비늘 대신 두꺼운 깃털이 몇 겹이나 자라나 있단다."
기사와 말을 마친 아이오나가 긴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목살에 파묻힌 묵주 목걸이에 잠시 눈을 감고 성호를 그은 그는 캐서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타니타스 공. 정식으로 임명되지 않아 무례란 건 알지만 부탁해도 되겠나?"
"호위 병력이 퍽 정예한데도 말인가?"
"난 우리 병사들과 기사, 전사들을 믿네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전력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로군."
캐서린은 승낙한다는 의미로 펼친 두루마리를 돌돌 말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마차에만 있기 찌뿌둥했는데 마침 잘 됐어. 꼬마야. 가자."
"네."
카렘도 캐서린을 따라서 새 찬 바람이 부는 마차 바깥으로 나왔다. 거부감은 없었던 것이 목숨의 위협보다 새로운 몬스터에 대한 호기심이 앞섰기 때문.
바늘이 가는데 실이 안 따라갈 수 있을까. 그 이전에 전속 시종이라 안 따라 나올 수도 없었다.
"하이폰 경?"
"조심! 몬스터가 가깝다!"
새하얀 가을꽃이 내려앉은 갈대가 부자연스럽게 흔들리기 시작.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하이폰 경이 경고했다.
마차 주변에 방패벽을 세운 병사들이 창을 앞세웠고, 병사들 뒤에 전사들이 사방을 경계했다.
준비를 단단히 끝내고 말과 스노우러너에 올라탄 기수와 기사들은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무기와 고삐를 고쳐잡았다.
크르르르르! 꺼헝!
개과 동물의 위협 소리가 끝난 직후, 공기 대포를 발사하는 굉음이 들리자마자 갈대밭에서 늑대 같은 형상의 몬스터 무리가 튀어나와 방진을 향해 돌진했다.
회색 깃털이 자라난 늑대 형상의 황소보다 큰 덩치의 공룡 같은 모습의 헌터 드레이크가 창에 꿰뚫리기 직전에 몬스터들은 제각기 껑충 뒤로 물러났다.
언제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짖어대다가 발작하듯이 튀어나왔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후퇴가 아니라 위협이었다. 무리 사냥을 한다더니.
카렘은 방진을 포위한 헌터 드레이크가 먹잇감들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저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야생 다큐에서 많이 봤던 광경. 다만 이번에 저들의 먹잇감으로 안내 행렬이 찍혔을 뿐.
크르르르르! 꺼헝! 컹! 컹!
다만, 놈들이 짖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덩치가 소보다도 더 큰 유사 공룡인데!
몇몇 전사들과 병사들도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에 카렘은 위안을 받았다.
나이를 떠나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후후후. 꼬마야. 두려운가?"
"으으, 전 무기라고는 단검밖에 들어본 적 없는 꼬마라고요. 오싹한 건 당연하죠."
하물며 카렘이 맹수를 직접 봤던 적은 학생 시절 방문했던 동물원이 전부. 그나마 봤던 두 종류의 몬스터들도 멀찍이서 봤던 것이 끝이었다.
그리고 이번 헌터 드레이크가 추가될 예정이었다.
"뭐, 그래도 기특하구나."
캐서린의 곁에서 수염을 쓰다듬던 아이오나가 카렘의 머리를 부스스 쓰다듬었다.
"마음이 심약하거나 처음 헌터 드레이크를 마주친 사람 중엔 몸에 힘이 풀려버리는 이들도 있는데 말이지."
"뭐, 틀린 말은 아니군. 꼬마가 또래들보다 조숙해서 그런가?"
"어쩌면 좋은 전사가 될지도 모르겠군. 카렘. 혹시-"
"내 전속 요리사 겸 시종을 빼갈 생각은 하지 말도록."
"흐흐흐. 농담일세 농담. 진담을 조금 가미했을 뿐."
그러는 사이에도 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간보기가 끝났는지 방진을 포위한 헌터 드레이크가 아니라 그 뒤의 가만히 있던 몸집이 1.5배는 더 큰 몬스터들. 헌터 드레이크가 여럿 튀어나왔다.
방진의 뒤에 있던 전사들이 단검, 투척용 도끼, 투창, 화살 등 제각기 맹렬하게 던져 기습을 무마했다.
카렘의 장래를 걸고 아이오나의 간 보기를 철벽 치던 캐서린은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정말 혹시나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제안을 받아 바깥에 나왔건만 캐서린이 나설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
"정신 안 차리나!?"
“옆으로 꺼지라고 좀!”
"기사 나가신다!"
방진에 1차, 전사들의 공격에 2차로 막혀 아주 잠시 헌터 드레이크 무리가 빈틈을 보이자마자 하이폰이 호통쳤다.
이를 신호로 병사와 전사들이 앞다투어 양옆으로 갈라지고 곧바로 하이폰을 선두로 기사와 기수들을 태운 말과 스노우러너가 잠시 위축된 헌터 드레이크를 휩쓸었다.
한순간 몬스터들의 진형이 무너지자 곧바로 전사들이 헌터 드레이크를 역으로 포위하기 시작.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병사들과 소수의 전사와 기사들만이 방진을 유지하고 있었다.
꺼흐어어어엉-!
갈대 너머에서 나지막하지만 놓칠 수 없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렘은 온몸의 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다만 이를 시작으로 아직 포위되지 않은 헌터 드레이크는 언제 공격했냐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했다.
포위되는 와중이었던 헌터 드레이크도 몸에 상처를 입어가며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후퇴하네요?"
"헌터 드레이크는 무리를 짓고 야생, 문명 가릴 것 없이 무리란 곧 힘이지. 이번 습격은 수지가 맞지 않아서 바로 포기한 걸 거다."
"이미 무리를 좀 잃었는데요?"
카렘은 방진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깨갱! 커헝!
"우왓!!! 발톱 조심해!?"
"방심하지 마! 씹히면 팔 날아간다!"
"방패 앞으로!"
사방으로 완전히 포위된, 미처 후퇴하지 못한 헌터 드레이크 세 마리는 당연히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공격하는 족족 방패에 가로막혔고 십 수 자루의 창에 제압당해, 기사와 전사들의 마무리 일격에 차례대로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었다.
"무리는 먹잇감만 있으면 불릴 수 있고, 지금 계절은 아직 가을이지. 다른 쉬운 먹이를 노리려는 걸 거다. 킹스랜드와 가까우니 그쪽으로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로군."
"어, 그런데 저걸 그대로 두고 가나요?"
"시간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니까."
전리품이라도 챙기려는 건가 싶었지만, 지금 병사와 전사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마차 호위. 토벌이 아니었을 뿐더러 갈 길이 바빴다.
병사와 전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으나, 하이폰 경을 비롯한 기사들이 호통을 치며 눈을 부라리자 어쩔 수 없이 몬스터의 시체를 길 양옆 갈대로 던지고 현장을 흙으로 덮었다.
피 냄새에 불청객이 이끌리기 전에 행렬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