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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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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원산지는 남미 대륙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불과 몇백 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사용하는 작물.

카렘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작물이었다.

아무렴 한국인이 어떻게 고추를 모를 수 있을까.

한국 음식 중에 고추가 들어간 음식보다 안 들어간 음식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인데.

그리고 지금 카렘의 눈앞에도 고추가 있었다.

형태와 이름이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그러니까. 아타니타스님."

"뭐냐."

"이 물건의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붉은 마녀의 손가락."

그래. 저 이름이라고 했지.

잠시 캐서린에게서 빌린 보호 장갑을 낀 카렘은 손안에 쥔 (무려 캐서린이 직접 가져온) 기이한 형태의 붉은 열매를 굴렸다.

붉은 껍질과 곧은 형태.

거기에 냄새는 딱 누가 뭐라고 해도 고추 그 자체였다.

조금 이국적인 매콤한 향이긴 했어도.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 있었다.

손가락이라는 이름답게 얼핏 보면 2초 정도 손가락으로 착각할 겉모습에 노인의 피부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독특한 형상.

카렘이 고추 ver.이세계를 신기한 듯이 굴리며 살피자 캐서린이 말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아이스랜드에서 몇 안 되게 잘 자라는 식물 중 하나지. 아니, 애초에 추운 지방에서나 자라는 독초라 당연하겠지만."

"고추-가 아니라.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독초라고요?"

"그래. 접촉하면 고통을 발생시키고 복용하면 독초가 품은 불의 마력에 걸맞게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지. 그 어떤 짐승, 몬스터나 벌레도 접근하지 않아."

"그거-"

카렘은 얼떨떨했다.

그야 특징만 들어보면 그야말로 한국인 대다수에게 마늘과 함께 빠트릴 수 없는 식재료 쓰리 톱(나머지 하난 간장)이었으니까.

게다가 만지면 화끈거리는 느낌-고통도 매우 익숙했다.

구체적으로는 김장철에 조부모님의 집에서 자주 느낀 반갑다 못해 그리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꺼림칙한 생김새.

거기에 불의 마력이라는 판타지-속성까지.

특수부대 출신 생존전문가가 말하기를 처음 보는 식물은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던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카렘은 결국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행동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반대쪽 맨손에 쥐고 있던 잘 마른 붉은 껍질 파편과 씨앗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씹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에 캐서린은 얼이 빠졌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카렘은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카렘이 환생하고 10년 세월.

연약하기 그지없는 혀에서 시작된 불타는 듯한 매우 익숙하기 그지없는 고통은 피부의 솜털을 곤두서게 할 정도로 신경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자극은 뇌까지 뻗어 나가 이윽고 카렘의 영혼을 울렸다.

모든, 아니 한국인 대다수가 버릴 수 없는 영혼을 울리는 맛.

품종이 달라 조금 맛과 맵기의 방향이 다르기는 했다.

그거야 세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고추였다. 그야말로 고추였다.

전속 요리사의 난데없는 이상 행동에 넋이 나가 있던 캐서린은 카렘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움직였다.

그야 당연했다.

독초라고 분명하게 말했는데 독초를 일부라지만 주둥이에 처넣고 있네?

정상인이면 잠시 머리가 쇼트되는 것이 당연했다.

"으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핳! 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아-!"

"...꼬마!? 정신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거냐!?"

"하하하-네? 아니 잠깐!?"

캐서린의 행동은 재빨랐다.

기쁜 나머지 장렬하게 웃던 카렘의 입에 마법으로 만든 얼음을 잔뜩 처넣으려 했다.

"선생님! 선생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다 네놈을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 얌전히 이거나 처먹거라!"

"정상적인 부모가 그렇게 행동해도 경기를 일으키겠는데요!?"

"그렇게 독초라고 말했거늘 그걸 곧이곧대로 처먹는 네놈은 정상이냔 말이냐!?"

"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타니타스님! 아타니타스님! 잠시만 제 말을-!"

쿠당탕탕! 아직 10살밖에 되지 않은 카렘의 몸은 캐서린에 의해 깔렸다.

충격에 화로 위에서 끓는 냄비가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제설을 끝마친 메리가 들어왔다.

"후, 향긋한 냄새....는 둘째치고."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설마 계약자가 성욕에 미쳐서 카렘 후배를 덮치려는 건가?

라고 메리는 잠깐, 아주 잠깐 의심했다.

그리고 캐서린의 손에 쥐어진 얼음과 서로 당혹스러움이 담긴 고성을 듣고는 빠르게 의심을 풀었다.

안도한 메리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상황은 진정되었다.

캐서린은 카렘의 입에 기어코 얼음을 쳐넣고 나서야 만족하며 떨어졌고.

마침 크림 스튜도 다 만들어졌으니 식사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캐서린은 메리가 내미는 스튜를 연신 받아먹으면서도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연신 카렘에게 경고했다.

"-말했지만. 뭔가 호기심이 든다고 무턱대고 입에 넣고 본다니. 꼬마야. 네놈이 무슨 애냐?"

"아타니타스님.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뭐냐."

"저 애 맞는데요."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가 아니네?

캐서린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당연한 사실을 자각했다.

누가 보더라도 입만 열지 않으면 카렘은 어딜 가나 보이는 꼬마에 불과했다.

캐서린은 잠깐 생각할 겸 크림 스튜를 받아먹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아니 갑자기여?"

"네놈이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게 굴어서 그런 게 아니냐!"

"아니 조숙한 건 오히려-"

"시끄럽다! 애초에 내 없었으면 죽지는 않아도 죽을 만큼의 고통에 시달려 바닥을 뒹굴었을 텐데!"

이를 시작으로 캐서린은 식사하는 내내 부주의한 전속 요리사를 훈계했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던 카렘도 파악하자 얌전히 캐서린의 주의를 받았다.

독초라고 경고했던 물질을 무분별한 호기심 때문에 복용.

어찌 되었든 요점만 따지고 들어가면 위험 물질을 무턱대고 복용한 장본인의 잘못이었고 카렘도 이를 잘 알았다.

드디어 반성하는 기미가 보여 캐서린은 훈계를 끝내고 드디어 온전히 점심을 즐길 수 있었다.

"휴, 드디어 끝났네."

"뭐라? 방금 뭔가 난 불만이 아직 가득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로."

카렘은 아주 잠깐 진땀을 빼고 스튜를 먹었다.

크림을 듬뿍 넣은 고소한 맛을 느낄 새는 없었다.

그의 관심은 모두 보호장갑을 낀 손에 쥐어진 붉은 마녀의 손가락에 쏠려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고추가 손에 들어왔다.

캐서린의 말과 이전에 플라워 오브에 재료로 썼다는 말은 가격의 여부는 뒤로하고 어쨌든 손에 넣을 방도가 있다는 뜻.

카렘은 절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야 당연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간장, 된장, 고추장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고추장의 원료가 되는 고추가 손에 들어왔다.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여운에 잠겨있을 때, 카렘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치고 지나갔다.

'잠깐, 메주는 어떻게 하지?'

고추장의 재료는 이것저것 다 칼질하면 결국 간단했다.

고춧가루, 메주, 소금, 물엿.

물엿은 결국 설탕으로 시럽을 만들면 대체한다고 쳐도.

'만들어 본 적은 없어도 삶은 대두콩에 볏짚을 쓴다던가? 무슨 특정한 균 때문인 걸로 아는데. 여기서 볏짚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밀짚으로 대체가 되려나? 아니, 그 전에 콩은 어쩌냐.'

어쨌거나 희망은 있었다.

고추장이 없다고 해도 그동안 대체재는 있으니까.

고추를 말려서 갈면 고춧가루.

갈아서 식초, 물을 넣고 발효시키면 핫소스.

품종과 재료는 달리해야겠지만 피클처럼 절이면 할라피뇨 피클.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이 셋이 전부.

하지만 생각해보면 계속해서 떠오를 것은 분명했다.

"카렘 후배. 배가 고프면 더 퍼다 먹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응. 네?"

"빈 그릇에 바닥은 왜 긁고 있습니까?"

"아, 아뇨.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었어요. 아니, 쓸데는 많겠지만."

카렘은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이것저것 다 따져 봤을 때 결론은 캐서린을 어떻게서든 설득을 해야 했다.

지금도 그녀는 카렘이 보호 장갑을 꼈다지만 붉은 열매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보고 있었으니까.

저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장애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카렘이 고민하는 동안 메리는 마지막으로 크림 스튜의 건더기를 캐서린에게 먹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렘 후배. 결론은 지금 당장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겁니까?"

"어, 네. 중간에 장애물이 있어서 당장은..."

"그럼 헛생각은 그만하고 제가 정리하는 동안 창고에 넣어둔 그 배럴이나 가져오는 게 어떻습니까?"

"그 통? 아."

식료품 창고에서 어쩌다가 받은 단단히 밀봉된 나무 배럴.

당연히 현장에 없던 캐서린은 난데없는 따돌림에 고개를 기울였다.

"배럴? 무슨 배럴을 말하는 거지? 술이라도 받았나?"

"내용물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식료품 창고에 갔다 올 때 어쩌다가 받았거든요."

"배럴을?"

"네"

캐서린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현실적인 외모의 의문을 가득 피운 미소녀가 그러고 있었으니 카렘이 봤더라면 또다시 심장에 안 좋다며 반야심경의 첫 구절을 마음속으로 읊조렸겠지만.

다행히 카렘이 배럴을 들고 들어왔고.

때마침 메리의 뒷정리가 끝나 캐서린의 행동도 끝이 났다.

"자, 이게 그 통입니다."

"흠? 생각보다도 더 작구나?"

"일단 안에는 액체가 들은 것 같습니다."

"흐음...가죽 마개도 아니고 비싼 코르크? 그것도 밀랍을 먹였군. 거기에 쇠와 나무의 이음새를 모조리 밀랍으로 뒤덮었군."

캐서린은 갸웃거렸던 머리 그대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1년에 몇 병만 나온다는 와인도 이렇게까지 봉인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귀중한 포션은 비싸다지만 최하급품조차 이런 식으로 공을 들인다면 그냥 원래대로 보통 유리 용기에 보관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힐 정도였다.

통을 가볍게 두드린 캐서린이 말했다.

"좋아. 그럼 일단 뜯어볼까."

"네? 지금 바로요?"

"그야 당연하지. 기다릴 이유가 없는데. 메리."

캐서린이 손가락을 튕기자 메리가 곧바로 배럴의 마개로 붙잡았다.

엄지, 검지, 중지에 힘을 실은 브라우니는 그대로 손가락을 비틀었다.

끼기기긱- 뽕!

밀폐된 봉인이 풀리는 경쾌한 소리.

충격적인 비린내가 주방을 압도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가장 가까이서 냄새를 맡은 메리는 비명과 함께 그대로 침묵.

그 진동으로 배럴이 흔들려 통 속의 물이 찰랑거리는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비록 구멍은 작았지만, 바다의 한 구역을 통째로 압축한 비린내.

그 강렬하다 못해 뇌간을 후려치는 냄새

"우웁!? 이, 이 충격적인 냄새는-! 미친 가룸(Garum)이 왜 여기에!?"

잠깐 헛구역질한 캐서린은 경험이 있는지 금세 회복하고는 마법으로 코를 보호하며 경악에 차 소리쳤다.

그리고 카렘.

환생한 그의 몸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충격적인 비린내에 신경이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전혀 달랐다.

그의 영혼은 다시 한번 전율하고 있었다.

그 울림이 전달하는 의미에 카렘은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익숙하기 그지없는 발효시킨 생선 비린내.

그리고 캐서린의 말이 쐐기를 박았다.

가룸? 그거 액젓 아니야? 그렇다면...

고추, 액젓, 마늘.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식탁에 빠지지 않는 필수품.

그때, 카렘의 머리를 전생의 기억이 강타했다.

이거 배추김치는 몰라도 깍두기 정도는 만들 수 있겠는데?

"꼬, 꼬마! 멍하니 서서 뭐하냐!? 얼른 저 망할 구멍을 막아!"

"...아뇨!"

"뭐, 뭐라!?"

"전 이 냄새를 좀만 더 즐기려고 합니다."

"너 내가 아까 주둥이에 얼음을 쳐넣은 것에 복수하려는 것이겠지!!!???"

솔직히 카렘은 그런 마음이 없진 않았다.

조금. 아주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