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4 KiB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어깨까지 오는 빛바랜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세월의 흔적은 노인의 나이를 짐작게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앞으로 죽을 날 만을 기다리는 노인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그도 그럴게, 덩치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자이언트 처칠 경보다 머리 하나는 더 거대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노인의 이름은 리처드 펠윈터.
수십 년간 아이스랜드 최강으로 군림하는 남자.
전대 아이스랜드 공작이자 현 공작을 대리해 휘하의 모든 기사를 부리는 대기사장.
전성기가 지난 지 한참인데도 여전히 최강으로 군림하는 노인은 후배들을 위해 정점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은 아직 없었다.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살아있는 인간 흉기 리처드 펠윈터에게도 두려운 것은 있다.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했다.
퍼걱!
하지만, 그게 뼈와 내장을 훤히 드러낸 매머드와 아룡종 몬스터 몇 종류에 고작 인간형 몬스터의 언데드 군집으로 이뤄진 특공대 무리는 결코 아니다.
"바스톤! 바스톤! 이 죽다 만 야만적인 뚱보 늙은이는 어딨는 거야!"
드래곤의 머리를 뚝 때어다 손잡이를 붙인 것 같은 해머가 작렬.
매머드의 머리를 박살 내며 착지한 리처드는 곧이어 아가리를 들이미는 말라 비틀어진 드레이크의 목을 맨손으로 뽑아 짓밟으며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언데드 군단 준동.
시전자로 보이는 거대한 골렘 비스무리한 거인과 수상한 그리즐리 비버와 그 군락을 보고받고 언데드 군대를 확인하자마자 리처드는 곧바로 원정대의 긴급 후퇴를 명령.
원정대는 게 눈 감추듯이 야영지를 폐기.
망설임 없이 모든 전리품을 내던지고 일사불란하게 후퇴했다.
갑작스러운 후퇴는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듯했다.
돌연 언데드 무리가 원정대의 옆구리를 들이치기 전까지는.
아이스랜드의 최고 전력이라도 기습은 어쩔 수 없다.
하물며 그게 전혀 예상치 못한 데다 기척도 없이 이뤄졌다면.
하지만 그들은 문명의 최전방을 지키는 수호자들.
최소 수년, 최대 수십 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예 중의 정예.
혼란은 짧았다.
지휘관의 명령 없이 자체적으로 상황을 빠르게 파악.
진형이 붕괴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했다.
"투타티스의 힘으로!"
"왼쪽! 왼쪽!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미친 돌덩어리야!!"
"거창! 지금이다! 벽 내려! 기사들! 출격!"
"형제들이여! 치마가 흩날리는 걸 모르게 싸워라!"
난전에 돌입.
파고든 언데드 무리를 역으로 포위 섬멸하기 시작했다.
"바스톤! 이 뚱보가 대체-"
펑! 하반신이 박살 난 아이스 트롤이 팔 힘만으로 리처드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니, 날아들었다.
지성은커녕 본능조차 사라진 언데드의 공격은 살기가 없다.
덩치가 큰 탓에 발생하는 소음도 주변 난전에 묻힌 상황.
"흡!"
하지만 리처드에겐 별 소용이 없었다.
언데드 아이스 트롤이 팔에 힘을 주는 순간부터 리처드의 해머는 아이스 트롤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어딜!"
그리고 한발 빠르게 날아온 파성추 끄트머리에 격추당했다.
해머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굳은 리처드는 그대로 아이스 트롤의 냄새나는 파편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역정을 냈다.
"이 멍청한 뚱보 영감탱이가! 수염 더러워지잖아!"
"어미를 찾는 새끼곰처럼 날 애타게 부르다 한눈판 주군 새끼의 목소리가 너무 큰 거 같은데?"
"네놈 때문이잖아!!!"
리처드는 해머를 거꾸로 쥐고 땅을 마구 내려찍었다. 오체분시 되어 굴러오던 오우거의 썩은 해골이 얼어붙은 바닥과 함께 박살 났다.
"상황을 진정시켜야 할 친위대장이 뭐? 매머드 대가리? 네놈 대가리를 박살 내줄까!?"
뱃살이 튀어나온 건장한 체구의 근육질 대머리 노인. 뱅가드 부족의 부족장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변경백의 친위대장이자 친우.
바스톤이 무릎까지 오는 체크무늬 치마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아, 주먹 놈들이 어쨌든 알아서들 잘 하고 있는데 뭘. 떼쟁이 새끼."
"뭐? 떼쟁이? 이 시건방진 비만 대머리 오크가...!"
바스톤이 사다리꼴 콧수염을 들썩이며 투덜거릴 때마다 하얗게 멀어버린 오른쪽 눈이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익! 빌어먹을, 후우우우우우."
욱하던 리처드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마에 올라온 핏줄을 꾹꾹 누르고는 얼굴 앞의 허공을 쥐어 당기듯이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나는 착한 할아버지다. 나는 착한 할아버지다.
"우리 귀염둥이 새끼 곰이랑 성질 안 부리기로 약속했지."
"허, 약속은 또 잘 지키네. 한 반년이면 때려치울 줄 알았는데."
"후, 마음의 평화. 마음의 평화."
그야 당연하다.
세상 어느 할아버지가 손주한테 미움받고 싶을까.
하물며 믿음직스럽지만, 귀염성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아들내미가 가꾼 남자밭 사이에서 기적같이 나온 며느리를 닮은 귀염둥이 막내 손녀.
아이스랜드 최강자 리처드도 귀염둥이 막내 손녀는 귀여워하고 어쩔 줄 모르는 동네 할아버지에 불과했다.
'일개' 취급하기엔 아주 높으시고 강하지만 하여튼.
"시끄럽고. 상황은?"
"보면 모르시오? 피해는 경미. 고참들은 모두 멀쩡해."
"이거로 엄살 부리면 대기근 때 다 죽었겠지."
"아, 긁힌 놈들이 몇몇 있긴 한데."
"침 바르고 성수 들이키게 해. 사기(死氣)는 어떻게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야."
리처드는 손을 휘휘 저으며 쓸데없이 자존심은 둘째치고 쓸데없이 마초상남자적인 부하들의 성질을 경계했다.
"그나저나 이쯤 왔으면 슬슬 요새 쪽에서 반응이 와야 할 텐데..."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전투원은 개개인이 모두 최정예.
그리고 그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것이 산맥 너머의 원정대.
그렇기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됐다.
여긴 산맥 너머다.
그 증거로 원정대에서 소수라지만 피해가 발생했다.
본래라면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기습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후퇴한 지 며칠이나 지났지?"
"밤새도록 사흘은 일직선으로 주파했지."
"그런데도 요새의 지원이 안 보인다고?"
"뭔가 일이 벌어진 거 아닌가?"
"요새에서 일이 터진 거랑 별개로 대기 병력은 있을 텐데?"
리처드는 심란했다. 그간 아무리 많고 많은 요절복통 대사건을 겪었다고 해도 본거지에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니. 걱정될 수밖에 없다.
"...아, 맞다."
콧수염 밑을 벅벅 긁던 바스톤은 손가락을 튕기며 치마 안쪽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작은 오브를 꺼내 들었다.
"짜자잔."
반투명한데도 속에 반짝이는 불똥이 떠다니는 구슬.
신호를 보내기 위해 특별히 개조된 플라워 오브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지금 환각 마법을 처맞았나?"
"완전히 무장한 네놈한테 그게 통하기는 하고?"
"...그러면 이게 왜 지금 멀쩡히 있는 건데?"
"그야 내가 깜빡했으니까."
앞서 말했듯 결코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하지만 리처드는 맥이 턱하고 빠졌다.
무심코 손으로 눈가를 덮은 리처드는 바스톤의 매끈한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짜악!
"이...! 노망났냐!? 잊어도 하필 신호 보내는 걸 잊어!?"
"아 씨 좀! 지금 터트리면 되지 뭘."
"지랄. 이제 눈보라가 불 텐데 터트려봤자 보이긴 하겠냐! 진작에 터트렸어야지!!!"
"거 참 알았다고! 잘못했다니까!"
변경백과 그 친위대장인 부족장의 대화라기엔 격식이 없다 못해 무례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원정대는 익숙하다는 듯이 언데드를 마저 정리하며 동료들을 살폈다.
상남자 특. 상사들이 싸우든 말든 알 바 아님.
그렇지만 바스톤과 같은 치마를 입은 전사가 다가왔다.
"두목님! 족장님! 그만 좀 싸우십시오. 상황 다 끝났습니다."
어느새 서로의 수염을 붙잡고 잡아당기며 서로를 째려보던 두 나잇값 못하는 근육질 노인네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놓았다.
"어휴, 아들아. 내가 이러고 산다. 늙으면 죽어야지. 어휴."
"그러면 그냥 콜던에 처박혀있지 그러셨어."
"아 그건 절대 안 되지."
리처드는 정색했다.
"내가 왜 공작을 유기하고 도망쳤는데."
"...이런 자식이 대체 어떻게 공작 작위를 하고 귀족행세를 한 거지?"
"그야 마누라가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그 순간 리처드는 덩치에 맞지 않게 쭈그러들어 탄식하는 목소리로 훌쩍였다.
"크흐으으응! 아아아, 로제타. 내 설원에 핀 한 송이의 장미. 어째서 이 늙은이를 두고 먼저 가버렸소! 내 사랑!"
"거 되지도 않는 로망스는 그만 중얼...개뿔이."
그러는 사이 바스톤이 원정대에 현장과 전리품을 유기하고 정비할 것을 우선하도록 명령했다.
원정대에 반발이 있을 법도 한 명령.
하지만 반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선 전리품 폐기에 의문을 가졌던 이들도 지금은 이해했다.
정확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긴급 상황.
대신에 부상을 처치하고 멀쩡한 무기를 회수.
소수 발생한 사상자들 또한 적절히 처리한 원정대는 곧바로 후퇴를 위해 재집결했다.
"후, 리처드. 형수가 그쪽 꼴 보고 유골함에서 뛰쳐나오기 전에 그만 울지?"
"킁. 그러면 안 되지. 로제타는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지."
눈을 퍼다가 얼굴에 바르며 진정하던 리처드는 비교적 가벼운 차림새의 스노우엘프 궁수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려 하자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공작 각하. 복귀를 보고드립니다."
"음, 수고 많았다. 그래서 후방의 상황은 어떻지?"
"똑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군세를 늘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리처드는 이마를 찌푸렸다.
"추적하는 게 아니라, 수를 불리면서 다가온다고?"
"예. 따라서 원정대와의 거리는 점차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벼운 견제로군. 수고했다. 부대로 합류하도록."
리처드가 스노우엘프를 가볍게 치하하고 물리는 모습을 보던 바스톤은 인상을 사납게 찌푸렸다.
"수천 마리의 언데드에 상급이 일부 있어도 대다수는 하급이잖아. 아무리 수를 불리더라도 공략은 못 하알...텐....데?"
그리고 고개를 획 돌리자 리처드와 눈을 마주쳤다.
리처드의 눈에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 요새와 시가지에 남은 사제가 몇이지?"
애프터 글로우 요새의 사제 대부분은 그들 곁에 있었다.
시가지에서 징발, 고용한 사제들은 하이랜드 쪽의 원정대로.
바스톤은 반사적으로 매끈한 두피를 스스로 후려쳤다.
"무슨 농간인지는 몰라도, 내부자가 있겠군!"
"그게 배신자인지, 침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보라가 다가오는 가운데 리처드는 명령했다.
원정대는 후퇴 속도를 더 높였다.
"...성수라고요?"
"그래."
카렘도 성수가 뭔지는 알았다.
사제의 축성 의식을 거치거나 강력한 성물을 빠트려 만드는 소금물.
등급에 따라 강약이 있다지만 그 효과는 각종 오염과 저주를 정화 및 해주. 뱀파이어, 언데드, 마족 등을 포함한 일부 몬스터와 마족 퇴치의 특효약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대체 왜 난데없이 그 신성하기 짝이 없는 무색투명한 액체가 나온다는 말인가? 누가 그걸 축성한 것도 아닐 텐-
'잠시만.'
성수를 만드는 방법은?
소금물에 사제의 축성 의식을 거치거나 강력한 성물, 성유물을 빠트리는 것.
그 공통점이란 바로 신성력.
그리고 카렘은 메주에 성공작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를 올렸으며 언제, 어디서나 스카디의 성물을 지참하고 다녔다.
...신의 도움(웃음)이 신의 도움(眞)이었다고...?
다채롭게 변하는 카렘의 표정을 본 캐서린 또한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는지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대체 뭘 어떻게 기도를 올렸길래-아니, 지금은 일단 넘어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
이 건은 일단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 캐서린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로완이었던 것의 흔적을 보았다.
"황당하지만, 이 스튜가...성수? 이고 성수에 이렇게 녹아내렸다는 말은 건-"
"뱀파이어, 언데드, 마족 등등의 몬스터이지요."
캐서린의 말을 이어받은 월레스의 눈이 고든의 말을 듣자 영역을 침범당한 늙은 독수리처럼 노련하고 날카로워졌다.
"...설마 로완이."
"내통자였나 봅니다?"
"돌아오실 각하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뭐, 이렇게 되면 책임을 묻는 것보다 이걸 누가, 어떻게, 왜 저질렀는지가 더 중요하긴 하지요."
고든은 로완의 사제복과 물품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캐서린은 곧바로 손가락을 튕겨 시선을 모았다.
"그러면 이 로완이라는 불명자의 일터로 안내하도록."
"물론입니다. 그의 일터는 숙소를 겸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현장의 경계 태세를 두 배로 늘리고 나서야 월레스는 몇몇 병사와 기사들을 이끌고 일행을 로완의 일터이자 숙소인 약초방으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