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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카렘은 쇼핑, 패션과는 그다지 연관이 없었다.
옷은 그저 옷장에서 집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입었다.
얼마 없던 친구들은 볼 때마다 패션테러리스트라고 놀렸지만, 사실 친구들도 패션테러리스트인 것은 마찬가지.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귀찮았으니까 옷장에서 위에서부터 손에 집히는 대로 입었을 뿐이다.
하다못해 연인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초등학교 이후 남중, 남고, 컴공과를 거쳤는데 여자랑 연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컴퓨터를 통해 화면 너머로 게임 캐릭터와 목소리를 통해서 친분이 생긴 지인 한, 두 명 혹은 회사에서 업무상으로 말을 섞었던 직장 동료들 한, 둘이 전부.
그 외에 가까운 여자라고 해봐야 뻔했다.
부모님의 친구 혹은 지인이 끝.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외출은 꺼리는.
그런 건조한 집안 분위기.
전생의 카렘은 히키코모리가 아니었다.
그저 외출보다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더 좋았을 뿐인, 차라리 따지자면 게을러빠졌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이는 카렘의 부모님 또한 같았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문자 의미 그대로의 자의적 집돌이가 되어버렸던 카렘은 앞서 말했듯 당연하게도 연인과는 도통 연이 없었다.
물론 이는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미연시는 몇 번 찍먹했지만, 도통 취향이 아니었다.
스토리가 좋다면 소설 읽는 기분으로 즐기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농노 카렘으로 환생한 지 어언 11년.
카렘은 왠지 모르겠지만 여자친구의 쇼핑에 끌려간 남친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흠, 성능은 나쁘진 않군. 하지만 단일 속성 방어에 순간 출력. 무엇보다 디자인이 별로인데."
탈락. 캐서린은 이리저리 살펴보던 팔찌를 그리 말하며 테이블에 내던졌다. 조금 전까지 카렘의 손목에 차여져 있던 마도구였다.
팔찌는 그렇게 다양한 팔찌와 목걸이가 모여진 그 옆.
탈락 물품들 무더기의 가장 정상에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무더기는 쌓일 예정이었다.
"어디 보자. 앞으로 한 절반 정도 남았구나."
"아타니타스님. 일단 성능만 보면 되지 않을까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꼬마. 네가 아직도 킹스랜드 촌구석의 핍박받는 10살짜리 농노라고 생각하냐?"
캐서린은 눈을 감고 꾹꾹 누르며 피로감에 뻐근해진 눈을 풀었다. 마도구를 판별하느라 한참 눈을 깜빡이지 않아 눈이 메말랐기 때문이었다.
"네가 추레한 몰골로 다니면 누가 욕을 먹을 것 같냐."
"그야 주인인 아타니타스님이시겠죠?"
"그걸 아는 놈이 그런 말을 해?"
"하지만, 제 옷은 메리가 다 챙겨줬는데요."
"그걸 아는 놈이 처음에 그딴 조합으로 옷을 입어?"
이번에야말로 캐서린은 눈에서 손을 떼고 질린 얼굴로 반문했다.
"난 설마 그 무난하다는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그렇게 끔찍한 조합으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음, 확실히 메리가 티타니아 타령을 하더라고요."
"투타티스 맙소사."
캐서린은 이 머리가 해피한 종자의 패션 상태를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 지는 않았다. 하기사 쟤 농노 출신이었지. 농노 출신이라면 뭔가 이해가 갈 법도 한데.
물론 카렘이 전생부터 그 꼴이었단 걸 알면 무슨 영혼에 저주라도 걸렸냐며 기함을 토해내겠지만, 카렘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러면, 그 마도구를 선별하시는 것도 그런 일환입니까?"
"그래. 성능이 어지간히 좋은 게 아닌 이상. 디자인이 구리거나 유행이 한참 지났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야깃거리니까."
"으음. 확실히."
아무리 살펴봐도 도통 모르겠다!
카렘은 아무리 살펴봐도 디자인이 구리다며 빼놓은 마도구와 선별한 마도구의 외형적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카렘의 눈에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현대의 휘황찬란하고 멋들어진 쥬얼리와 장신구에 비하면 어느 쪽이나 구려 보였다.
그나마 디자인이 좀 괜찮은 것들도 있긴 한데 어느 건 선별했고 어느 건 탈락이라니.
"포기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네요."
"음, 그래. 빠른 포기는 중요하지."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영 감이 안 잡히는데요."
"그래서 내가 친히 이렇게 봐주고 있는 거 아니냐."
"...그런데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서 있어야 하나요?"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캐서린은 테이블의 한쪽에 놓인, 처음보다는 덜하지만, 아직 빵빵한 가죽 주머니를 툭툭 두드렸다.
"아직 한참 남았다."
카렘은 급격하게 피곤함이 몰려왔다.
물론 그가 한 일은 별거 없었다.
그냥 마도구를 차고 교환하며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것이 전부.
하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그러면 적어도 조금 쉬었다가 하죠. 힘들어 죽겠네."
카렘은 캐서린의 말을 듣지도 않고 의자에 늘어져라 앉았다.
캐서린은 요놈 봐라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으음. 의자가 편안하네요."
카렘은 빈말이 아니었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검은 나무 의자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 카렘이 그 위에 앉자마자 착하고 푹신하게 받쳐주는 것만 같았다.
설마 이 의자도 마도구인 건 아닐까 싶었을 정도.
허튼 생각이 아닌 게, 캐서린은 비록 한 자리에 오랫동안 못 앉아있는 성격이라고 해도 결국 하루 중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 책상 앞에서 보냈다.
그리고 책상 죽돌이에겐 무엇보다도 편안한 의자가 중요한 법.
그가 앉은 의자는 그만큼이나 착석감이 좋았다.
몸이 편해지자 카렘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잊어버린 거 같은데. 아니 진짜로.
'그런데 그사이에 뭘 잊어버릴 게 있나?'
생각해보면 있기는 있지만, 이미 조치는 취했다.
메주는 구석진 방의 지푸라기 더미에서 숙성 중.
완성된 간장은 냉장실로 된장은 카렘이 비밀리에 숨겨뒀고.
고추장은 아직 만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찜찜한 기분은 대체 뭘까.
"꼬마. 얼굴이 죽상이로군."
"씁. 뭐 까먹은 게 있는 것 같아서-아!"
"음?"
갑작스러운 단말마에 캐서린이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카렘의 정신은 거기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카렘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캐서린의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
하지만 그 전에 카렘이 할 일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캐서린의 간식.
맙소사
지금 시간은 간식 시간.
한창 캐서린이 간식을 먹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똑똑똑.
카렘이 다급하게 뭘 행동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메리는 다른 손에 카렘이 보기에도 익숙한 불규칙하게 동글동글한 빵 비스무리한 것들이 잔뜩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다.
아니, 일단 저것도 신경 쓰이기는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후후후후."
"...아까 나가는 모습이 과하게 자연스러웠는데. 설마."
"카렘 후배가 생각하는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아직도? 진작에 포기한 줄 알았는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나 탈취 시도를 저지했건만.
설마 아침의 시도를 차단하고 방심한 틈을 타서 이렇게 보란 듯이 성공시키다니.
메리는 카렘의 심정을 눈치챈 듯 어림도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기나긴 모멸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그래 봤자 이제 곧 1년인데요."
"시끄럽습니다. 카렘 후배. 집요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요정의 일을 빼앗았다는 참을 수 없는 모욕! 제가 그간 심혈을 기울인 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계약자. 이게 집요정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십니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가져온 간식이나 얼른 내와라."
캐서린에겐 그 모든 광경이 하찮기 그지없었다.
"알겠습니다."
힝. 작은 항의의 소리.
하지만 메리는 캐서린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다.
메리의 걸작이 든 그릇은 곧바로 테이블의 빈자리에 놓였다.
카렘은 드디어 내용물을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불규칙하고 툭 튀어나온 성인 주먹보다 조금 작은 빵.
그런 빵이 그릇 위에 원뿔 모양으로 쌓여 있었다.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속에서부터 터져 나온 모양새였지만,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원형이었다.
조금 색이 짙은 부분이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연한 베이지색을 띄고 있어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무엇보다 어렴풋한 원형의 바삭한 외피를 뚫고 어렴풋하게 보이는 하얀 구름 같은 휘핑크림.
눈에 보이는 그 모든 특징을 하나로 합친 디저트는 카렘에게 매우 익숙하다 못해 친근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슈크림.
아니, 페이스트리도 있고, 휘핑크림도 퍼트리긴 했지만. 설마 이걸 혼자서 개발한 건가? 집요정의 제과제빵에 대한 집착은 괴물인가!?
카렘의 그런 반응이 즐거운 듯 메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춤에 손을 얹고 보라는 듯이 힘차게 가슴을 폈다.
"이건 또 독특한 외형이로군. 이름은 지었나?"
"미리 생각해뒀습니다. 크림퍼프(CreamPuff)."
"뭐랄까. 푹신푹신할 것 같은 이름이구나. 속에 휘핑크림을 채워 넣은 건가?"
"예. 기대하셔도 좋을 거라 장담합니다."
크림을 넣은 퍼프 페이스트리.
줄여서 크림퍼프.
카렘에겐 원래의 이름보다는 프랑스식 이름의 변형인 슈크림이 더 익숙했다.
전생에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던 디저트가 카렘의 지식을 접한 메리의 연구 끝에 드디어 에우로파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렘은 도저히 시선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전속 요리사의 기대감의 비중이 높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본 캐서린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상당히 관심을 보이는구나. 양을 생각하면 나 말고도 너나 쟤의 몫도 같이 나온 것 같은데. 어디, 먼저 먹어볼 테냐?"
"네,니요. 흠흠."
"나는 상관없는데?"
"아무리 그래도 윗사람이 계시는데. 제가 먼저 먹을 수는 없죠."
카렘은 솔직히 말해서 캐서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양심이 있지.
기본적으로 이건 캐서린이 먹을 간식이었다.
하물며, 캐서린에게 마도구걸이 취급당하느라 정신이 팔렸다고 해도 본래는 카렘이 준비했어야 할 일.
무표정이지만 캐서린 뒤에 서서 승리의 눈빛을 보내는 메리가 짜증 나기는 하지만, 이건 카렘이 먼저 먹으면 안 되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야. 그런데 크기가 생각보다 어중간한데."
"계약자. 첫입은 우선 통째로 한입에 먹는 것을 추천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쪽으로 가져와라."
캐서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메리는 언제 승리감을 만끽했냐는 듯 곧바로 감정을 컨트롤하고 그녀의 뒤에서 옆으로 자리를 바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슈크림을 포크로 찍었다.
부스럭-
캐서린의 생각과는 다른 소리였다.
겉은 아직 바삭했지만, 속은 완전히 달랐다.
휘핑크림의 수분을 머금어 외피를 부수고 들어간 포크는 처음과는 달리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호. 생각보다 부드러운 소리잖냐."
"바삭함과 부드러움. 두 가지를 겸비한 페이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반죽과 버터, 우유가 희생되었는지. 차마 눈물이 앞을-"
"가리기는 무슨. 실패작은 네놈이 전부 다 먹었을 게 뻔한데?"
"실패작이긴 했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은 캐서린은 조금 망설이다 입을 벌렸다.
자료첨부
-슈크림(CreamPu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