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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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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 사또가 된 뒤로 세종대왕님이 황희, 조말생처럼 부패한 재상들을 왜 종신 파딱형으로 죗값을 치르게 했는지 이해가 간다.

아전들이 뇌물 퍼먹은 거를 눈감아주면서, 앞으로 일하는 거 봐서 살려줄지 말지를 결정하겠다 선언했더니.

아주 물 만난 고기들처럼 아전들이 펄떡거리며 일을 해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이해가 된다.

"아이고 호방 나리 그만두십시오. 이런 물건 나르는 건 저희들이 하겠습니다요."

"너희들 물건 나르는 걸 보니 속이 터질 거 같아서 말이야. 내가 젊었을 때는 어? 쌀을 한 번에 두 가마니를 지고도 날아다녔다고!"

군 사무소 국장, 기업으로 회사로 치면 상무 정도 되는 호방이 짐 나르는 허드렛일을 직접 나서서 하다니. 이 얼마나 보기 드물고 귀한 광경이야.

내가 딱히 저 녀석들에게 그렇게 하라 시킨 것도 아닌데 알아서 열심히 굴러다니고 있다.

아니지, 자신들이 일하는 게 나의 마음에 안 차기라도 하면 언제고 왕에게 마음의 편지를 찌를 테니. 나에게 살려달라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는 거다. 눈물 어린 똥꼬 쇼다.

저놈들 뒤에 '제가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어떤 개그맨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데.

그러게 누가 땡중들이랑 손잡고 거하게 해쳐 먹으래?

미꾸라지가 날뛰면 꼴뚜기도 날뛴다고, 호방에게 갈굼 당한 군교(하급 장교)가 밑에 병사를 윽박질렀다.

"오늘 할당된 양만큼 일을 다 못하면 나도 죽고, 네놈들도 죽는다! 군법이니, 법이니 하는 것보다 내 주먹이 더 가깝다는 거 잊지 마!"

"예, 군교 나리!"

"내가 요새 말로만 하니까 우스워 보이는 게냐? 그게 아니면, 죽어라 뛰어! 발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뛰라고! 야, 장복아! 그거 거기다가 놓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귓구멍으로 들은 게 아니라 발가락으로 들었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역 끝나?! 당장 저기로 옮겨!"

사실 내가 이번 일 시작하기 전에 이방, 호방을 갈군 건 정말 없다. 마음에 안 들면 장계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뿐이지.

그런데 밑으로 갈수록 너무 사람을 갈구는 거 같은데... 좀 적당적당히 하라고 말해야 하나.

그리고 아전들이야 떼어먹은 게 많은 유죄 인간이라 해도, 죽어라 갈굼 당하면서 힘든 일을 계속하는 병사와 노비들은 뭔 죄가 있어?

높으신 분들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일했을 뿐인데 말이다.

나도 군대에서 2년 동안 뭐 빠지게 굴러봤기에 저들의 아픔과 슬픔을 안다. 이제 슬슬 말리면서, 사또의 자비를 내려 막걸리에 맛있는 거 좀 먹게 해줘야지.

"사또, 사또..."

김 이방이 나를 부르며 급히 뛰어 들어왔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지금 우리 고을은 어디를 가도 사또 천세 소리가 나오는 분위기이고, 백성들은 공납이라는 커다란 부담이 줄어들었기에 꽤 먹고 살만해졌을텐데...

"사또, 사또! 드디어 시장 관련된 제도를 다 정비해 왔습니다!"

이방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아주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눈도 아주 새빨갛게 충혈이 된 걸 보니, 잠을 며칠 동안 아예 못 잤나 보다.

여기는 형광등이 없는 시대라서 촛불에 의지해 서류 작업을 했어야 했을테니... 눈이 멀쩡할 수가 없다.

그러게 생계형 비리를 저질렀어도 작작 했어야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죽어라 굴려져도 할 말이 없는 법이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대학원생을 굴려 먹는 악마 같은 교수들도 기립박수 칠만큼 노예(재상)를 끔찍하게 부려먹는 세종대왕님에게 트집 안 잡히려고 '법'에 걸릴만한 나쁜 짓은 하나도 안 하고 있잖아. 가엽고 딱하지도 않은 놈.

"고생 많았네. 구체적으로 말해보게나."

"예, 사또. 우선 시장에서 장사하려는 상인들에게는 매달 장세(자릿값)로 쌀 두 되, 백성들에게는 쌀 두 홉을 받으려 합니다. 그리고 사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장세를 내지 않은 이가 장사를 하면, 그가 팔고 있는 물건을 전부 몰수하고 쫓아낼 생각입니다."

"...... 몰수라, 좀 심한 거 아닌가?"

"그 정도는 해야 장터에 도적이 가난한 척, 자기 정체를 숨기고 기어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 없을 겁니다. 장세를 내는 자라면 도적이라고는 해도 관아 무서운 줄 아는 자 일테니까요."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 보부상들이 주막에서 하루, 이틀, 사흘씩 죽치고 기다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사람들이 무슨 게으름뱅이라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산길에는 실제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데. 거대한 호랑이, 표범, 곰, 늑대 같은 짐승도 있고,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산적으로 전향한 이들도 꽤 많고.

산적이라 해서 훔친 물건만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으니 장터가 서면 훔친 물건을 내다 판다.

그걸 다 구분해서 처리한다는 건 조선의 행정력을 총동원해도 무리니... 저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있네."

"예, 사또."

"장터에서 난전(돗자리 깔고 허가 안 받고 장사하는 것)을 꾸리는 이들 상당수가 당장 먹고 죽을 양식도 없어서 땔감, 나물, 짚신 같은 걸 파는 이들이네. 그런 이들에게는 쌀 두 홉도 버거울 터. 그런 이들은 고을 호적에 진해현 사람이라는 게 명시되어 있으면 장세를 면제해 주도록 하게."

"사또의 따뜻한 마음에 백성들도 감화될 겁니다."

"전하께서 이러라고 본관을 보내셨으니, 신하 된 자로서 모두를 다 굽어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여기 사또로 부임했을 당시 때는 그냥 썩어빠진 제도를 때려잡고, 고을을 정상화 시켜서 황희랑 허조를 실망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하고, 내 덕에 사는 게 좋아졌다면서 마을 잔치까지 벌어진다는 소식을 접하니...

내 마음속에 어느새 애민이라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악덕 정치인들처럼 자기네들이 해 먹는 것만 신경 쓰는 그런 인물 말고. 백성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또, 그런 사또가 한 명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또의 지시대로 상인들과 농민들이 장에 참여하는 것에 차이를 두려 합니다. 상인들은 장터에서 그나마 관아와 가까운 곳에 가게를 내게 하고, 백성들은 그보다 외곽에 자리를 두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상인들은 매일 장터에서 장사할 수 있게 하고, 농민들은 매달 5, 15, 25일에 한 번만 장터에서 물건을 팔 수 있게 하였습니다."

변호사 사무실, 세무사 사무실, 회계사 사무실은 서로 다 모여 있다. 모여 있으면 그게 더 불리한 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더 유리하다고 한다.

그 동네 어디에 가면 전문직 사무실이 다 모여 있으니까, 회계사 찾을 일 있으면 그리로 가게 되고... 그중에 눈에 띄는 가게를 찾아가 일을 맡기게 되고.

농민들이 장터에서 장사하는 품목이야 어차피 뻔하니까. 이왕이면 다 같이 모여서 장사하는 게 저들에게도 낫다.

짚신 팔려고 와서, 짚신을 다 팔게 되면. 번 돈으로 나물이라도 사서 돌아가면 얼마나 좋아.

"잘했네. 그리고 한 가지 꼭 신경 써야 할 것은 상인들이 단합하여 물건을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팔거나 사기를 치거나 하는 경우일세. 즉시 단속을 해야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방은 잘하겠다는 각오가 선 건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뭐, 죽기 싫으면 열심히 하겠지... 는 개뿔.

한 번 나쁜 짓 한 놈은, 두 번, 세 번이 어렵지 않다.

내가 무슨 공자도 아니고 부패한 탐관오리였던 놈들을 어떻게 교화시킬 수 있겠어?

일단 두드려 패고, 그게 아니면 칼 들고 대화를 해야지.

"자네들이 일 처리를 조금이라도 대충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아주 즐거운 일이 벌어질 것이야."

조선의 아전은 한국으로 치면 지방직 공무원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공무원의 위상은 말단이라고 해도 변호사, 의사 제외한 다른 직군과 비슷한 수준이고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나라에서 저들이 개인적인 선물을 받는 걸 막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다. 그러니 부정부패를 모조리 청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두는 것 뿐이다.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 이방."

"예, 사또."

"본관은 말이야, 청운의 꿈을 가졌기에 재상이 되려고 과거를 치르고 장원까지 하게 되었지만. 소신을 못 지킬 바에는 그냥 낙향할 것이네."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진급을 포기한 간부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진급 포기한 중위, 중사가 부대에 관련된 자료를 기무대에 넘기게 되면?

대대장을 포함한 모두가 죽어 나가는 거다. 연대장 별 다는 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 거지.

하물며, 진급 포기한 고을 현감? 그런 놈이 내 상사라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

"전하를 향한 충성을 못 지키면 그게 간신이지 충신인가?"

조선에서 간신이라는 말은 역적이라는 말을 곱게 풀어 쓴 말이다.

그리고 조선에서 역적은 삼족을 멸하는 게 기본 상식이다. 내 가족 목숨까지 걸고 일하겠다는 의지 표명이지.

"지켜보고 있겠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일만 하지 말고 들어가서 좀 쉬기도 하라는 걸세. 그러나 그전에 저기서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있는 병사와 노비들에게 탁배기 한 사발과 밥, 된장, 쌈 싸 먹을 채소를 푸짐하게 내주도록 조치해 주게. 저들이 배곯아가면서 일하는 걸 본관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일하는 이들이 배를 곯았다는 소리가 나오면 본관이 많이 실망할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 관아로 돌아갔을 때, 내가 예상치 못한 방문자가 나타났다.

고을의 선비들이 내가 요새 벌이는 정책이 말이 안 된다면서 찾아온 건가 했는데...

그는 선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억울한 일 당한 백성도 아닌... 상인이었다.

"소인은 작게나마 멸치와 곶감을 취급하고 있는 상인 김만덕입니다. 공명정대하신 사또께 간청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 눈빛을 보니 청탁을 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뭘 하러 온 거지?

그리고 아전들이 나와의 접견을 허락해 줬을 정도면 고을 유지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거물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그를 안 좋게 생각하여 감히 미천한 상인 나부랭이가 사또와의 이야기를 청하였다고 곤장을 치든, 뭘 하든 그런 식으로 괴롭힐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온 것이리라.

"이야기를 들어보지."

이런 인간은 대체로 이익을 가져오는 좋은 사람이던데...